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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 등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지식이 일천합니다. 혹시 오류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캐붕이 심합니다. 

*이어지네요...

*2016년 글 백업입니다

 

"더워."

에어컨이 켜져 있는 로비에 앉아있으면서 땀을 쏟고 있는 건 토마스 뿐이었다. 밖이 덥긴 어지간이도 더운 모양이었다. 민호는 혀를 차며 남아있던 커피캔을 토마스에게 건넸다. 미지근하다고 투덜거리면서도 토마스는 커피를 잘도 마셨다. 반 캔 정도가 사라지고 나서야 말을 할 정신이 드는지 토마스가 몸을 일으켰다.

"근데 왜 불렀냐?"

"갤리를 추궁할 일이 좀 있어서."

"왜 그런 일로 부려 먹는데."

토마스는 조금 투덜거리며 커피를 마저 마셨다. 엘리베이터가 부지런히 움직이는 소리, 들고 나는 사람들, 몇 번이고 울리는 번호를 부르는 소리와 사람의 주의를 한데 모으는 벨 소리.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오늘따라 다르게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또 다른 사람들이 있는 건 아닐까, 민호는 못내 머리가 아팠다.

"갤리는?"

"잠깐, 누굴 좀 만나서."

"병원에서?"

"병원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애매모호해서 그런지, 토마스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걔도 워커 홀릭이라니까. 그건 진단 안 돼? 민호는 모르겠다며 손을 휘휘 저었다. 일정 부분 동의하는 것도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아니, 그런 문제인가? 머릿속이 영 복잡했다. 듣도보도못한 상황이니만큼 더 그랬다. 피우지도 않던 담배가 피우고 싶을 만큼.

"갤리 내려오면 밥이나 먹으러 가자."

"병원 식당 안 간다고 약속하면."

여기 맛 없더라. 말하며 토마스는 주변을 둘레둘레 살폈다. 쓰레기통은 엘리베이터 옆에 있었다. 토마스는 이걸 좀 버리고 오겠다며 민호에게 대강 손짓을 했다. 민호는 그러라며 목을 꺾었다. 저건 정형외과 의사라면서 뼈가 우둑우둑 부러지는 소리를 참 잘 낸단 말이지. 뼈에 안 좋다고 하던데. 토마스는 감탄 아닌 감탄을 하며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분리수거가 복잡하기도 했다. 종이, 일반 쓰레기, 캔류, 유리병, 기타 등등. 여기서 유리병이 나올 일이 있나? 어쨌건 머리 한 켠에 잘 보관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며 토마스는 캔류를 열었다. 등 뒤에서 금속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같이 들렸다.

"-겠어? 안 해봤다며. 그러니까."

"갤리?"

뒤돌면서 말을 걸었다. 등 뒤-이제는 제 앞에 서 있는 건 갤리였다. 합죽이가 된 마냥 입을 다물고 어딘지 뻣뻣하게 서 있긴 했지만.

"토마스."

갤리가 숨을 못 쉬는 것처럼 웅얼거렸다. 토마스는 눈살을 조금 찌푸리고 갤리를 훑었다. 어디 안 좋아? 그러니까, 왼팔 말고. 갤리는 별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안색이 안 좋은데 진짜 괜찮은 거 맞나. 집에 가서 쉬어야 하는 거 아닌가, 검사가 안 좋았나,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토마스는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민호랑 기다리고 있었어. 점심 뭐 먹을까?"

"적당히."

제일 성질 나는 답변을 하면서 말은 잘한다. 토마스는 푸, 하고 불만을 표출하며 갤리 옆을 스쳐 지나가 민호를 부르려 했다. 팔이 부딪혔다.

"어, 미안."

"뭐가?"

토마스는 갤리를 올려다보았다. 어째 영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비꼬는 건 아닌 거 같은데, 하긴 그런 걸 비꼴만한 성격도 아니었다.

"방금 부딪혔잖아. 오른손."

"어."

얼굴이 어쩐지 흙빛이었다. 괜찮아. 갤리는 거의 쥐어짜는 것 같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오른손도 안 좋은가. 토마스는 갤리에게 한 번 더 진료를 보지 않겠냐고 설득할 근거를 하나 더 추가하며 갤리를 잠시 더 바라보았다.

-

병원 밖으로 따라가 보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뉴트는 결국 병원 정문에서 돌아갔다. 단순히 배웅을 해 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지만, 어찌 되었건 어느 쪽이건 갤리에게는 약간은 착잡한 노릇이었다.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이런 저런 생각들이 얽히고설켜서- 게다가, 뭔가가 이상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싶은 게 있었는데 그게 뭔지를 꼬집어 낼 수가 없었다. 뭔가 거슬렸는데 그게 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안 먹냐?"

종류별로 있는 사이드메뉴-너겟, 어니언링, 프렌치 프라이-와 계란과 햄, 온갖 야채가 들어간 샌드위치, 커피 대신 제공 되는 아이스티를 앞에 두고 깨작거리는 갤리를 보다 못했는지 민호가 툭 말을 던졌다, 아이스 커피를 후루룩 마시던 토마스도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너 괜찮은 거 맞아? 다시 입원해야 한다거나 그런 거 아냐?"

"멀쩡하거든?"

"근데 왜 이렇게 정신이 빠졌냐."

민호도 말을 거들자 갤리는 인상을 찌푸리고 아이스티를 조금 마셨다. 의사와 환자, 보호자로 가득한 샌드위치 가게는 항상 붐비는 편이었지만 좌석 사이의 거리는 좁지 않은 편이었다. 왼팔을 못 쓰는 자신으로써는 탁월한 장소였다. 배려는 대단히 고마웠지만.

"나 아직도 진료 보는 중이냐?"

일 중독이라니까 너. 갤리는 민호를 향해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다. 토마스가 갑작스럽게 웃음을 터트렸다. 민호도 갤리도 잠시 당황해서 토마스를 바라보았지만 토마스는 신경쓰지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르던 토마스가 감탄했다.

"일 중독자에게 핀잔 듣는 일 중독자라니."

"누가 일 중독이야."

"음, 민호가 좀 더 회생 가능성이 있는 것 같네. 자기가 일 중독이라는 건 인정하잖아."

민호는 샌드위치를 한 입 가득 베어문 상태 그대로 토마스를 노려보았다. 단순히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부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뿐인 듯 싶었다. 어쨌든 토마스는 낄낄 대며 너겟을 하나 집어 먹었다.

"여튼 몸 상태가 안 좋은 건 아니지?"

"넌 또 왜 묻냐."

"예비 보호자의 지위?"

"그런 지위 없어. 여튼 멀쩡하다고."

그럼 다행이지만. 갤리는 샌드위치를 크게 한 입 베어물었다. 당연하지만, 소스부터 직접 만든다는 가게의 샌드위치는 굉장히 맛있었다. 갤리는 그렇게 자신이 무언가를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 사실을 떠올린 것은 그 날 밤이었다. 갤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잠에서 깨어났고, 급하게 몸을 일으키다가 왼팔로 몸을 지탱하는 바람에 잠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또 다시 꿈이었다. 팔이 아프고 보니 어디가 현실인지가 더 빠르게 느껴졌다. 지금이 확실히 현실이었다. 열려있는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오는 병실이라니, 가능할 리가 없는데 왜 그리도 생생하게 느껴졌던 것인지. 갤리는 몸을 다시 뉘이며 생각에 젖었다. 그렇게도 쏟아지던 잠이 지금 이 순간에는 왜인지 오지 않았다.

병실 안에는 뉴트가 없었다. 그러니까 뉴트의 몸이 아니라, 뉴트의 정신이 없었다. 갤리는 멍하니 옆에 앉아서 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아주 당연한 것처럼 뉴트가 눈을 떴다. 그리고 갤리를 불렀다. 선생님. 뭔가가, 발 밑이, 무너지는 것 같은 감각이 들었다. 가끔 꿈을 꾸다 보면 종종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아니었다. 왜 그 순간에 그런 감각이 들었을까. 그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갤리는 몸을 뒤척였다. 깁스를 한 팔이 걸리적거렸다.

선생님, 이라는 발음이 또렷이 기억날 정도로 꿈을 꾼 건 또 처음이었다. 보통 그 부분이 기억나지 않거나, 나도 흐릿하게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마치 뭔가가 지워버린 것처럼. 갤리는 눈을 감고 있으려고 노력하며 베개를 고쳐 벴다. 그러다 문득 눈이 떠 졌다. 뭔가 뉴트에 관해서 걸리는 게 있었다. -그리고 아까는 그토록이나 떠오르지 않았던 것들이, 잊어버린 것조차도 잊었던 것들이 그림 그려지듯 눈 앞에 떠올랐다.

뉴트는- 노크를 했다. 뉴트는- 자리에 털썩 소리가 나게 주저 앉았다. -그리고 토마스는 뉴트와 손이 부딪혔다. 자신의 뒤에 서 있던 뉴트는 감각하지 못한 것 같았지만, 제 손도 무엇도 없이 뉴트의 손만 덩그러니 있던 자리를 스치고, 토마스는 부딪혀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설사 자신만 들은 것이라고는 해도. 그럴 리가 없는데도. 그래서 지금까지 뉴트도 시도하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던 것이었음에도. -뭔가가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파악 할 수 있는 사람은 갤리 뿐이었다. 알아내야 했다. 그리고 이왕이면, 원인도. 갤리는 하루 빨리 병원에 복귀할 수 있기를 소망했다. 이제 일주일 남짓이 남아 있었다. 그 전 일주일과는 대조적일 정도로 잠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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