탑 꼭대기는 거의 항상 조용했다. 아이를 키운다고는 믿을 수 없게 늘상 침묵에 젖어 있었다. 김독자는 말이 없는 펀이었고 그런 김독자를 보고 자란 유중혁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필요한 말만 했고, 그 생활은 의외로 불편하지 않았다. 아니, 편리와 불편을 가리는 것은 무용했다. 유중혁은 탑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었으니까. 자신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유중혁은 모른다. 탑 안에서 태어났는지 밖에서 태어났는지조차 알 수 없다. 김독자가 자신을 낳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일단 그는 남자였으니까. 그러나 김독자는 착실하게 유중혁을 키우고 있었다. 자신의 기억이 닿는 한에서기는 하지만, 유중혁은 김독자 외에는 본 적이 없었고 자신은 어리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고 유중혁이 김독자를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는 눈을 떴다. 볼이 차가웠다. 얼음에 대고 있는 것 같은 느낌. 흐릿했던 시야가 몇 번 눈을 깜박이자 천천히 돌아왔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그렇게 걸어 다니는 발들이. 구두도 있고, 운동화도 있고, 스니커즈도 있고, 하이힐도 있고. 정신이 들자마자 그는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 맨바닥에 누워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차디찬 길바닥 한가운데에. 내가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던가? 길바닥에 쓰러질 정도로? 그러나 술을 마신 기억은 없었다... 아니, 떠오르는 것 자체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옷차림을 돌아보았다. 정장바지에 구두, 셔츠 위에 흰 트렌치코트. 주변을 돌아봤을 때 그리 이상한 옷차림은 아니었다. 다만 저 수많은 사람들처럼 갈 데가 있지 않을 따름이었..
모든 기록은 역사가 될 확률을 지니지만, 모든 역사가 기록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록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쓰는 역사에 관해서 김독자는 자신보다 더 정통한 이는 없으리라 예측했다. 김독자는 사관이었다. 이 말을 다시 좀 다르게 쓰자면 말단 중의 말단 품계를 받고 있었다. 아, 물론 완전히 미관말직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 계단 올라가 보았자 끝급은 거기서 거기였고, 봉록도 쉬이 오르지 않았다. 그나마 왕의 사관이었다면 자신의 기록이 무엇이나마 세검정에서 씻기기 전 무엇이나마 될 수 있으리라는 미약한 기대라도 걸어볼 수 있겠으나, 글쎄. 김독자는 왕자의 사관이었다. 본디부터 왕자에게까지 사관이 붙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관이란 무릇 국가의 대소사를 기록으로 남기므로써 미래에 이를 반추해보고 좋은 일은 반복하..
시작에 앞서 요새 마케팅 관련 유튜브를 봐서 그런가 아발론 이미지 홍보 영상 찍는 기사들이 보고픔 근데? 기사들은? 다들 출전해 있을 거고? 그럼 만만한 게 행정조인데? 조슈아는 차출 되었을 거고? 카를은 이전에 복속된 국가의 전 왕이니까 이미지가 안 좋을 거고? 답은 루인과 칸나다 ㅋ 루인 광고 찍어야 한다니까 겁나 기분 좋아져서 광고 시안 퀄이 좋으면서도 직접 대사하기엔 부끄러워지는 내용을 있는대로 뒤져보는 카를이 보고 싶다 마케팅은 여러가지 있으니까 인별도 있고 영상도 있고(위에서는 영상이라고 했지만) 포스터도 있고 그리하여 루인의 남친짤이 전국에 뿌려지게 되는데 “뭘 기대했습니까?” “네놈이 고통스러워하는 표정!” “저런.” “안쓰러워하지 마라!!” “어제 다케온에 돌아갔다가 루인님 포스터에 사인..
엘리트 배경, 본의아닌 스포 내재 가능성 있음 “저는 당신을 왕으로 모실 수는 없습니다. 제 군주와 이상향은 하나만을 가리키고 있으니까요. 당신이 정말 많이 포기했다는 것은 모르지 않습니다만 저는 당신에게 더 많은 포기 밖에 권할 게 없습니다.” “좋아, 바른 말이 빌어먹게 짜증난다는 사실은 과인도 이미 알고 있다. 어쩌다 이런 놈이 애인이 되었는지 모르겠군.” “그러니까 짐은 지금 이해가 잘 안 가는데. 일국의 행정관이 입에 발린 말을 못 한다고? 진심인가?” “그래서 절 좋아하시는 거 아니셨습니까?” “방금 짐이 바른 말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돌려 말하기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로드, 왜 예산은 언제나 부족한 걸까요?’ 같은 거 말이지.” “그보다는 오다가 꽃집을 봤는데 당신 생각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