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트위터에 썼던 것을 그대로 백업합니다. 퇴고 X
앗 싱글대디처럼 보이는 유장이랑 그 옆집 사는 유기로 유기유장...!(feat. 마초)
나중이 되면 연고지가 도원관 있는 도시니까 그래도 다시 그 도시로 돌아오는 유장이라던가... 그럼 이제 초등학교 입학한 마초가 주군 보겠다고 자주 유장네 놀러가는 거지. 유장은 유비네 꼬맹이가 자주 놀러오니 얘 나 잘 따르네... 싶은데다 유비가 마초...! 하고 울면서 기특해하니 같이 동생같은 느낌으로 이뻐해 준다.
유기는 아버지랑 결혼 문제로 또 한바탕 하고 결국 집에 독립을 선언한다... 일머리가 있으니 취직은 어렵지 않았음. 집도 작은 월세 아파트지만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고. 자꾸 아버지한테 그만 결혼하고 부사장으로 다시 돌아오라는 압박이 오는 걸 빼면 꽤 괜찮았음.
그러던 어느날 유기는 조그만 꼬마가 옆집 문 앞에 앉아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휴일이었고 처음에 분리수거 하러 나갈 때까지는 옆집 앤가? 싶었는데 분리수거를 하고 와서도 문 앞에 앉아있고 심지어 저녁 먹을 거리를 사러 나갈 때까지 계속 앉아있음. 이거 좀 위험한 거 같은데 싶어진 유기는 꼬마한테 말을 건다.
안녕 꼬마야?
마초 꼬마 아니다.
(...) 그, 그래. 이름이 마초니?
그렇다.
그래, 마초야, 안 들어가고 뭐해?
그러니까 마초가 푹 시무룩해짐.
마초 유장 보러 왔다. 그런데 유장 없다. 마초 속상하다.
그 날에서야 유기는 옆집 남자의 이름을 알게 되었음. 이름이 유장인가. 유기는 마초에게 계속 말을 걸었음.
그래도 이젠 시간이 늦었는데 집에 가야하지 않을까?
마초 주... 유비한테 주... 유장 보고 돌아가겠다고 했다. 마초 기다린다.
유기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음. 어쩌겠어. 기다린다는데. 유기는 뒤를 흘끔흘끔 보면서 결국 음식을 사러 나감. 그치만 그 꼬마가 자꾸만 걸리고 찝찝했음. 이제 해도 다 떨어졌고 곧 쌀쌀해질텐데. 유기는 샐러드를 시키다 말고 옆에 있는 닭튀김도 한 팩 달라고 했음. 그리고 집으로 향함. 마초는 아직도 옆집 문 앞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음.
마초.
마초가 고개를 들었음. 머리 위에 물음표가 선명했음.
그, 부모님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니?
마초 부모님 없다.
좀 허를 찔린 기분이 들었음. 유기가 당황하고 있으려니까 마초는 메고 있던 가방을 뒤져서 군번줄 같은 것을 꺼냈음. 유비라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허 있었음. 유비, 어쩐지 익숙한 이름인데. 유기는 그렇게 생각하며 전화를 걸었음. 발신음이 몇 번 가고 누군가 전화를 받았음.
네.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거기 유비, 씨? 계십니까?
계십니다만.
(...? 뭐지?) 좀 바꿔 주시겠습니까?
누구시죠?
아, 저는 유기라고 하는데요. 여기 마초라는 아이가 있어서.
...기다려 보십시오. -주군 -응? 제갈량 왜?
날 선 듯한 대답에 조금 당황했지만 유비라는 사람은 곧 전화를 받았음. 그리고는 아직도 마초가 밖에 있다는 사실에 기함했음.
마초가 아직도 밖에 있어?
예, 그, 집에 가라고 하는데도 말을 안 드네요.
마초 유장 보고 갈거다!
왜 아직 안 돌아왔지... 어쨌든 연락 줘서 고마워! 곧 갈게!
그리고 전화가 끊어졌음. 독특한 사람들이네. 유기는 그렇게 생각하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음. 아까보다 한결 부루퉁해 보이는 얼굴로 마초가 고개를 돌렸음. 유기는 비닐봉지에서 젓가락과 닭튀김을 꺼내 마초에게 건넸음.
배고플텐데 먹어.
...처음 보는 사람이 주는 음식은 먹지 말랬다.
교육은 잘 받았네. 유기는 어깨를 으쓱 움직이며 마초의 옆에 닭튀김과 젓가락을 내려 놓았음.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데.
마초?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음. 마초가 벌떡 일어나 남자를 향해 달려갔음. 유장! 마초가 외치는 소리에 유기는 저 사람이 문제의 그 유장인가 싶었음.
어떻게 된 거야? 오늘 오는 날 아니잖아.
주, 유비가, 오늘 쉴 거라고 마초 가도 될거랬다.
오늘 쉬는 게 맞긴 하지.
유장은 코로 길게 숨을 내쉬며 마초의 머리를 쓰다듬음. 그러다 문득, 그제야 유기를 발견한 듯이 날을 세웠음.
넌 뭐야?
옆집 사는 사람입니다. 시간이 늦었는데 애가 밖에 나와 있길래요.
유기는 닭튀김이 담긴 일회용 그릇을 다시 집어 들어 유장에게 내밈. 이거, 별 건 아니지만. 유장은 그 접시를 약간 경계하듯 받아들었음. 그리고 확인을 해 본 뒤에 꾸벅 인사함. 잘 먹일게.
그럼.
그리고 유기는 집 안으로 들어갔음. 얼마 안 있어 옆집 문이 닫히는 소리도 났음. 이혼한 사람인가? 유기는 그렇게 추측 했음. 그리고 며칠 후 다시 휴일이 되었을 때 초인종 소리가 났음. 유기는 아침 설거지를 하다 말고 잠시만요, 하고 외쳐야 했음. 대강 손을 닦고 문을 여니 밖에는 옆집 남자와 꼬마가 서 있었음. 남자가 꾸벅 인사를 했음.
지난 번에, 고마워서.
마초! 유비 심부름 왔다!
일회용이 아닌 접시에 밑에 깔린 키친타올, 약간 엉성한 랩까지 아무리 봐도 집에서 만든 걸로 보이는 닭튀김이 접시에 놓여 있었음. 유기는 좀 당황했음.
아뇨, 보답을 바라고 한 것도 아닌데요.
별 거 아니고, 동생이 만든 건데 좀 맛이나 보라고.
이거, 맛있다!
유기는 어색하게 접시를 받아들 수밖에 없었음. 유장과 마초는 집으로 들어갔고 유기는 잠시 현관 앞에서 닭튀김을 노려보며 서 있었음. 하필 접시도 일회용도 아니고 사기 그릇이었음. 접시만 돌려주긴 민망하고, 이따 저녁을 사오면서 과일도 좀 사와야겠네. 유기는 그렇게 생각했음.
그리고 유기는 저녁 식사에 초대되었음.
분명 저녁을 사러 나갈 때까지만 해도 이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나오다 보니 비슷한 시간에 나오는 유장과 마초를 마주치게 되었음. 그리고 간단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음.(식사 하셨어요?/아니 이제 먹으러 가는데... 그쪽은?/저도 이제 뭣 좀 사러...) 그리고 마초에 의해 초대가 되었음.(마초! 유비가 유기 초대해 보랬다!) 그리고 어째서인 자신은 그 식탁 앞에 앉아있었음. 자신과 비슷하게 온 듯한 검은 가죽 자켓을 입은 남자가 하나 앉아있어서 좀 부담감이 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부담스럽지 않다는 건 아니었음.
많이 드십시오.
...예, 어르신.
게다가 황충이라는 어르신이 자기를 열심히 바라보고 있기까지 했음. 유기는 이 집이 좀 혼란스러웠음. 그리고 유난히 기뻐하는 집주인 유비도.(다른 집주인인 공손찬은 상대적으로 덜 기뻐보였음)
도원관에서 나오면서 유기와 유장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게 되었음. 도시 외곽이라서인지 하늘에는 별이 총총 박혀있었음. 유기는 약간 안 좋은 속을 가라앉히려 찬공기를 들이쉬었음.
고생했어.
문득 유장이 말했음. 유기는 옆집 남자를 보았음. 어색한지 뒷머리를 긁고 있었음.
예?
이런 자리, 별로인 거 같아서.
아뇨, 뭐.
괜찮습니다. 유기가 어물어물 대답했음. 그러자 유장이 픽 웃었음.
내 동생 취미가 모르는 사람 밥 먹이기라. 언제 한 번 초대되겠지 싶어서.
동생이요?
엉.
전 배우자 뭐 그런 사이 아니었습니까?
동생이야.
유장이 무슨 생각을 한 거냐고 웃으며 유기의 어깨를 툭 쳤음. 그렇게 강한 힘도 아니었고, 친구들이라면 할 만한 동작이었음. 다만 이 관계는 친구도 뭣도 아니라는 게 문제였지. 유장은 다음 순간 헛기침을 하며 사과했음.
...미안.
...괜찮습니다.
...진짜, 미안.
유장이 한 번 더 사과해서 유기는 대꾸하지 않았음. 그냥 묵묵히 앞으로 걸었음. 둘은 침묵 속에서 계속 걸어갔음. 엘리베이터 소음이 차라리 반갑게 느껴질 정도였음.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아, 유장이 말을 걸었음.
앞으로 너무 안 맞춰줘도 돼. 내 사정에.
예?
피곤해 보여서, 댁이.
유장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푹 쉬라고 말하고는 집으로 들어갔음. 내가 그렇게까지 성의가 없어 보였나? 유기는 약간 무너진 표정을 하고 집으로 들어갔음. 탁자 위에는 다 식은 닭튀김이 놓여있었음. 유기는 랩을 벗기고 젓가락을 가져와 닭튀김을 한 입 씹었음.
...맛있네.
유기는 새삼, 이 시간에 뭘 먹는 것이 오랜만이라도 느꼈음. 그리고 그걸 맛있다고 느끼는 것도.
유기는 다음날 퇴근길에 과일을 삼. 그리고 깨끗하게 설거지한 접시를 들고 옆집 초인종을 눌렀음. 응답이 없어서 다시 초인종을 누르자 약간 부스스한 상태인 유장이 문을 열었음. 자다 깬 모양이었음. 유장은 잠시 유기을 못 알아보는 듯 하다가 고개를 기울였음.
왜?
아, 일전에는, 잘 먹었습니다. 별 건 아니지만 맛이라도 보시라고요.
유기는 접시를 내밀었음. 사과와 귤 몇 개기는 했지만 일단 손이 부끄럽지는 않았음. 유장은 어...하다가 어색하게 그릇을 받아들었음.
이럴 필요는 없는데. ...잘 먹을게.
그럼,
이만, 하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엘리베이터가 서는 소리가 났음.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정장 차림의 두 남자가 내림. 유기는 유장의 집 현관으로 몸을 숨겼음. 유장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음.
? 뭐야?
잠시, 잠시만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남자들이 유기 집 문을 노크했음. 유기 님. 유기 도련님! 계십니까? 유장은 당황한 표정으로 유기를 바라보았음. 엉거주춤 선 유기는 입 앞에 검지손가락을 세우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음. 유장은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일단 문을 닫았음. 그리고는 유기의 자세에 맞게 엉거주춤 앉았음.
너 뭐야.
예?
뭐, 위험한 사람들이랑 엮였냐? 도련님이라니?
아뇨, 위험한 건 아닌데...
유기 도련님! 안 계십니까? 문 두드리는 소리가 현관을 타고 넘어들어와 유기 말의 설득력이 떨어졌음. 유장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유기를 바라보았음. 유기는 난처하게 유장에게 대강의 설명을 시작했음.
아, 그게, 아버지가 자꾸 결혼을 권하셔서. 위험한 집안은 아닙니다. 정말로요.
유기 도련님!
유장은 떠넘기듯 과일을 유기에게 건네주고 문을 열었음. 당연하지만 두 남자의 시선이 유장에게 쏠렸음. 유장은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었음.
뭡니까? 시끄럽게.
아, 죄송합니다. 찾는 분이 있어서.
아까부터 계속 두드리시는 거 보면 없는 거 같은데요.
...죄송합니다.
두 남자는 일단 눈빛을 교환하고 물러났음. 유장은 둘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까지 보고 문을 닫았음. 그리고 당황한 표정을 짓고 쪼그려 앉아 있는 제 현관의 유기를 노려보며 말했음.
설명해 봐.
-
형주 폭죽? 부사장?
유기는 간신히 예전 명함을 한장 찾아낼 수 있었음. 당연하지만, 유장은 명함을 받고 당황했음. 왜 이런 사람이 이런 데에서 지내지? 유장은 어처구니 없어했음. 유기는 어색하게 이야기 했음.
의견이 좀, 안 맞아서. 독립했습니다.
...그래.
유장은 입 안이 깔깔해지는 걸 느꼈음. 진짜 도련님이네. 유장은 그게 좀 어색하다고 생각했음. 어제만 해도 좀 더 편했던 거 같은데 순식간에 거리가 벌어진 느낌이었음. 유기는 항변했음.
이제는 완전히 독립했습니다. 연락도 거의 안 해요.
저쪽에서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음. 유기는 입을 다물었음. 유장은 명함을 다시 유기에게 돌려주었음.
시끄럽게만 않게 해줘 부사장님.
웃음기 없는 그 얼굴이 왠지 피로해 보여서, 유기는 명함도 받지 못하고 눈을 깜박였음. 잘못을 한 것 같은 기분이었음. 그날 유기는 잠을 이루지 못했음. 이렇게까지 신경 쓸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어째서일까. 그냥 오다가다 인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충분했는데. 침대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출근시간이 다 되어서 유기는 자리에서 일어났음. 집을 나서려 하는데 옆집 문 열리는 소리가 났음. 유장이 운동을 나가려는 듯했음. 유기는 유장 씨, 하고 부르려다 입을 다뭄. 유장이 흘끗 유기를 보는 듯 하더니 꾸벅 인사를 했음. 그리고 복도를 달려 계단으로 내려갔음. 유기는 어째서인지 상실감을 느꼈음. 이상적인 옆집 사람 관계라고 생각하는데도, 가슴 속이 빈 것 같았음.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유기가 조금 익숙해졌을 때 유기 집의 초인종이 울렸음. 요새 손님이 잦네. 유기는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열었음. 마초가 앞에 서 있었음. 집을 잘못 찾았나? 그럴 리도 없는데. 유기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을 열었음.
음, 마초? 유장 씨 집은 옆집인데.
마초, 유기 보러 왔다!
날?
마초가 신나게 고개를 끄덕였음. 그리고 엘리베이터 쪽에서 마초야,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음. 지난번에 유비네 식탁에서 뵈었던 어르신이었음. 이름이, 황충이었던가.
이거 실례를 끼쳐 죄송합니다. 노구가 느려서 그만.
아, 아닙니다. 그런데 왜...
도원관에 또 식사하러 오실 수 있나를 좀 여쭈러 왔습니다.
황충이 소탈하게 웃었음. 유기는 고개를 저었음.
아뇨, 아무래도... 참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아쉽게 되었군요.
꾹, 셔츠단이 잡아당겨지는 느낌이 나서 유기는 고개를 숙였음.
유기, 와라.
어허, 마초야.
마초, 유기 좋다.
마초가 또랑또랑 말했음. 그리고 유기는 약간 미안해졌음. 자신이 해 준 것도 별로 없는데. 기껏해야 닭튀김 한 그릇인가. 그런데 아이는 자신이 좋다고 했다. 황충이 마초가 쥔 셔츠자락을 놓게 했다. 마초가 불퉁한 얼굴로 입술을 쭉 내밀었다.
유장도 유기 좋다고 했다!
어?
마초야.
황충이 이름을 부르자 마초는 고개를 꺾어 황충을 바라보았다가 떼쓰듯이 말했다. 유기, 와라! 기다린다! 그리고는 포부도 좋게 옆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황충도 약간 당황한 얼굴이긴 했지만 점잖게 인사를 하고 옆집으로 갔다. 유기는 천천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등을 현관문에 기대고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심장이 두근거려서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도 잘 감이 오질 않았다. 옆집 초인종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유장! 마초, 왔다!
유장님 오랜 만에 뵙습니다.
아, 어르신. 안녕하셨습니까.
덕택에 무탈했습니다. 오늘 식사하러 오실 게지요?
소리가 작은데도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유기는 숨을 죽였다.
...아뇨, 뭐, 괜찮습니다.
왜? 마초, 기다린다.
먼저 먹어. 오늘은 집에서 먹을게.
오늘 유기님도 안 오신다 하셨습니다. 주... 유비님께서도, 걱정하실텐데요.
유진이라면 이해해 주겠죠. 오늘은 좀, 피곤해서.
그러고 보니 안색이 아니 좋으십니다. 괜찮으십니까?
유장, 아프다?
그냥, 몸살기가 좀.
유기는 거기까지 듣고 문을 열어버렸다. 가장 먼저 눈이 마주친 것은 황충이었다.
...그럼 유기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황충이 유기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유장이 당황해서 황충의 시선 끝을 타고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유기?
저, 그,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유기는 드물거 어물거리며 말했다.
들었냐?
들렸습니다.
유장이 한 손으로 상기된 얼굴에 마른세수를 했다. 황충이 허허 웃으며 몸을 돌렸다.
가서 유비님께 죽을 조금 쑤어달라 해야겠군요. 마초야, 가자.
마초 이따 올거다!
둘은 유기와 유장 둘만 남기고 복도를 떠났다. 유장은 불편한 얼굴로 문에 기대 섰다. 유기는 얼른 입을 뗐다.
약은, 드셨어요?
괜찮아.
식사는요.
괜찮다니까!
유장이 왈칵 화를 냈음.
내가 알아서 할게. ...내버려 둬.
그러나 유기는 물러서지 않았음. 오히려 앞으로 한 걸음을 더 디뎠음.
이따 마초가 올 거라 하지 않았습니까.
......
말릴 사람은 있어야죠.
유장이 깊이 한숨을 쉬었음. 그리고는 비틀비틀 집 안을 향했음. 유기는 그 뒤를 따랐음. 유장의 집은 바로 옆집이라 그런지 모든 구조가 정확히 반대로 되어 있었음. 가구가 좀 더 적어서 휑하다는 것을 제하면 유기는 눈 감고도 이 집을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음. 유장은 유기가 잠시 둘러보는 새 방에 자리보전을 하고 누워서 앓고 있었음.
유장씨.
......
약은 드시고 주무셔야죠.
유비가 끓여준 죽까지 안 먹진 않을 것 같으니 자신은 약이라도 먹여야 했음. 그러나 유장은 유기에게 등을 돌리고 누웠음.
...자면 나아.
유기는 유장의 등 뒤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손으로 유장의 이마를 짚었음. 유장이 흠칫 놀라는 게 느껴졌음. 유기는 애써 모른척 했음.
열은 별로 없어서 다행이네요.
...호들갑 떨지 말고 가. 자면 낫는다니까.
유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에 좀 더 편히 다리를 풀고 앉았음. 째깍, 째깍, 시계 가는 소리가 잠잠했음. 유장은 뒤척였다가 유기가 눈 앞에 있는 걸 보고 화들짝 놀라서 기침을 했음.
가라, 쿨럭, 쿨럭, 니까.
주무시면 낫는다면서요. 주무세요. 저는 그냥 여기 있을테니까.
...말은 더럽게 안 들어먹지.
유장 씨.
유기가 해사하게 웃었음.
제 아버지가 이겼을까요, 제가 이겼을까요?
...말을 말지.
유장이 궁시렁거리며 이불을 머리 위까지 끌어올렸음. 유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을 향했음. 주전자나 커피 포트는 없는 것 같고 냄비정도는 있었음. 요리는 잘 못하지만 물 정도는 끓일 수 있으니까. 감기 환자한테는 더운 물이 좋다고 했으니 일어나면 마실 수 있게 물을 끓여놓자고 생각했음. 생수도 없고, 수돗물이지만. 유기는 물이 팔팔 끓는 것을 보고 불을 껐음. 그리고 다시 유장의 방으로 들어갔음.
유장은 그새 잠이 들어있었음. 자고 있는데고 눈살이 조금 찌푸려져서 피곤해 보였음. 표정은 풀고 주무시지. 유기는 생각하며 소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해 앉았음. 그리고 벽에 천천히 기대었음. 유장은 색색 소리를 내며 너무 곤히 잠들어있어서 시선이 그를 깨울까 염려가 될 지경이었음.
딱 이만큼만 같이 있으면 좋을텐데. 유기는 문득 그렇게 생각했음. 이만큼이라도 자신에게 거침없이 내주면 좋을텐데. 나는 그냥 나라고 생각했는데 당신과 내 사이의 거리는 꽤나 멀구나. 유기는 그렇게 생각했음. 그리고 그 생각을 천천히 곱씹어 소화했음. 아주 천천히, 바다가 간조에서 만조로 차오르듯이 유기는 자신을 깨달았음.
좋아하는구나. 내가 저 사람을. 유기가 유장 씨를.
놀라운 깨달음이었지만 간조에서 만조까지를 지켜본 사람은 물이 그렇게 많이, 가득 차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았음. 그냥, 그 과정이 신비하다고 생각할 뿐. 유기는 고개를 조금 기울였음.
길게 초인종이 울렸음. 그제야 유기는 제가 한 쪽다리를 쭉 뻗고 다른 다리에 팔을 걸치고, 제 팔에 얼굴을 반쯤 묻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음. 유장이 얼굴을 찌푸리며 뒤척거려서 유기는 자리에서 후다닥 일어났음.
마초, 죽 가져왔다!
초인종을 누른 것은 역시나 마초였음. 마초는 두 손에 꽤나 묵직하고 뜨끈한 덩이가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음. 유기는 마초에게서 죽을 받아들고 고맙다고 인사했음. 마초는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음. 유기는 그런 마초를 보고 빙긋 웃었음. 시간은 이제 오후 다섯시를 향해갔음. 올 때는 괜찮은 시간이었지만 갈 때는 아이 혼자 돌아가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음. 유기는 고민에 빠졌음. 아픈 사람을 두고 가든지, 아이를 혼자 보내든지. 그래서 유기는 둘을 합쳐버렸음.
마초.
응?
여기서 자고 갈래?
마초 좋다!
마초는 눈을 반짝이며 좋아했음. 그럼 유장씨한테 허락 맡자. 유기는 마초를 안에 들이며 말했음. 원래는 이러면 안 되지만. 유기는 착잡하게 생각했음. 그리고 그릇에 죽과 밑반찬을 덜었음.
유장 씨.
...으음.
유장 씨 식사하고 주무세요.
...너, 아직도 안, 갔냐.
유장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더 푹 가라앉았고 잔기침을 해도 별반 나아지지 않았음. 상태가 악화된 게 뻔히 보이는데도 유장은 안 갔냐는 이야기만 했음.
유장, 많이 아프다?
그런 것 같네.
마초?
유장이 몸을 일으켰음. 유기는 그 틈을 타서 쟁반을 내밀었음.
마초 보낸다고 하지 않았어?
지금 다섯시 반이에요 유장 씨. 애를 혼자 보낼 수는 없잖아요.
......
유장은 불퉁하게 쟁반을 받아들었음.
먹을테니까 이제 가.
......
미안하지만, 큼. 마초도 좀 돌려 보내주고.
마초 여기서 잘거다!
안 돼. 감기 옮는다.
유장은 딱 잘라 말했음. 감기 옮으면 목도 아프고 콜록콜록 기침해. 나가 놀지도 못해. 그래도 좋아? 마초 감기 안 걸린다! 마초는 얼굴을 찌푸리고 투정을 부렸지만 유장은 받아주지 않았음. 유기는 그런 마초를 조심스레 달래주었음. 괜한 바람을 불어넣었나. 유기는 미안하게 생각했음.
가, 이제.
약도 드신다고 약속 하면요.
...먹으면 되잖아.
유기는 울먹거리려는 마초를 토닥이며 자리에서 일어났음. 미안해 마초. 마초... 집에 간다... 유장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마초를 배웅해 주었음. 다음에 와서 자고 가. 그렇게 약속도 해 주었지만 실망에 빠진 아이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음.
도원관에 가는 내내 마초는 조용했음. 지난 번에 같이 갈 때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던 거 같은데. 낯을 가리는 것인지 아니면 실망감이 큰 것인지 알 수 없었음. 도원관 사범 중 한 명-이름이 장비였던가?-에게 마초를 보내고 유기는 돌아오는 길에 약국을 들렀음. 잘 듣는 감기약 좀 주세요. 몸살 감기인 거 같은데, 열은 별로 없고 기침이 많아요. 그리고 유기는 문을 두드렸음. 반응은 없었고, 유기는 문 손잡이를 돌려보았음. 잠겨있지 않았음. 유기는 한숨을 내쉬며 안으로 들어갔음. 유장 씨. 유기가 작게 불렀음. 어둠이 내린 방 안은 고요했고 거의 아무런 소리고 나지 않았음. 조용한 시계 소리, 그리고 열린 방문을 통해서 나는 조용한 숨소리. 유기는 방으로 들어갔음. 돌아오지 않는다고 약속한 적은 없으니까. 아무리 봐도 약을 먹고 잠든 것 같지 않아서 유기는 작게 혀를 찼음. 그리고 다음날에 설거지 하려는 듯 담가둔 그릇들을 깨끗이 닦아서 정리했음. 그리고 이제는 식은 물을 다시 덥히기 위해 가스 불을 켰음.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유기는 혹시 유장이 깨지는 않았는지 방 안을 들여다 보았음.
깨셨어요.
......
유장은 이제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음. 유기는 얼굴을 찌푸리고 열을 재었음. 열이 펄펄 끓었음. 아까 약 사올 때 열은 안 난다고 했는데. 유기는 약봉투를 뒤졌음. 다행히 종합 감기약에는 해열 성분도 들어있었음. 유장의 표정은 영 좋지 못했음.
약 안 드셨죠 유장 씨.
......
드시면, 진짜 갈게요.
......
유장은 얼굴을 일그러트렸음. 유기는 그 얼굴에서 도망치듯, 물을 가지러 간다는 핑계로 부엌을 향했음. 그렇게 자기가 싫은가. 약간, 아주 약간 슬프다고 유기는 생각했음. 물이 충분히 더워진 것 같아서 유기는 한 컵 따라내고 불을 껐음. 그리고 유장에게 가져다 주었음. 유장은 약 몇 알과 함께 물 한 컵을 삼켜 없앴음. 목울대 움직임 몇 번은 정말 찰나에 불과했음. 그 시간이 참 길기도 하여서 유기는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 보았음.
...이제 가.
...네.
목소리가 나오자 마자 하는 말이 저거라니. 유기는 씁쓸하게 생각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음. 쾌차하시길 바라요, 정말로. 유기는 나가기 전에 한 번 더 돌아보았음. 방 안은 어두웠음.
유장은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한숨을 쉬었음. 오한이 들여서 유장은 몸에 이불을 둘둘 말다시피 했음. 갈 거면, 아무도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어차피 갈 거라면. 유장은 다시 까무룩 잠이 들었음.
다음날 유기는 출근 준비를 좀 서둘렀음. 그리고 현관을 열고 유장을 좀 살피려 했음. 하루에 나을 것 같이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사온 약이 며칠치인지도 유기는 잘 몰랐음. 일단 약을 먹이는 게 급해서. 유기는 집을 나서서 유장 집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음. 긴 소리가 나는데도 안에서 답이 없었음. 유기는 얼굴을 굳히고 초인종을 한 번 더 눌렀음. 유장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음. 집에 없나? 손잡이를 돌려보았지만 문은 굳게 잠겨있었음. 나가셨나? 그 몸으로? 유기는 조금 씁쓸한 심정이 되어 발길을 돌렸음. 그러려고 했음.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소리가 났음.
유기 님?
하필 이 시간에. 정장을 입은 남자 둘이 유기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음. 안녕하셨습니까 유기님! 유기는 머리가 아파왔음. 유기는 저벅저벅 걸어서 그 사이 문이 닫힌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음. 벌써 최하층을 향하고 있는 엘리베이터는 올라오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았음.
유기님, 유표님께서 이제는 돌아오시길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결혼은요?
그, 논의해 보시자고.
지난 번과 같은 말이네요. 어떨 것 같습니까?
유기님...
아버지께 전하세요. 철회하지 않으시면 전 안 돌아간다고.
유기님!
거 시끄럽네 진짜!
저 끝에서 문이 벌컥 열렸음. 유기의 눈이 커다래졌음. 유장 씨? 유장은 이불을 둘둘 감고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 짠 것 같았음. 유기는 올라온 엘리베이터를 내팽개치고 유장에게 다가갔음.
몸은 좀 괜찮으세요? 날도 쌀쌀한데 이렇게 나오셔도.
시끄러워서 나왔다. 시끄러워서.
유장은 몇 번 기침을 했음. 잠을 잘 수가 없잖아. 유기는 뒤에 서 있는 정장 입은 남자 둘을 노려보았음. 그래도 눈치는 있는지 남자 둘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 내려갔음. 아버지께 뭐라고 보고 될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음. 유기는 다시 뒤를 돌아 유장을 보았음. 열이 다시 올랐는지 유장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콧물도 조금 훌쩍이고 있었음. 유기는 유장의 이불을 여며주었음. 시끄러웠을리가. 그렇게 낮고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남의 집 앞에서 뭐하느라 그렇게 시끄럽게 구느냐며 투덜대는 유장을 보고 유기는 생각했음. 아까 초인종을 듣고는 억지로 무시하다 자신이 곤란한 것 같으니 나온 거겠지. 얼마나 상냥한 사람인지. 또 얼마나 다정한지. 유기는 눈을 접어 곱게 웃었음.그러면 떨어져나갈 사람도 안 떨어져요 유장 씨. 잔인하긴.
좋아해요 유장 씨.
...뭐?
그리고 순진하긴. 유기는 별 말 하지 않았다는 듯이 유장의 이마에 손을 올리고 열을 재었다. 열은 많이 내렸지만 그래도 없지는 않았다.
식사는 하셨어요? 약은요?
...흰소리 말고 가.
유장은 투덜거리며 집 문을 열려고 했음. 유기는 한 번 더 말했음.
좋아해요.
유장이 멈칫 들어가다 말고 유기를 돌아보았음. 유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웃었음.
죽은 남았어요? 있어도 다 식었을텐데, 데우실 수 있으시겠어요?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열 많이 나던데. 그냥 주무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야, 너-
유기는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한 통 넣었음. 부장님 저 오늘 하루 연차 좀 쓰겠습니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유기는 고개를 들어 황당한 얼굴의 유장을 보았음. 유기는 다시 말했음.
좋아한다고 했어요.
유장은 얼굴을 찌푸렸음. 그게 의외로 꽤 귀여웠음. 아, 생각보다 중증일지도. 유기는 방긋 웃었음. 그리고 당황한 것처럼 보이는 유장을 집 안으로 몰아넣듯이 들어갔음. 어쩌면 자신은 유장의 울타리 안에 들어있는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아니, 분명 그럴테니까. 억지로 억지로라도 비집고 들어가보기로 유기는 마음을 먹었음.
좋아한다는 말은 유장에게 꽤 효력이 큰 것 같았다. 유장은 혼란스러워 보였고, 당황하고 있었다. 유기는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유장을 자리에 눕혔다. 이불을 덮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유장은 기침을 하며 깜박였다.
죽 데워 올게요. 잠시만요.
야,너-
좋아해요 유장 씨.
그건 꽤 재미있었음. 언제나 당당하고 큰소리치던 사람이 좋아한다는 한 마디에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는 게. 그러나 효과가 그리 길지 못할 것은 자명해서 유기는 어떻게 해야할지를 고민하며 부엌을 향했음. 유비가 쑤어준 죽을 냄비에 붓고 물을 조금 넣고 불을 올렸음.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음. 부장에게 전화가 오고 있었음. 유기는 혀를 차고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음. 진동이 울리는 소리가 잠시 더 지속되다 곧 멎었음.
야.
유기는 방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음. 유장이 비틀비틀 일어나 방을 나오려고 하고 있었음.
유장 씨, 누워 계시지 않고.
헛소리 마, 출근해야지.
영 괜찮은 목소리가 아니었는데도 유장은 그렇게 말했음. 유기는 유장을 말렸음.
쉬세요 유장 씨, 네?
됐어. 내가 알아서 해. 너도 네 일이나 잘 챙겨.
핸드폰에 진동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음. 전화나 받지? 유장이 문에 기대서 말했음. 유기는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 화면을 보지도 않고 받았음.
...여보세요.
유기이!!
커다란 목소리가 귀에 꽂혀들어왔음. 유기는 귀에서 핸드폰을 떼었음. 아버지 전화는 일전에 차단해 두었는데? 모르는 번호가 찍혀있었음. 번호를 바꿨거나, 아니면 비서의 핸드폰을 쓰는 모양이었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버지인지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강경 수단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음. 유기는 조금 조용해지자 핸드폰을 다시 귀에 대었버지.
고얀 놈.
스피커 너머로 유표가 한숨을 푹 쉬었음.
결혼 포기하신 거 아니면, 안 돌아간다니까요.
아 애인이 있으면 말을 해야지!
...예?
유기는 당황해서 눈을 몇 번이나 깜박였음. 유표는 속도 모르고 계속 이야기 했음.
내가 애인있는 놈한테 다른 사람 들이밀 거 같으냐? 그 정도는 아니다. 내가. 그래서, 언제 인사 올테냐?
아버지.
유기는 굳은 얼굴로 아버지를 불렀음. 그 사이 대강 씻고 나온 유장이 화장실에서 비틀비틀 걸어 나왔음. 유기는 핸드폰을 들지 않은 손으로 유장을 부축했음.
...놔.
유장 씨. 그냥 오늘은 쉬세요.
내가 알아서 해. 네 일이나 신경 쓰라니까.
본인 몸도 못 챙기시면서 제 일에 간여할 여력은 있으세요?
유기는 화가 나서 쏘아 붙였음. 아직도 열이 오른 몸이 뜨근뜨근 했음. 유기야? 유기야? 핸드폰에서 큰 소리가 나서 유기는 다시 핸드폰을 귓가에 대었음.
저 애인 없습니다 아버지.
뭐?
그냥 제가 좋아하는 고집불통이 하나 있어요. 끊겠습니다.
유기,
전화가 뚝 끊어졌음. 유장은 머리가 아픈지 왼손바닥으로 머리를 짚었음.
유장 씨.
적당히 놀고 돌아가, 도련님.
엉뚱한 사람까지 장난에 휩쓸리게 하지 말고. 유장이 이를 갈듯 말했음. 유기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음.
장난이요?
그래. 장난.
전 장난 친 적 없습니다.
지금 이러는 게 장난이야, 몰라?
유장 씨.
부르지 마.
유장이 신경질을 내며 부축해주던 팔을 뿌리쳤음. 그리곤 중심을 못 잡겠는지 잠시 비틀거렸음. 유기는 다시 유장의 팔을 잡았음.
저는 진지해요.
...아버지에게 돌아가, 도련님.
좋아합니다.
거짓말.
이렇게 빨리 익숙해질 줄은. 유기는 쓰게 웃었음.
유장 씨.
부르지 말-
저는 어디 안 갈 겁니다.
......
아버지에게 돌아가라뇨, 제 집은 이 바로 옆집이에요.
......
좋아합니다.
...너.
유장이 뭔가 말하려는 순간 냄비가 끓어 넘치는 소리가 났음. 유기는 후닥닥 달려서 불을 껐음. 다행히 죽은 타지 않았음. 유기는 죽을 잘 젓고 뒤를 돌았음. 유장이 못박힌듯 서 있었음. 유기는 그런 유장을 다시 방으로 이끌었음.
쉬세요, 유장 씨.
.....
죽,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유장은 어색하게 자리에 누웠음. 갑자기 고분고분해진 유장이 묘했지만 조금 전에 말한 좋아한다는 이야기 때문이라고 유기는 생각했음. 그리고 죽을 덜러 갔음.
-
초인종 소리가 길게 들렸음. 유기는 눈을 떴음. 남에 집에서 졸다니 이런 낭패가. 유장은 자리에 없었음. 나갔나? 아니면 화장실? 유기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현관을 향했음. 초인종 소리가 한 번 더 났음. 유기는 문을 열었음.
앗, 안녕 유기!
어, 유비, 씨?
마초도 왔다!
뭐야, 너희 왔냐?
유기는 뒤를 돌아보았음. 유장은 화장실에서 손을 털며 나오고 있었음. 유비는 형! 부르며 집으로 들어왔음. 마초도 신발을 벗어 팽개치고 집 안으로 들어갔음. 유기는 좀 막막한 기분이 들었음. 오늘도 가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데. 유기는 그렇게 생각하는 제 자신에게 좀 한숨이 났음.
무슨 일로 왔어.
형 죽 다 먹었을 거 같아서! 또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러 왔지!
마초 유장 궁금했다!
마초 너는 어제도... 아니다. 그래. 잘 왔어.
근데 몸 이제 괜찮은 거 같네? 또 약도 안 먹고 끙끙대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하, 원래 그런 분이셨다? 유기는 대답을 회피하는 유장을 푸스스 웃으며 바라보았음. 그리곤 헛기침을 했음. 시선이 자기에게 쏠리는 게 느껴졌음.
유비 씨도 오셨고, 전 이제 제 집으로 갈게요.
어? 왜? 같이 먹고 가아.
유비 넌 또 왜 쓸데없는 소리를...
왜, 형도 유기 씨 마음에 든다며.
저번에 마초가 했던 말이 영 빈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유기는 순식간에 툭 튀어오르는 심장박동을 진정시키기 위해 잠깐 숨을 멈췄음. 아니, 심장 박동이랑 숨이 같이 멎었을지도 모르겠음. 유장이 당황해서 말했음.
마초! 같이 들었다!
아니, 그건, 그냥 좋은 녀석인 거 같다는 소리였지!
아, 역시, 그랬나. 유기는 깊이 숨을 내쉬고 쉬이 진정되지 않는 심장을 가누기 위해 노력했음. 유장의 목덜미 를 보자 허사로 돌아갔지만. 목덜미에 확연하게 붉은 기가 있었음. 유기는 웃음을 짓기 위해 노력했음.
유장 씨.
유기는 자기 목소리가 좀 이상하다고 느꼈음. 자신을 돌아보는 불퉁한 유장의 모습이 귀여웠음. 좀 창피해 하는 것 같아서 더더욱. 유기는 꾸벅 목례를 하곤 집을 나섰음. 그리고는 날듯 뛰어서 집으로 들어갔음. 심장이 쿵쿵 뛰어와서 유기는 자리에 주저 앉았음.
그러나 그날 이후 한동안 유장을 만날 구실이 없어져 유기는 속이 탔음. 출근 시간에 보는 것만 가지고는 도무지 유장에게 말을 붙일 수가 없었음. 유장 씨, 하고 인사를 하면 꾸벅 목례만 하고 도망가 버리고 말을 붙이려고 하면 단답만 했음. 심지어는 어느 순간부터 출근 시간도 바꾼 것 같았음. 마음을, 접어야 하나. 유기는 그렇게 생각했음. 유장이 역시 자기를 싫어하는 것 같았음. 그렇게나 다정할 수 있는 사람이고 여지가 많은 사람인데, 자신에게는 이렇게나 아무것도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게 슬펐음. 그러나 마음이 접고 싶다고 접히는 것도 아니어서 유기는 출근 시간에 슬프게 옆집 문을 잠시 쳐다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음. 황충이 한 번 더 찾아온 것은 그 때 쯤이었음. 용건은 같았음. 식사 하러 오시지 않으시렵니까. 유기는 잠시 고민을 하다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음. 부디, 부탁드립니다. 황충이 웃었음.
유기는 마트에서 꼼꼼히 과일을 골랐음. 딸기는 철이 아니고, 외국 과일은 좀 아닌 것 같고, 사과가 요새 달던가? 바람이 꽤 찼음. 유기는 꽤 묵직한 비닐봉지를 들고 걸음을 옮겼음. 도원관은 먼 듯 하면서도 꽤나 가까웠음. 마초가 가끔 올만한 거리니 당연할지도. 도원관 문을 두드리자 잠시만요,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음. 유기는 도원관 외관을 둘러보며 기다렸음. 커다란 문패가 인상적이어서 유기는 잠시 문패를 들여다 보았음. 도원관. 무릉도원의 그 도원인가. 도교의 천상계. 유기는 복숭아를 사 오길 잘했다 싶었음. 그리고 문이 열렸음. 유기는 유장과 눈이 마주쳤음.
아.
어.
둘은 어색한 감탄사를 토해냈음. 유기는 간신히 입을 떼었음.
아, 안녕하세요.
......
움직인 건 유장이 먼저였음. 유장은 뒤를 돌아 도원관으로 들어가며 외쳤음. 유비, 유기 왔다. 그게 끝이었음. 유장은 마치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는 것처럼 다시 안으로 들어가 마초에게 권투 동작을 보여주었음. 유기는 간단하게 마초를 가르치고 있는 유장을 보다 화가 치미는 것을 느꼈음. 유기는 유장에게 다가갔음.
유장 씨.
......
우리 얘기 좀 해요.
...여기서 해.
유기는 복숭아 봉지를 마초에게 들려주며 유비에게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음. 마초는 둘을 돌아보다 복숭아를 받아들고 부엌을 향했음. 유기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음.
저를 피하는 건 괜찮아요. 상관 없습니다.
......
없는 사람 취급하지는 말아주세요.
사실 피하는 것도 상관이 없지는 않았음. 될 수 있으면 안 피하는 것이 더 좋았음. 한 번이라도 얼굴을 더 봤으면 싶었지만, 유장이 싫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음. 자기는 그 선을 넘어가고 싶었음. 그러나 억지로 열고 들어가려 하는 것이었지 상처를 주고 싶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유기는 착잡하게 생각했음. 유장이 입을 열었음.
...없는 사람 취급하려는 건, 아니었어.
......
다만, 그냥.
유장이 뒷머리를 벅벅 긁었음. 습관인가. 유기는 그 동작을 지켜보며 생각했음.
...대하기 버거워서.
......
난 네가 어색해, 도련님.
도련님. 그 말이 왜 이렇게 화가 치미는지. 유기는 말을 끊었음.
도련님이면, 안 됩니까?
...가까워지기 쉽지 않다는 건 확실하지.
쉽지 않은 거지 불가능한 건 아니잖아요.
......
유장 씨.
너는 네 세계로 돌아가.
일전에는 친해질 수 있었잖아요.
내 착각이 너를 귀찮게 했고.
귀찮지 않았다면요?
거짓말은 하지 말지.
언성이 점점 높아져갔음.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나오는 건 싸움이었음. 둘 다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말이 멈추었음. 유기는 숨을 헐떡이다 길게 숨을 내뱉었음.
유장씨.
......
저는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집을 떠났습니다.
.....
그런데 이미 떠나온 집이 말을 막을 줄은 몰랐네요.
.....
좋아합니다 유장 씨.
.....
좋아해요.
목이 메었음. 눈시울이 뜨거워서 눈물이 내비치는 기분이 들었음. 유장이 당황하는 게 표정에서 느껴졌음. 유기는 그 틈을 타 말했음.
유장 씨는 정말,
그,
제가 싫으신가요?
아니 꼭, 그런 건...
빈틈이 보였음. 유기는 울먹이는 말로 호소했음.
그럼, 괜찮지 않나요. 제가 유장씨를 좋아하는데.
......
아주 가깝지 않아도, 친구부터라도.
......
피하지 말아주세요 유장씨.
그,
좋아합니다.
......
정말 좋아합니다...
유기는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았음. 유장이 어쩔 줄 몰라했음. 저렇게 약해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려는지. 유기는 한 걸음 유장에게 다가갔음.
끌어 안아봐도, 될까요.
유장의 시선이 공중을 배회했지만, 끝내 유장은 고개를 끄덕였음. 유기는 유장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유장을 끌어안았음. 유장은 어색하게 유기의 등에 손을 얹고 천천히 유기의 등을 두드려주었음. 유기는 그런 유장의 등을 더 꼭 끌어안았음.
그날 식사를 하고서 유기는 잠시 기다렸음. 마초는 유장과 언제 유장의 집에서 자고 가도 되는지를 물었고 유장은 다음 휴일이 좋겠다며 마초의 머리를 헝클었음. 그리고 유기는 유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집을 향할 수 있었음. 유장이 자신을 힐끔힐끔 훔쳐보는 걸 알아거 유기는 최대한 예쁘게 웃었음. 유장이 헛기침을 했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예, 유장 씨.
얼마든지요. 유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음.
왜... 날 좋아해?
다정해서요.
내가?
다정하고, 상냥하고, 정 많고. 자신이 늘어놓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유장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음. 그 표정이 귀여웠음. 유기는 웃었음.
저희 아버지가... 일에 많이, 매진하시며 살았거든요. 덕택에 집안이 부유하긴 했지만...
유기는 말을 끌었음. 그리고 웃으며 유장을 보았음.
제가, 그래서, 정 많은 사람을 좋아해요.
...나는 별로 그런 편이 아니야.
아니긴. 이런걸 물어보는 사람이, 그렇게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정이 많지 않으면, 다정하지 않으면 누가 그렇다는 건지.
유장씨는, 제 어떤 면이 싫으세요?
...? 그게 무슨 소리야.
...아직 절 좋아하시진 않으니까.
싫으신 면이 있으면 고치려고요. 유기는 웃으며 말했음. 유장은 고개를 돌렸음.
...별로 싫은 점은 모르겠는데.
예? 뭐라고요 유장 씨?
...아무것도 아니야.
유장은 고개를 저었음. 뒤에서 차가 와서 유장은 왼쪽에 서 있는 유기의 한 쪽 팔을 잡고 끌어당겼음. 유기는 약간 넘어질 뻔 하다 다시 균형을 잡고 섰음. 유장도 덩달아 멈추어 섰음.
그리고, 어째서인지 차가 바로 옆에 섰음. 꽤 대형인 차였고, 외제인데다, 검은 색이었음. 불길한 예감이 들었음. 덜컹 문이 열리고 속에서 손이 나와서 유기를 잡아 챘음. 엇, 하는 사이에 유기가 거의 차 속으로 빨려 들어가다시피 했음. 순식간에 차 문이 닫히고 차가 출발했음. 유기는 창문을 두드리다 뒤를 돌았음. 그리고 숨을 고르며 말했음. 아버지.
차 세워 주세요 아버지.
나랑 얘기 좀 하면 그만 서 주마.
아버지!
유기가 외쳤음. 유표가 손짓을 하자 차가 천천히 속도를 줄였음.
대로변이다. 내리진 말고.
...왜 이렇게까지...
아 뭘 하든 아비한테 말 좀 해주고 그래야 할 것 아니냐! 애인이 있으면 있다 말을 해야지, 나 혼자 천하의 몹쓸 놈으로 만들어야 쓰겠어?
애인 아닙니다.
유기는 침착하게 대답했음. 그리고 한 손으로 차 문을 더듬었음. 잠금장치를 푸는 데는 소리도 나지 않았고, 얼마 걸리지도 않았음.
그냥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말씀 드렸잖아요.
그럼 집에 돌아오기라도 해야지! 내가 말했잖니 니 애인이라도 있다면 내가 더 권하지 않겠다고.
아버지.
유기는 말했음.
제가 좋아하는 사람과, 가까이 있고 싶어요.
벌컥 차 문이 열렸다. 뒤에서 차 클락션 소리와 함께 서늘한 공기가 왈칵 쏟아져 들어와서 유기는 뒤를 돌아보았다. 유장이 헐떡이고 서 있었다.
유장, 씨?
나와. 얼른.
유표의 눈이 커졌다. 입도 같이 벌어졌다. 유기가 차에서 내리자 유장은 유기의 손을 잡고 뛰었다. 유기는 뒤돌아 보지 않았다.
한참을 달리고 나서야 둘은 멈춰섰다. 숨이 턱 끝까지 차서 숨을 고르는 데에도 한참이 걸렸다. 유기는 유장을 바라보았다. 유장은 손에 감은 노란 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었다. 먼저 숨을 고른 건 유장이었다.
괜찮아?
괜찮, 아요.
...무슨 일이었던 거야?
아버지가, 조급해하셔서.
유기는 그이상 말하지 않았다. 유장도 독촉하지 않았다. 유기는 웃었다.
유장 씨는, 참 다정해요.
......
그래도 이번에는 위험했어요.
다음에는 그러지 마세요. 유기가 당부하듯 말했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자기가 차를 멈추지 않았다면, 유장은 어디까지 가 있었을까. 생각하자 소름이 돋았다. 유기는 유장을 잡았다. 유장은 고개를 돌렸다.
장담 못해.
유장 씨.
네가 잡혀갔잖아.
......
유기는 입을 조금 연 채 굳어버렸다. 귓가에서 심장이 뛰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건지 뇌가 처리를 못했다. 유기는 눈을 길게 깜박이고, 다시 꾹 눌러 감았다가 눈을 떴다. 유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유장 씨, 저.
......
제가 알아 들은 게, 그러니까.
유장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음. 목덜미부터 천천히 붉어져 가는 게 어둠 속에서도 보이는 것 같았음. 유기는 더이상 참지 않고 유장을 끌어 안았음. 유장은 부끄럽다고 투덜대기는 했지만 밀어내지도, 그 이상 말하지도 않았음. 유기는 유장의 목덜미에 이마를 부볐음.
...아버지가, 애인 생기면 인사오라고 하셨어요.
가실래요? 유기는 괜히 한 번 물었음. 싫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유장은 고개를 떨구었음. 아. 별론가보다. 유기가 입을 뗐음.
싫으시면-
...나중에.
유기는 웃음을 터트렸음. 그리고 눈을 감고 깊이 심호흡했음.
'2.5D > 레히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마조조] 구미호 au (0) | 2019.03.03 |
---|---|
[유기유장] 제윱 결혼식에서 만나는 유기유장 (0) | 2019.03.03 |
[유기유장] 동양풍 au (0) | 2019.02.10 |
[유기유장] 황충과의 인연에서 시작되는 유기유장 (0) | 2019.02.10 |
[사마조조] 마더컴의 총애를 받는 사마의 (0) | 2019.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