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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스타트렉 AU입니다.
*설정에 날조가 있습니다. 많습니다. 스타트렉에 아직 덕력이 부족해 많은 걸 알지 못하는 게 패착입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碑)돌은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함형수(1936), 해바라기의 비명(碑銘)-청년 화가 L을 위하여, 시인부락
"기관실장."
"꺼져."
갤리는 흘끗 안경을 엄지 손가락으로 들어올렸다가 다시 쓰며 욕설로 대꾸했다. 명백한 항명에 규정 위반이었지만 자신의 금발보다는 색이 탁한 노란 셔츠를 입은 부함장은 고개를 잠깐 갸웃했다가 다시 표정을 원래대로 돌렸다. 갤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수리를 지속하기 위해 PADD를 두드리며 궁시렁궁시렁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불평을 해 댔다. 전문용어가 닥치는 대로 뒤섞여있어서 알아 들을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욕설 정도였다. 부함장은 한 번 더 갤리를 불렀다.
"기관실장."
"아 놀러 왔으면 꺼지라고."
"이번엔 놀러온 거 아냐."
PADD를 두드리던 손가락이 멈췄다. 툭툭 몇 번 더 화면을 건드리곤 갤리는 고개를 들었다. 어깨 위에 화면이 꺼진 PADD를 쥔 손을 얹고 다른 손으로 갤리는 안경을 벗었다. 평소 부함장이 농땡이를 치기만 하면 꼭 기관실로 오는 통에 약간 착각을 해 버렸다. 있는대로 날카롭게 선 신경을 억지로 누그러뜨리며 갤리는 한 손이나마 차렷자세를 취했다. 붉은 셔츠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전투 손상 보고해, 기관실장."
"보고서는 추후에 올리겠지만, 일단 보호막 손실률 60%이며 현재 복구중에 있고 완전 복구까지 약 6분 48초가 걸릴 예정입니다. 사상자 부상 세 명 사망 0명 전부 경상이며 현재 메디베이에서 치료 중입니다. 중간에 산탄이 한 번 기관실 부근에 부딪히기는 하였으나 손실률은 2.4%로 경미한 수준이며 생명유지 장치에는 약 0.6%의 영향이 갔고 수리 및 정상작동까지 앞으로 약 15초 정도가 걸릴 예정입니다. 워프 코어의 과부하를 막기 위해 수리 전까지는 워프는 어렵습니다."
"Got it. 보고서는 함장님께 바로 제출하도록. 쉬어."
갤리는 뻣뻣한 어깨에서 천천히 힘을 풀고 다시 안경을 썼다. 2.4%. 일반적으로는 경미하다고 할 수 있는 부상이긴 했다. 사람으로 치면 종이에 손이 베어서 피가 약간 맺히는 정도. 중요 부위가 파손 된 것도 아니고 수리가 불가능하거나 어렵지도 않으며 얼마 안 있어 그런 상처따위는 없었다는 듯이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애인이라면 어떨까. 함선을 애인으로 삼고 사는 기술부로써는 절망적이라고 해도 좋았다. 보호막을 더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를 하루가 멀다하고 연구해 대는 종류의 사람들인 것이다. 손끝이 바늘에 찔려도 아픈 건 아픈 거다. 그들중 둘째 가라면 서러운 기관실장 갤리도 그닥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로뮬런 이 미친 놈들아 이 새끈한 함선이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갤리는 조금 울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항해 도중 해적을 맞닥뜨리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전투용으로 만들어지지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런 일에 대비해 어느 정도의 화력은 꼭 가지고 있는 스타플릿의 함선은 일반적으로 어렵지 않게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건 기술부 크루들이다. 격렬하고 정신없는 전투 중에 함선에 아무런 이상이 없기를 바라는 건 그 자체로 무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전투가 한 번 끝날 때마다 얼마나 절망하는지를 알면서도 놀려대는 과학부 장교 토마스를 갤리는 정말로 싫어했다. 부함장 뉴트도 마찬가지고. 내가 저것들하고 연을 아카데미에서 만들지를 말았어야 했는데. 갤리의 한숨은 나날이 깊어만 갔다. PADD를 두어번 더 두드리다가 갤리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뉴트 이 미친 놈이.
"야. 함교로 가라고."
갤리는 한숨을 섞어 이야기 했다. 부함장은 아직도 기관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는 기술부 크루들 옆을 얼쩡거리고 있었다. 얼쩡거린다기 보다는 돌아다니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할지 모르지만 신경이 곤두서 있는 크루들한테는 그게 그거다. 뉴트가 어깨를 으쓱 했다.
"방금 전투 끝내고 왔는데 좀 쉬자."
"쉬고 싶으면 쿼터로 가던가 메디 베이로 가라 좀. 기관실에 있지 말고."
"쿼터라니 갤리, 야해."
"미친 놈아!"
갤리가 빽 소리를 지르자 뉴트가 낄낄 웃었다. 그러니까 기관실은 자는데가 아니라고 임마 휴게실에서 졸던가 어디서 배우지도 않은 외간놈이 숙녀의 속살을 보려고 들어! 기술부의 은어를 줄줄 뱉어내는 갤리를 보고 뉴트는 픽 웃고 손을 털었다.
"수리 끝났나 기관실장?"
이 치사한 놈이. 갤리는 이가 갈리려고 했다. 저게 꼭 지가 불리해 지면 계급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불면증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왜 꼭 기관실에서 자냐며 따지고 싶었지만, 까라면 까야하는 군대식 체계 아래에서는 조용히 따를 수 밖에 없어서 갤리는 열이 받았다. 같은 학년으로 시작해서 같은 시기에 승선을 했는데 그놈의 두뇌가 뭔지 죽어라고 노력을 했건만 자신은 어째 친구들에 비해 제자리 걸음을 하는 기분이었다. 과학부 부장 토마스와 부함장 뉴트가 미친듯이 천재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조금 열이 받았다. 이래뵈도 수재인데. 함장 알비 선배가 문득 그리워지려고 해서 갤리는 PADD를 몇 번 두드렸다.
"-수리 완전 종료되었습니다. 워프 가능합니다. 단 혹시 모를 충격에 대비해 워프 8정도로 제한을 둘 것을 제안합니다."
좋아. 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에 어째 주변이 조용해 졌다 했더니 그새 기술부 크루들이 대략적인 수리를 다 끝낸 모양이었다. 붉은 셔츠를 입어준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인데 전투가 종료될 때까지 정신 없었던 걸 추스리고 부장이 이모양인데도 제 할 일을 끝내주었다. 갤리는 뒷목을 주무르고 싶어졌다. 그럼 이제 급한 불도 껐으니 다들 메디베이에 가서 검진을-
"그럼 다들 메디베이로 이동해. 제프가 발 동동 구르고 있을 테니까."
내가 권한으로 잡아 뒀어. 얼른. 뉴트가 등 뒤의 열린 기관실 문을 손짓하며 말했다. 갤리는 약간 당황스럽게 흘끗 뉴트를 쳐다보았다. 기술부 크루들도 조금 당황한 눈초리로 뉴트를 보다 감사합니다 부함장님, 같은 말을 하며 하나 둘씩 기관실을 빠져 나갔다. 갤리는 고개를 조금 저으며 코로 깊은 숨을 쉬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기관실은 일손이 많이 필요한 곳이었고, 검진이 빨리 끝나면 빨리 끝날수록 좋은 일이다. 갤리는 뒷머리를 조금 긁으면서 얽히고 설킨 파이프들을 향해 한 발을 더 딛었다.
"넌 안 가?"
뒤에서 뉴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염병하네. 갤리는 혀를 찼다.
"원래 실장이 제일 늦게 검사받는 게 기관실 생리야. 한 사람은 지키고 있어야지. 여기 삐뚤어지면 다 죽어. 죽으면 기관실에 묻히는 게 기관실장인 거지."
비석 한 장 없어도 좋았다. 차가운 파이프들에 둘러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 사이로 비치는 하얗게 표백된 기술부 모두의 연인은 그를 충분히 그러안아 줄 것이기에. 나쁘지 않았다. -정말로,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뉴트가 말했다.
"사람 죽은 데서 자는 것도 찝찝하니까 다른 사람 올 때까지 기다려주지."
쓰러지면 제프한테 배달은 해 줄게. 갤리는 인상을 찡그리고 뒤돌아보았다. 팔목에 은색 줄이 가 있는 노란 셔츠에 검은 바지, 찰랑이는 금발에 갈색 눈. 어여쁜 얼굴이 옅게 웃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한 쪽 다리에 무게중심을 기대어 서서는 뉴트는 자신이 죽은 후를 농담처럼 말했다. -그 모습이 마치 노란색의 커다란 꽃 같았다. 갤리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다시 말하지만, 기관실에서 자지 말라고 미친놈아."
갤리는 투덜거리며 다시 PADD에 눈을 떨궜다. 천천히 페이지를 아래로 내리며 파이프 깊숙한 곳으로 발을 디뎌 넣었다. 갤리의 연인인 그녀(She)가 갤리의 모습을 감추어 주었다. 다시 한 번 PADD의 스크롤을 내렸지만 눈동자가 아무것도 읽지 못하리라는 것을 갤리는 알고 있었다. -만일, 기관실장을 안전하게 은퇴해 기관실에 묻히지 못하게 된다면, 그의 비석에 무슨 사인이 적히게 될지, 그의 묘비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갤리는 정말 잘 알고 있었다. 그 둘은 분명히 같은 이름일 것이었다. 그래서 갤리는 그의 연인에게 감싸인 채로 죽었으면, 하고 가끔 소망했다. 빗돌 같은 것은 필요 없었다. 그저 가끔, 자신의 묘 앞에 커다란 꽃이 한 송이 놓이는 것으로도 족했다. 새 울음 소리 대신 떠들어대는 목소리면 그걸로 되었다. -심장이 지독하게 빠르게 뛰어대서 왼쪽 가슴이 아파왔다. 지금 죽게 된다면 빗돌에 새길 비명이 더할나위 없게 되지 않을까. 갤리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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