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익힌 것은 도술이었다. 인간계 문물에 그게 웬말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꼬리는 숨겨야 하지 않겠는가. 조조는 사마의에게 인간은 동공이 동그랗고, 꼬리가 없으며, 손톱과 살이 무르다고 가르쳐 주었다. 특히 뒤의 두 개는 거의 실험대상이 되다시피 했다.
사마의, 그만 만져라.
이렇게 살이 말랑한 줄은 몰랐습니다.
기껏해야 손을 주무르고 있으면서 하는 말이 얄궂었다. 지금까지 부축도 많이 하였으면서 뭘 또 모르는 척 하는 겐지. 조조는 반쯤 손을 뿌리치다시피 하며 이제 인간으로 변하라고 손을 내저었다. 사마의는 입맛을 다셔가며-꽤나 섬뜩했다-자리에 섰다. 조조의 뇌리에 전설이 스친 것은 그 때였다. 일곱번 재주를 넘으면 여우가 사람으로 변한단다. 구미호 전승에 나오는 것처럼 사마의도 꼬리 아홉을 갖고 있으니 설마 재주 일곱번을 넘어야 하는 건 아닐까? 이 병실은 그렇게 넓지 않았다. 사마의 잠깐, 말하려는데 사마의가 빛을 내었다. 꼬리에서 빛무리가 흩어지고는 눈을 떴다. 동그란 동공이 조조를 맞이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조조님?
...아무것도 아니다.
조조는 어색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사마의는, 멋대로 링거 바늘을 빼었다는 죄로 간호사에게 꽤 많이 혼이 났다. 아홉꼬리가 있었다는 것은 완전히 잊은 눈치여서 조조은 꽤나 그것을 흥미로워했다. 후에 사마의에게 조조는 일곱번 재주넘기 설화에 대해서 말했고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어렵지 않겠습니까. 하고 비웃음 아닌 비웃음을 당해서 상당히 열이 받았다.
-
당연하지만 사마의는 링거에 거부감을 표했다. 살갗에 구멍을 뚫어서 약재를 주입한다니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빼고 싶어서 안달을 하였지만 상처입은 몸은 연약했다. 떼어버리면 그대로 죽습니다 사마의 씨. 제가 죽이지 않아도 알아서 돌아가실겝니다. 간호사가 하는 말에다 조조의 긍정까지 더해져 사마의는 이불을 똘똘 마는 것으로 반항을 마칠 수 밖에 없었다. 똑, 똑, 똑 링거 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꽤 큼직했다.
그래서,
?
이걸로 들어오는 것은 무슨 약재입니까?
못 들었나?
못 들었습니다.
흠, 조조는 링거를 올려다 보았다. 설명해 줄 당시에 사마의는 기절해 있던 것도 같았다. 아니, 설명을 해주긴 했던가? 조조는 몸을 바로하며 말했다.
진통제다.
진통제.
감각을 둔하게 만들어 통증을, 줄여준다던가.
그건... 나쁘지 않군요.
그새 긍정을 해 버리는 사마의가 웃겨서 조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진통제의 효과인지 사마의는 곧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병실 치고는 꽤나 평화로웠다.
퇴원까지는 당연하지만 한참이나 걸렸다. 한 사람은 가슴에 구멍이 났고 한 사람은 옆구리에 구멍이 났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사마의는 계속해서 누워 있어야 하는 것에 좀이 쑤셔했고 조조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른 점은 외부에 있었다. 문병객들이 잊을만하면 찾아왔다는 점이었다. 죄다 경찰 선배라고 소개받은-나중에 조조는 경찰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어야 했다. 사마의는 포졸 같은 것이군요, 하고 납득했고 조조는 기분이 이상해졌다-일군의 사람들을 보며 사마의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자신의 세상에서는 조조가 혼자였고 그게 익숙해 보였기에, 피붙이나 친인 같은것은 쉬이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의외로 꽤나 많지 않은가. 사마의는 기분이 상하는 자신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였다. 그 고민은 길지 못했다.
태오야?
서, 선배님.
조조가 급하게 자리를 정리했다. 조조의 표정이 순식간에 환하게 빛이 나서 사마의의 표정은 한 번 더 구겨졌다. 피붙이인가? 그런 것 치고는 나이차가 많아보이지 않았다. 사마의는 쑤시는-진통제는 고통을 덜 느끼게 해 주는 거지 안 느끼게 해주는 게 아니라는 것을 사마의는 배웠다-가슴팍을 붕대 위로 더듬으며 심호흡했다. 어떻게 된 거냐, 어느날 갑자기 없어지더니 온 몸이 성치 않은 채로 나타나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걱정을 끼쳐 죄송합니다 선배님. 담소가 즐거워 보이기까지 해서 사마의는 괜한 시비가 걸고 싶어졌다. 그 온 몸 성치 않은 것을 구해준 것이 접니다. 그러나 정말 괜한 시비라는 것은 알고 있어서, 사마의는 괜히 베개를 두드리는 것으로 화풀이를 마쳤다. 잠이나 더 잘까, 하고 드러누우려는 찰나였다.
그래서, 같이 발견 되신 분이라고요.
선배가 뒤를 돌아보았다. 사마의는 눈을 꿈벅이며 잠시 그 선배를 바라보다 눈을 휘어 웃었다.
아, 예. 그렇지요. 사마의라고 합니다.
왕윤입니다. 흠, 실례지만 어떤 분이신지...?
예?
사마의는 미간을 찌푸렸다. 왕윤이라는 사람이 저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것이 뚜렷했다. 사마의는 다섯 손가락 끝을 침상에 한 번씩 돌아가며 두드렸다. 손톱이 튀어나올 수 있으면 좋겠는데. 생각하는데, 조조가 헛기침을 했다.
태오야.
선배님, 사마의는 그.
말이 잠깐 멈추었다. 기침이 이어져서 사마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조조님?
태오야.
둘이 나란히 이름을 불러 조조는 손을 들어 둘을 멈추었다. 기침은 금방 멎었다. 가슴 쪽도 별로 좋지 않으신가. 사마의는 얼굴을 찌푸렸다. 조조가 말을 이었다.
사마의는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너무 몰아붙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왕윤의 표정은 그리 탐탁해 보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물러나는 추세였다. 사마의는 역시 탐탁찮은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누웠다.
-
애인입니까?
사마의는 얼굴을 찌푸리곤 물었다. 왕윤은 조금 전 병실을 떠났고 조조는 기침 때문에 한바탕 의사에게 시달렸다. 영 불편해 보이는 ㅋ굴을 하고 있던 조조가 되물었다. 뭐?
왕윤이라는 분, 오시니까 얼굴에서 화색이 돌더이다. 애인이십니까?
아니다.
부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렇게 표정이 환한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사마의.
그 표정은 진중한 감정을 담고 있다기엔 가벼워보였다. 사마의는 토라져서 말을 이었다.
그럼 무엇입니까.
좋은 선배님이다.
조조님.
사마의.
조조가 툭 말을 던졌다. 질투라도 했나? 질투? 사마의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 질투. 그러니까, 투기였던가. 자신이 영 언짢았던 것은. 사마의가 뭐라 말을 잇지 못하자 조조는 당황했다. 그러니까, 가볍게 되치리라 생각하고 말했던 것인데. 조조는 고개를 돌리고 헛기침을 두어번 했다. 어색한 분위기가 병실을 떠돌았다.
아무리 병원에 있었어도 씻기는 해야 할 노릇이다. 사마의는 화장실이 실내에 있다는 사실을 놀라워했다. 당연히 세면대를 쓸 줄 알리가 없었다. 조조는 링거가 걸려있는 폴대를 끌고 화장실로 같이 가야 했다. 사마의라고 그렇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세면대에는 샤워기가 같이 걸려있었다. 조조는 수도꼭지를 가리키며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이걸 위로 올리면 물이 나오고, 내리면 물이 그친다.
여기서 물이 나온다는 겁니까?
신기하군요. 사마의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수도꼭지를 살폈다. 조조는 픽 웃으며 사마의에게 말했다.
틀어 봐라.
예?
물, 틀어봐라.
아.
사마의는 수도꼭지를 잡고 손을 꺾었다. 물이 쏟아져 내렸다. ...샤워기에서.
조조는 입까지 흘러들어온 물을 뱉고 수도꼭지를 잠갔다. 앞머리가 이마에 달라붙어서 축축했다. 조조는 얼굴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물을 손으로 닦아내고 고개를 들었다.
괜찮나 사마의?
괜찮을리가 없었다. 사마의도 입까지 물이 흘러 들었는지 세면대를 잡고 물을 뱉어내고 있었다. 사마의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마에 달라붙은 앞머리를 뒤로 넘였다.
조조님.
조조는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찬 물을 맞아서인지 상기된 얼굴에 눈가에 붉은 흔적이 살짝 번진 것마냥 보이는 얼굴은 축축히 젖어 물을 뚝뚝 떨구고 있었다. 조조는 숨을 삼켰다.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본디 이렇게 물이... 폭포마냥 쏟아지는 겝니까?
아니, 물을 잘못 켜서 그렇다. ...그 전에, 간호사부터 불러야겠군.
환자복이 물에 푹 젖어 붕대가 비쳤다. 조조는 비틀비틀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사마의는 눈을 꾹 감았다, 다시 떴다.
사실 신선이 인간계 문물을 배울 이유는 없다시피 했다. 주군의 옆에 항시 붙어서 이것 저것 드림 배틀에 대한 조언을 주는 것이 신선의 본분. 심지어 잠들 필요도, 먹을 필요도, 생리적인 요구도 없다. 말 그대로 좋은 도구인 셈이다. 따라서 신선이 인계의 문물을 알 필요는 별로 없다. ...일단, 원칙은 그렇다는 얘기다.
어서오십시오-!
자동문이 사마의의 등 뒤에서 닫혔다. 사마의는 자동문의 앞에서 잠시 눈을 깜박이다 후닥닥 뒤로 물러났다. 문이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안녕히 가십시오-! 점원이 기계적으로 반응해 외쳤다.
사마의는, 지금 심부름 중이었다.
발단은 별 것 없었다. 초선이가 유치원에서 쓸 준비물을 깜박 했는데, 시간이 늦어서 초선이를 데리고 물건을 사러갈 사람은 한 명 뿐이었다. 조조가 가도 괜찮겠지만 초선이가 잠투정을 하는 바람에 조조는 집에 발이 묶였다. 조조는 카드를 내밀며 사마의에게 말했다.
이걸로 준비물을 좀 사 와 다오.
...? 이걸로 물품을 구입합니까?
?
?
사마의.
예, 주군.
조조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카드, 쓸 줄 모르나?
그리하여 사마의는 지금에 이르렀다. 사마의는 주머니 속에서 손으로 카드를 굴렸다. 이 납작하고 까만-그렇다. 블랙 카드였다-쪼가리가 어떻게 물건을 살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인지 사마의는 잘 몰랐지만, 어쨌든 어떻게든 물품을 구입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조조는 차분히 사마의에게 카드 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첫째, 물건을 가져온다. 둘째, 물건과 함께 카드를 내민다. 셋째, 카드와 영수증, 물건을 받아서 나온다. 질문 있나? 질문이야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사마의는 없습니다 주군, 하고 답했다. 사마의는 최대한 태연한 척, 자동문을 다시 통과했다. 신선은 땀을 흘리지 않는다. 되뇌였지만 어째서인지 카드를 쥔 손에 땀이 차는 것 같았다. 사마의는 안으로 걸어들어가 물품을 정리하는 점원을 찾았다.
저,
네, 손님.
여기,
사마의는 조조가 적어준 종이 쪽지를 흘끔 보았다. 그러니까, 사야할 물건이.
크레파스, 있습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손님.
드디어 익숙한 말이 나왔다. 사마의는 긴장을 조금 풀고 주변을 둘러 보았다. 모르는 물건이 종류별로 분류되어 칸칸이 켜켜히 쌓여있었다. 사마의는 흥미롭게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무엇에 쓰는 물건들일까?
저, 손님?
사마의는 화들짝 놀라려는 자신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돌아보자, 점원이 방긋 웃으며 안내했다.
저 쪽에 보이는 a-9코너에 보시면 있습니다. 즐거운 쇼핑 되십시오.
.....
사마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발을 움직였다. 문제의 물건은 찾기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문제가 있었는데, 물건의 종류가 꽤나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12색, 24색, 48색. 뭘 사가야 할까. 뭘 사가야 주군이 칭찬해 주시지? 사마의는 크레파스들 앞에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는 잠시간의 고민 끝에 48색을 골랐다. 초선이 아가씨에게 올릴 물품이다. 다양할 수록 아가씨가 고를 선택지가 늘어난다는 뜻이었고- 그건 좋은 일이었다. 사마의는 뿌듯하게 크레파스를 챙겨 계산대로 갔다. 다행히 계산대에는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사마의는 조조에게 배운 대로 물건과 함께 카드를 내밀었다. 계산대까지 오는 것은 그동안 조조를 보며 따라다닌 것을 의태한 것이었다. 그럭저럭 잘 먹히는 것 같았다. 사마의는 뿌듯하게 섰다. 그리고.
영수증 드릴까요?
사마의는 난관에 봉착했다.
영수증? 뭘 물어보는 거지? 주군이 뭔가 질문할 거라고 말씀하셨던가? 사마의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있자 계산대에 서 있던 점원이 손님? 하고 질문을 던졌다. 침착하자. 신선은 땀을 흘리지 않는다. 이것은 최고신선의 이름에 누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주군이 뭐라고 하셨지? 사마의는 생각했다.
영수증, 영수증, 영수증.
셋째, 카드와 영수증과 물건을 받아서 들고 나온다.
...예, 주십시오.
네에, 교환이나 환불은 영수증과 결제 수단 지참하셔서 7일 내에 오셔야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분.
사마의는 한 손에 크레파스를 들고 한 손에 카드와 영수증을 든 채 떠밀리듯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잠시 자신에 손에 들린 물건들을 내려다 보았다. 크레파스, 카드, 영수증. 사마의는 물건들을 불끈 쥐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발걸음도 가볍게 가게를 나섰다. 주군이 기뻐하시겠지. 사마의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