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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 등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지식이 일천합니다. 혹시 오류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5편을 약간 수정했습니다.
*캐붕이 심합니다.
*이어지네요...
*2016년 글 백업입니다
이주일이나 되는 병가를 흔쾌히 받아준 건 역시 잠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갤리는 잠이 늘어났다. 내가 그렇게나 많이 졸았나? 진료를 보면서 꾸벅꾸벅 졸았던 기억은 없었지만 많이 피곤해 보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도 깨닫지 못한 사이 피로가 쌓였던 모양이다. 갤리는 잘 떠지지도 않는 것 같은 눈을 깜박이며 발을 옮겼다. 하루 중 열여섯 시간은 잠이 들어있는 기분이었다. 식사를 하고, 잠시 책을 좀 뒤적이다 보면 어느새 또 잠이 몰려오고, 세수를 하고 TV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에 졸고 있었으며 상쾌하게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어도 몇 시간 가지 못해서 또 졸음이 밀려왔다. 몸에 약이 안 맞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덕분에 오늘은 아예 병원에 진료 시간에 맞추지 못할 뻔했다. 갤리는 덜 마른 머리를 하고 정신 없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외래 진료를 위한 곳과 입원 병동은 거의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환자의 입장에서 오는 것은 의사의 입장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달라서 갤리는 어색하게 자리에 앉아 대기를 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는 곳에서 혼자 언제 부를지 모르는 것을 기다리고 있자니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의사일 때에는 또 몰랐던 일인데. 갤리는 어색하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고 보니, 뉴트는 이 쪽까지는 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꽤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모양이던데 외래 진료 쪽은 잘 오지 않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다른 데에 가있는 걸까. 꿈은, 그러지 않아도 또렷한 편이었지만,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중간에 끊기는 것 같은 애매한 마무리도 그랬지만, 그 선명함 때문에 뉴트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했다. 안 그래도 잠 때문에 얘기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복도 쪽을 보고 있어도 익숙한 인영이라고는 의사와 간호사 밖에는 지나가지 않았다. 갤리는 목 뒤를 쓸었다. 간호사가 갤리를 호명해서 갤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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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는 꼼꼼하다 못해 까다로운 의사였다. 안 그래도 요새 들어 지나칠 정도로 자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갤리는 오늘 온 김에 대대적으로 검사를 받는 게 아닐까 싶었다. 원래의 예약보다 당겨진 진료 날짜도 있고 하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갤리에게 피로가 쌓이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의사 생활을 생각해 볼 때 어불성설이었고, 다친 것도 있었으니 몸이 휴식을 필요로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닷새 정도야 그럴 수도 있지. 민호는 그렇게 말했다. 이 주일이 다 되어서 그 때도 계속 그런다면 상태를 봐야한다고 덧붙이긴 했지만. 결국 갤리는 같은 약을 받고 수납을 한 후에 병원을 나서야 했다. 갤리는 한숨을 푹 쉬었다. 다친 곳은 순조롭게 낫고 있었다. 일주일 뒤에 깁스를 풀고 나면 바로 병원에 복귀해도 괜찮을 것이었다. 갤리는 콧잔등을 만지작거리다 아까 생각한 대로 뉴트의 병실을 들려보기로 했다.
뉴트의 병실은 낮은 층계에 있었기 때문에 갤리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기 보다는 걸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슬픈 것은, 넓은 병동에서 계단이 있는 곳과 병실은 극과 극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병실까지 가는 길에는 드문드문 산책하는 환자만 몇 명이 있었다. 링거를 옆에 두고 천천히 걸어다니며 점심에 먹은 것을 소화 시키는 모양이었다. 갤리는 계단을 몇 개나 올랐다고 이렇게까지 숨이 찬지 잠시 생각하다 우울해져서 곧 그만 두었다.
병실 앞에서 갤리는 노크를 했다. 응답이 없었다. 회진을 할 때도 항상 하는 습관이었기 때문에 갤리는 그대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뉴트가 잠들어있었다. 갤리는, 약간 충격에 빠졌다. 자신이 보던 뉴트는 병실 안에 없었다. 응답이 없었다는 걸 떠올리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분명히 안에 있었다면 뭐라도 이야기를 했을텐데. 갤리는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그러고 보면 항상 뉴트를 만난 후에 뉴트의 병실로 왔다. 병실에서 바로 만난 적은 없었다. 기껏해야 두, 세 번 말을 나눠 보았을 뿐이었는데 왜 이렇게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여기로 왔을까.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으면 당연히 병실에는 없을 법도 한데. 갤리는 허탈해져서 그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잠들어 있는 얼굴이 눈에 들어온 건 그 다음이었다.
에어컨 바람에 머리카락 몇 가닥이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관리하기 편하라고 길지 않게 자르는 짧은 머리는 끝이 반짝이는 금발이었다. 4년 동안 누워만 지냈다던 몸은 바싹 말라 있었지만 키는 꽤 자란 편이었다. 잘 다듬어진 것 같은 얼굴이나 콧대도 그랬다. 산소 호흡기가 끼워져 있는 게 조금 이상한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드물게 잘 생긴 얼굴이었다. 하긴 원래 애들은 다 말만 안 하면 이쁘지. 갤리는 그렇게 생각하기 위해 자신을 조금 달래야 했다. 맥박 측정기에서는 규칙적으로 기계음이 나고 있었다. 호흡기 탓인지 숨소리도 이상할 정도로 크게 들렸다. 고요하지만, 또 그렇게까지 고요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몸에 들어가지 못해서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영혼이 또 병원을 떠돌고 있겠지. 절로 한숨이 나왔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갤리는 무릎에 팔꿈치를 올리고 턱을 괴었다. 인수인계 받은 차트는 두꺼웠다. 이런 저런 진단, 투약, 검사. 수많은 이야기가 4년치 쌓여있었다. 그것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더라. 갤리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암담함을 느꼈다.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시계를 보니 저녁 회진 시간까지는 아직 좀 남아있었다. 투약 시간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얼떨떨해져서 일어서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가 되었을 때 문이 열렸다. 민호였다.
"역시 여기 있었네."
"어..."
갤리는 뭔가 말을 하려다 포기했다. 자기가 그렇게 훤히 읽히는 인간인가? 괜히 불편해져서 갤리는 어설프게 투덜댔다. 민호는 의자를 끌어다가 앉았다. 잠시 맥박 소리만이 병실을 채웠다.
말을 먼저 꺼낸 것은 민호였다.
"너 역시 뭐 보지."
"어, 어?"
갤리는 놀란 것을 가라앉히기 위해 잠시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그것도 최대한 티나지 않게. 어려운 일이긴 했지만 어찌어찌 해 낼 수 있었다. 갤리는 모른 척 말을 건넸다.
"뭘?"
"시치미 떼지 말지? 토마스한테도 물어 봤거든?"
이리로 불렀으니까 말 돌릴 생각은 말고. 민호가 꺼낸 핸드폰 화면 상단에 토마스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갤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찌그러 들었다. 갤리는 오른손만으로 마른 세수를 하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말을 한참이나 고르다가 갤리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선택했다. 병실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 최소한 갤리는 말을 더 꺼내고 싶지 않았다. 뭐가 또 들통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기엔 너, 스트레스가 좀 많이 쌓인 거 같아."
민호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서는 말했다. 유체이탈이 어쩌고 하는 걸 보니-여기서 갤리는 토마스를 조금 원망했다-이 환자를 봤다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특별히 걸리는 건 없거든. 응급실에서 정신과 쪽으로도 문의해 봤는데, 너도 연락 받았으니까 알겠지만, 모르겠다고 하고. 그럼 귀결은 결국 스트레스란 말이지. 특히 이 환자한테. 쉬는 건 미봉책일 거고, 담당의 바꾸는 게 낫지 않아? 갤리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는 민호의 말을 한 귀로 흘려 들었다. 스트레스라, 그럴지도 몰랐다. 아니, 그럴 확률이 높았다. 어쩌면, 정말로, 그 모든 게 환각일 수 있지만.
그 쓸쓸한 표정을 제 무의식이 만들어 냈다기에는 자신의 상상력은 생각보다 좁았다. 갤리는 몸을 웅크려서 오른손에 얼굴을 묻었다. 피로가 쌓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좀 전에 민호가 토마스를 불렀다고 했으니 아마도 토마스가 왔을 것이었다. 들어오세요. 갤리는 기어가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뭐가."
"'들어오세요'라며."
갤리는 눈을 깜박였다. 방금, 누가 노크했잖아. 그런 소리 안 났는데? 너 토마스 불렀다며. 병실은 안 알려줬어. 로비로 불렀지. 그 짤막한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갤리의 귓가에 목소리가 어렸다.
"어, 선생님, 여기 왔었네?"
문에 상체만 나와있는 뉴트가 갤리에게 말을 걸었다. 갤리는 어색하게 어어, 하고 대답 아닌 대답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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