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글 백업입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바보 같다. 미도스지 아키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름이라는 것은 언제고 대체 될 수 있는 객체에 지나지 않는다. 언어는 자의적이다. 중학교 때 성적 1점을 위해 거의 모든 학생들이 외우는 문장이었다. 심지어 사람의 이름, 고유 명사마저도 이제는 바꾸기가 용이하다. 그런데도 남의 손목에 이름을 새기는 신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전 세계에 걸쳐 남의 이름을 미아 방지용 목걸이마냥 손목에 걸고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1%정도 밖에 되지 않는 미미한 숫자임에도 그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 사람을 찾기 위해 헤매고, 만나기도하고, 엇갈리기도 하고, 그럼으로써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때로는 영영 만나지 못하기도 하며 그들은 살아갔다. 까만 이름은 그렇게 그들을 ..
2014년 글 백업입니다. 아키라에게. 오랜만이네. 음, 아니다. 편지는 처음인가. 사실 이메일로 보내려다가 굳이 편지로 바꿔서 써 본다. 우리 연애 편지라는 것도 써 본 적 없었잖아. 같은 학교라는 건 여러모로 좋았지만, 낭만이 적었다고 하면 그건 또 슬퍼지니까 괜히 한 번 이렇게 해 본다. 손편지는 아무래도 느낌이 다르니까. 아, 초반부부터 횡설수설 하고 있네. 읽기 힘들다면 미안해. 프랑스는 좀 어때? 잘 지내고 있어? 이쪽은 아직 좀 춥네. 그래도 이제 곧 4월이니까 금방 더워지지 않을까 싶어. 가끔 뉴스에서 프랑스 소식이 나오면 집중하는데, 확실히 프랑스 날씨 얘기 같은 건 잘 안 해주더라. 스포츠도 그렇고. 잘 해봐야 정치 얘기밖에 안 하니까 그거 나름대로 슬프더라. 인터넷으로 검색해 봐도 잘..
2014년도 글 백업입니다. ※오드리 니페네거 저, 시간여행자의 아내 AU 혹은 패러디입니다. ※과거 날조가 있습니다. 이시가키 코타로, 셀 수 없음. 미도스지 아키라, 1. 나뭇잎이 묵직하게 흔들렸다. 물방울이 잎 위에서 구르고 구르다 툭, 하고 흙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툭, 툭, 투두둑. 빗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무가 많은 산길은 그래도 비를 조금 덜 맞는 편이다. 어쩌다 맞게 되면 한꺼번에 많이 맞기는 하지만, 나뭇잎이 그래도 우산역할을 해 주어서 확실히 덜 맞는 편이다. 끼익, 끼익. 약간이지만 물을 맞은 자전거가 쇳소리를 냈다. 미도스지 아키라는 끈적하게 달라붙는 오금을 억지로 펴면서 페달을 밟았다. 더운데다가 비까지 와서 습한 탓에 숨을 쉬어도 쉰 것 같지가 않았다. 목구멍까..
2014년 글 백업입니다. ※오드리 니페네거 저, 시간여행자의 아내 의 AU, 혹은 패러디입니다. ※과거 날조가 있습니다. 이시가키 코타로, 셀 수 없음. 미도스지 아키라, 9. 틱, 탁, 틱, 탁. 저녁을 넘기고 나면 별채는 고요해진다. 사람도 없고, 유일한 사람도 말이 없다. 기껏 해봐야 시계소리나 종이를 긁는 펜 소리 정도만이 어색하게 침묵을 탈출하고자 한다. 미도스지 아키라는 이런 침묵에 익숙해진지 이미 오래였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기도 전에 방은 이미 별채로 독립되었다. 아예 건물이 다르다보니 여동생이 놀러오는 시간, 밥 먹으러 가는 시간, 대청소 같은 몇 가지 상황을 제외하면 사람이 들어오는 것부터가 역으로 익숙치 않다고 하는 게 옳았다. 별채는 영원할 것 같은 고요 속에 있기 다반사였다. ..
2014년도 글 백업입니다. ◎오드리 니페네거 저, 시간여행자의 아내 의 AU, 혹은 패러디 입니다. 이시가키 코타로, 셀 수 없음. 미도스지 아키라, 3. 머리 꼭지가 비틀리는 듯 하더니 시야가 출렁, 하고 흔들렸다. 파도에 흔들리는 쪽배에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가 싶더니- 정신을 차려보니 풀밭 한가운데에다 위액을 토해내고 있었다. 숨을 고르기 위해 헐떡이는 숨을 내리누르자 속이 다시 한 번 뒤집혔다. 비록 나오는 건 위액 밖에는 없었지만, 그래서 몇 배로 더 괴로웠다. 직전에 뭘 하고 있었지. 그래, 그 때는 아침이었다. 새벽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몰랐다. 겨울 밤은 길다. 출근을 위해 둘이 일어나는 시간에는 아직 해가 뜨지 않는다. 몽롱한 머리로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비척비척 욕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