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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사건/단체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해리포터au, 수위는 없으나 오메가버스, 네임버스 세계관입니다.

*대괄호[] 안은 한국어라는 설정입니다. 인소 같아요 죄송합니다...

 

"체크메이트."

하얀 퀸이 까만 킹을 보며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민호는 체스판을 한참 뚫어져라 쳐다보다 혀를 찼다.

"아픈 놈 이기니까 좋냐."

"먼저 체스하자고 말 꺼낸 건 너라는 거나 기억해, 부반장."

그리고 사실 아픈 것도 아니잖아? 뉴트가 유들유들하게 말했다. 주머니를 열자 따냈던 말과 판 위에 있던 말들이 우르르 주머니 안으로 몰려들어갔다. 판을 접고 있는 뉴트에게 민호는 약간 불평하듯 농을 걸었다.

"약 먹고 격리 되어 있으면 아픈 거나 다름 없지."

"너랑 같이 갇힌 나는 무슨 병이야. 같은 방이어서 옮았냐?"

"아니, 알파인 죄."

"[시발]."

그리고 나서는 둘 다 낄낄 웃었다. 같은 방을 7년째 공유하고 있었더니 처음에는 욕이냐며 핏대를 세우던 녀석이 한국어 욕이 더럽게도 능숙해졌다. 민호는 베개를 조금 고치고 다시 누웠다.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선천적 괴질 비슷한 취급을 받은 적도 있던 이 형질이라는 것도 이제는 세간에서 많이도 받아들여졌다. 알파와 오메가, 주기적으로 발작을 하고 알파는 오메가를 임신시킬 수 있다. 대충 말하자면 신인류가 태어났고 여자와 남자 구별이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 진다고 이해하면 되는 일이다. 민호는 일단 그렇게 생각했다. 비록 그 수는 적지만 대중적으로 알파와 오메가가 잘 알려진 현대에 태어난 민호로써는 별로 이상할 것도 없었고 어려울 것도 없었다. 게다가, 일단 본인이 알파인 것을. 다만 알파도 히트 사이클이 있다는 점은 매우 엿 같다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오메가의 히트 사이클만큼 이상이 직접적으로 드러나거나 뭐 그런 건 아니지만- 가벼운 두통과 함께 페로몬이 방출된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리고 주변에 오메가가 있으면 덥치려고 든다, 는 게 통설이었다. 그런 게 통설이라는 말은 안 그런 사람도 있다는 거지만 여튼 그랬다. 덕분에 히트 사이클이 온 민호는 본의 아니게 병가 상태였고 같은 학년 같은 기숙사에서 유일하게 알파인 뉴트도 같은 방에 반 감금상태였다. 그래봤자 어차피 배 안이라 특별히 할 건 없었지만. 자기 침대에 앉은 뉴트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걸었다.

"약은 왜 안 챙겼어?"

"가방에 짐 싸놓고 나니까 물약 들어갈 자리가 없던데? 사실 머글들이 쓰는 경구 억제제 못 들이게 하는 것 자체부터가 더럽게 에러 아냐?"

"아 그건 그래. 나도 아버지 눈 피해서 구해봤는데 좋던데. 물약은 맛이 영."

약 한 병이면 씻은 듯이 나을 수 있는 건데 항해중이라 그 약 한 병을 못 구하는 게 둘 다 영 아쉬웠다. 알파의 히트 사이클은 오메가의 그것보다는 훨씬 덜하고 주기도 불규칙한데 조제법은 까다롭다보니 조그마한 배의 의료실에는 민호 가방과 비슷한 이유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몇 마디를 나누는 사이에 화제는 순식간에 교내 반입 금지 물품 목록으로 옮겨가 있었다. 워낙에 머글 사회는 휙휙 변하는데 비해 이쪽 사회는 어째 영 침체된 분위기가 있다보니 머글 사회에 익숙한 편인 민호로써는 반입 금지 물품들이 비현실실적으로 보였다. 그럴 수 밖에 없기도 했다.

마법사인 줄도 모르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에 부엉이 두 마리를 받고 민호는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어떤 곳을 고를까요 알아 맞춰 봅시다. 지도를 펴 놓고 아버지 손가락을 잡은 채 영국과 불가리아를 손가락이 몇 번이나 오갔다. 손끝은 동쪽을 향했다. 그래서 민호는 덤스트랭으로 왔다. 호그와트가 교풍이 좀 더 풀어진다는 걸 생각하면 이쪽을 고른 제 손가락을 뽑아놓고 싶었지만 여튼 그랬다. 핸드폰이 반입 금지라니 미친 거 아닌가? 순수 마법사 혈통을 자랑하는 아버지 덕택에 영국에서 살다가도 더 엄격한 교풍의 학교로 밀어넣어진 뉴트로써는 처음에는 좀 어려운 이야기인 듯도 했지만 지금은 죽이 잘 맞다 못해 소울메이트라고 하고 싶은 수준이었다.-이름이 나타나지 않으니 그건 무리지만-지난 방학에 한국에 있는 제 집으로 돌아갔을 때 열두 살 먹은 여동생이 저한테 한 입 먹은 사과 핸드폰을 자랑하더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움직이던 배가 크게 흔들리더니 각도가 순식간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 도착했나 본데."

"아 미친, 드디어."

뉴트가 자리에서 일어날 지팡이를 챙기는 동안 민호는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그와트 의무실에 알파 억제제 한 병 없으려고. 지끈 거리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민호는 아픈 머리를 잠재우려 조금 심호흡을 했다. 교수님의 목소리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와서 지팡이를 주워들고 일어나자 뉴트가 웃으면서 방문을 열었다. 북쪽 지방의 서늘한 여름 공기와는 또 다른 한껏 데워진 영국의 텁텁한 공기 맛이 났다.

-

원래대로라면 부반장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식당에 들어설 때부터 트리위저드 시합을 축하하는 길고 화려하고 창피하기 그지 없는 퍼포먼스를 해야겠지만 민호는 병가를 받았다. 자기 대신 그 자리에 밀어넣어진 동급생이 상당히 한이 어린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았지만 아픈 걸 어쩌겠는가. 누군 좋아서 저녁 식사 대신 병동에 누워있는 걸 택하겠느냔 말이지. 비록 영국음식이 매-우-매-우- 맛이 없다고 할 지언정 말이다. 만국 공통 병원밥은 맛이 없는 법인데 영국 병원 밥은 어떨지 민호는 영 상상이 가지 않았다. 사실 상상하기엔 내리 골이 지끈거리기도 했고.

억제제를 먹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열과 두통은 가라앉겠지만, 당신을 폼프리 부인이라 말한 의무실 담당자 분은 민호에게 병동에서 하룻밤 자고 갈 것을 권했다. 성 안의 지리도 알지 못하고 어디에 배를 정박했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는 민호에게는 상당히 고마운 제안이기도 했다. 학기 초여서 그런지 병동에는 사람도 없었다. 약간 서늘하게 가라앉는 벽돌 성의 한 켠에서 민호는 파이프 침대 위에 몸을 뉘였다. 뉴트는 아까 민호를 데려다 주고 반장의 임무-퍼포먼스의 중심축-를 다하러 돌아가버렸다. 옆에서 저녁으로 오트밀이라도 들겠니? 하고 챙겨주던 부인도 자리로 돌아가서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민호는 얇은 이불을 덮으며 멍하니 널찍한 병동을 눈으로 대충 훑었다. 참, 하릴 없다 싶었다. 그리고 나서 바로 생각 했다, 아니 뭐. 병동이 하릴 없으면 좋은 거지.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뜨개질을 하던 부인이 멈칫 하더니 문가로 달려가 커다란 문을 열었다. 문 밖에서 복도를 따라 웅웅 울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애 한 명, 그리고 남자애 한 명이 있는 것 같았다. 오 그리고 환자 한 명.

"저기, 저기 부인, 죄송한데, 갑자기 토마스가."

"오 토마스! 어떻게 된 게 너는 7학년 학기 첫 날 부터- 일단 들이거라 척. 수고가 많았다. 너도 트리샤. 오, 맙소사. 너희 뭔가 아는 거 없니? 열차 같은 칸에서 얘가 뭔가 작당이라도 했어? 너희도 알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규칙 위반이건 뭐건 최대한 많이 알려줄수록 도움이 된단다. 맙소사. 열이 펄펄 끓잖아."

"부인, 이번에는 진짜 저희도 몰라요. 이 멍청이가-짝, 하고 때리는 소리가 나더니 다 죽어가는 남자 목소리가 트리샤아 하고 여자애 이름인 듯 한 것을 불렀다-대체 뭘 했는지. 제가 아는 거라고는 감자튀김 감자튀김 노래를 부르다가 저녁 시간에 입에 쑤셔넣더니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 한 것 정도에요."

"정말이니 척?"

"....예에...."

그리고 약간 궁시렁대는 소리가 들렸다. 대강 알만하군. 민호는 베개를 고쳐베었다. Tomas. 엄청나게도 흔한 이름이었다. 저렇게 흔한 이름을 가지고 병동에서 얼굴을 쉽사리 알아보는 삶을 살다니 어지간히도 자유분방한 녀석인 것 같았다. 좋네 호그와트. 민호는 휘파람을 불고 싶어졌다. 커튼 한 장 너머 침대로 옮겨진 남자애를 여기저기 살펴보던 부인이 오- 걱정하는 소리를 올리는 듯 싶더니 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척, 트리샤. 이제 그만 돌아가 보렴. 저녁도 먹다 말고 왔을 것 같은데."

"예? 하지만-"

"이 바보는 그냥 지금 네임이 발현 되려는 거 뿐이니까.."

"-네임이요."

얼빠진 남자 목소리가 마무리를 짓자 잠시 후 퍽퍽 둔탁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충, 마치 베개 싸움을 하는 것 같은 그런 소리였다. 내가-못 살아-진짜-인간아-사람-걱정 시키는데는-도가-터서- 트리샤 아파! 앞푸흡 입에 깃털 들어갔흡 베개도 아프하읍 결국 부인이 중재를 하고서야 문이 다시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얼음 주머니를 만들어 줄테니 잠시만 기다리렴. 다시 부인이 커튼 뒤로 나왔다. 얼음주머니를 만들다 민호를 본 부인은 민호에게 다가와 열을 재었다.

"체온도 정상 범위네. 이제 두통도 괜찮지?"

"예. Thanks, Mrs."

민호는 최대한 듬직하게 대답했다. 부인은 부드럽게 웃고는 다시 커튼 너머로 돌아갔다. 토마스 괜찮니? 네 부인 전 아주 멀쩡해요! 전혀 안 멀쩡하구나. 주기는 괜찮지? 오 그럼요 당연하죠! 곧 돌아오겠네. 응, 알았다. 일단 이거 끌어안고 있으렴. 억제제는 남았니? 그정도도 제가 못 챙기겠어요? 역시나. 만들어 줄테니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가지고 올라가려므나. 그리고 커튼 뒤에서 자신의 신뢰성에 대해 한탄하는 길다란 넋두리가 들려왔다. 민호는 조금 웃겼다. 그리고 커튼 한 장을 사이에 둔 저 남자가 상당히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호그와트, 첫째날. 생각 보다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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