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 기획은, 좋은 말로 순화했을 때 참 독특하고도 참신한 광고로도 유명했지만 업계에서는 가끔 이상한 소문이 떠도는 회사로도 말이 많았다. 야근을 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더라, 하는 그런 소문.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광고 기획사로서는 당황스러운 소문이기도 했고, 따라서 그만큼 어처구니가 없는 소문이기도 했다. 가끔 한 번씩 입에 올려졌다가 낄낄거리는 웃음과 함께 뇌리에서 지워지는 그런 이야기였다. -즉, 이 소문이 진실이라는 것은 내부 사람들 몇몇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깊은 밤, 쿵 하는 소리가 나서 기획 3팀의 정신이 순간 퍼뜩 들었다. 며칠 째 계속된 철야 작업으로 다들 뇌리가 몽롱해져 있어서 재빠른 반응이 불가능했다. 가장 먼저 박차장에게 달려간 것은 이대리였다. "..
방 안은 영 어두침침했다. 겨울이 깊어가는 시점에서야 퇴근을 하고 집에 온 시간 즈음이면 아무리 이르더라도 해가 이미 다 지고 남는 건 가로등 불 정도 밖에 없다. 그나마 층이 낮은 원룸이라 바깥의 불이 조금씩 새어들고는 있지만 그래도 방 안은 영 어두침침했다. 한유진은 구두를 벗었다. 현관은 좁았지만 신발 두어켤레 못 놓아서 신발장을 반드시 사용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움직임에 따라 장갑 낀 손에 든 종이봉투가 바스락거렸다. 한유진은 어둠이 앉은 방으로 발을 디디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건호씨 자요?" 한참 있다가 아니요, 하고 먹먹하게 대답이 들렸다. 방에 있었구나. 굳이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벽의 익숙한 위치를 손으로 더듬자 딸각, 하는 소리와 함께 방에 불이 들어왔다. 항상 보던 익숙한 방..
2012년도 글 백업입니다. 띠링- 핸드폰에서 들어본 적 없는 소리가 울렸다. 사실 핸드폰으로 시계를 본다고 켜고 있지 않았으면 그게 제 핸드폰에서 난 소리인 줄도 몰랐을 것이다. 막 열두시- 그러니까, 자정을 넘기고 있는 핸드폰 시계를 보다 김건호는 핸드폰 잠금화면을 밀었다. 조그마한 곰인형 같은 것이 화면 가운데서 빙글빙글 돌다 멈추었다. 오늘의 운세! 기계음으로까지 들리는 귀여운 목소리가 울려퍼져서 김건호는 황급히 잠금버튼을 누르고 주위를 둘레둘레 둘러보았다. 워낙에 사람이 많은 역이다보니 주변은 꽤나 붐비고 있었지만 그 때문인지 제각기 이야기를 나누느라 이쪽에는 주목하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김건호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휴대폰을 들여다 보았다. 다행히 소리는 다시 나지 않았다. 가운데 서..
2012년도 글 백업입니다. 할로윈, 할로윈 잘도 떠들어대지만 '진짜배기'들에게 이런 가짜들이 뛰어노는 날은 상당히 복잡한 심경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일년에 며칠 되지 않는 본래 옷을 입고 활보할 수 있는 날이기도 하지만 가짜들이 거리에 넘쳐나는 것을 보면 영 기분이 착잡한 것이 일족이 이렇게까지 웃음거리가 되야 하는가에 대한 서글픔이 문득 솟구치는 것이다. -이것도 다 그놈의 순혈 정혈 열심히 외쳐대는 가문의 교육 덕이라고 생각하면 이게 더 마음이 착잡하지만. 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몇 년 전까지만해도 할로윈이다! 라고 아무리 외쳐도 아는 사람 거의 없던 이 나라에도 어느새인가 외국의 문물이 스며들어와 인터넷에서 검색 조금 해볼라 치면 할로윈에 파티해요! 등의 말이 올라온다. 새삼 인간들이 말..
2012년도 글 백업입니다. IM(Instant massenger) : 인터넷 등의 네트워크를 이용한, 두 명 이상의 실시간 텍스트 통신 클라이언트. 대표적인 예로는 카카오톡. (위키백과 출처 내용을 편집) 김건호는 방바닥에 앉아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방바닥에 꿇어앉아 있었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방바닥에 꿇어앉아 무릎 조금 앞쪽에 둔 검은색 투박한 핸드폰을 지그시 쳐다보며 조금 떨고 있었다. 단순한 네모 모양의 스마트폰에 구멍을 뚫고 싶은건지 한참동안 무릎에 손을 올리고 등도 뻣뻣하게 편 상태로 스마트폰을 노려보고 있던 김건호는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스마트폰에 조금 뻗었다가 다시 손을 거두어들이길 벌써 다섯 번 째 반복하고 있었다. 분명히 헐렁한 박스티에 바지 옆선을 따라 두툼하게 줄이 간 트레이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