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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D/레히삼

[유기유장] 재회의 정의

ㄷㄷㄷㄷ 2023. 1. 19. 09:53

*미량의 제윱

아악 유장은 유기를 잊었는데 유기는 유장을 잊지 못한 게 보고 싶다

리터럴리 잊은 거여도 좋고(드림 배틀) 서로 사귀다가 마음이 변한 거여도 좋고 으윽 둘 다 좋아... 헉 학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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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물이면 유장이 유기를 어렴풋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체육 특기생으로 입학한 유장에게 낙제는 면하라고 담임 선생님이 붙여준 짝이라던가... 그래서 아, 그때 걔. 하는데 유기에게는 특별한 누군가로 기억되고 있었으면...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나 유장이 흘린 말 같은 것 때문에 자신이 너무 나태한 건 아닐까 충격 받는다던지 해서... 내 인생의 구원자 같은 느낌으로 생각하는... 그런데 단순히 구원자가 아니었다는 걸 나중에나 깨닫고... 공장 폭파를 그 때부터 다짐했던 거면 좋겠네(?)

드림 배틀이면 유기가 기억하고 있는 게 특수 케이스인 거거나... 유기의 기억이 되살아난 데에 뭔가 거대한 음모가 개입되어 있거나...(?) 그런 거면 좋겠다... 유장은 그런 유기를 어떻게든 피하면서도 구해내려고 하는 게 보고 싶다...


시선이 따끔거렸다. 유장은 고개를 들어 시선이 느껴지는 방향을 바라보았지만 여전히 그 쪽에는 cctv가 달린 전봇대 하나가 있을 뿐 아무 것도 없었다. 심지어 cctv마저도 유장 쪽이 아닌 길가를 비추고 있어서 유장은 요새 자신의 감이 많이 녹슬었나 의심하는 찰나였다. 유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방향을 좀 더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흠흠. 헛기침 소리가 들려 다시 고개를 돌려야 했지만.

계산 부탁드려요.

아, 네.

유장은 바코드를 찍었다. 오늘은 샌드위치였다. 이 잘생긴 손님은 빵을 좋아하는 건지 밥하기가 귀찮은 건지 매일 비슷한 시간에 와서 빵을 사가곤 했다. 입맛을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는 게 어느날은 케이크를 판째 사가기도 했고 어느날은 햄이 들어있는 빵만 봉지가 미어터져라 사 간 적도 있었다. 여하튼, 주기적으로 들르는데다 많이 사기까지 하는 손님이었기 때문에 유장은 일절 아무 말도 걸지 않았다. 유비가 만드는 빵이 입에 맞나보지 뭐. 유장은 태평하게 생각했다. 손님이 가자 유비가 주방에서 고개를 쏙 내밀었다.

소시지 빵 남았어 형?

오냐. 세 개 남았다.

다행이다. 남겨줘!

유비가 헤헤 웃어서 유장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유비는 저녁마다 한 번 씩 들르는 대학원생이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유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카운터에 앉았다. 옆 얼굴이 좀 따끔거리는 것 같았지만 신경을 끄기 위해 노력했다.


유기는 차 문을 닫고 비닐을 뜯었다. 계란 샐러드와 두툼한 햄을 넣고 특제 토마토 소스와 양상추를 듬뿍 넣은 샌드위치는 다행히도 맛이 좋았다. 내일 바로 먹는 건 그래도 좀 불편하니 글피나 다음 주 쯤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유기는 따로 사온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았다. 유장은 이제 카운터에 턱을 괴고 있었다. 유비와 유장이 만들어 파는 빵은 입소문도 꽤 났고 인터넷에서도 평이 좋은 편이어서 손님이 많아서 빵이 떨어져 일찍 문을 닫는 일도 다반사였다. 아예 늦은 저녁에 와서 낭패를 본 적도 몇 번 있었다. 똑똑.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유기는 회상을 멈추었다. 유기는 창문을 내렸다. 사진 몇 장을 든 손이 창문 틈으로 쑥 들어왔다. 유기는 사진을 빼앗듯 쥐고 그 손에 지폐 몇 장을 쥐여주었다. 손은 만족한 건지 곧 창문 틈으로 빠져나갔고 유기는 창을 닫았다. 그리고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스토킹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사람까지 고용한 질이 나쁜 범죄. 그러나 웃고 있는 유장의 사진을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 이제는 다시 보기 힘든, 쾌활하고 밝은 웃음. 유기에게 보여줄 리 없는 표정. 유기는 마른세수를 하고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뱃속에서 한숨이 탁 터져 나왔다.

유장 씨.

유기는 발음했다. 아주 익숙한 것을 부르는 동시에 아주 낯선 것을 부르듯이. 한 번 부른 적 없는 이름을 부르는 양, 동시에 닳아버린 이름을 부르는 양.

유기의 입에서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유장은 그날도 평소와 다름 없이 가게를 보고 있었다. 새벽같이 가게에 나와 가게를 쓸고 닦은 뒤에 유비와 함께 빵을 만들고 알바와 교대해 가며 가게를 보았다. 유비의 주장으로 새로 쓰게 된 아르바이트는 생각보다 성실했고, 덕분에 유장도 쉴 짬이 좀 생긴 터였다. 그래도 오후는 유장이 지키는 시간이었다. 유장은 아침신문을 저녁이 다 된 시간에 한 장 한 장 넘기며 느긋하게 읽고 있었다. 라디오도 물려서 요새는 신문을 배달시켜 보곤 했다. 신문 배달하는 아이를 보아 넘기지 못한 탓일지도 몰랐다. 유장은 눈을 더디 깜박이며 글자를 읽어내렸다.

우당탕 소리가 난 것은 그 때였다. 문 위에 달아놓은 종이 거칠게 흔들리며 이명 같이 울렸다. 한 남자가 다른 남자를 반쯤 집어 던진 듯 정장을 입은 남자가 바닥을 뒹굴었다. 얼굴을 감싸고 있었지만 입가가 터진 것은 이미 보였다. 유장이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유비가 주방에서 모습을 비쳤다. 한 남자가 씨근덕대며 가게 안으로 들어오자 유비는 상황을 파악했는지 금세 싸울 자세를 취했다. 유장도 기세를 벼리며 발을 옮겼다.

유비.

응, 형.

'경찰'에 전화해.

...! 응!

유장은 이를 악물고 화를 억누르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보다는 남자가 안으로 들어오는 게 빨랐다. 남자는 유기의 멱살을 쥐어잡더니 화를 내었다.

필요 없으면 없다고 말을 할 것이지 하루를 그대로 공쳤잖아!

-하.

나라고 이 일이 좋은 줄 알아? 먹고 살자고 하는 거지!

남자가 그제서야 얼굴을 감싸던 손을 내렸다. 유장은 문득 그 남자를 알아보고 맥이 풀렸다. 몇 군데 멍이 들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알아볼 수 있었다. 그야 매일 오는 단골 손님인데 모를리가 없었다. 단골은 빈정대었다.

이 일에도 그닥 재능이 있는 거 같진 않던데.

뭐? 이 새-

쌍기역 발음이 나오기 전에 종이 쨍그랑 하는 소리를 내었다. 가게에 '경찰'들이 들이 닥쳤기 때문이었다. 검은 복장을 차려입은 '경찰'들은 가타부타 말 없이 가게 안을 둘러보고는 단골을 폭행하던 남자를 연행했다. 당연히 남자는 저항했지만, 경찰들은 묵묵히 남자를 제압하고는 저벅저벅 가게를 걸어나갔다. 밖에서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가게를 들여다보며 수군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 유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늘은 장사 접어야겠네.

엑?! 하지만 아직 제갈량 올 시간 안 됐는데?!

걘 뒷문으로 오라고 연락 해. 오늘 장사는 공친 거 같다. 어차피 빵도 거의 다 팔았잖아.

으음. 알았어어.

유비가 말을 끌며 대답했다. 유장은 다시 전화를 하러 들어간 유비를 보다 한숨을 푹 쉬고 바닥에 내리쳐진 쟁반을 들었다. 설거지 다시 해야겠네. 입맛을 다시는데 저, 하고 옆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유장은 고개를 돌렸다. 단골이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입술이 터졌는지 입 한 쪽에는 얼핏 피까지 비치고 있었다. 유장은 쟁반을 천천히 내리면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남자는 유장과 잠시 눈을 맞추었다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거의 90도에 가까이 허리를 숙인 남자가 입을 열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예?

가게 문, 저 때문에 일찍 닫게 되신 것 같아서.

유장은 어이가 없었다. 그야 그렇긴 했지만, 그건 단골의 잘못이 아니었다. 폭행한 남자의 잘못이었지. 유장은 몇 번 눈을 깜박일 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돌아섰다.

미안하면 가게 닫는 동안 빵이나 고르십쇼.

예? 아, 예!

단골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어차피 팔지도 못할 빵 저 사람이나 줘야겠다. 단골이니까 가끔 서비스는 해야지. 유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쟁반을 정리했다.


셔터를 내리고 카운터에 선 유장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단골은 어떻게 하면 더 빵을 많이 쌓을 수 있을지 고민이라도 한 것 마냥 깨끗한 쟁반 위에 산더미처럼 빵을 쌓아놓고-유장은 그만큼의 빵이 남아 있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아마 남은 것을 닥닥 긁어온 모양이었다-그 앞에서 카드를 꼭 쥐고 초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쯤 사면 배달이라도 해 줄 수 있을 법한 분량이었다. 유장은 어안이 벙벙한 나머지 평소에는 하지 않던 참견을 툭 던졌다.

이거 다 드실 수는 있으십니까?

예? 아, 저.

직원들이라도, 나눠주면. 단골이 어물어물 말했다. 높으신 분이었구만. 유장은 뭐라 더 말하려하다 입을 다물고 묵묵히 빵을 포장했다. 지루하게 침묵의 시간이 흘러갔다. 하나 하나 빵을 포장하고 봉지에 담으려고 하는데 카드가 스윽 들이밀어졌다. 가격이 만만찮을텐데도 불구하고 남자의 표정은 딱히 비장하거나 긴장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약간 죄책감이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유장은 쯧, 하고 혀를 찼다.

됐고, 좋아하는 빵이나 말해.

예?

남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유장은 반말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 혀를 깨물고 싶었지만-죽고 싶다는 뜻이 아닌,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그냥 뻔뻔하게 밀고 나가기로 했다. 유장은 한 번 더 반복했다.

좋아하는 빵.

크, 크루아상이.

맛있더라고요. 남자가 어물어물 말해서 유장은 크루아상 몇 개를 봉지에 집어 넣었다. 크루아상이 몇 개 남아있지 않아서 영양 밸런스를 생각해 야채 샌드위치도 하나 봉지 안에 덜렁 던져넣었다. 그리고는 그 봉지를 단골에게 내밀었다. 단골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가져가.

예?

서비스.

예?

서비스 몰라 서비스?

하지만,

남자가 어색하게 말했다. 여기 남은 것도 많고요... 유장은 중간에 말을 끊었다.

여긴 입이 셋. 댁은 입이 하나. 계산 끝났지? 다 치울 수 있어.

하지만.

꼬르륵. 뱃속에서 울리는 소리가 크게도 울려퍼졌다. 유장은 그 소리가 어디서 났는지를 가늠했다. 자기 배에서 난 건 아닌 게 확실하고. 유비는 지금 주방에 있으니까 이렇게 큰 소리가 날 리 없고. 그럼 남은 사람은 남자 한 사람 뿐이었다. 남자의 얼굴은 시뻘겋게도 달아올라 있었다. 유장은 쯧, 하고 혀를 한 번 더 찼다. 유장은 엄지 손가락으로 빵집 한 구석에 있는 테이블을 가리켰다.

앉아.

예?

자꾸 두번 말하게 하지 말고, 앉으라고.

아메리카노? 유장은 말하며 뒤를 돌았다. 서비스 하는 김에 확실하게 하지 뭐. 빵집이다 보니 커피를 전문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쯤은 할 수 있게 시설을 구비해 두었다. 유장도 바리스타 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기도 했고. 유장은 아직도 앉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남자에게서 신경을 끄고 아메리카노를 세 잔 내렸다. 한 잔에는 시럽을 잔뜩 넣었다. 빵으로 저녁 때우는 건 또 오랜만이네. 그렇게 생각하면서.

단골은 혼자 버석버석하게 앉아있었다. 크루아상은 바삭하고 촉촉했고 샌드위치도 야채가 아삭아삭하니 맛있었지만 단골은 둘 다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는 표정이었다. 유장은 신경쓰지 않고 아메리카노를 목으로 넘겼다. 오늘은 커피가 좀 쓰게 우려진 것 같았다. 이제 이런 실수는 안 할 때도 된 거 같은데. 유장은 혀를 차곤 햄을 끼운 데니쉬를 한 입 베어물었다. 제갈량-아르바이트 생-은 소시지 빵을 우물거리며 자기가 내린 커피를 마셨고 유비는 꿀커피를 마시며 잼을 듬뿍 바른 토스트를 먹고 있었다. 다들 편한 얼굴을 하고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단골만이 당장 혀를 깨물 듯한 표정이었다. 유장은 떫은 표정으로 입을 떼었다.

맛 없냐?

남자는 거의 손에 들고 있던 샌드위치를 떨어트릴 듯이 놀라서 유장을 돌아보았다. 자신에게 말을 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는 것처럼.

예?

맛 없냐고.

아뇨! 아뇨! 아주 맛있습니다!

팍팍 먹어 팍팍. 어차피 돈도 안 내고 먹는 건데.

단골은 뭐라 말하지 않고 빵에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는 잠시 있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불쑥 유비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자주 오는 것 같던데 요 근처가 집이세요?

예? 아뇨, 그건 아닙니다.

아 그럼, 직장?

아... 아뇨.

남자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유장의 머릿속에는 의문이 떠올랐다. 그럼 왜 매일 오는 거지? 입소문을 좀 탄 건 맞지만 매일매일 먼 거리를 찾아올 정도의 빵집인 것은 아니었다.-적어도 유장은 그렇게 생각했다-동네 빵집도 많을 텐데 왜 이 집을 이렇게 좋아하는 걸까? 유장은 그 의문을 입밖에 내려다 관두었다. 자진해서 단골을 끊을 필요는 없었다. 무슨 압박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고. 단골이 입을 연 건 그 때였다.

좋아해서요.

그 시선이 유장에게 꽂혔다. 워낙에 똑바르고 곧은 시선이라 유장은 흠칫 놀라고 말았다. 항상 유장을 제대로 보지 않고 설핏 피하거나 빵에 시선을 주거나 하는 식이었던 남자의 눈이 제대로 마주쳤다. 왠지, 기시감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예전에 마주한 적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유장이 입을 떼기도 전에 단골은 시선을 떨어트렸다. 크루아상에 그 시선의 끝이 닿았다.

...여기 빵이요.

맛있죠? 다행이에요!

유비가 방긋 웃었다. 제갈량이 단골을 날카로운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금방 관심이 떨어진 듯 눈을 내리깔고는 커피를 홀짝였지만. 괜히 어색해진 유장은 헛기침을 했다. 모두의 시선이 유장 쪽으로 쏠렸다. 유장은 둘러대는 대신에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까, 어제 얘기 했던 쿠폰제.

아, 그거.

유비가 먹던 토스트를 내려놓았다. 얘기를 꺼낸 건 제갈량이었다. 잘 되는 프랜차이즈 빵집처럼 할 수는 없겠지만, 간단하게라도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하면 빵집이 더 잘 되리라고. 유비도 유장도 동의했다. 다만,

난 역시 도장 찍는 쿠폰이 나은 거 같은데.

도장 이렇게 꾹꾹 찍어주면, 찍는 맛도 있고 좋잖아. 유비가 말했다. 유장은 퍼센트로 마일리지를 쌓는 쪽을 지지했다. 도장으로 하면 애매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유비가 거의 다 진 논의이기는 했지만. 유장은 잠시 더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그럼 2만원에 도장 하나. 남는 금액에는 도장 없는 걸로 가자.

어? 정말?

그래.

유비의 얼굴이 확 폈다. 하여간에 무르다니까. 제갈량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지만 유장은 무시했다. 유비라면 껌벅 죽는 놈에게는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유장은 방방 뛰는 유비를 흐뭇하게 바라보다 단골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말인데. 쿠폰, 하나 만들래?

아... 그러, 죠.

본인에게 말을 걸 거라 생각하지 않았는지 목소리가 조금 삐끗했다. 유장은 신경 쓰지 않고 카운터에서 노트를 한 권 꺼냈다.

당장은 쿠폰이 없으니까 이걸 대신 쓰자.

음, 이름이 뭐냐?

아...

남자가 목 뒤를 쓸었다. 그건 아주 어색해보였다.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동작을 하는 것처럼. 남자가 입을 떼는 것이 어째서인지 슬로 모션처럼 보였다.

유기... 입니다.


유기는, 당연하지만, 그 이후로도 계속 빵집에 걸음을 들였다. 매일 매일 다른 빵을 사 갔고, 이제는 커피도 드물지 않게 사갔다. 유장은 딱히 유기를 굉장히 환영하지는 않았지만 꼬박꼬박 장부를 꺼내 유기의 이름 옆에 도장을 찍어주었다.-다르게 말하자면, 유기는 매일 2만원어치 이상을 사갔다.-도장이 한 열 개쯤 되면 유장은 도장을 지우는 대신 빵 약간과 커피 한 잔을 서비스로 주었다. 가끔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매일 빵 먹으면 안 물리냐? 사장님이 만든 건 안 물리던데요. 빵 잘 만드시네요. 그 빵은 유비가 만든 거거든? 어쨌든 사장님이 파시는 거잖아요. 말은 번드르르하지. 그러면서 괜히 쿠키 하나를 더 얹어주는 식이었다. 그럼 유기의 표정은 한없이 아련해지곤 하는 이상한 표정으로 변하곤 했다. 유장은 그 표정만은 모른체하며 유기를 보내고는 했다. 그럼 또 유기는 언제 그런 표정을 했다는 양 싱긋 웃으며 안녕히 계시라 말하곤 했다.

그 날은 운이 없는 날이었다. 유기가 빵집에 발을 들인 것은 마지막 케이크 한 조각이 팔리는 그 순간이었다. 잘 포장 된 연노랑 박스에 초록색 리본으로 장식을 단 케이크 상자를 들고 그 손님은 많이 파시라며 팔랑팔랑 옷자락을 휘날리며 빵집 밖으로 발을 디뎠다. 유장은 괜히 머쓱해져서 유기에게 인사를 건넸다.

왔냐?

예에... 오늘은 빵이 없나봐요?

보다시피, 다 팔려서.

음.

유기가 침음을 흘렸다. 유장은 괜히 뒷덜미를 긁으며 유기를 바라보았다. 유기는 반팔 셔츠에 허리띠 없이 정장바지를 차려입고 있었다. 가볍게 분홍색으로 줄무늬가 들어간 셔츠는 유기의 얼굴이 더 하얘보이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죠, 다른 거 먹어야겠네요.

유기는 어깨를 으쓱 움직이며 유장에게 안녕히 계시라며 인사를 했다. 문득, 유장은 유기를 잡았다.

잠깐만.

예?

너 도장이... 열 두 개네. 밥 먹고 가라.

예?

유기가 눈을 꿈벅였다. 동그랗게 커다란 눈이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유장은 아까 유기가 그런 것처럼 어깨를 으쓱 움직였다.

밥 먹고 가라. 시간도 남고. 오늘 저녁 내가 하는 김치찌개야. 유비는 나간댔고.

그래도... 될까요?

더 말하면 입 아파. 먹을 거야 말 거야?

먹겠습니다.

유기가 고개가 떨어질 듯 끄덕였다. 괜찮은 집 도련님 같아서 싫다고 하면 어쩌려나 했는데, 입맛은 꽤나 대중적인 모양이었다. 유장은 카운터를 정리하는 동안 앉아있으라며 테이블을 가리켰다. 유기는 천천히 테이블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편안하게 턱을 괴었다. 유장은 잠시 그런 유기를 지켜보다 기기들과 카운터를 정리했다. 셔터를 내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주방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나자 해가 떨어져 있었다. 너무 오래 걸렸나. 유장은 쩍쩍 입맛을 다시며 유기에게 다가갔다. 유기는 아까부터 미동도 없이 그 자세 그대로 앉아있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눈을 감고 고르게 숨을 쉬고 있는 정도였다. 정말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괜히 밥 먹고 가라고 했나. 피곤한 사람을. 유장은 한결 더 어색해져서 헛기침을 했다. 유기는 눈을 뜨지 않았다. 유장은 유기를 깨우기 위해 한 발 앞으로 디뎠다. 문득 유기의 눈꼬리가 꿈틀 움직였다. 그리고 천천히 눈이 뜨였다.

아.

어.

유장 씨.

일어났냐고 말하려던 유장은 순간 말을 잃었다. 유기의 얼굴이 말 그대로 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났기 때문이었다. 활짝 웃으며, 방긋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밝게. 유장은 어... 하고 어색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몇 번 헛기침을 했다.

일어났냐?

예?

유기는 눈을 몇 번 깜박이더니, 아, 하고 침음성을 흘렸다. 환하게 웃고 있던 얼굴이 다시 순식간에 가라앉아서 유장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나 생각했다. 그러나 사과를 한 것은 유기였다. 유기는 다시 깍듯이 허리를 숙였다.

죄송, 합니다.

뭐가?

이름으로 부른 거요. 버릇 없었죠, 죄송합니다.

아니, 뭐. 괜찮은데.

유장은 대답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먼저 뒤를 돌았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래서 유장은 자신의 이름을 어디서 들었냐고 묻지 못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유장은 그 일을 후회했다.


돼지고기를 숭덩숭덩 썰어넣은 김치찌개는 의외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맛이 좋았다. 그야 음식 장사를 하는 사람이니 어느 정도 요리야 하겠지만, 손맛 자체가 좋은 사람인 모양이었다. 유기는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우고도 아쉬워서 잠시 입맛을 다셨다. 유장은 밥을 한 그릇 더 퍼줄까 했지만 유기가 먼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유장은 일어나다 말고 다시 자리에 앉아야 했다.

더 안 먹어도 되겠냐?

아뇨, 괜찮아요.

...쿠폰 대신인데 많이 먹어두지?

유기는 말 없이 방긋 웃었다. 그래. 이 부자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겠냐. 유장은 국물이나 한 숟갈 더 떠먹었다. 칼칼하니 오늘따라 더 맛이 괜찮은것 같았다. 유기는 유장이 식사하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밥을 한 술 가득 떠서 입에 집어넣으려던 유장은 먹다말고 헛기침을 해야했다.

괜찮으세요?

...괜찮..., 야. 괜찮냐니.

갑자기 기침을 하시길래.

사레라도 들리셨어요? 유기가 순진하게 물어서 유장은 이 놈이 정말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유장은 혀를 한 번 차고는 직설적으로 말했다.

너무 뚫어져라 보는 거 아니냐?

아.

유기는 뭐라 말을 하려다,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는 잠시 있다 입을 열었다. 그 사이의 침묵이 한없이 길게 느껴져서 유장은 아리송했다.

...집까지 불러 주실 줄 몰랐거든요.

전 그냥 손님이고... 유기가 우물우물 말을 이었다. 유장은 코웃음을 쳤다.

그 정도 왔으면 내가 밥을 사 줘도 되겠다.

하하. 사장님 농담도.

농담이겠냐. 난 지금 너네 집 숟가락 개수도 알 수 있을 거 같아.

아버지가 뭐라고는 안 하시냐? 유장은 고기를 떠서 밥 위에 올려 한 숟갈 입 안에 집어넣었다. 유기는 괜히 민망해져서 헛기침을 했다. 하긴 아버지가 뭐라고 하시기는 했다. 같이 밥 먹는 일이 팍 줄다 못해 없어졌으니 당황하실 만도 했다. 그것도 같이 밥 좀 먹자고 같이 얘기 좀 하자던 아들이 말이다. 유기는 헛기침을 큼큼 하며 배시시 웃었다.

뭐 이제 저도 성인이니까요.

성인인 거랑 무슨 상관이야. 야, 사장이 너 걱정하면 말 다 한 거지.

유장 씨도 저 부른 거 보니까 별 차이 없는 거 같은데요, 뭐.

유기는 농담 던지듯 툴툴거리고 나서야 입을 다물었다. 유장은 친구가 별로 없었다. 외롭고, 고독한 사람. 그게 유장의 이미지였다. 유기는 슬쩍 유장의 눈치를 보았다. 유장은, 픽 웃고 있었다.

왜, 그럼 안 되냐?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럼 됐지 뭘.

유장은 마지막 밥 한 술을 닥닥 긁어서 입에 쓸어 넣었다. 그리고는 상을 치워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기는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유장 씨.

엉?

...앞으로 밥 정도는 같이 먹는 게 어때요? 매일은, 아니더라도.

기의 목소리가 기어들었다. 괜한 소리를 했나. 유기는 유장의 표정을 보지 않으려 눈을 질끈 감았다.

난 빵 매일 못 먹는다.

밥 싸 와 밥. 유장은 그렇게 말했다. 눈을 뜨자 유장은 등을 돌리고 상을 치우고 있었다. 그 등이 든든해 보여서 유기는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다시는, 이런 모습을 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유기는 괜히 슬퍼졌다.


제갈량은 이마를 짚었다. 아침에 진통제를 한 알 까먹고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두통은 어째 영 가시지를 않았다. 머리가 지끈지끈 거리기도 하고 쿡쿡 쑤시기도 하는 게 영 종잡을 수 없었지만 어쨌건 두통은 두통이었다. 옆에서 유비가 제갈량을 걱정했지만 아픈 걸 숨길 수도, 시치미를 뗄 수도 없었다. 그 귀여운 얼굴이 한 없이 울상이 되어서는, 아동바동 하고 있는 것이 참으로 하찮았다.

어떻게 해 제갈량. 많이 아파? 형이 먹는 진통제 있는데 가져다 줄까?

괜찮습니다. 진통제는 이미 먹었고요. 정신 사나우니 가만히 좀 계세요.

힝, 하고 유비가 자리에 앉았다. 제갈량은 그런 유비의 표정을 보고 조금 웃음을 흘렸다. 하여간에, 귀엽기는. 조금 달래줄까 생각을 하는데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단골손님이었다. 단골 손님이 여럿 있었지만, 저 사람은 골수부터 이 집의 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이었다. 카운터에 바로 시선이 내리꽂혀서 제갈량은 날카롭게 눈을 치뜨고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유장 씨는, 안 계십니까?

사장님 지금 나가셨는데요.

아... 네.

아까보다 한결 힘이 빠진 어투였다. 남자는 터덜터덜 걸어서 쟁반 위에 빵을 몇 조각 올렸다. 달지 않게 구운 플레인 스콘과 특제 샌드위치까지 올라갔을 찰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또 났다. 어서오세요. 반사적으로 외치다가 제갈량은 사장인 걸 알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유비가 형!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유장을 맞았다. 단골의 얼굴에서도 구름이 좀 걷혀서 화사하게 빛이 났다. 유장은 유비에게 손을 들어서 인사해 보이고는 유기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입을 떼었다.

너 잠깐 나 좀 보자.

유기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량은 손을 놀려서 계산을 했다. 참 적성에 안 맞는 일이었으나 유비의 옆에 있을 수 있다는 장점 하나로 눌러 참고 하는 일이었다. 유기는 곧 봉투를 들고 유장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유비와 제갈량은 다시 카운터 앞에 앉았다.

그런데 형님이랑 참 친하시네요.

그지? 우리 형 멋있는 형이야. 끝까지 날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포기하다뇨?

제갈량은 두통에서 생각을 돌리려 유비의 말에 집중했다. 유비는 헤헤 웃으며 제갈량에게 대답했다.

우리 둘, 아주 어렸을 때 헤어졌었거든. 나는 시설로 보내지고, 형은 혼자 살게 되고. 그런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날 찾으러 와줬어. 그래서 지금 둘이 이렇게 빵집을 하고 있는 거야. 우리 형 멋있지 않아?

그렇... 습니까.

제갈량은 조금 떫은 표정을 지었다. 유비의 얼굴이 환한 것이 어째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감정에 질투라는 딱지를 붙이고 마음 한 구석에 처박은 제갈량은 다시 입을 떼었다.

그럼 어떻게 찾으셨답니까?

응?

유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갈량은 두통이 다시 몰려오려는 걸 느끼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오랫동안 못 만났으니 찾기도 어려우셨을 거 아닙니까. 어떻게 만나시게 되신 겁니까?

어... 그러게.

유비가 눈을 꿈벅였다. 제갈량은 눈살을 찌푸렸다.

예?

잘... 기억이 안 나네.

유비의 미간에 드물게 주름이 잡혔다. 유비의 눈이 허공을 헤맸다.

어떻게 만났더라?


유장은 뒷문 쪽으로 유기를 이끌었다. 건물 뒤편은 반대쪽에 있는 매장에서 음악소리가 아스라히 들려왔다. 마감이 되지 않은 시멘트 재질의 바닥과 그대로 노출된 파이프 같은 것들이 앞면보다 뒷면을 한결 지저분해 보이게 했다. 유장이 뒤를 돌아 유기에게 시선을 던졌다.

너.

시선에 물리력이 있다면 유기는 나가 떨어졌을 것이다. 유장은 강렬하게 화를 내고 있었다.

나 어떻게 알았냐.

...무슨 말씀이세요 유장 씨?

너, 이 새, 하.

유장이 화를 못 이기는지 깊게 숨을 들이켰다가 다시 내쉬었다. 그러고 나서야 유장은 말을 이을 수 있었다.

너, 나, 스토킹했다며.

......

발뺌할 생각 하지 마라. 다 듣고 오는 거니까.

......

유기는 침묵했다. 유장은 그런 유기에게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파파라치가 한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유기는, 침묵했다.

지금까지 계속 오던 것도 다 스토킹의 일환이었냐? 어?

......

뭐라고 대답이라도 좀, 아냐. 하지 마. 씨X 꺼져. 내 눈 앞에서 사라져서,

...미안해요.

유기가 툭, 말했다. 쿵쿵 울리는 음악 소리에 거의 꺼질 듯한 목소리가 반쯤 묻혔다. 유기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미안해요, 유장 씨. 미안해요.

...네가 사람 사서 붙인 거라며?

유장은 숨을 고르고 말했다. 왜 그랬어? 물어본 데에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다시는 안 볼 거 이유라도 알자 싶은 심정이 아주, 아주 약간 있었을 뿐이었다. 유기가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고개를 들어 아주 서럽게 웃었다.

들으면 미쳤다고 할 거에요.

넌 그냥도 미쳤어.

...그건 그러네요.

유기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유장은 바짝 털을 세우고 그런 유기를 경계했다. 유기가 입을 떼었다.

저희는 전에, 만난 적이 있어요 유장 씨.

...뭐, 내가 너 구해주기라도 했었냐?

아뇨, 그런 '만남' 말고요.

유기는 웃었다. 아주 비참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저희 만나는 사이였잖아요 유장 씨.

사귄다는 의미에서. 유기의 말에 유장의 눈썹이 까딱 올라갔다.


유기가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어느날 아침이었다. 평상시처럼 아침을 먹고 이를 닦으려고 칫솔을 들었는데,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칫솔이, 하나 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자신이 쓰는 보라색 칫솔 말고, 노란색으로. 유기는 눈을 깜박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을 몇 번 깜박이는 사이, 기억이 물밀듯 쏟아져 들어왔다. 아버지에 대한 실망. 다시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 황충. 공장을 폭파시켜서라도 아버지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겠다는 다짐. 그 도중에 만나게 된 어떤 인물. 그 인물과 같이 있던 영웅패. 자신이 믿는 정의를 위해 악역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 꿋꿋이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 상처가 있던 사람. 자신이 사랑하게 되어 버린 사람. 유장. 유장이 이 집의 구석구석에 묻어 있었다. 동거, 까지는 아니었지만 유장은 종종 유기의 집에 들러서 하루 정도 묵고는 했었다. 어색하게 자신의 옷을 빌려 입었던 모습이나, 같이 시켜먹은 음식 앞에서 너털웃음을 터트리던 모습들이 순식간에 눈에 선해졌다. 유기는 그 상태로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내가 어떻게 이런 것들을 잊고 있을 수 있었지? 그 해답은 또 금방 기억에서 튀어나왔다. 자신은 패배했다. 그것도 아주 처절하고 비참하게. 황충은 그대로 돌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자신은 꿈이 흩날리는 게 슬퍼서 울었던가 아니면 유장을 잊는 것이 슬퍼서 울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유기는 자신을 추스르며 칫솔을 부러뜨릴듯이 잡았다.

유장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드림, 뭐?

드림 배틀이요.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하는 말이야?

유기는 씁쓸하게 웃었다. 유장의 불신을 알 만했다. 유기 자신도 몇 번이나 자신의 기억을 의심했으니까. 그러나 사실이었다. 자신이 유장을 그리워하는 만큼이나.

믿지 못하시는 심정은 이해해요.

그럼 좀 더 그럴듯한 변명을 꺼내 보던가 스토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어요, 유장 씨.

그게 사실이니까요. 유기가 중얼거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묻히지도 않고 잘도 들렸다.

언제부터 '경찰'이 검은 갑주를 입고 다녔는지, 기억하세요?

...그건 또 무슨 말이야.

경찰이,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죠?

유장은 지끈 아파오는 머리를 싸쥐었다. 유기는 말을 이었다.

경찰이, 언제부터, '경찰'이었죠?

그만!

유장은 으르렁거리듯이 쏘아보는 눈으로 유기를 바라보았다. 유기가 뒤로 한 발 물러서고 싶어질 정도로 날카로운 눈초리였다.

'경찰'은... 원래부터, 그랬어.

유장 씨.

설령 네 말이 맞다고 하더라도, 네가 스토커인 건 변함 없는 사실이야. 안 그래?

유장은 으드득 이를 갈며 말했다. 유기는 변명하지 않았다. 그저 축, 손을 늘어뜨렸다.

네.

......

그건 사실이에요 유장 씨.

...신고하지 않는 걸 감사히 여겨.

꺼져. 유장이 머리에서 손을 떼고 날선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시선 한 점 주지 않은 채, 몸을 돌려 뒷문을 향했다. 유기는 고개를 떨구고 빵봉지를 꽉 쥐었다. 그래도, 한 번 정도는 후려갈기실 줄 알았는데. 그것마저 닿기 싫은 걸까, 아니면 그정도의 배신감조차 없었던 걸까. 유기는 쓸쓸하게 생각했다. 아마도 한참을 그렇게 못박여 서 있었다. 철컹,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매서웠다. 유기는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이 속눈썹을 적셔 후둑후둑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시멘트 바닥이 방울방울 젖어들었다. 앞이 흐려졌다 다시 맑아지기를 반복했다. 유기는 오열하고 싶었다. 그러나 유장이 싫어하리라. 그럴 수는 없었다. 벌써 좋아하지도, 믿지도 않게 되었는데. 이미 바닥을 찍은 점수를 더 깎아먹고 싶지 않았다. 아니, 깎아먹힐 점수나 있나? 유기는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눈을 몇번이나 깜박여서 눈물을 털기 위해 노력했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자 하늘이 참 파랗기도 했다. 최악인 날이었다. 유기는 발걸음을 돌리기 위해 한 발을 떼었다.

그 때였다.

제, 제갈량!!

쩌렁쩌렁한 외침 소리가 뒷문을 통해 새어나왔다. 유기는 반사적으로 뒷문을 향해 달려갔다. 오픈된 주방 너머로 당황한 유장과 유비가 경악한 표정으로 천장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무슨? 유기가 더듬더듬 말을 걸자 유비가-유장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거의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갈량이, 제갈량이 갑자기 쓰러지더니-

유기는 유비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 바닥보다는 천장에 가까이, 제갈량이 녹색 빛을 뿌리며 공중에 떠 있었다. 마치 허공에 침대라도 있는 양 눈을 뜨지 못하고 빈 공간에 누워있었다. 제갈량. 유비가 타는 듯이 부르자 제갈량은 아주 천천히 내려왔다. 바닥까지 내려오는 데에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세 명에게는 억겁처럼 느껴졌다.

119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럼 뭐라고 할까 스토커. 갑자기 초능력자가 된 거 같다고 할까?

유장은 이제 유기를 스토커라 부를 셈인 듯 싶었다. 유기는 다시 입을 닥쳤다. 그 순간 제갈량이 눈을 떴다.

제갈량!

유비가 호다닥 제갈량의 얼굴 옆에 꿇어앉았다. 제갈량은 유비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녹색 빛이 제갈량을 향해 달려들다시피 했다. 눈이 부시게 빛이 한 번 크게 번쩍였다. 제갈량이 몇 번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입을 떼려는 듯 목 쉰 소리를 내었다.

-군.

말하지 마, 제갈량. 병원부터 가자. 아까부터 머리 아프다고 했잖아.

유비가 거의 울먹이며 말했다. 유장은 얼굴을 찌푸렸고 유기는 그런 유장의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꿋꿋하게, 제갈량은 손을 들어 유비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쉰 목소리가 말했다.

신선 제갈량, 주군을 뵙습니다


제갈량 그게 무슨 말이야아.

유비가 거의 울먹거리며 말했다. 제갈량은 이마를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일어나 어지러운지 윽, 하고 신음을 흘리자 유비는 또 걱정이 되는지 제갈량의 이름을 외쳤다.

머리 울립니다. 조용히 하세요. 제갈량이 날카롭게 말했다.

유비는 어쩔줄을 모르고 입을 뻐끔거렸다. 저게. 유장이 화가 났는지 부드득 이를 갈았다. 그래도 그 동안은 유비에게만이라도 얌전하게 굴어서 봐 주었는데 이제는 유비에게까지 저 주둥이를 놀리고 있었다. 유기는 그 사이에 끼어서 눈치를 보며 어쩔 줄을 몰랐다. 제갈량이 다시 입을 열었다.

주군이야 말로, 몸은 괜찮으십니까?

응?

마지막 배틀에서, 심하게 다치지 않으셨습니까.

나? 나한테 말하는 거야 제갈량?

여기 제 주군이 유비 님 밖에 더 있습니까?

...내가 왜 제갈량의 주군이야?

제갈량 정신 차려어. 유비의 눈에 눈물이 맺히려 했다. 제갈량은 그런 유비를 보며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입을 떼었다.

아무것도 기억 나지 않으십니까? 드림 배틀이나, 서서라던가, 관우, 장비, 조운도요?

그게 누군데?

드림 배틀?

유장의 목소리가 퍼뜩 둘 사이를 파고 들었다. 제갈량과 유비의 시선이 유장에게 쏠렸다

...유기한테 얼마 받았냐?

유장의 표정은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무슨 말... 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기 놈한테 들은 거, 아냐?

아닙니다만.

제갈량이 부정하자 유장의 표정은 더더욱 일그러졌다. 제갈량의 시선이 곧장 유기에게로 튀었다. 유기는 휘둥그레 떠진 눈으로 제갈량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쪽은,

드림 배틀을 알아?

유기가 제갈량의 말을 잘랐다. 제갈량은 아미를 휘어 눈쌀을 찌푸렸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참가자였나?

신선이다.

신선. 영웅패를 주고 다니는?

그런 건 하잘 것 없는 것들이나 하고 다니지. 나는 내 주군을 보좌하는 신선이다.

내 주군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제갈량이 드물게 말끝을 흐리곤 당황하고 있는 유비를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다시 유기를 바라보았다.

어쨌건, 기억하고 있다는 건 네가 승리자라는 뜻인가?

...아니.

유기가 쓸쓸히 고개를 저었다. 나도 패배자의 일원이지. 제갈량은 비웃듯 한 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가 다시 웃음기를 지웠다.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제갈량! 아직 더 누워 있어! 몸도 안 좋잖아!

신선이 몸이 안 좋다는 것은 허상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기억을 되찾은 사람이 둘이나 있다면 분명 승리자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그것을 알아내야,

야.

오늘따라 말을 자르는 사람이 많군. 제갈량은 인상을 찡그리며 유장을 돌아보았다.

뭡니까?

알아 듣게 설명해. 드림배틀은 또 뭐고, 승리자나 패배자는 또 무슨 소리인지.

제갈량이 한숨을 푹 쉬었다. 유기는 유장을 바라보았다. 입을 뗀 것은 유기가 먼저였다.

...드림 배틀은, 꿈을 걸고 싸우는 커다란 장이에요, 유장 씨.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유장은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그리고는 눈을 꾹 감았다.

시간이 없습니다 주군. 어서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제갈량이 유비에게 호소 하듯 말했다. 으음. 유비가 말꼬리를 끄는 소리가 들렸다. 유장은 그제야 눈을 떴다. 눈앞에 굳은 얼굴을 한 유기가 있었다. 유기는 모아놓은 엄지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유장을 바라보았다. 유장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돼.

유장 씨.

나는 못 믿어. 둘만 기억을 하고 있는 것과 둘만 미쳤다는 것 중에 어느 게 더 확률이 높을 거 같냐?

제갈량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유장은 눈을 감고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동그란 테이블 앞에 있는 목재 의자에서는 삐그덕 소리가 났다. 또 이 세상이 승자의 논리로 재구성된 거라면, 그걸 따르는 것 또한 이치일 수도 있지.

...유장 씨.

유기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말을 잘라먹은 것은, 유비였다.

난 갈 거야.

뭐?

주군.

제갈량이 거의 희열을 느끼는 듯한 목소리로 유비를 불렀다. 유비는 주먹을 꼭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갈량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나는, 제갈량을 믿어.

주군.

같이 가자, 제갈량!

유진아!

유장이 험악하게 유비를 불렀다. 유비는 그런 유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형, 이상하잖아. 우리가 어떻게 만나게 된 건지 나는 기억하지 못해. 우리의 기억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야.

그게 순리를 거스르는 거라고 해도?

...그렇다고 해도.

나는 가겠어. 가자, 제갈량. 유비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제갈량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했다. 유장은 손을 들어 마른 세수를 했다. 유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장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유장 씨.

부르지 마, 스토커.

제가 아는 유장 씨는...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 분이셨어요.

불의?

유장이 코웃음 쳤다.

이게 불의인가? 대답해 봐 스토커. 그는 승리자잖아. 그리고 그가 원하는 세상으로 재편되는 것이 약속이었다면, 이건 불의가 아니지.

유장 씨.

유기가 꺼질 듯한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승리자는 카이저입니다.

그래서.

악한 힘에 손을 대 승리했다는 뜻이에요.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그래서

. 유기는 마른 세수를 했다. 그리고는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유장 씨가 잃은 것은 꿈만이 아닌 모양이네요.

......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전혀 괜찮지 않은 목소리로 유기는 혼잣말이라기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유장은 문득 성질이 치밀어 올랐다. 스토커 자식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뭐라고 쏘아 붙이려는에 문에 달린 종이 딸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제갈량이었다.

...뭐야?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 주군께서 안타까워하시는 것 같으니.

제갈량의 표정은 불퉁했다. 그리고는 손을 펼쳐 아래로 뻗어 손바닥을 보였다. 녹색 빛이 공중에서 생겨나 제갈량의 손을 향해 빠르게 모였다. 그리고 곧 형상을 이루더니 그대로 굳여 부채 모양이 되었다. 유장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자랑하는 거냐?

그럴리가.

제갈량은 피식 웃으며 손 안에서 부채를 굴렸다. 빙글빙글 부채가 돌다가 둘을, 유기와 유장을 가리키며 멈추었다.

다스리기를!

유장 씨! 피해요!

그리고 순간이었다. 이렇다하게 움직이려고 하는 순간 유기가 유장의 앞을 막아섰다.

대지와 같이! 연환!

그리고 초록 불이 튀겼다. 유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너 이럴 거 알고 한 거냐?

아뇨!

유기가 몇 번이나 아니라고 하며 고개를 휘저어서야 유장은 조금 누그러졌다. 그야 껴안는 듯한 자세로 싫은 사람과 딱 붙어있어야 한다면 누구라도 골이 날 것이다. 유장은 한숨을 푹 쉬며 조금이라도 거리를 벌리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몸을 친친 감고 있는 고리는 늘어날 줄을 몰랐다. 유기와 유장은 그 상태로 커다란 크기의 햄스터 볼 같은 것에 갇혀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흡사 납치 당하는 모양새라-기실 틀린 말도 아니긴 하지만-유장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한참동안 투닥거리던 유장은 씨근덕 거리는 숨을 고르다가 커다랗게 외쳤다.

야 제갈량!

그러나 제갈량은 대답하기는 커녕 시선조차 유장에게 돌리지 않았다. 유장은 잠시 더 숨을 고르다 한 번 더 외쳤다.

제갈량!

......

너 우릴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제갈량의 발길이 닿는 곳은 야산이었다. 아무리 근처에 있는 산이라고는 하지만 저녁의 주택가인데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는 게 이상한 점이었다. 건장한 청년 두 명을 끌고 야산으로 가는 사람을 이상하게 여길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유기는 주변을 둘러보며 손으로 구체를 더듬기 위해 노력했다. 마치 미지근한 유리 같았다. 뭔지 알 수 없는 물체인 것은 확실했다.

제갈량!

귓가에 소리가 질러져서 유기는 얼굴을 찌푸렸다. 유장씨와 딱 붙어 있을 수 있는 것은 좋지만, 날 배려해 주지 않으시는 건 역시 힘드네. 유기는 서글프게 생각했다. 당장 못 보게 될 줄 알았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유장이 다시 한 번 외쳤다.

유진은 어디 갔어!

...주군은 집으로 돌아가 계시다.

제갈량이 우뚝 서서 말을 맺었다. 충분히 수풀이 우거진 깊은 산속이었다. 유장은 몇 번이나 눈을 깜짝이다 뭐? 하고 말을 뱉었다.

지금은 선계로 가는 길이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를 알기 위해서. 그러나 지금처럼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영웅패 하나 없이 무방비로 올라가는 것은 위험해. 주군을 모시고 갈 수는 없다. 하지만 이 한 몸 위험한 것도 당연지사.

...그러니까, 우릴 보디가드로 끌고 왔다?

하.

유기가 비웃는 소리를 내며 한 쪽 입꼬리를 끌어올렸고 유장이 당장 이걸 풀라며 화를 내었다. 제갈량은 그제서야 눈길을 주었다.

그렇다면 순순히 당하란 말인가? 주군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 없나?

솔직히 나는, 상관 없는데. 유기는 냉정한 머리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을 떼지는 않았다. 유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들었다. 유장은 거의 그르렁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 협박하는 거냐?

사실을 말한 것 뿐이야. 이미 둘이나 주군의 주변에 있어. 뭔가가 일어날 조짐이다. 대비하지 않으면 휩쓸려 다칠 뿐. 준비하고 있어야 해.

이 강박 또한 심어진 것일지도 모르지만. 제갈량이 씁쓸히 중얼거렸다. 딱딱한 침묵이 얼음 벽처럼 둘 사이에 차곡차곡 쌓였다. 유기는 유장을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유장의 얼굴에는 짜증이 한껏 올라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이전에 본 것과 비슷하게 여겨져서 유기는-

풀어.

유장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풀어야 싸우던 말던 할 거 아냐 얼간아.

제갈량이 이죽이듯 웃으며 부채를 휘둘렀다. 순간 공중에 떠있던 유리 덩어리가 사라지고 고리 또한 풀렸다. 쿵, 하고 두 사람이 주저 앉았다.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아팠기 때문이 둘은 제갈량을 노려보았다. 제갈량은 꽃같이 웃으며 뒤를 돌았다

그럼 가지.

공간이 찢어지듯 갈라졌다. 그 너머로 또 다른 우거진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개연성이 모자라서 망할 것 같으니 그냥 짧게 써야겠다 선계로 들어간 유기와 유장은 각자 황충과 마초를 얻게 됨. 마초의 경우 유장을 매우 반가워했고 황충은 반가움을 표한 것은 같았지만 동시에 유기를 안타까워했음. 그리고 선계를 헤메다가 셋은 옥새에까지 다다르게 되고 옥새 안에 있는 사마의를 발견하게 됨. 결국 강인한 네 주군이 승리하게 되었던 건가. 제갈량은 씁쓸하게 웃음. 그런데 사마의가 묘한 표정을 지음. 기억이 온전치 못한 건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고 있는데 셋은 갑자기 공격을 당함. 카이저였음. 거의 죽일듯한 무시무시한 기세인데다 끔찍하게 강력하기까지 해서 2:1의 상황임에도 유기와 유장은 인간계로 패퇴하게 됨. 제갈량은 그와중에 관우와 장비, 조운을 챙겨 내려왔음. 조조는 변신을 풀고 사마의를 노려보며 더 이상 장단맞춰 주지 않으리라 선언함. 사마의는 뜻대로 하시지요, 주군. 했을 뿐임.

한편 인간계로 내려온 셋과 유비는 빵집에서 대책을 짜기 위해 노력함. 유장은 유기가 포함되어 있는 공동체라는 것을 반대했지만 알고있는 사람 수가 워낙 적으니 어쩔 수 없었음. 관우와 장비, 조운은 빠르게 유비에게 다시 적응했고 그건 유비도 마찬가지였음.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여 유비와 유기, 유장이 어느정도까지 강해졌음. 이 과정에서 유장은 유기에게 어느정도까지는 누그러지게 됨(빻은 설정 죄송합니다). 계속 날을 세우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고(죄송합니다...), 스토킹을 하지 않는 유기는 얌전했음. 식사한다던가 훈련한다던가 에피소드들을 많이 넣어야 했는데... 그리고 이제 영웅패까지 다 해서 아홉이 된 대군단은 다시 선계로 올라갈 다짐을 하게 됨. 그리고 조조에게 발각이 됨. 경찰, 그러니까 선계병들은 착실히 유비를 체포해다가 조조 앞에 꿇어 앉혔음. 그러나 유비는 어떠한 악도 행하지 않았기에 조조는 유비에게 경고를 하며 풀어줄 수 밖에 없었음. 네가 하는 짓이 악은 아니지. 그러나 옳지도 않아. 잘 지켜봐라. 네가 무슨 짓을 하는지. 그리고 유기와 유장이 들이닥침. 불법침입은 조조의 기준에서 확실히 악이었고 아홉은 선계병과 카이저를 상대로 다시 전투하게 됨. 그리고 제갈량의 신선마법으로 아홉은 선계로 도망침. 카이저라고 선계로 못 오는 건 아니겠지만(설정 날조 죄송합니다) 그래도 사마의랑 대화할 시간은 벌어야 하니까. 제갈량은 사마의에게 다가가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사마의가 웃음을 터트림.

친애하는 천하의 보배여. 그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군.

(스포주의) 사마의는 버그로써의 자신의 소임을 충분히 다했음. 마지막 순간에는 승리하지 못할 것을 초조해하는 카이저의 몸을 빼앗아 사마염이 되는 것도 서슴지 않았음. 그러나 마지막 순간,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여 옥새 앞에 선 그 순간 너무나 간단하게 분리되어버리고 말았음. 이유는 허무할 정도였음. 인간의 몸을 가지고는 옥새에 설 수 없었음. 자신의 오랜 꿈은 처음부터 이뤄질 수 없었던 것임. 조조는 악의 멸절을 소원으로 빌었고 사마의는 옥새에 올랐음. 그리고 지리한 300년을 보내기 시작했음. 말이 보내기 시작한 거지 갇힌 거나 다름 없었음. 보통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다음 세대를 기르기 시작하지만 사마의는 버그였음. 그래서 혹시나 일이 안 될때를 대비해 만들어놓은 장치를 건드리기 시작했음. 세계를 자아 안에 가둘 수 있다면 자아를 세계화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세계 축을 자기의 소원대로 틀어버릴 수 있다면 소원으로 세계를 되돌리는 것도 가능할 것이었음. 만일 사마염이 성공한다면 되돌리겠다고 덤벼드는 놈을 해치우는 건 일도 아닐테고. 사마의는 그래서 아주 약소한 드림배틀을 준비하며 기다렸음. 자신을 기억하고 찾아오는 이가 있을 때까지. 제갈량은 자신이 꼭두각시가 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했고 유비는 다시금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려는 사마의의 계획에 분노했음. 그리고 다시 카이저가 나타남. 유기와 유장은 유비와 함께 카이저를 상대했지만 힘의 차이는 너무나도 컸음. 유기는 유장을 지키다 먼저 쓰러지고 맘. 유장은 그걸 보며 카이저를 공격하다 같이 쓰러짐. 그리고 둘의 꿈이 깨짐. 유기의 꿈은 유장이 기억을 되찾는 것이었고 유장의 꿈은 셋이, 스토오킹을 용서한 건 아니었지만, 그냥 저냥 평화롭게 사는 것이었음. 다음에는 내가, 데리러 갈게. 유장은 그렇게 속삭이며 눈을 감음. 유비는 그 와중에 황충과 마초를 얻어 응룡을 불러내게 됨. 그리고 카이저를 패퇴시킴. 그리고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말함. 시간을 되돌리겠어. 그러나 착각하지 마라. 이건 네 원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서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그러니까 미안해 제갈량.

그리고

간이

되돌아간다.

유장은 그 날 면접이 있었음. 체육관을 그만두고, 사범이 다섯이나 늘어 기분 좋아보이는 유진에게 하루 이틀 의탁하긴 했지만 그래도 한 몸 건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음. 유장은 경호원 면접을 보기 위해 도원관 문을 나섰음. 그리고 면접장에 들어섰음. 어서오세요. 앉으시죠. 성함이, 음. 유장 씨? 그리고 유장은 자신의 머릿속에 쑤셔박히는 기억에 혼란해졌음. 자신을 보며 비즈니스용 미소를 짓는 남자가 환히 웃는 얼굴이 머릿속에 들어와 박혔기 때문임. 유기? 유장은 얼떨떨하게 중얼거렸음.

그리고 나중에 결혼해서 잘 살았다고 합니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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