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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D/레히삼

[사마조조] 구미호 au

ㄷㄷㄷㄷ 2019. 3. 3. 17:10

*트위터에 풀었던 썰을 그대로 백업합니다. 퇴고X

구미호만 사는 세계에 떨어진 쬬랑 구미호 싸마이로 삼쬬 보고 싶다... 간 빼먹으려고 잠깐 같이 살았는데 쬬에게 반해버려서 이도저도 못하는 싸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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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진미를 꼽으라 하면 역시나, 간이다. 나이 많으신 어른들은 애라고도 부르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것. 보통 소라도 한 마리 잡으면 고기가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간은 다른 어른들에게 돌아간다. 양이 적어서 돌아간다고 하기도 뭣할 정도의 양이긴 하지만, 어쨌든 맛이라도 볼 수 있는 것은 꼬리가 아홉이 달린 어른들이다. 가끔, 여덟에게도 돌아오기도 하지만 정말로 가끔이다. 그리고 약간 전설처럼 내려오는 말이 있는데, 정말 진미는 따로 있다는 게다. 구미호와 닮게 생겨서, 꼬리는 없는 종족, 인간. 그들의 간이 그렇게 진미라는 게다. 누군가는 세상에 그런 것이 어디있냐며 코웃음을 쳤지만, 그런 것 치고는 믿는 자들이 많았다. 사마의는 믿지 아니하는 쪽이었다. 있어도 지금에서는 발견할 수 없으리라고, 이미 멸종한 그 무엇이리라고 생각했다.

사마의는 천생 사냥꾼이었다. 숲 외곽에 작은 오두막 비슷한 곳에서 홀로 살았다. 가끔 어린 구미호들이 찾아와 꼬리 여덟의 방책을 묻고 가기도 했다. 꼬리가 아홉 달린 어른의 수효는 적었고, 꼬리가 여덟 달린 어른의 수효도 많지 않았다. 이 마을에서는 사마의의 꼬리 수가 제일로 많았다. 아홉 달린 어른들은 보통 방랑하기를 더 좋아했으니까. 어쩌다 한 번씩 들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또 훌쩍 떠나곤 했다. 꼬리 아홉의 방책이 무엇인지는 알려진 것이 적었다.

그 날 사마의는 사냥을 하다 목을 축이러 샘을 향해 가고 있었다. 방금 작은 것을 한 마리 잡았으니 피냄새를 씻고 갈 요량도 조금 있었다. 그렇게 발을 옮기다 사마의는 킁, 하고 코를 움찔거렸다. 익숙치 않은 냄새가 났다. 그것은 처음 맡아보는 냄새였다. 향기라고 하기엔 지독했고 악취라고 하기엔 너무나 맛있는 냄새였다. 물냄새처럼 비리다가도 꽃향기처럼 끝이 아렸다. 사마의는 냄새를 쫓아 걸음을 옮겼다.

냄새의 근원지는 샘이었다. 여기서 원래 그런 냄새가 났던가? 그건 또 아니었다. 사마의는 사냥한 거리를 내려놓고 옷을 벗었다. 일단 씻어야 했다.

샘은 그리 깊지 않았다. 사마의는 손을 씻고 발을 축였다. 피가 잔뜩 묻어 붉었던 손이 새하얀 빛을 되찾았다. 사마의는 입을 헹구고 샘으로 들어갔다. 사마의는 허벅지까지 닿는 깊이의 샘에 앉아 찰박찰박 몸을 씻었다. 냄새가 더 강해진 것은 그 때였다. 홀릴 듯이 독한 냄새에 취한 듯 사마의는 고개를 들었다. 태양 때문에 눈이 부셨다. 그리고 그 빛 사이로 천천히, 뭔가가 내려오고 있었다. 마치 구미호처럼 보였다. 손이 있는 팔과 땅을 디딜 수 있어 보이는 두개의 다리. 앞을 향하는 얼굴과 굳게 감긴 눈까지. 사마의는 손을 뻗었다. 천천히 가라앉듯 내려오던 것이 자신의 팔에 안착했다. 사마의는 얼떨떨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것에게는 꼬리가 없었다. 단 하나도.

이것이 무엇인지 사마의는 잠시 이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혹, 이것이 인간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 먹음직스러운 냄새. 사마의는 조심스레 이를 세우고 목을 물어뜯기 위해 인간의 머리를 받혔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요란했다. 인간의 하얀 목덜미에서 맥박이 뛰는 것이 보였다. 사마의는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인간이 눈을 떴다.

흐릿하던 동공이 아주 잠시 잠깐 초점을 잡았고, 사마의와 눈이 마주쳤다. 동공이 동그랬다. 길게 찢어진 것이 아니라. 사마의는 푸르르 몸을 떨며 이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얼굴을 뒤로 물렸다. 인간이 다시 천천히 눈을 감았다. 사마의는 다음 순간 팔이 묵직해짐을 느꼈다. 마치 조금 전에는 무게를 전혀 싣지 않았던 것마냥. 잠시잠깐이지만 그것을 놓칠 뻔한 사마의는 팔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사마의는 느꼈다.

이것은 나의 사냥감이라고.

-

조조는 눈을 떴다. 나무로 된 천장이 보였다.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떠도 마찬가지였다. 조조는 경계 태세를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침상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조조는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둘렀다. 나무로 짜여진 벽. 책이 가득 찬 책장이 하나, 책상과 의자가 하나씩. 그외의 별 다를 가구가 없는, 천장이 낮은 작은 방이었다. 인기척 또한 없었다. 여기는 어디지? 유괴의 가능성을 꼽기엔 자신은 이미 어리지 않았고 납치의 가능성을 꼽기엔 주변과의 사이가 좋지 못했다. 협박이라면 모를까 납치는 어불성설이었다. 창문 밖으로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삐걱. 스릴러의 한 장면 마냥 걸음소리가 문 밖에서 들려왔다.

조조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옆으로 자리를 피했다. 습관적으로 총을 꺼내려 안주머니를 뒤졌지만 옷이 갈아입혀져 있었다. 풍성하고 넉넉한 옷이라 일어나면서도 발을 헛디딜 뻔 하였다. 체술로 제압할 수 있어. 조조는 되뇌이며 초조하게 문이 열리는 순간을 계산했다. 하나, 둘, 셋.

문이 열리자 마자 조조는 들어오는 자에게 달려들었다. 키가 꽤 큰 편인 남자는 예상치 못했는지 뒤로 넘어졌다. 조조는 남자를 돌아눕혀서 수갑을 채울 때처럼 팔을 꺾었다. 남자가 신음했다.

넌 뭐냐.

보답이, 윽, 꽤 거치십니다.

남자가 농지거리를 하여 조조는 더 강하게 밀어 부쳤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것은 그때였다. 손 아래 푹신한 것이 있었다. 하얀 털로 이루어진 그것은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었다. 하나가 아니라, 둘, 다섯.

꼬리...?

여덟개의 꼬리 중 하나가 조조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조조는 손을 놓쳤다. 남자는 반대편으로 굴러 자리를 잡았다. 한 쪽 무릎을 굽히고 다른 무릎을 땅에 디딘 상태로 남자는 숨을 골랐다. 조조도 얻어맞은 뺨을 비비며 숨을 진정시켰다.

뭐냐, 네놈.

저야 말로 묻지요. 당신은 무엇입니까? 무엇이길래 꼬리가 없는지요.

뭐...?

조조의 눈이 커졌다가 가늘어졌다.

장난 치지 마라.

덟 꼬리를 가진 자가 그따위 농을 칠 것 같으십니까?

여덟 꼬리. 아까 본 것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환각이 아닌 모양이었다. 조조는 뭐라 설명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조조다.

그것이 당신의 종족을 부르는 이름입니까?

...동물계 척추동물문 포유강 영장목 인간과 인간속 인간,의 조조다.

길군요.

남자가 웃지 않고 잘라 말했다. 조조는 반박하듯 말했다.

넌, 뭐지?

저는-

잠시 남자가 멈칫했다. 뭐라고 할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구미호의, 사마의입니다.

-

인간이라. 사마의는 차를 마시며 생각했다. 조조는 많은 것을 물었다. 여기는 어디지? 너는 무엇이지? 의문문이 아니게 요구한 것은 하나였다. 내 옷을 돌려줘. 사마의는 순순히 옷을 돌려주었다. 이상한 물건이 많았다. 몸에 달라 붙는 옷은 그렇다 치더라도 금으로 만든 것 같은 패와 고철로 만든 것같은 덩어리가 옷 여기저기에 끼워져 있었다. 옷도 천으로 만든 것도 있었지만 뭔지 알 수 없는 원단과 가죽으로 만든 것도 있었다. 높은 집안의 자제인가. 사마의는 하대가 익숙한 조조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의 옷을 다시 갖춰입은 조조는 한결 편해보였다.

신세를, 졌군.

사마의는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럼 이제는 제가 묻겠습니다.

......

어디서 오셨습니까.

나는, 그러니까.

도난 사건의 용의자를 잡던 중이었는데- 조조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무어라 말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마의는 말을 끊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말을 멈췄던 조조는 간신히 말을 이었다.

확실한 건,

......

내가 살던 곳에 구미호는 없었다.

다른 세상에서 오셨군요. 짐작은 했습니다.

당신은 하늘에서 내려왔으니까. 사마의는 차와 함께 말을 삼켰다. 조조의 눈이 날이 섰다.

왜 그렇게 생각했지?

이 세계에는 인간이 없으니까요.

거짓은 아니었다. 사마의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조조를 보았다. 조조는 눈을 꾹 눌러감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사마의는 생각의 허리를 끊었다.

어쩌시렵니까.

...뭘 말이지?

거처라던가. 이것 저것.

돌아갈 생각이다.

아무렴, 그렇겠지. 사마의는 웃지 않고 생각했다. 사냥감을 놓아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돌아가겠다, 라. 누구 뜻대로 그럴 수 있겠는가. 어떻게 말입니까?

......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없다.

조조는 의외로 선뜻 인정했다. 사마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조조를 보았다.

그러니 부탁을 좀, 하고 싶은데.

흠.

이 땅의 가장 현명한 자를 만나고 싶다.

안타깝게도.

사마의는 찻잔에서 손을 거두었다.

지금으로써는 제가 가장 현명한 자입니다.

사실이었다. 조조의 얼굴이 굳었다. 꼬리가 여덟개 있다는 것은 그만큼 오래 살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홉 꼬리 달린 방랑자들은 대강의 주기가 없지는 않았지만 기약없이 떠났다 훌쩍 돌아오곤 했다. 젊은 아홉꼬리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들의 현명함과 방랑하는 것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조조가 입을 떼었다.

너는 모르는가.

안타깝게도.

별로 아쉽지도 않으면서 사마의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다만, 하고 입을 떼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이 마을의 큰 어르신이 오실 때입니다.

......

그 때까지 기다리실 수 있으시다면, 만나게 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

조조는 난처한 얼굴을 하였다. 그 얼굴을 보는 것이 의외로 즐거웠다. 사마의는 일부러 뜸을 들이다 말하였다.

괜찮으시다면...

......

여기서 지내시겠습니까.

...그래도, 괜찮겠는가.

조건이 좀 있습니다.

사마의는 말했다. 조조는 눈을 깜박였다.

인세의 문물을, 좀 알려 주시지요.

이것만큼은 순수한 호기심이라 사마의는 자부했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이 세상에서 사라졌던 것이 어떻게 나타난 것일까. 어차피 잡아 먹을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싶었다. 사마의는 그래서 유예를 내밀었다.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다시 한 번 인사드리지요 조조님. 사마의입니다.

...조조다.

조조는 탄창의 총알을 세었다. 여섯발이 들어갈 수 있는 총에, 들어 있는 것은 네 발. 아껴야했다. 조조는 다시 총을 조립했다. 사마의가 부엌에서 죽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총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무기지.

무기?

사마의가 의아한 눈으로 조조의 안주머니가 있는 곳을 눈으로 더듬었다. 퍽 신기한 눈치였다. 조조는 죽그릇을 받아들었다.

작은 쇳덩이를 빠른 속도로 쏘아내는 기계다.

기계?

작동 단추를 누르면, 알아서 움직이지.

알아서라.

신기하군요. 눈을 빛내는 것이 퍽 놀라운 모양이었다. 사마의가 건네는 수저를 받아 조조는 죽을 한술 떴다. 인간이고 구미호고 입맛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것으로 남을 해할 수 있습니까? 빠른 속도로 쏘아내는 것 만으로.

죽일 수도 있다. ...화살과 비슷하지.

죽일 수도 있다...

사마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애를 가르치는 것 같군. 조조는 짧게 생각했다. 조금, 초선이를 생각나게 하는 면이 있었다. 조조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돌아가지 못하는 사이 무슨 일이 생겼을지 걱정이 되었다. 선배는, 초선이는 어떨까. 용의자는 잡았을까? 조조는 빈 그릇을 내밀었다.

조조님은 궁금하신 게 없으신 듯 하군요.

문득 사마의가 말했다. 조조는 사마의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마의 또한 막 식사를 마친 참이었는지 숟가락을 내려놓고 있었다.

무슨... 말이지?

저는 조조님이 내려오신 것 하나 덕에 이래저래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만, 조조님은 이 땅에 대해 궁금한 것이 별로 없으신 듯 뵈어서요.

조조는 입을 꾹 눌러 다물었다. 사실이었다. 지난 며칠 간 조조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사마의가 하는 질문에 답하고 또 답했을 뿐이었다. 그건 아마도.

이 땅이... 내 땅의 과거와 비슷하기 때문일 터다.

......

너와 말이 통하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이겠지.

그렇군요.

그러고 보면 신기한 일이었다. 전혀 모르는 땅으로 떨어졌는데 이렇게까지 비슷할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하겠는가. 하긴, 보통 같으면 그런 상상을 않겠지. 조조는 거기서 생각을 끊어야했다. 사마의가 일어섰다. 죽그릇을 들고 일어서는 것이야 대단할 것이 없었다. 설거지를 하러 가는 것일테니. 그러나 이번에는 사마의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사냥을 나갈 참입니다.

사냥?

예.

조조님도 같이 가시겠습니까? 사마의가 물었다.

-

숲은 넓었다. 며칠 전 비가 내렸다는 것은 흔적도 없이 날이 좋았다. 나무 사이로 해가 비쳐드는 모습은 고요한 것을 연상케 했지만 온갖 개구리와 새가 우는 소리가 의외로 소란스러웠다. 조조는 조심스레 사마의가 밟은 곳을 따라 디뎠다. 넓은 옷을 입고도 사마의는 휘적휘적 잘도 숲을 걸었다. 사마의가 고개를 치켜들고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조조는 숲을 둘러보았다.

조조님.

음?

사마의가 조심스레 운을 뗐다.

사냥감의 냄새가 옅습니다.

...?

아무래도 조조님이 가까이 있어서인듯 싶어서.

아.

인간의 냄새가 독하다는 건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게 여기서도 적용될 줄은 몰랐는데. 조조는 약간 당혹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따로 다니시어도 괜찮으실런지요. 제가 조조님을 찾아오겠습니다.

...괜찮다.

그럼.

사마의가 꾸벅 인사를 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사마의는 벌써 훌쩍 멀어져 있었다. 그러다 문득, 사마의가 멈추었다.

조조님.

......

이 숲은 늑대도 있습니다. 조심하십시오.

그 이야기를 지금에야 하다니. 조조는 안주머니에서 권총을 뽑고 시선에 날을 세웠다. 조조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숲이 조금씩 고요해졌다. 멀리서 들려오는 새 소리에도 조조는 귀를 기울였다. 조조는 아주 천천히, 천천히 긴장을 풀어내렸다. 이 숲에 늑대가 있다는 것이지 여기가 당장 늑대의 영역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천천히 해가 머리 꼭대기에 올랐다가 약간 기울어서 조조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지속적으로 경계를 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였다. 차라리 몸을 숨길 곳을 찾은 게 나을지도 몰랐다. 조조는 총을 약간 누이고 주변을 살폈다.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 나으려나. 주변의 나무는 죄다 하늘로 꼿꼿하게 뻗어있었다. 조조는 적당히 한 그루를 잡아 발을 디뎠다. 간신히 땅에 발이 닫지 않는 높이로 올라갔을 때였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조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털이 빛바랜 늑대 한 마리가 나무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조조는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올라오긴 했지만 지금 있는 나무둥치는 가느다란 편이었다. 옆의 두툼한 것으로 옮아가기에는 떨어질지도 몰랐다. 뛰어 내리기에도 위치가 적당하지 못했다. 총을 쏘아야 하나. 간신히 네 발 남은 총알을 지금 써도 괜찮을까. 늑대가 두 발을 나무에 뻗어올렸다. 짖는 소리가 거칠었다. 큼직한 늑대의 발이 거의 닿을 듯 싶었다. 늑대가 나무도 탈 수 있던가? 조조는 혼란한 머리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조조는 총을 겨누었다. 한 발, 딱 한 발로 명중 시켜야 했다. 반동으로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한 손으로 쏘아야 했다. 사마의가 올 때까지 탈구된 한 팔로 버틸 수 있을까? 조조는 시도해보기로 했다. 왼손으로 나무를 잡고 오른손으로 총을 잡아 겨누었다. 하나, 둘.

총소리가 길게 울려퍼졌다. 푸드덕, 새들이 날아올랐다. 머리에 총을 맞은 늑대가 천천히 쓰러졌다. 쓰러지는 소리가 나고서야 조조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어깨가 아팠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조조의 머리에 문득 하나가 스쳐지나갔다. 늑대는, 무리를 짓는다. 조조는 이를 악물며 고개를 돌렸다.

사마의가 서 있었다. 한손에는 죽은 사슴의 목덜미를 잡고서. 사마의는 덤덤하게 말했다.

과연.

......

무기로군요.

그게 끝이었다.

-

다행히 어깨는 탈구되지 않았다. 사마의는 한 손에는 사슴을, 한 손에는 늑대를 질질 끌어 집까지 옮기고는 조조를 보았다. 조조는 천으로 어깨를 싸매고 사마의가 하는 양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타는 냄새가 나는군요.

폭약 때문일 것이다.

폭약?

불을 붙여서, 터트리지.

그 힘으로 쇳덩일 밀어내는 것입니까?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의는 흘끔, 총을 보았다. 꽤나 무서운 무기였다. 늑대는 머리에 구멍이 나 있었다. 대부분의 늑대 가죽은 목 근처가 엉망이었다. 물어 뜯거나, 손톱으로 찢거나. 이 가죽은 머리를 제하면 멀쩡하니 괜찮은 가격을 칠 듯 싶었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사냥감에게 생각보다 날 선 이가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볼만한 정보였다. 떨어뜨려 놓기는 쉽지 않은듯 보였으니, 소진시키거나 쓰지 못하게 해야 했다. 얼마나 더 있지? 사마의는 가늠하려다 포기했다. 자신은 저것에 대해 지나치게 몰랐다. 천천히 알아가야 했다. 사마의는 붕대를 묶었다.

사슴도 늑대도 해체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한 번에 두 마리나 잡는 경우는 드물었으므로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릴 것이었다. 사마의는 먼저 간을 빼내었다. 그릇에 담긴 간을, 사마의는 지켜보는 조조에게 권하였다.

드시겠습니까?

...아니.

괜찮다. 조조가 미간을 찌푸렸다. 사마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놀라워하는 표정이었다. 조조는 사마의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보지.

간을 거부하는 것을 처음 보아 그렇습니다. 인간들은 다 그렇습니까?

...사람에 따라 다르지.

그렇군요.

그렇다면 제가 들지요. 사마의가 한 손으로 간을 잡았다. 날카로운 이가 날고기를 뜯자 피가 튀었다. 조조는 묵묵히 그것을 지켜보았다. 확실히, 사람과는 달랐다. 조조는 그것을 머리에 아로새기기 위해 노력했다.

그 날 저녁에는 사슴고기가 나왔다. 늑대 고기는 질겨 먹을 것이 못된다며 사마의는 가죽만 벗겨 내었다. 두 가죽은 무두질을 하는 곳에 팔 것이라 말하는 것을 들으며 조조는 사마의가 내어준 구운 고기를 씹었다. 가시렵니까.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가 쑤셔와서였다. 조조는 일단 옷부터 갈아입어야했다. 옷은 넉넉하고 풍덩했고 여러 겹을 겹쳐 입어야 했다. 조조는 삼각건을 풀고 옷을 벗었다가 다시 입고 감아야 했다. 게다가 옷을 입는 방식도 몰랐다. 따라서 사마의는 그가 옷을 갈아 입는 것을 지켜 보고 있어야 했다. 조조의 몸은 꽉 짜여있었고 여기저기에 흉터가 있었다. 사마의는 조조의 몸에 옷을 둘러주었다. 바지를 입고 매듭을 맸으며 윗옷을 입고 고름을 매었다. 장식은 달지 않았으며 웃옷을 입기 전에 어깨에 다시 천을 매었다. 웃옷은 할 수 없이 어깨 위에 걸치듯 올렸다. 조조는 옷시중을 받는 게 익숙해 보였다. 예상은 했지만 꽤나 높은 사람 출신인 듯 싶었다. 그런 것 치고는 꽤나 말랐지만, 아무려면 어떻겠는가. 사마의는 제가 만들어낸 조조를 바라보고 피식 웃었다. 잘 어울렸다. 지독할 정도로.

왜 웃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가시지요. 사마의는 조조를 이끌었다. 처음 신어보는 신에 조조는 약간 비틀거렸지만 그런대로 잘 따라왔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조조에게는 꼬리가 없었다. 사마의는 얼굴을 굳혔다. 이걸 무어라 둘러대야 할까. 아주 어린 아이들도 꼬리가 세 개는 있었다. 신생아들이 꼬리가 하나 있었다. 꼬리가 없는 자는, 글쎄. 다친 자일까. 사마의는 그제야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조조님.

음?

누군가 묻는다면, 꼬리가 잘리셨다 하십시오.

...그러지.

사실 꼬리가 잘렸다는 것은 상당한 치욕이었다. 또다른 구미호와 싸우다 패배했다는 뜻이었으니까. 여러개의 꼬리가 몽창 잘려나가는 경우는 그 경우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조조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또 그 향이 났다. 사마의는 숨을 삼켰다. 이 향까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정신이 조금 혼미했다. 사마의는 고개를 돌리고 긴 호흡을 쉬었다.

마을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30분 정도 걸렸다. 시장이라고 할 만한 것은 닷새에 한 번씩 서지만 푸줏간에서도 가죽은 샀다. 오늘은 거기에 들릴 참이라고 사마의는 말했다.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푸줏간은 꽤 큰 거리 한 중간에 있었다. 조조는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거리는 구미호들로 북적였다. 아이들이 나다니기도 했고 물건을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화폐 대신 쌀을 쓰는지 쌀을 들고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다들 꼬리를 달고 있었다.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대략 세 개에서 여섯 개 정도의 꼬리를 달고 있었다. 조조는 왼손으로 웃옷을 여몄다. 아저씨. 조조는 고개를 숙였다. 초선이 나이대의 구미호가 조조를 부르고 있었다. 조조는 눈높이에 맞추어 자리에 앉았다.

아저씨 인간이에요?

...왜 그렇게 생각해?

조조는 말을 돌리려 했다. 움... 아이가 말을 끌었다.

꼬리가 없으니까?

땡. 아저씨는 꼬리가 잘렸어.

헤에.

그렇구나. 꼬마아이가 수긍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조는 피식 웃었다. 그런데 아저씨이, 아이가 말을 길게 끌었다. 응? 조조는 빙긋 웃어주었다.

아저씨한테서는 왜 맛있는 냄새가 나요?

조조는 흠칫 눈을 크게 떴다. 조조는 주변을 돌아봤다. 조조를 보는 몇몇이 있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군침을 삼키는 것이 보였다. 코를 킁킁 거리는 것들이 있었다. 이게 무슨 냄새지? 소름이 솟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조조님?

사, 마의.

사마의님?

꼬마가 사마의를 불렀다. 조조는 몸을 일으켰다. 사마의는 작은 주머니를 들지 않은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너는 쌀 집 아이로구나. 예 사마의님.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아주 기묘한 기분이었다. 조조는 사마의의 옆에 붙어 섰다.

...가자 사마의.

조조님?

사마의는 조조의 뒤를 따르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알 법 하군. 사마의는 조용히 조조의 뒤를 좇았다. 쌀과 야채는 다음에 사도 될 일이었다. 둘이 시장을 떠나자 순식간에 골목이 시끄러워졌다.

조조는 거의 달리듯 마을을 빠져나왔다. 해가 서서히 지고 있었다. 숨이 거칠었다. 조조는 왼손으로 옷깃을 부여잡고 숨을 골랐다. 혀가 아려와 침을 한 번 삼키고 고개를 들었다. 사마의가 등 뒤에 있었다.

사마의.

예 조조님.

나에게서, 냄새가 나나?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아이는 말했다. 그게 거짓일리는 없었다. 사마의에게 물어보는 것은, 확인에 가까웠다. 정말 그러한가? 사마의.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사마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입고 있던 겉옷을 벗었다. 그리고 조조의 웃옷 위에 덮어주었다.

...이제 괜찮습니다 조조님.

조조는 고개를 들었다. 사마의는 비틀거리는 조조를 왼쪽에서 부축했다. 간은, 오른쪽 옆구리에 있다. 갈비뼈를 피해서, 손을 넣으면 꺼낼 수 있다. 인간의 무기는 집에 있다. 지금이라면, 어렵지 않았다. 사마의의 동공이 가늘어졌다. 천천히, 옆구리에 사마의는 오른손의 손톱을 세웠다. 그리고-

사마의.

...예, 조조님.

...고맙다.

사마의는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손톱을 다시 집어 넣었다. 그리고 맨손으로 조조의 옆구리에 손을 얹었다.

...별말씀을.

어차피 먹을 것이라면 조금쯤 미룬 후에 먹어도 괜찮겠지. 사마의는 생각했다. 해가 완전히 넘어갔고, 달이 오르기 시작했다. 사마의와 조조는 발을 옮겼다.

-

며칠이나 이렇게 있게 되어서 미안하군.

조조가 그 말을 꺼낸 것은 보름 정도 지났을 때였다.

괜찮습니다.

그래도-

지난번에 늑대 가죽으로 금을 받았습니다.

금?

사마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금가락지 하나였지만 사마의로써는 오랜만에 보는 금이었다. 쌀로는 무게가 너무 많을 때는 금을 받았다. 때때로 좋은 가죽이 들면 받을수 있었다. 이번이 그랬다.

그렇군.

의외로 경제 체계가 잡혀 있는지도 몰랐다. 조조는 구미호 세계에 대한 편견을 수정했다. 보름 사이 내리 볕이 들다 흐리다 싶더니 비가 오기 시작해서 사마의와 조조는 둘 다 집에 들었다. 사마의는 오랜만에 담배에 불을 당겼다. 방에서 가지고 나온 서책을 넘기며 곰방대를 뻐끔거리고 있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조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조조는 창가에 서서 밖을 보고 있었다.

담배를... 피웠나.

비가 오면 가끔 즐기곤 합니다.

한 대 피우시겠습니까? 사마의는 조조에게 권했다.

아니.

괜찮다. 조조가 손을 들어 거절했다. 애연가는 아닌 모양이었다. 사마의는 길게 연기를 뱉었다. 조조가 등을 벽에 기대었다. 오른손에 붕대를 매고 있은지 그러고 보니 며칠이었던가. 사마의는 재떨이에 곰방대를 두드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조님.

음?

이제 어깨는 괜찮으십니까.

아. 아아.

그럼 이제 붕대를 풀겠습니다.

...고맙군.

사마의는 조조를 의자에 앉혔다. 삼각건을 풀고 조조는 천천히 팔을 굽혔다 폈다. 어깨를 한 바퀴 돌리기도 하고 팔을 펴보기도 하였다. 약간 놀랐던 근육이 제자리를 찾은 모양이었다. 사마의는 조금 흡족하게 조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득 자신이 흡족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째서? 상처입은 먹잇감이 이제 상처를 치유했다. 흡족해할 일인가? 사마의는 조조를 훑어보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한 점 빈틈이 없어진 육체를. 조조는 눈을 내리깔고 어깨를 점검하고 있었다. 아미와 콧대를 지나 입술과 턱선이.

쿵, 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뭔가 일이 이상하게 굴러가기 시작한 것은 그 때부터였다. 사마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달게 들리게 시작했다. 이제는 목소리에서도 향을 내뿜는가, 사마의는 그렇게 생각하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시선이 종종 조조를 좇았다. 아니 그러해도 좁은 집이라 시선을 어디 둘 데도 없이 조조를 따라다녔다. 시선이 가니 촉각이 세워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사마의는, 잔뜩 혼란에 빠졌다. 자신이 무엇에 동하는 것인지 도통 알지를 못했다. 아주, 달디단 과자에 마음이 홀리는 어린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사마의는 그런 기분으로 조조의 앞에 섰다.

조조님.

음?

마을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조조가 고개를 비꼈다. 마을에 가기를 꺼려할 것이라는 것 정도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사마의는 금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챙겨 집을 나섰다. 총, 이라 하였던가. 그것이 있으니 괜찮을 것이었다. 사마의는 도망치듯 집을 떠났다.

장은 거의 파하는 분위기였다. 대강의 식재료를 사 들고 사마의는 장을 한 바퀴 더 돌았다. 야채와 토끼고기를 넣은 죽을, 조조는 그럭저럭 깨끗이 비웠었다. 쌀을 더 사가야 할까? 사마의는 생각을 털기 위해 애썼다.

문득 구미호들이 우르르 한쪽을 향해 몰렸다. 사마의는 눈을 깜작였다. 유난히 흥분한 목소리들 사이로 또렷하게 한 마디가 들렸다. 사마휘. 사마의는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쭉 솟는 것을 느꼈다. 아홉꼬리의 사마휘. 이 작은 마을에서 처음으로 나온 아홉꼬리의 구미호였다. 지금은 방랑하며 이 마을에는 거의 들르지 않았는데, 어쩐 일인지. 그래도 한 번 방문하면 며칠은 머무를 터이니 내일이나 모레 쯤에 조조와 함께 방문하면 될 것이었다. 다시 걸음을 옮기려다 사마의는 누군가가 자신의 앞길을 막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보통은 이러지 않았다. 사마의님, 하고 자신을 부를 터였다. 사마의는 고개를 숙였다.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사마휘님?

오랜만이구나 사마의.

-

이것 참, 미안하게 되었구나.

아닙니다. 저야말로 짐을 들어 주셔서.

사마휘는 온갖 야채를 담은 소쿠리를 들고 사마의와 함께 걸었다. 사마의는 이 상황이 아직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인파로부터 몸을 피했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사마휘가 그 이전에는 별 교류도 없었던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사마의는 발을 옮기면서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몰랐다. 사마휘가 웃었다.

긴장하였구나, 사마의.

...그렇습니다.

사마의는 순순히 인정했다. 사실이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동공만 봐도 금세 탄로날 것을 부정해서 쓸 일 이 무엇이 있겠는가. 사마의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아직도 여덟 꼬리고.

...예, 사마휘님.

아홉 꼬리의 도술이 부럽지 아니한 게냐?

아홉 꼬리를 가지게 되면, 한 가지의 도술을 부릴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아홉 꼬리를 생각하고, 부러워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보다는.

...어찌 저희의 본질을 버리겠습니까.

이름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들은 구미호였다. 아홉 꼬리가 달린 여우. 돌아가야 하는 회귀점. 많은 이들이 아홉 꼬리를 달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그들은 구미호였다. 구미호가 될 자들이었다. 그들은. 사마의를 포함해서. 사마휘는 소리 내어 웃었다.

하기사 아홉 꼬리를 가지는 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

아홉 꼬리를 단 자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말이라고는 저것 하나가 전부였다.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씁쓸한 웃음. 사마의는 말을 돌리려 하였다.

사마휘 님.

음?

저희 집에 사마휘 님을 뵙고자 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러하냐.

나를 찾는 자는 정말 어디에 가도 있구나. 사마의는 고개를 숙였다. 눈을 휘며 웃고 있는 사마휘의 분위기가 좋지 못하였다.

제 집 문 앞에 다다라 사마의는 문을 두드렸다. 아주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조조가 안에서 문을 열었다.

...왜 제 집 문을 두드리나.

안에 조조 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다녀왔습니다, 조조 님. 제가 말하고도 괜히 낯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사마의는 옆으로 비켜 섰다. 조조 님, 사마휘 님이십니다. 조조의 눈이 꿈틀 움직였다. 아홉 꼬리의, 하고 소개를 하려는데 킁, 하고 냄새를 맡는 소리가 났다. 사마휘가 갑자기 사마의의 등을 밀었다. 사마의는 중심을 잡기 위해 몇 걸음을 휘청였다. 조조가 그런 사마의를 부축했다. 사마휘가 문을 닫았다. 아니, 닫은 수준이 아니라, 닫아 잠금쇠를 걸었다. 사마의는 중심을 잡고 사마휘를 돌아보았다. 사마휘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사마휘 님, 갑자기 어째서.

인간이로구나.

사마휘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사마의는 주춤, 한 걸음 물러섰다. 조조는 눈을 꾹 눌러 감았다 다시 떴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사마의도 사마휘도 아닌 조조였다.

그걸 어떻게 장담하지?

인간의 냄새가 이렇게나 풀풀 풍기는데, 모를 성 싶으냐?

인간의 냄새를 알고 있다는 뜻이군.

사마휘가 흠칫 놀랐다. 문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조조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다들 나를 주목은 하더군. 그러나 내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눈치는 없었어. 훌륭한 먹이가 앞에 있다는 눈이긴 했지. 그러나-

그만!사마휘가 소리쳤다. 날카로운 소리에 사마의는 흠칫 놀랐다. 사마휘 님? 사마의가 중얼거리는 것 또한 못 들은 듯, 사마휘는 치뜬 눈으로 조조를 노려보았다.

그래. 나는 인간을, 알고 있다.

사마휘 님...

사마의가 중얼거렸다. 그제야 들리는 듯 사마휘가 사마의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셨습니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왜 알리지 아니하였냐고? 아픈 손가락을 그리 대대적으로 알리겠느냐?

아픈 손가락이라니? 사마의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조조는 사마의를 흘끗 보고 사마휘를 노려보았다. 사마휘는 천천히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날선 눈으로 말을 이었다.

물어볼 것이 있다 하였지.

사마휘 님.

물어보아라. 어서.

이곳을 떠나고 싶다. 사마휘가 중얼거렸다. 사마의와 조조는 시선을 교환했다. 조조가 앞으로 나섰다.

본디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 ...방법을 아나?

방법을 아냐고?

사마휘가 웃었다. 처음에는 큭큭 거리고 웃다가, 갈수록 목소리가 커졌다.

아니, 아니!

모른다고?

알면 내가 아홉 꼬리를 달지 않았겠지! 못했겠지!

사마휘는 비명을 지르듯 소리치고는 긴 숨을 토했다. 그리고는 비칠비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어 볼 것은 다 물어보았지? 나는 가겠다.

사마휘님.

몇 번이나 손을 헛짚으면서도 사마휘는 걸린 잠금쇠를 풀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갔다. 사마의는 조조에게 별 말 하지도 못하고 사마휘를 따라 나가야 했다. 사마휘님, 사마휘 님! 몇 번의 부름 끝에 사마휘가 뚝 멈추어 섰다. 아니, 그것과 상관 없이 그냥 멈추어 선 것일 수도 있다. 사마휘는 뒤를 돌아섰다.

사마의.

예?

잘, 잡아야 한다.

사마휘 님, 무슨-

저 이의 간이,

네 아홉 꼬리다. 사마의의 눈이 크게 뜨였다.

-

계단에 발이 걸렸다. 사마의는 거의 구르듯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일어나려다가, 사마의는 결국 바닥에 드러누웠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인간, 돌아갈 수 없고, 간, 아홉 꼬리, 온갖 생각이 넘쳐났다. 철컥, 하는 소리가 들린 것은 그 때였다. 사마의는 눈을 떴다. 조조가 본래 자신의 옷을 입고 있었다. 사마의의 눈이 커졌다.

조조님...?

신세를 졌군.

조조가 덤덤히 말했다. 철컥, 하고 다시 소리가 났다. 조조가 총을 만지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원래 아홉 꼬리의 자를 만나서 묻기까지 잠시 묵기로 했었잖나. 시일이, 예상보다 지체된 것은 사과하지.

조조님.

그럼 가겠다.

사마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조는 사마의를 넘듯이 성큼성큼 걸어 밖을 향했다. 사마의는 한 번 더 뛰어야 했다.

조조님.

......

혼자 가시기는 위험합니다.

알고 있다.

아뇨, 그 정도가 아닙니다.

사마의는 눈을 감았다. 조조가 의아하게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손에 잡힐 듯 눈에 선했다. 아, 이렇게나.

...여덟 꼬리를 가진 자들의 집착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뭐?

아홉 꼬리를 가질 수 있다면 자기 팔마저 뜯어먹을 수 있는 것들이 여덟 꼬리를 가진자입니다.

그게 갑자기 무슨-

조조의 말이 뚝 끊겼다. 나로군. 조조가 조소했다.

같이 도망쳤다. 도망치다, 절벽으로 떨어져 내렸다. 사마휘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이 생생했다. 죽은 그 사람의 간을 빼어 먹으며 복수를 다짐했다. 그것들을 전부 없애버리겠다고. 정신을 차리니 꼬리가 아홉이 되어 있었다. 무슨 진미의 맛이 났겠더냐. ...눈물의 맛이 낫다. 짜디 짜더구나. 사마의는 조조의 팔을 붙잡았다.

잠시만 시간을 주십시오. 당장 챙길 것이라도-

사마의.

발이 묶인 것 같았다. 고작 한 마디인데. 도술이고 뭐고 아닐 터인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여덟 꼬리가 하나 하나 털이 곤두서는 게 느껴졌다. 사마의는 오래된 문처럼 삐걱삐걱 고개를 돌렸다.

조조 님.

...빨리 나오도록 하여라.

조조의 말에 사마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최대한 빨리 짐을 챙겼다. 약간의 금과 떠날 수 있는 식량, 모포. 사마의는 제 손이 천천히 느려짐을 알았다. 사마의는 생각을 떨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아아, 역시.

조조는 영민한 사람이었다. 문 앞은, 텅 비어 있었다.

-

조조는 숲을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밤중에 숲으로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 없었다. 늑대도 서식하지 않던가. 조조는 최대한 위험을 줄여야 했다. 아홉 꼬리, 아홉 꼬리의 구미호를 더 만나 보아야 했다. 그나마 현명한 자들을 만나고 덜 위협적인 자들을 만나야 했다. 자신의 몸이 그 자체로 위협적이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런 일이었다. 여덟 꼬리의 자가 자신을 지금까지 보호했던 것도 다, 그런 속셈이 있어서 일지도 몰랐다. 사마의. 조조는 뒤를 돌아보려는 자신을 억지로 말렸다. 인간의 냄새는 독하다. 한걸음이라도 더 멀리 도망쳐야 했다. 총알은 세 발 뿐이었다. 고작해야 세 발. 멀리서 늑대 우는 소리가 났다. 아니, 소리가 높았다. 마치 여우가 우는 것 같았다. 조조는 총을 장전하고 몸을 숙였다. 어둠에 익숙한 눈이 뭔가가 달려든다는 것을 인식했다. 조조는 그것을 후려쳤다. 총신의 손잡이 부분으로 뒷목을 내려치고 무릎으로 올려쳤다. 그것이 쓰러졌다. 꼬리는 다섯 개 달려있었다. 조조는 아득, 이를 갈았다. 이렇게 된다면, 모든 구미호가 적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었다. 조조는 몸을 돌렸다. 등 뒤에서 하나가 갑작스레 조조를 덮쳤다. 총소리가 길게 뽑혔다. 여섯 꼬리. 조조는 빠르게 수를 세었다. 남은 총알은 두 발. 쓰러졌던 것이 비틀 거리며 일어났다. 손톱을 뽑은 것이 달려들어 자켓이 찢어졌다. 옆구리가 길게 긁혀 제대로 된 비명도 나지 않았다. 구미호는 좀 더 튼튼한 것이 자명했다. 인간이라면 그렇게 쓰러져 한 동안 일어나지 못했을 터인데 조조는 총을 한 번 더 겨누고 비틀거리며 쏘았다. 총소리가 한 번 더, 길게 울렸다. 조조님! 멀리서 이명같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착각이다. 조조는 이를 악물며 총을 휘둘렀다. 뻑, 하고 뭔가가 강렬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이, 쥐새끼 같은 게! 처음으로 말다운 말이 들려서 조조는 비웃었다. 말은 할 줄 아는 것들이었군. 화가 난 것으로 보이는 다른 다섯 꼬리가 조조에게 일직선으로 달려들었다. 총소리가 또 길게 뽑혔다. 조조는 총을 내던지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셋이 달려들었고, 셋을 해치웠으니 당분간은 괜찮으리라. 조조는 옆구리를 더듬었다. 손에 질척한 것이 만져졌다. 피가 배어나오는 것이리라. 조조는 깊이 숨을 들이 쉬었다. 버스럭, 가까이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빌어먹을, 조조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는 몸을 웅크렸다. 결국 몇 발짝 도망 나오지도 못하고 이렇게 갈 거였으면, 차라리 사마의에게 줄 걸 그랬다. 조조님. 이명이 한 번 더 들리는 것 같았다. 자신을 보던 눈을 모른 척 하기는, 쉬웠다. 그 흔들리는, 길게 찢어진 동공이 있는 눈동자. 조조는눈을 감았다. 손톱이 내리치는 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그러나 고통은 없었다. 조조는 천천히 눈을 뜨고 위를 올려다 보았다.

사, 마의 님.

공격한 자가 놀라운 것을 본 듯이 더듬더듬 이야기 했다. 한 주먹이 다른 것을 가르듯이 지독하게 맞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뭔가가 털썩, 쓰러졌다. 한참이나 떨어져 있어 조조는 흐려지려는 눈을 몇 번이나 깜박여야 했다. 그리고 머리 위에서 털썩, 뭔가가 풀숲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조조님.

이명이라기엔 지나치게 낮은 목소리가 조조의 귓가를 울렸다. 조조는 눈을 깊게 감았다가 떴다. 사마의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조조님. 사마의가 한 번 더 조조를 불렀다. 가슴이 깊이 베인 모양이었다. 사마의의 숨이 갈수록 헐떡임으로 바뀌었다. 조조의 눈이 커졌다.

사마의.

조,

말하지 마라 사마의, 사마의.

조조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옆구리의 고통에 신음했다. 조조의 이마에 사마의가 이마를 맞대었다. 사마의. 눈에서 뭔가가 후두둑 떨어졌다. 조조는 눈을 깜박였다. 계속, 계속 눈에서 뭔가가 흘러내렸다. 사마의가 입을 열었다.

조조님.

그리고 사마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천천히 눈이 가물가물 해졌다. 사마의는 숨을 크게 들이키고 눈을 감았다. 조조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사마의의 몸에서 빛이 났다. 여덟 꼬리의 뜻이 이런 것일까. 빛이 나는 것이 아니라, 빛이 부서졌다. 빛으로 부서진 것이 동그랗게 문처럼 났다. 조조는 비척비척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사마의 조조가 문 앞에서 발음했다. 그리고 문 안으로 쓰러졌다. 우당탕, 하는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조조가 넘어 가기 전 잠들었던 그 방이었다. 조조는 눈을 깜박이고는 책상 위를 더듬었다. 핸드폰이 잡혔다. 조조는 버튼을 꾹꾹 눌렀다. 여기, 긴급, 환자, 있습니다. 조조가 눈을 감았다. 두 명이요. 손에서 핸드폰이 떨어져 내렸다.

-

사마의는 눈을 떴다. 온 몸이 아프고 아려왔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아서 깊은 숨을 들이켰다가 사마의는 고통에 몸을 떨었다. 이상한 냄새가 났다. 쓰고 독한 냄새에 사마의는 깊은 기침을 했다.

일어났나.

익숙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조조님. 사마의는 발음하려다 잘 되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숨이 쌕쌕 새어나가는 소리가 나서 사마의는 말을 아꼈다. 조조도 기대하지 않았는지 다음 말을 이었다.

꼬리.

...?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여기는 인간계니까. 조조가 말했다. 사마의는 무슨 뜻인지 한참을 혼란스러워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방 안을 둘러볼 수 있었다. 딱딱해 보이는 하얀 벽과 온갖 처음보는 물건들이 방안에 널려있었다. 간헐적으로 소리를 내는 물체가 귀 옆에서 삑 삑 소리를 내고 있었다.

구미호는, 인간으로 변할 수 있다고 하던데.

-제, 꼬리는.

아홉 개, 더군.

사마의는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는 눈을 내렸다. 새로 나온 유난히 흰 꼬리 하나가 사마의를 반기는듯이 보였다. 넘어오니 생겨 있었다. 조조가 어색하게 말했다. 사마의는 눈을 감았다. 색색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입에서 새어나왔다. 그것은 마치 웃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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