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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 등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지식이 일천합니다. 혹시 오류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캐붕이 심합니다. 

*이어지네요...

*2016년 글 백업입니다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병실에는 당연하지만 에어컨이 틀어져 있었다.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오고 있다고는 해도 병실 안은 시원한 편이었다. 뉴트는 한참 허탈해 보이는 갤리에게 주스를 권했다. 꺼내 마시는 건 갤리가 해야겠지만 말만으로도 고마운 일이긴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티가 날까 봐 실제로 음료수에 손을 대지는 못했지만, 여튼 그랬다. 갤리는 대강 고맙다고 웅얼거리며 옆에 앉았다. 의자 옆에 있는 탁자 위 꽃병 속의 장미는 히아신스로 바뀌어 있었다.

"꽃."

"어?"

"바뀌었네."

"아."

뉴트는 뭐라고 말을 하려다 말이 되지 못하는 소리를 내고 잠깐 손으로 눈을 가렸다. 갤리는 웃지 않았다.

"부모님이 왔다 가셔서."

뉴트가 쥐꼬리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색색, 옅은 소리를 내며 숨을 쉬고 있는 몸을 씻기고 갔다고 했다. 눕히기 직전에 말린 머리는 에어컨 바람을 따라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제 몸을 바라보는 뉴트의 얼굴은 가루약을 먹은 후의 소아과 병동 환아 같았다.

그래서 주차장 한 가운데에 서있었던 건가. 갤리는 뉴트가 바라보던 정문을 떠올렸다. 하도 드나들어서 역으로 떠올리기도 애매한 정문을 기억하기 위해 잠시 말을 아꼈다. 수없이 차가 드나드는 걸 얼마나 지켜보고 있었을까. 치이지도 않고 시간도 많지만- 어쩌면 그래서 거기서 더 오래, 오랜 시간을. 

갤리는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이상하게 뉴트랑 관련된 일에 신경을 쏟고 있는 느낌이었다. 자신에게 넘겨질 때부터 안 되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필요 이상으로 생각을 쏟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도 알 수 없게 대화를 나눌 수 있기까지. 갤리는 뭐든 화제를 돌리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고 보니 너, 남의 꿈에도 개입 할 수 있어?"

"....."

"야?"

"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제 얼굴을 보고 있던 뉴트가 그제야 갤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갤리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자 뉴트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 갤리는 여기서 너 말고 누가 있냐고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뉴트는 겸연쩍은 표정을 했다.

"나한테 말 거는 거라고 생각을 못해서."

"그게 무슨."

무슨 이상한 소리냐고 핀잔을 주려다가, 갤리는 문득 입을 다물었다. 추측으로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뉴트는 말을 끊지 않았다. 

"자꾸, 선생님은 나한테 말을 걸 수 있다는 걸 까먹네."

그건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뜻이니까. 나는, 좀 더, 얘기를 하고 싶은데.별 것 아닌 일상적인 대화가 왠지 또 다시 떠올랐다. 입맛이 영 제대로 돌아오지를 않았다. 갤리의 표정이 훨씬 안 좋은지 뉴트가 급하게 말을 돌렸다. 그래서 뭐라고 한 거야? 제대로 못 들었어. 갤리는 아픈 왼팔의 깁스를 괜히 오른손으로 두드렸다.

"아니, 혹시 너, 꿈에도 개입할 수 있나 싶어서."

"꿈?"

웬 꿈? 뉴트의 어투는 말 그대로 처음 듣는 것을 대하는 태도였다. 어제고 오늘이고 괜한 말을 꺼내는 날인가. 갤리는 어색하게 검지 손가락 끝으로 괜히 깁스를 두드렸다. 

"안 해 봐서 모르겠는데."

"그래?"

"혹시 할 수 있대도 좀 별로인 의사들이나 좀 하고 말겠지 뭐. 선생님은 걱정 안 해도 되는데."

"괴담을 얼마나 더 양산할 생각인 거야?"

뉴트가 입술로 나마 웃었다. 갤리는 그나마 나아진 기분으로 어색하게 몸을 바라보았다. 탁자 위에 놓아둔 핸드폰이 진동을 울렸다. 갤리는 잠깐 뉴트를 보았다. 받아도 되나? 앞에 있는 몸은 그렇다 치더라도 앞에 사람을 두고 전화를 받기도 그랬으니까. 그러나 뉴트는 별 대꾸나 동작이 없었다. 왜 물어보는지 모르겠다는 투였다. 갤리는 오른손으로 전화를 들고 받아도 되겠냐고 물었다. 뉴트는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갤리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뉴트에게 등을 보이고 조금 떨어졌다. 핸드폰에는 민호의 이름이 떠 있었다.

"여보세요."

「어. 야 너 병원이라며?」

매일 보는 얼굴이라 그런지 인사도 뭣도 없이 대뜸 본론이 날아왔다. 갤리는 조금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많은 사람을 마주치기는 했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쟤한테까지 연락이 가나? 갤리는 어어, 하고 어색하게 답변을 흘렸다.

「잘 됐다. 나 오늘 오전 퇴근인데 맥주나 한 잔 하자. 더워서 돌아가시겠다.」

"너는 환자한테 술 마시자는 얘기가 나오냐."

「아 맞다 그랬지.」

"어제 당직이었냐? 정신이 빠졌네."

「족집게네 자식이.」

"집에 가서 냉수나 켜고 자."

투덜거리는 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렸다. 아 생각해 보니까 집에 물도 없을 텐데. 여기나 저기나 의사들 사정이 도긴개긴이라 저기도 별 다를 건 없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갤리의 집에는 물은 있다는 점이었다. 아니었으면 혼자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까 너 병원은 왜 왔냐? 약이 안 맞아?」

"어?"

항생제와 소염 진통제, 그 외 몇 가지. 안 맞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처방전 위의 약물 리스트. 약들을 꼽아보던 갤리는 귓가의 난폭한 어투의 민호의 목소리가 들려와서 정신을 차렸다. 특별히 대답을 하지 않았으니 어떤 의미로 들렸을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뻔했다.

「너 어디야. 응급실?」

「아냐 임마. 그냥 좀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어딘데.」

사명감이 투철한 의사의 압박은 무서운 편이어서 갤리는 저도 모르게 개략적으로 나마 제 위치를 말해버리고 말았다. 기다리라고 말하고 민호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툭 끊었다. 알아서 오겠지 뭐. 갤리는 허탈해져서 휘적휘적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뉴트는 그런 갤리를 거의 뚫어지라는 듯 내려다보았다.

"왜."

"아, 그냥. 대화가 거침이 없길래."

"너도 그닥 다르지는 않은 것 같은데."

"나랑 말 할 때는 말 고르느라 고생하는 것 같았거든."

갤리는 조금, 목에 무언가가 걸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긴, 모를 수는 없을 것이다. 티를 안 냈다고 말하기도 민망할 지경이었으니까. 그래도 보통은, 모른 척 넘어가는데. 드러내는 게 어린 걸까, 티를 내는 게 어린 걸까.

"...너는 내 환자니까."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막 대하는 거 같은데."

뉴트는 그 말을 끝으로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갤리도 침묵을 지켰다. 무슨 말을 꺼내기가 어색했다.

다행히도 민호가 올라오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부터 거칠게 열고 들어온 민호는 날카로운 어투로 증상과 체온, 통증의 여부 따위를 따져 물었다. 도와주러 온 간호사도 갤리의 귀에 체온계를 꽂아보고 깁스의 상태를 살펴보는 등의 일을 거리낌 없이 해치웠다. 뉴트는 익숙한 상황이 펼쳐지자 재미가 있었던지 낄낄 웃으며 귀를 시끄럽게 했다. 약 5분여 후에 갤리는 한숨을 쉬며 아까보다 훨씬 혼란스런 상태로 정상 판정을 받고 놓여날 수 있었다.

"아 말 실수한 거라니까."

"그럼 말 실수를 하지 말았어야지."

"말 실수를 한 사람이 잘못 한 거지."

저것들 뉴트가 깨어나기만 하면 아주 죽이 잘 맞을 거야.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플 거 같아서 갤리는 서라운드로 들려오는 소리에 진저리를 쳤다. 정식으로 대기 명단에 올라간 것도 아니니 진료비를 받기도 애매하건만 진료를 본 간호사와 민호는 자연스럽게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했다. 민호는 아예 처음부터 퇴근 하다 온 듯이 셔츠에 바지 차림이었다. 진료를 본 물품을 정리하고 간호사가 나가고 나서야 갤리는 조금 긴장을 풀고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핸드폰이 또 울렸다. 무슨 일이 또 일어나려고. 핸드폰을 보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장 본다고 나가더니 또 무슨 일 생겼어? 토마스였다. 갤리는 오른손만으로 어설프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니 지금 누구 만나서. 보러 가. 재촉도 오고 했으니 갤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했다. 뉴트에게 별 말을 건넬 수는 없어서, 조금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갤리가 일어서자 침대의 중간 정도 높이에 떠있는 뉴트와 갤리의 시야가 비슷해졌다. 뉴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갤리는 고개를 돌렸다. 나 지금 장보러 가야하는데. 민호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지만, 민호에게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민호는 어깨를 으쓱 움직이며 먼저 병실 밖으로 나갔다. 갤리는 뒤를 돌아보았다. 뉴트는 손을 저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

집에서 뭐라도 먹으려면 물이라도 사가야 한다고 민호는 장을 보러 가는 갤리를 쫓아왔다. 사실, 그냥 가는 길이 같은 것에 불과했지만 숨기는 게 있는 갤리로서는 그렇게 느껴졌다. 드라마에서 사복 경찰한테 감시 당하는 주인공의 마음이 이런 건가? 쓸데없는 생각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가 사그라들기를 반복했다. 그 이후의 잡담은 일상적이었다. 교수들과 나눈 이야기, 여러가지 논문, 신약, 정형외과와 내과로 갈리는 전공이었지만 그럭저럭 이야기는 할 만 했다. 얼마 가지 않아 마트 입구가 눈에 들었다. 도착하기 전에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야 해서 둘은 잠시 멈춰 섰다. 지나는 동안 해가 한 풀 꺾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더웠다. 가로수 없는 횡단보도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파란 불로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민호가 문득 말을 건넸다.

"그러고 보니까 너."

"어어."

"그 병실은 왜 들어가 있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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