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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Se non e vero([뉴트갤리] Se non e vero (tistory.com))의 후속편입니다.

*대단히 한국적인 배경 죄송합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재하는 인물, 사건, 기업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바람이 볼을 스쳤다. 차갑고 칼날 같은 바람이 언 볼을 할퀴고 지나가서 뉴트는 손으로 볼을 꾹꾹 눌렀다. 주머니를 뒤지니 담배가 한 갑 나왔다. 헐려있는 담뱃갑 안에는 세 개피가 나란히 남아 있었다. 세 개피라. 뉴트는 얼굴을 구겼다. 그리고 한 개피를 입에 물었다. 시간이 벌써 꽤나 늦었다. 하늘이 시커멓다 못해 보라색이었다. 야근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타자를 두드렸지만 역시나 아주 약간, 시간이 지체되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해서 필연적으로 금연이었다. 도착하기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은 오 분 되려나. 필터를 씹자, 우둑, 하고 깨지는 소리가 났다. 목구멍이 순식간에 싸하게 변했다.

켄트 컨버터블. 박하향과 그냥 일반 담배 맛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것이 장점인 담배. 처음 출시되었을 때는 찾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글쎄. 그닥 잘 팔리지는 않는다고 했다. 외국산 담배인 이유도 있고 해서. 아니, 이건 편견이다. 여튼, 그리 인기가 좋은 담배는 아니다.

휴대용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 뉴트는 편의점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낮은 저음이 뉴트를 맞았다. 갤리 씨, 하고 뉴트가 웃었다. 코트 주머니 안에 손을 넣고. 

"좋은 저녁이네요."

뉴트는 방긋 웃었다. 평소에 잘 움직이지 않는 근육이 움직여서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갤리의 얼굴이 붉어지는 걸 보면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발갛게 달아오르는 얼굴에 하얀 주근깨가 떠오르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상당히 희열이 넘쳤다. 편의점은 그리 큰 편이 아니었다. 한바퀴를 도는데 채 스무걸음도 걸리지 않는 편의점을 뉴트는 빙 돌았다. 음료수 한 병, 쿠키 한 조각. 그리고.

"켄트 컨버터블 한 갑 주시겠어요?"

예에. 갤리가 몸을 돌렸다. 커다랗고 넓은 등은 조금쯤 왜소해 보일정도로 굽어있었다. 프론트가 좁아서 그런가. 일은, 아마 고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은 평소하고는 다르게 저쪽의 카페 아르바이트도 없는 날이라고 알고 있었다. 얼굴을 볼 수 없었으니까. 다른 아르바이트는, 글쎄, 어떨까.

"-6천 5백원입니다."

"여기요."

손끝이 슬쩍, 스친 것 같았다. 아마도 착각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사인 부탁드립니다. 갤리의 귀가 또 다시 터질 것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영수증은."

"갤리 씨 어디 아파요?"

"에, 예?"

혀를 씹은건지, 갤리가 한 번 말을 더듬었다. 뉴트는 음료수를 손에 쥐고 걱정스러운 것처럼 입을 열었다.

"아 죄송해요. 무례했죠. 갈릴레오 씨. ...얼굴이 빨간데요."

"-날이 추우니까요."

아, 하긴. 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날이 춥기는 했다. 실내는 따뜻한 편이었지만.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던 검고 긴 코트가 걸리적거릴 정도로, 따뜻한 편의점 안. 갤리는 날이 춥다고 했다. 그래. 날이 춥기는 해. 얼굴이 얼어 붙을 것 같은 날씨.

"감기 조심하세요. 갈릴레오 씨."

"...예."

갤리가 목이 졸린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 귀엽긴. 뉴트는 웃었다. 방긋, 방긋. 다시 카드를 받아서 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문득, 낮은 목소리가 말했다. 카메라.

"네?"

카메라요? 뉴트는 되물었다. 아주 뜬금 없이, 맥락도 연관도 없이 튀어나온 단어였다. 카메라, 사진기, 동영상 촬영기기. 카메라라. 요즘 세상에는 그닥 연이 닿을 일이 없어진 것이기도 했다. 휴대전화 때문에. 아, 핸드폰 카메라요? 뉴트는 되물었다.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갤리는 웅얼거렸다. 뉴트는 어깨를 으쓱, 올리고는 밖으로 나왔다. 좋은 저녁 되세요. 예, 안녕히 가세요. 저음이 배웅했다.

날은 정말, 정말로 추웠다. 뉴트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카메라. 카메라. 뉴트는 속으로 되뇌였다. 역시 너무 들키게 건드렸나. cctv가 사각이 없어진 것까지는 좋았지만 역시나. 건드리지 말 걸 그랬나. 뉴트는 조금 후회했다. 바보 같으니라고. 좀 잘 좀 둘 것이지. 그 작은 방이 얼마나 된다고 거기에서도 사각을 만들고 있을까. 화장실은 커녕 침실까지도 아직 들어오지 못했다. 그 바보 같은 게 귀여운 것이긴 했지만 그래도 가끔은 너무하다고 뉴트는 생각했다. 

주머니 안에 손을 집어넣자 담배가 한 갑 잡혔다. 켄트 컨버터블. 박하향과 그냥 일반 담배 맛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것이 장점인 담배. -사실, 뉴트는, 박하향 담배를 싫어했다. 일부러 편의점을 한 바퀴 돌 때 두개피가 남아있는 담배는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갔다. 켄트 컨버터블 한 갑이요. 한 마디가 더 느는 건 중요했다. 켄트 컨버터블 한 갑 부탁드려요. 그러기 위해서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알 수 없었다. 주머니 안에 손을 찔러넣자 달그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담뱃갑과, 아주 작은 단추- 아니 전자기기가 맞부딪히는 소리였다. 

바보 같긴. 뉴트는 또다시 생각했다. 단추에 붙여놔서야 금방 떨어져 나가잖아. 대학생이라며 돈도 없을텐데. 도청기든, gps든, 구하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을텐데 저렇게 허술해서야. 어떻게 하려고. 정말로, 바보 같은.

문득,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와서 뉴트는 발을 멈추었다. 어두컴컴하고 사람이 없는 골목길, 숨소리보다 바람소리가 더 큰 한겨울. 심장박동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조금 더 발을 옮겨서, 가로등의 권역에서 확실히 벗어나서. 뉴트는 어깨 너머로 뒤를 돌아보았다. -여자가 코트자락을 여미고 옆을 스쳐지나갔다.

쯧, 하고 뉴트는 혀를 찼다. 그럼 그렇지. gps까지 붙여 뒀다지만 뒤를 밟아주면, 참 좋았을텐데. 너 요즘 묘하게 규칙적으로 다니는 것 같다? 민호가 물었다. 토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뉴트는 그들에게 그저 웃어주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주 작은 것. 아직도 석달 전을 기억하고 있었다. 네가, 내 뒤를 따라서 정처없이 걷던 그 시간을. 뒤를 돌아보았을 때 눈이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눈에 밟히는 그 모자, 너의 옷차림, 다른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너의 모습. 문득 깨닫고 나자 심장이 덜덜 떨리는 것 같았던 그 희열. 일행이세요? 하고 점원이 물어보았을 때. 아뇨, 우연의 일치겠죠. 하고 대답하는 목소리가 조금 어긋나 있는 것 같아서 손에 땀이 쥐여졌었다. 네가, 나를. 나만을. 오직 나만을.

계단을 밟아 올라가 현관 앞에 섰다. 비밀번호 캡을 열고 나란히 붙어있는 버튼 네개를 눌렀다. 석 달 전부터 한 번도 바꾸지 않은 번호. 삑, 삑, 삑, 삑. 탁, 삐리릭. 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나면서 문이 열렸다. 틈을 두지 않으려 노력하며 문을 열었다. 도청은 시작했을까? 목도리를 벗어서 걸었다. 너는 나를 어디까지 보고 있을까? 코트도 옆에 같이 걸었다. 이제는 고정되어 버릴 gps. 언제쯤 나를 지켜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옆으로 다가오려고 할까?

"갈릴레오 씨.(Mr. Galileo.)"

뉴트는 음료수와 쿠키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발음했다. 일부러 카메라쪽은 주시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 사실 레몬향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사실 시트러스향 전체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차 정도일까. 쿠키보다는 스콘이나 비스킷 쪽이 더 좋았다.

"갈릴레오 씨."

목소리가 들릴까? 너는 지금 이 소리를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니 듣고 있을까? 내가 탁자 앞에 앉아있는 걸 보고 너는, 너는. 너는 나만을 생각하고 있어?

"-갤리."

갤리 아이작이란 이름은 어때? 그렇게 생각하면서, 뉴트는 푹 웃었다.

 

Se non e vero, e molto ben trovato.

If it is not true, it is very well inv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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