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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떠오른 건데 유기유장이 서로 사랑해서 세계가 위태로워지는 게 보고 싶다....
원래는 만나지도 말았어야 할 두 사람이 만나버린 것 뿐만 아니라 서로 사랑하게 되어버려서 세상이 어마무시하게 위태로워졌는데 서로를 놓지 못해서 놓을 수가 없어서 고통 받는 게 보고 싶다
여기에 총까지 쥐여주면 완벽(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사랑해.
......
사랑해요, 유장 씨.
유장은 평소처럼 대답했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고개를 푹 숙이고, 알고 있다고. 자신은 알고 있다고. 그러나 그 목소리는 잔뜩 깔려서 어둡기 그지 없었다. 유기는 유장의 손에 들린 권총을 손으로 가만가만 더듬었다. 빼앗고 싶었지만 유장의 손은,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힘이 가득 들어가 권총을 꾹 쥐고 있었다. 유기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두 개가 하나인 양, 총신과 손등을 조심스레 쓸어내리는 것 뿐이었다.
유기.
네, 유장 씨.
유장은 눈을 맞추지 못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시선을 가리기 위해 후드를 뒤집어 쓰고. 폐허가 된 빌딩에는 정말 잘 어울리는 복장이었다. 그에 비해 유기는 오늘도 깔끔하게 니트를 받친 정장을 입고 있어서 이질적이었다. 바닥에 주저 앉아 있어서 더더욱 그랬다. 유기의 한 쪽 다리는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려 있었다. 부러진 것이었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레전드 히어로들의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둘은, 만날 수 없는 사이였다고 했다. 스쳐 지나가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데자뷰조차 남을 수 없는. 서로 눈을 맞추고, 입을 열어 말을 섞고, 손끝이 맞닿는 것은 꿈에도 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것이었는데.
유장 씨.
......
절 봐요 유장 씨.
유기는 유장의 옷깃을 붙들고 애원하듯 말했다. 유장은 제의 발끝에 뭐라도 묻어있다는 듯이 거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7월이었다. 매미가 우는 소리가 들릴 법도 한데 바깥은 고요하기만 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깔린 적막감은 바깥에 오는 눈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유장 씨.
유기는 침을 삼키고 다시 한 번 유장을 불렀다. 유장은 그제서야 입을 떼었다.
오다가.
......
유비를 만났어.
......
울고 있더라. 공손찬도, 그렇고.
총칼을 든 쪽은 그 쪽이면서. 유장의 목소리는 내리깔리다 못해 이젠 갈라지고 있었다.
이 총은.
......
네 아버지가 전해 달라고 했대.
......
아마 너한테 전해달라고 했던 거 같은데 엇갈린 모양이더라고.
유장 씨.
유기는 배시시 웃었다.
맞게 간 걸 거에요.
유기야.
저희 아버지도 유장 씨를 좋아했잖아요.
유,
아, 물론 저 같은 의미로는 말고요.
......
유장이 총을 들고 있지 않은 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했다. 유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유장 씨.
......
어렵지 않아요. 알잖아요.
손가락만 까딱하면 되는데.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요. 유기는 제 가슴을 손바닥으로 두어번 두드렸다. 유장이 아주 약간 고개를 들었다. 유기가 소리내어 웃었다.
유장 씨 얼굴 보고 가니까, 그래도 좋다.
너,
유장 씨.
유기가 말을 채어갔다. 유장은 멍하니 유기를 바라보았다.
사랑해요.
......
사랑해.
유장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유기는 등을 벽에 기대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팔을 늘어트렸다. 모두의 축복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착각했던 때도 있었다.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거창한 반대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유기는 피식피식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방금 눈을 감았는데도 유장이 보고 싶었다.
유기야.
유기는 눈을 떴다. 그리고 눈을 의심했다. 유장이 울고 있었다.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거기다.
사랑해.
총성이 방 안을 갈랐다. 유기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리를 박찼다. 피가, 유장의 피가. 바닥이. 유기는 유장의 이름을 길게 불렀다.
어 잠깐 근데 이건 누구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게 아니네 둘이 사랑을 해서 세상이 위태로워진 거고 유장이 죽는다고 둘이 사랑을 했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심지어 유기는 아직도 유장을 사랑하고 있다
크으 유장이 죽었는데도 눈 오는 게 멈추지 않고 세상이 어그러진 것도 되돌아가지 않은 채 멸망해가는 세계와 그걸 보며 누구보다도 절망하는 유기
유장씨가 목숨도 바쳤잖아. 대체 원하는 게 뭐야. 왜 우리를 이렇게까지 고통스럽게 하는 거야. 왜 되돌아가지 않는 거야. 차라리 되돌아갔다면 유장 씨를 추억해가며 고통스럽게나마 살아남을 텐데. 유장 씨가 준 목숨이니까 버릴 수도 없이 버텨나갔을텐데.
왜 내가 살아 있어야 하는 거지?
유장 씨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
아! 유장을 다시 만나겠다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마초와 황충의 쌍두마차를 이끌며 사마의와 결탁해 흑군주가 되는 유기...!
이지 따위는 의미가 없어 꼭두각시가 된다고 해도 좋아 유장씨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유비가 그런 유기를 고통스런 눈으로 보는 게 보고 싶다 형도 이런 걸 원하지 않았을 거야! 왜 그렇게 되어버린 거야 유기...!
거기다 대고 아주 덤덤하게 유장 씨가 내 곁을 떠났으니까. 하고 말하는 유기
아 근데 흑군주가 된 유기 섹시할 거 같아 검은 정장에 검은 셔츠 쭉 빼입고 눈 밑에 문양...
흑유기가 유장 얼굴을 부드럽게 그러쥐고 보고 싶었어요 유장씨. 정말 오랫동안. 너무 오랫동안. 하고 원망하는 눈으로 유장을 바라보는 게 보고싶다...
왜 그렇게 떠났어요 제가 싫었어요?
싫었으면 그렇게 갔을리가 없잖아
이해는 하지만 납득은 못하는 유기가 보고 싶네
제가 말했잖아요 절 죽이라고. 손가락 하나 까딱 하는 게 그렇게 힘들었어요?
유장이 대답을 피했으면 좋겠네... 고개를 돌리려고 해서 유기가 유장의 멱살을 잡아 올리는 게 보고 싶다...
이게 세상이 멸망하고 결국 유기가 드림배틀의 승리를 거머쥔 후여도 좋고 사마의가 유기를 무력화하기 위해 흑신선마냥 껍데기뿐인 흑유장을 만들어낸 거여도 좋다. 나만 좋다(넘
후자의 경우 마초와 황충이 매우 안타까운 눈으로 유기를 바라볼 거 같은데 그렇다고 뭐라 말을 얹지는 못하는 것이다... 흑군주가 될 때에 이미 많이 틀렸거나... 아니면 그 때에조차 말리지 못해서...
마초의 경우는 유장을 보고 싶었을테니까... 흑유장을 보면서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에 시달리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황충도 유기가 아버지 관심 끌려고 폭파하고 다닐 때 도움(?)을 준 전적이 있으니 여기도 어느 선에서 유기를 말렸을지가 좀 미묘하다고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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