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 등과 관련이 없습니다. 고등학생이라. 커크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생각했다. 푹신한 소파 탓에 몸이 푹 꺼지는 것 같았다. 벌칸 꼬맹이는 잠시 커크를 바라보다 이내 다시 숙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조막만한 손이 사각사각 샤프를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다 커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기껏해야 초등학교 6학년은 됐을까 싶은데. 벌칸의 지능이 인간보다 높다고는 하지만 몇 년이나 월반을 한 건지 머리가 아팠다. 커크는 미간을 꾹꾹 눌렀다. "어디 안 좋으신가요?" 부드러운 여성의 말에 커크는 고개를 들었다. 쟁반 가득히 찻주전자와 컵, 온갖가지 티푸드가 가득한 트레이를 조심스레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벌칸 꼬마는 어느새 다시 가방을 싸두었..
2015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도시에 도착하기까지 꼬박 닷새가 더 걸렸다. 사흘이면 온다던 거리가 줄지를 않아서 갤리는 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깨어있는 것도 아닌 흐리멍텅한 밤을 보냈다. 마지막 밤에 민호는 적당한 보금자리를 찾지 못하여 바싹 마른 나무 아래에서 둘 다 잠을 청했다. 비가 온 지 나흘밖에 지나지 않아서인지 새싹이 조금씩 움트고 있었다. 새싹이라고 하기엔 많이 자란 것도 있었지만, 어쨌건. 다리 뻗을 장소를 위해 새싹들을 옆으로 치우고 다음 날 아침 노랗게 말라있는 싹을 보며 길을 떠났다. 여섯 번째 밤이 되어서야 둘은 간신히 성문 근처에 다다를 수 있었다. 문이 닫히기 직전에 간신히 문 안으로 들어선 둘은 일단 여관방을 ..
2015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마을 바깥은 황무지였다. 길 아닌 길을 밟고 이동하다 보면 간간히 여행객이나 사냥꾼을 마주칠 수 있었지만 날이 험해서인지 대부분 얼굴조차 보지 않고 스쳐 지나갔다. 혹시 모르기에 물을 반 병 정도 밖에 비우지 못해 목이 탔다. 새벽에 떠날 때 햇무리가 진다 했더니 날이 꾸물꾸물했다. 당장이라도 비가 올 것 마냥 어둑하게 잠긴 구름 사이로 습한 바람이 불었다. 갤리는 피곤에 찌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낮인데도 저녁 무렵처럼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갤리는 앞서가고 있는 민호의 등을 바라보았다. 달리다가 약간 빠르게 걷는 것으로 속도를 줄인 것을 제외하면 특별히 달라진 점은 없었다. 갤리는 그제야 자신이 앞으로..
2015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재하는 인물, 사건, 단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갤리는 천애고아였다. 이렇게 말하니 약간은 우울한 감이 들지만, 어쨌든 이 이야기는 갤리도 그다지 부정할 수는 없는 사실이었다. 갤리는 천애고아였다.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다 흘러 들어와 도제가 없던 목수가 어쩔 수 없이 거두게 된 아이였다. 몇 대가 한 곳에 정착해서 사는 이 동네에서는 분명한 이방인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나라는 유랑민이 한없이 드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 마을 밖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종종 잊어버리곤 했다. 교체되는 사람은 기껏해야 몇십 년에 한 번 죽은 사제를 대신해 신전의 사제가 새로 파견되거나 역시 대를 교체해 세금을 거두러 오는 마을 영주가 다였다. 십여 년이 넘는 ..
2015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히어로물입니다.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나중에 확인 한 바에 따르면 주말에 낮잠을 자겠다고 시간을 오후로 바꿔 놓고서 다시 오전으로 돌리지 않은 것이었다. 덕분에 갤리는 지금 지각의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교통 체증이 좀 빠졌으려나?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직장까지 거리가 좀 있는 편이긴 하지만 이럴 바에는 자가용이 아닌 지하철을 이용하는 게 나았다. 갤리는 지하철까지 뛰어 내려가서-대학교 때 뛰었던 100m 기록을 경신했다는 기분이 들었다-사람들 사이에 몸을 우겨넣었다. 넥타이를 정리하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있었지만 지각은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갤리는 등을 문에 기대고-사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