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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꼭대기는 거의 항상 조용했다. 아이를 키운다고는 믿을 수 없게 늘상 침묵에 젖어 있었다. 김독자는 말이 없는 펀이었고 그런 김독자를 보고 자란 유중혁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필요한 말만 했고, 그 생활은 의외로 불편하지 않았다. 아니, 편리와 불편을 가리는 것은 무용했다. 유중혁은 탑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었으니까.
자신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유중혁은 모른다. 탑 안에서 태어났는지 밖에서 태어났는지조차 알 수 없다. 김독자가 자신을 낳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일단 그는 남자였으니까. 그러나 김독자는 착실하게 유중혁을 키우고 있었다. 자신의 기억이 닿는 한에서기는 하지만, 유중혁은 김독자 외에는 본 적이 없었고 자신은 어리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고 유중혁이 김독자를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따랐다. 일단 성이 달랐던 데다가 김독자는, 음. 믿을 만한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모자란 점이 많았으니까. 일단 음식이 맛이 없었다.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 중 가장 맛있는 것은 과일이나 생채소였을 정도였다. 차라리 직접 요리를 하고 싶었지만 이제 막 십대의 문턱에 들어선 아이가 칼과 불에 손을 대게 하기에는 자신의 양심은 살아있다며 김독자는 항변했다. 그렇다면 책장에 쌓이는 먼지부터 스스로 터는 게 어떨까. 유중혁은 생각했다.
식사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김독자는 책을 읽으며 보냈다. 꽤 넓은 편인 탑 꼭대기 방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벽난로 근처까지 책장이 차 있을 지경이니 말 다 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 수많은 책을 다 읽었느냐고 언젠가 유중혁이 물어 봤을 때 김독자는 그저 웃어보였다. 유중혁에게 허락된 것은 동화책으로 가득 차 있는 몇 칸이 고작이었다. 그래서 유중혁은 남는 대부분의 시간을 체스와 바둑으로 보냈다. 혼자 두는 것이어도 그럭저럭 할 만 했다. 왜 혼자 두냐면, 김독자가 두 게임을 다 정말 못했기 때문이었다. 네가 너무 잘 두는 거야. 김독자가 투덜거렸지만 유중혁은 믿지 않았다. 그 정도로 김독자는 룰만 알고 있다 뿐이지 체스도 바둑도 잘 두지 못했다. 방 안에 체스판과 바둑돌이 있는 것이 신기할 수준이었다.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는 것 외에 둘이 하는 일과가 있다면 정원을 살피는 것이었다. 실내 정원, 아니, 정원이라기 보다는 과수원이라고 하는 것이 나았다. 수많은 과일이 열리는, 넓디 넓은 공간을 관리하기 위해 둘은 하루에 한 번씩 정원에 들어 나무와 풀들을 살피곤 했다. 대부분의 경우는 나무도 풀도 잘 자라고 있었지만 가끔 시들시들한 경우도 있었다. 그럼 김독자는 주문을 외우곤 했다. 거름이라며 뭔가를 땅에 묻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에 유중혁은 김독자가 마법사라는 것을 실감하곤 했다.
유중혁이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김독자가 머리를 빗어주는 시간이었다. 길게 굽이치는 곱슬머리를 김독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빗어주고는 했다. 정작 김독자는 짧은 머리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유중혁의 머리는 길게 길렀다. 그래서 가끔 유중혁은 라푼젤이라는 동화가 생각 날 때도 있었지만, 글쎄, 사람의 머리가 그 정도까지 길 수 있을까? 실제로 유중혁의 머리카락은 어깨선을 넘어서는 자라지 않았다. 그리고 김독자는, 자신을 정말로 좋아했다.
사실 책을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몇 살부터 아이들이 검을 쥐는지. 불을 다루게 되는지. 하다 못해 부엌칼이라도 쥐게 되는지. 몇 칸 안 되는 책장이라지만 그럭저럭 배울 있었다. 그러나 김독자는 유중혁에게 결코 칼도 불도 쓰게하지 않았다. 다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인도 없으면서. 자신이 어디의 귀한 집 아들도 아니고. 그래서 유중혁은 조금 고민해 본 적도 있었다. 사실 자신은 납치 되어 온 것이 아닐까? 어디의 귀한 집 아들이고, 몸값을 받으려고 이렇게 곱게 키우려는 것일까? 그러나 자신이 생각해 놓고도 유중혁은 곧 부정했다. 그럴리가. 그렇게 납치 해 왔으면 오히려 더 부려먹겠지. 게다가 김독자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은 더 소소한 곳에서도 드러나고는 했다. 식사를 할 때 그나마 좋아하는 반찬을 더 밀어 준다던가, 다 같이 청소를 할 때 시선이 결코 유중혁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라던가, 유중혁을 믿고 있는 점이라던가.
나름 자급자족을 한다지만 탑 꼭대기에서 모든 것을 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김독자는 장을 봐 오겠다며 종종 외출을 하곤 했다. 그럼 탑 위에는 유중혁 혼자 남겨지기 마련이었다. 문은, 잠기지 않았다. 물론 탑 꼭대기니만큼 탑 아래 문은 잠겨있을 수도 있지만 밖에서 잠그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탑 꼭대기 문은 잠기지 않았다. 누군가를 가두기 위해 만들어 놓은 방은 그렇게 그 쓸모를 다하지 못했다. 어리다고는 하지만, 유중혁이 나가기 위해서 할 일은 몇 없었다. 그냥 문고리를 돌리고 나가서, 몇 걸음 걷기만 하면 끝나는 일이다. 그러나 김독자는 유중혁을 믿는다는 듯 한 번도 문을 잠그지 않았다. 덕분에 유중혁은 오히려 한숨을 쉬곤 흘끔흘끔 문을 보아야 했다. 누가 쳐들어오면 어쩌려고. 하는 생각을 하며. 그래도 김독자가 장을 보고 온 날 저녁은 대체로 그럭저럭 먹을만 했으므로 많은 불평을 하지는 않았다
. 그 둘은 그런 방식으로 지냈다. 많은 궁금증이 넘실거렸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고 그 덕택에 관계는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었다. 유중혁은 알고 있었고, 김독자는, 글쎄, 김독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너무 많은 것을 물으면, 고양이를 죽인다는 호기심의 칼을 마음껏 휘두르면. 죽는 건 김독자일까 유중혁일까 둘 다일까. 어느쪽도 달갑지 않았으므로 유중혁은 침묵했다. 그리고 과수원 잡초나 뽑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는, 몇 안 되는 장난감 중 하나인 목검을 휘두르며 시간을 보내겠지. 다행히도 책장 중 한 칸에는 책을 채우다 실수한 듯 검술 교본이 한 권 끼어있었다. 유중혁은 그 사실을 김독자에게 딱히 비밀로 하지는 않았지만 알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가끔 그 책을 보며 목검을 휘둘렀다. 책에서 시키는 대로 맨몸 운동을 하기도 했다. 탑 위의 생활은 지루했고, 의외로 할 일도 없었으니까. 그냥, 둘이서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뿐이니까.
탑 위에는 방이 딱 세 개 있었다. 유중혁의 침실 하나. 김독자의 침실 하나. 부엌 겸 거실 하나. 나머지는 과수원이었다. 김독자의 방이 유중혁의 방보다 아주 조금 더 넓었고 대신 옛날에 유중혁이 썼다는 요람을 비롯한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있었다. 가끔 김독자가 저녁을 먹다 말고 술 한잔을 기울이는 날이면 김독자는 유중혁의 방에서 유중혁을 끌어안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유중혁은 그럼 얼굴을 찌푸렸지만, 김독자를 밀어내지는 않은 상태로 잠을 청하고는 했다. 안락하고 안온한 나날이었다.
평범한 나날이 종말을 고하는 것은 그런 평범한 나날 중의 하루다. 유중혁은 그날 김독자의 눈을 피해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있었고, 김독자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릇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맞추어 유중혁은 검술 교본에서 시키는 대로 몸을 소리없이, 꾸준히 움직였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둘 밖에 없는 이 집안 사람은 죄다 시야 범위 안에 있었다. 아니, 이 안에서는 노크를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잠시 후, 노크 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노크라기에는 둔중하고 거칠어서, 마치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였다. 유중혁은 털을 세우는 고양이처럼 바싹 긴장했다. 김독자는 행주로 손을 닦아내고 문을 향해 다가갔다. 문을 열기 전에 누가 왔는지를 알려고 하듯 김독자는 문가에 기대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투시마법일까? 아니면 공격마법? 유중혁은 마른 침을 삼키며 목검을 주워들었다. 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성의 목소리였다.
-독자야.
김독자가 흠칫 몸을 떨었다. 캐스팅하던 손이 문득 멈추었다. 성질이 급한 건지 아니면 상황이 급한 건지 다시금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에 있는 것 다 알고 있다 김독자. 문 열어라.
김독자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뒤를 바라보았다. 유중혁와 눈이 마주쳤다. 김독자는 손짓을 해 유중혁을 불렀다. 유중혁은 못마땅하여 눈살을 찌푸렸지만 어쨌든 김독자가 시키는 대로 가까이 갔다. 아직은 어려 김독자의 허리께에 키가 닿았다. 김독자가 문을 열었다. 후드가 달린 긴 옷을 입은 키 큰 사람이 문 안으로 성큼 걸어들어왔다. 키가 어찌나 큰지 문틀에 머리가 부딪히지 않게 숙이고 들어와야 할 지경이었다. 후드를 뒤집어 써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김독자는 한 손으로 유중혁을 추스르며 문을 닫았다. 그리고 포권을 해 인사를 올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파천검성님."
"음."
파천검성이 후드를 벗었다. 그리고는 권하지도 않았는데 식탁 의자를 빼어 자리에 앉았다. 한 다리를 들어 가부좌 틀듯 올리는 것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자세였다. 머리카락이 한두가닥 흘러내렸다. 유중혁은 김독자의 바짓자락을 꼭 쥐었다. 처음 보는 '다른 사람'을 흘끗흘끗 훔쳐보면서도 김독자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다른 사람이라는 게 있긴 있었구나. 그런 감상도 조금은 섞여 있었다. 처음 보는 다른 사람은 굉장히 커다랬다. 아직도 조그마한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자신도 자라고 나면 저렇게 커지는 걸까? 하지만 김독자는 저렇게 크지 않은데?
"스승님은 잘 계시는지요."
"마탑주라면 잘 있다. 망할 놈. 후계자가 갑자기 날라 버려서 열 받아 있는 것만 빼면 말이다."
"그것 참."
"남 일처럼 말하는 게냐."
김독자가 빙긋 웃었다. 본래도 잘 웃는 이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웃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유중혁은 김독자의 처음 보는 웃음을 바라보다 다시 낯선 사람에게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공간에는 이제 모르는 사람 투성이가 되었다. 파천검성은 문득 거기에 유중혁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처럼 운을 띄웠다.
"그래, 이 애가 '그 애'냐?"
그리고 긴 팔을 뻗었다. 당장이라도 팔이 몸에 닿을 듯 했다. 유중혁은 호흡을 멈추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뭔가가 몸에 닿는 일은 없었다. 다시 눈을 뜨자 김독자가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정확히는, 김독자의 옷자락이 앞을 가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중혁이입니다."
"음?"
"그 애가 아니라, 유중혁입니다."
파천검성이 웃음을 터트렸다. 좁은 거실이 웃음 소리로 가득 찼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유중혁이 고개를 내밀고 황망하게 파천검성을 바라보자 김독자가 유중혁을 다독였다. 파천검성이 고개를 저었다.
"일껏 길러놓고 그 애가 아니라."
"그 말에 따르게 된 것만 해도 속쓰립니다. 그만하시죠."
"그래. 그런 놈이었지 네놈은."
파천검성은 웃음을 잠재우며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손짓을 했다. 누군가를 부르는 듯한 손짓이었다.
"유중혁."
그리고 또렷하게 유중혁의 이름을 불렀다. 유중혁은 흠칫 놀라 그 손을 바라보았다.
"이리 좀 와 보아라."
유중혁은 잠시 김독자를 올려보았다. 김독자는 그런 유중혁을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여주였다. 유중혁은 쭈뼛거리다 저벅저벅 걸어 파천검성의 앞에 섰다. 파천검성은 그런 유중혁을 위아래로 훑었다.
"근골이 제법이군. 검을 배워볼 생각은 없느냐?"
"뭐?"
"키는 좀 작다만 그거야 클 수도 있는 것이고."
"파천검성님!"
김독자가 소리를 쳤다. 파천검성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려 김독자를 보았다.
"그럼 너는 이 아이에게 검이라고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을 생각이었느냐?"
"...가능하다면요."
"퍽이나."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을텐데. 김독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파천검성은 그렇게 말하곤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가시려고요?"
"그래. 네놈이 잘 살고 있는 걸 보았으니 되었다."
궁금해지면 또 오마. 파천검성은 그렇게 말 하곤 거칠 것 없이 걸어 문 밖으로 나갔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는 게 있다. 그리고 김독자는 나에게 검을 가르치기 싫어한다. 어째서? 위험하니까? 그야 위험하겠지. 그러나 다른 사람-단 한 사람 밖에는 보지 못하였지만 그래도-의 말을 들어보면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배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일찍 배워서 익숙해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제한 된 정보 속에서 유중혁의 머리가 필사적으로 굴러갔다. 그리고 설핏 김독자를 올려다 보았다. 김독자는 비틀비틀 걸어서 조금 전까지 파천검성이 앉아있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무어라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흐릿하고 옅어서 잘 들리지 않았다.
"벌써, 하지만... 이제. 겨우... 조금이라도, 아니, 그래도..."
거의가 부사로 이루어진 문장 구성은 알아 들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몇 번이고 앞선 말을 부정해서 김독자는 무슨 결론을 얻어낼까. 왠지 두려워져서 유중혁은 김독자 앞으로 걸어가 김독자의 무릎을 짚었다. 그리고 김독자를 불렀다.
"김독자."
"중혁아."
김독자는 그제야 유중혁을 눈치챘다는 듯 고개를 조금 들고 설핏 웃었다. 마주친 눈동자는 동공이 조금 컸다. 자신을 보고 있는 건 맞을까? 유중혁은 쭈뼛 소름이 돋았다. 심장이 요동치고 덥지도 않은데 등 뒤로 땀이 흘렀다. 몸이 좋지 않은 건가? 생각이 곁가지로 새는데 김독자의 무릎 위에 올라있는 손등에 따뜻한 것이 닿았다. 김독자가 손을 잡았다.
"우리 이사갈까, 중혁아?"
김독자가 문득 말했다. 이사라니? 이렇게 갑자기? 간다면 어디로? 이 짐들은 어떻게 하고? 수많은 생각이 지나갔고 그것이 보이는 건지 김독자가 조금 웃었다.
"농담."
우리 중혁이 많이 놀랬어요? 김독자가 놀리듯이 물었다.
"...놀라지 않았다."
놔라 김독자. 유중혁은 불퉁하게 말하면서도 김독자의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제 손가락을 하나하나 만져보고 있는 김독자는 진심이었다.
그날 저녁 유중혁은 베개를 베고 누우려다 문득 자리에서 일어났다. 큼직한 베개는 유중혁의 몸통보다도 컸다. 그래도 품 안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는 아니라 유중혁은 베개를 가지고 김독자의 방을 향했다. 김독자는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고 있었다.
"김독자."
"음? 중혁이 왔...?"
그리고 잠시 후 김독자는 웃음을 터트렸다. 제 모습이 어디가 우스운 걸까? 유중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오만 잡동사니를 피해 김독자의 침대 위에 베개를 얹고 유중혁은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옆의 베개를 팡팡 두드렸다.
"자자 김독자."
"어이구 우리 중혁이..."
김독자의 웃음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럴까? 그렇게 말하며 김독자도 자리에 누웠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누운 것이 반쯤은 장난인 성 싶었다. 알 게 뭔가. 재워버리면 그만이지. 유중혁은 조금 불퉁하게 생각하며 몸을 돌려 김독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부디 이 안온한 생활이 더 이어지기를. 그것은 누구의 바람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이 좁은 탑 위에는 창문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기가 잘 이루어지는 것은 김독자가 마법사이기 때문인 걸까. 방 안에는 항상 옅지만 바람이 흘러다녔다. 그건 자유로운 걸까 아니면...
수저를 뜨다 말고 유중혁은 문득 김독자에게 물었다. 그러고보니.
"마탑이라는 게 뭐지?"
김독자의 수저질이 문득 멈추었다. 그럭저럭 음식을 입 안에 넣고 씹고 있던 동작도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음식을 넘겼다. 아직 아침이라 둘 다 빗지 않아 머리가 부스스했다. 김독자는 음식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대답은 하지 않았다. 뭔가를 말할 듯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꼭 알고 싶어?"
그 말은 대답해주기 싫다는 뜻이었다. 사실 그리 중요한 정보는 아니었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많이 궁금한 것도 아니었고, 다만 김독자가 마탑주의 후계자라고 하니까. 그 점이 궁금했던 것 뿐이었다. 너는 어떤 사람인지. 그런 것이 궁금했던 것이었다. 유중혁은 인상을 찌푸리고 다시 수저질을 했다. 밥은 여전히 맛이 없었다. 김독자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유중혁은 팔굽혀펴기를 했다. 그러고 보면 바깥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마탑. 마탑이 전부를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럼 그 수많은 동화책에 왕이라는 존재가 나올리가 없을 테니까. 그럼 왕과 마탑이 있는 걸까. 그리고 백성들. 탑에 갇힌 건 보통 공주던데 자신도 혹시 왕의 자손이라거나- 몇 번 쯤 한 생각을 곱씹으며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는데 문득 김독자가 입을 열었다.
"마탑이라는 건, 마법사들이 모여서 공부를 하는 탑을 말해."
"...?"
"마탑주라는 건 그 중에서 가장 높은 사람을 말하고."
유중혁은 맨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주저앉았다.
"그럼 너도 마탑 소속이었었나?"
"응."
"그럼 검탑 같은 것도 있나? 검술을 하는."
"아니. 검술은 넓은 데서 해야 해서 탑에서 공부하지 않아."
"지난 번에 왔던 그 사람은...?"
"파천검문 소속."
중혁이가 오늘따라 질문이 많네. 웃음기가 섞인 말이었지만 기분이 상한 것처럼 느껴졌다. 유중혁은 입을 다물었다. 바깥을 궁금해하면 안 되는 걸까? 김독자는 그것을 원하는 걸까? 하지만... 미묘한 반발심이 솟았다. 검을 배우지 않겠느냐? 파천검성의 말이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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