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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D/메이즈러너

[뉴트갤리] Bespoke

ㄷㄷㄷㄷ 2023. 1. 22. 13:23

2014년 글의 백업입니다.

 

https://youtu.be/wsxJ6yDJpaQ

 

 

 

*모티브인 곡입니다.

*이 소설은 7 : 18 ([뉴트갤리] 7:18 (tistory.com))의 외전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설정에 날조가 있습니다.

 

현관문을 열자 텁텁한 먼지냄새와 어둠이 갤리를 반겼다. 한참동안 돌아오지 못해서 청소고 뭐고 손을 전혀 대지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바깥의 습기가 가득한 공기도 좋지 못했지만 이런 먼지 냄새는 더 싫었다. 갤리는 코를 찡그리며 거실로 들어갔다. 창문을 열자 물냄새가 나는 공기가 집 안으로 침투해 들었다.

가로등 빛을 제외하면 방이 영 어두웠다. 전깃불을 어떻게든 켜려고 했지만 전구가 나갔는지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씻는 거고 뭐고 할 힘도 없어서 갤리는 탁자에 권총과 여분 총알, 지갑을 던져놓고 털썩 카우치에 주저 앉았다. 온 몸이 무겁고 정신이 몽롱했다. 집에 들어온지가 며칠이었지. 하루, 이틀, 일주일, 아니 3주쯤. 비행기를 타고 선잠을 자고, 장거리를 이동하고, 병원 신세, 보고, 그리고 다시 이동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이골이 난 일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좋다는 것은 아니었다. 돈은, 정말 잘 벌리는 직업이었지만. 갤리는 손으로 눈을 덮었다.

돈은 정말로, 정말로 잘 벌렸다. 흥신소 직원의 말은 지나치게 간단했다. 교통사고 였네요. 즉사. 너무 흔했던 사건이라 오히려 찾기가 어려웠었다고. 버려진 것도 아니고 남겨진 것도 아니고, 그냥 사고였다. 갤리는 아주 평범한 인간이었다. 특별히 불우하다고 하자면 불우하지만, 아니라고 우기자면 그렇다고 칠 수도 있는 그런 것.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게 조금, 너무 빨랐던 그런 사람. 물구멍이 막혔다. 술술 새어나가던 독의 구멍이 틀어막히니 물은 잘도 찼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신경을 쓰지 않는데 도가 터서 어느 순간 돌아보니 세어 본 적 없는 자릿수가 통장에 찍혀있었다. 출렁출렁 넘치려는 독을 막으려 갤리는 집을 샀다. 2층, 거실이 하나. 방이 네 개. 지나치게 큰 집이긴 했지만, 시골에 있는 여느 집이 그렇듯 그렇게 비싸지는 않았다. 아니, 귀신 들린 집이라는 소문이 딸려있던 집이라 역으로 더 저렴했다. 갤리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신경쓸 것도 없었다.

대부분 쓰지 않는 방들이었다. 사실, 넷 다 쓰지 않는다고 하는게 옳았다. 밖으로만 내도는 인간이 뭘. 그나마 아주 가끔, 가끔 쓰이는 거실과, 그리고 침실 하나 정도만이 간신히 먼지를 벗고 가구가 놓여져 있었다. 가구래봤자, 거실에 카우치 하나, 조금 넓은 러그 하나, 탁자 하나, 침실에 침대와 옷장과 러그. 겨우 그 정도였다. 그 외에는 딱히 둘 게 없기도 했다. 몸을 뒤척이다 문득 허벅지 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갤리는 신경질을 내며 주머니를 뒤졌다. 쩔그렁, 하고 탁자 위에 뭔가가 떨어졌다. 잔흠집이 잔뜩 간 지포라이터였다. 

저게 또 왜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을까. 갤리는 생각했다. 3주 전에 집에서 나갈 때, 챙겼던가. 그랬을 수도 있다. 갤리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술도 하지 않았다. 여자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려 일부러 노력했다. 직장을 위해서기도 했지만, 꺼림칙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돈이 잔뜩 쌓이는 이유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그러니까, 지포라이터 같은 것은 멋을 위해서도 실용성을 위해서도 필요가 없었다. 왜 꾸준히 챙기게 되는 걸까. 갤리는 몇 번을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을 다시 던졌다. 나는 왜 저것을 항시 가지고 다니는 것일까. 만 스물, 그 나이부터 만 서른 일곱 이 나이가 되기까지.

근 십칠 년은 기나긴 세월이었다. 자그마치 반평생. 낡아서 누렇게 더러워진, 다만 헐려만 있는 담뱃갑은 서랍장 안에 들어있었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옷장 밑 서랍장 한 구석에 다만 그 담뱃갑만이 몇 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몇 번을 열어봐도 똑같았다. 두 개피만 잇자국이 남아 있는 꼭 찬 담뱃갑. 주름이 늘고 몸이 지치고 그 때와 자신은 더이상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도 몇 번. 왜 그걸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을까. 갤리는 영문을 몰랐다. 생각하고 있자면 피곤해졌다.

그 때, 거기에서. When, and where. 갤리는 답이 돌아오지 않는 질문을 던졌다. 답이 돌아오지 않는게 당연할 지도 몰랐다. 없어져 버린 것일 수도 있었다. 말했다시피, 악마는 다음이 없는 존재니까. 영영 없어져 버린 그런 것.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포라이터, 옷장 한 구석의 담뱃갑.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 셔츠와 블랙진 한 벌. 그게 다가 되어버린 그런 것. 아니라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면 그 어디라 할지라도 단 한 번도 스치지 않는게 가능 할까. 갤리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문득,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생각이었다. 다시 태어난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것이 뭐라고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천사, 악마, 인간. 그 중에서 무엇이 되었을까. 천사는 일찌감치 선택지에서 지워버렸다. 천사라니, 코웃음만 났다. 인간, 인간이라면 전 세계를 몇 바퀴나 돌면서 과연 만나지 아니했을 수 있을까. 아무리 가능성을 점쳐보아도 그렇다고 할 수가 없었다. 선택지는 단 하나만 남았다. 악마. 악마라. 갤리는 킬킬 웃었다. 더럽게 잘 어울리는군. 자신이 아닌 당사자가 고른다고 해도 고를만한 그런 것이었다.

그래, 또 무엇을 골랐을까. 갤리는 추측했다. 아마 더 강해지고 싶어하지 않을까. 그렇게 허무하게 가 버렸으니, 어느것에도 죽지 않을 만큼 강하게. 죽어도 죽지 않게. 심장이 두개씩 달려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약점 같은 것은 애초에 없고, 무언가를 위한 희생 같은 건 상상할 수도 없는. 딱이네. 갤리는 발작적으로 웃었다. 이미 원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진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어차피 실현되지 않을 상상이고 망상인데 또 어떨까. 어차피 혼이 따로 있다면 육체는 옷과 같은 것이다. 기성복이던 맞춤옷이던 어쨌든 입고 있으면 되는 거고. 또 아예, 손댈 수 없게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웃다가 숨을 헐떡이고 있는데 어디선가 뭔가 타는 냄새가 났다. 갤리는 카우치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담배 냄새였다. 처음에는 혹시나 하고 뛰쳐 나간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았다. 집은 예전부터 폐가로 유명했던 집이었다. 보통 그런 집에는 호기심에 이끌려 나타나는 어린 애들이 가끔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폐가가 아니게 된 이후에도 거의 빈 집이라, 불량 청소년이 아지트랍시고 잘 꼬이고는 했다. 집에 돌아왔더니 깨진 창문으로 소위 노는 아이들이 들어와 집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적도 있었다. 이번에는 창문도 현관도 멀쩡하길래 슬슬 주인이 있는 집이라고 소문이 난 줄 알았는데, 그도 아니었나보다. 그래도 마약이 아니라 담배인 게 다행인 걸까. 요즘 애들은. 갤리는 늙은이처럼 혀를 찼다. 창문에 쳐져있는 방충망을 걷자 탕, 하고 쇠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갤리는 창문틀에 어깨를 기댔다. 깎지 않은 잔디 위로 길가의 가로수가 길게 그늘을 드리고 있었다. 그 한 구석에서 그늘에 얼굴을 숨긴, 헐렁한 청바지와 운동화만 간신히 보이는 아이가 한 명 서있었다. 어둠 속에서 빨간 점 하나가 깜박이고 있었다. 저놈이구만. 갤리는 얼굴을 구겼다. 그래도 떼로 몰려다니는 게 아니라 혼자 온 것이니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야, 하고 갤리가 소리치자 고개가 조금 이쪽으로 돌아왔다.

"담배 피는 거 봐줄테니까 얼른 돌아가, 주거 침입으로 경찰 부르기 전에."

아니, 주거 침입이 아니라 사유지 침입인가. 이거나 저거나 비슷했다. 이 주변은 갤리의 집 마당이었고, 옆집은 머나멀었다. 집이 띄엄띄엄 있는 시골이라 더 그랬다. 이 집은 폐가라 더더욱. 대답이 없었다. 툭, 하고 빨간 점이 잔디 아래로 추락했다. 저게. 갤리는 창문 밖으로 발을 딛었다. 잘못하면 불이 날 수도 있었다. 아직 여름이라 풀들이 물을 많이 머금고 있겠지만 그래도 방심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몇 발자국 그 쪽을 향해서 걸어가는데 낡은 운동화가 담배를 비벼 껐다. 아, 그런 거였나. 갤리는 조금 머쓱해졌다. 꽁초는 주워 가. 뒷머리를 긁으며 뒤돌아서려는데 저기, 잠깐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변성기가 아직 완전히 지나지 않은 약간 갈라진 목소리가.

아이가, 사내애가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처음에는 조금 천천히 걷다가, 점점 속도가 빨라지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뛰고 있었다. 갤리의 눈이 조금 커졌다. 가로등 색은 주황색이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이의 머리칼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예쁜 블론드 머리. 까만 눈. 빨간 입술이 숨을 헉헉 몰아쉬었다.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천사같은 얼굴이 바로 코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아직 한참을 내려다 보아야 하는 키의 남자애가 갤리의 셔츠 자락을 꾹 쥐고, 허리를 숙이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저기."

숨을 고르는 사이로 묘한 목소리가 올라왔다. 아이는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맞춘듯한 몸에 맞지 않는, 헐렁한 옷이.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사원의 그림에서 튀어나온, 천사 같은 얼굴이,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만 같은 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 연녹색 눈과 검은 눈이 마주쳐서.

"저기, 이름이 뭐에요?"

변성기가 완전히 지나고 나면 들어 본 적이 있을 것 같은 목소리가 물어왔다. 갤리는 눈을 감았다.

 

bespoke : (of clothingcustom-m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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