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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 등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지식이 일천합니다. 혹시 오류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캐붕이 심합니다. 

*이어지네요...

*2016년 글 백업입니다

 

뉴트는 말을 길게 뺐다. 어- 말을 돌리려는 의도가 너무 단박에 읽혔다. 한동안 다른 사람과 말을 많이 하지 못해서일까, 천성일까. 갤리는 뉴트를 노려보다가 다시 한 번 핸드폰을 켜 시계를 보았다. 시간이 오래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숫자는 똑같았다. 순식간에 피곤해졌다. 갤리는 길게 숨을 뱉으며 목을 한 바퀴 돌려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뉴트의 눈이 동그래졌다.

"가게?"

"얼마 안 있어서 근무할 시간이니까."

뉴트가 둥둥 떠서 따라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냥', '어쩌다 보니'하는 대답이 바로 튀어 나오지 않는다는 건, 이유는 있지만 말하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다. 아니면, 그냥이라고 말하면 이 쪽이 상처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던지, 그 외에도 이유는 무궁무진 할 수 있지만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억지로 말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신체적인 증상하고 연관이 있다면 모를까- 갤리의 발이 문득 멈췄다. 억, 하고 뒤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났다.

"뭐야 왜 갑자기 멈춰?"

"-뭔가 잠깐."

헛생각을 해서. 갤리는 다시 앞으로 한 걸음씩 걸어나갔다. 영혼이 자기 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순식간에 다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좀 전에 뉴트를 보았으니 많이 털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금세 또 다른 일이 튀어나온다. 갤리는 모퉁이를 돌며 옆에 둥둥 떠서 따라오는 뉴트를 흘끗 보았다. 뉴트는 놀랐다며 조금 투덜거리고 있었다.

"많이 놀랐냐?"

"부딪히는 줄 알았어."

부딪칠 리도 없는데. 갤리는 입속으로 말을 삼켰다. 뉴트 또한 알고 있는 사실이므로. 머릿속으로 계산할 게 하나 더 떠올랐다. 손이 닿았다던 토마스가 다시 한 번 떠올랐다가 사그라들었다.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가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할까.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성공 확률도 실패 확률도 모르고 추측을 해 나가자니 머리가 아픈 것 같았다. 갤리는 미간을 꾹꾹 눌렀다. 수술을 해야 하면 외과와 연계해야 하는데 설득해야 할 걸 생각하니 답이 보이지 않았다. 약물 만으로 치료할 수 있을까? 어떻게? 낫게 해 줄 수 있다는 말로 희망고문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러나 분명히 뭔가가 변하고 있었고, 그게 치료에 관련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말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누구에게. 또 무엇을, 어디까지.

뉴트가 이틀 간 보고 들은 것을 종알거리는 사이 어느새 응급실에 거의 다 와 있었다.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없어서 말이 탁구처럼 오갈 수 있었지만 사람들이 많은 곳은 또 다르다. 갤리가 눈치를 주지 않았는데도 뉴트의 말은 조금씩 줄어들다 끝내는 사라졌다. 갤리는 어깨를 으쓱 움직이고 고개를 몇 번 까닥이고는 문을 열었다.

응급실은 항상 바쁘다. 낮이고 밤이고 평일이고 주말이고 가릴 것 없이 24시간 대기 체제고, 언제나 비상이다. 갤리가 인수인계를 받기 무섭게 이런 저런 환자들이 왔다. 그저 부산하게 돌아다니는 것을 지켜보는 편이었던 뉴트는-지금도 지켜보고만 있기는 하지만-전체를 관망하는 것보다 바쁘게 움직이는 갤리를 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만 보고 있자-물론 다른 의사와 간호사들 또한 그랬지만-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말이 좀 더 잘 이해되기 시작했다. 갤리가 흘리거나 떨어트리는 것은 거의 없었다. 다른 의사와 간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연락하고, 환자의 말을 듣고, 검사하고, 입원 시키고, 보호자와 대화를 나누고. 챙길 것이 많았다. 그리고 갤리는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뉴트는 손으로 턱을 괴었다. 저래서야 내가 말을 걸어도 들리지도 않겠네. 사람이 많은 곳이니 대화는 사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입이 간지러운 기분이었다.

뉴트는 문득, 조급해졌다. 며칠 간 시달렸던 생각이 떠오르려고 했다. 갤리가, 의사 선생님이, 자신을 못 보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갤리는 일주일 정도 병원에 들리지 않았다. 민호라는 의사가 한 말이 그랬다. 일주일 후에나 오라고. 그 때까지 병원에 오고 싶을 리가 없었다. 아무 데나 아무렇게나 둥둥 떠다니다, 문득, 그게 다 거짓말이었으면 어떻게 해야할지 뉴트는 걱정이 되었다. 갤리만 자신을 보는 것도 이상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이 괜찮게 생각했던 담당의가 자신을 본다니, 이상한 일이다. 어쩌다 보게 되었더라? 사고를 당해서. 그럼 그 흔적이 지워지면 자신을 보지 못하게 되는 걸까? 덜컥 겁이 났다. 갤리가 온다는 날에는 병실에 틀어박히고, 회진을 도는 시간에는 일부러 떠돌았다. 합리화는 어렵지 않으니까. 직면하는 것 보다는 나으니까. 어느 누구랑도 이야기 할 수 없는 때로 돌아갈 뿐인데, 그게 사무치게 무서웠다. 그러다 저녁에, 퇴근 하는 거라면 몰래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뉴트는 외래 병동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갤리가 뉴트를 불렀다. 뉴트는 앞뒤 재지 못하고, 뛰쳐 나가 버렸다. 갤리는, 그 때에도, 자신을 분명히 보았다. 다시금 되새겼지만 표면으로 떠오른 의심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지금은 자신을 볼 수 있을까? 내 말은 지금도 들리나?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대화도 나누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초조함이 더했다. 분명히, 이상하고 촛불마냥 연약하기 짝이 없는 의심인데도 꺼버릴 수가 없었다. 뉴트는 초조함을 달래기 위해 자세를 바꾸었다. 갤리는 이제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진료하고 있었다. 오른쪽 아랫배를 누르자 환자가 아프다는 소리를 했다. 갤리는 보호자에게 혈액 검사를 해 보자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옆에 놓아둔 차트에서 펜이 굴러 떨어져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갤리는 차트에 무언가를 기록하려 하다 곧 펜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낭패 본 얼굴을 했다. 침대 밑으로 고개를 숙이고도 찾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뉴트는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 섰다.

"바퀴."

"-"

"바퀴 옆에."

갤리는 몇 번 눈을 깜박이곤 눈을 바퀴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자신이 찾았다는 양 펜을 주워들었다. 이렇다 할 대꾸도 무엇도 없어서 뉴트는 그게 자신의 말을 듣고 주운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갤리가 발견한 것인지 구분 할 수 없었다. 아직,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이 맞겠지. 초조함이 목구멍까지 치받아 올라왔다. -그 순간에 갤리와 눈이 마주쳤다고 느꼈다. 갤리는 잠시 뻐끔거리는 것처럼 입을 떼었다가, 다물었다.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에게 뭔가 말을 한 것 같았다. 뉴트는 눈을 몇 번 깜박였다. 얼떨떨한 느낌이 들었다.

필기를 하고 간호사에게 이야기를 한 후에 갤리는 손을 닦고 오겠다며 응급실 한 구석에 있는 세면대로 갔다. 비누로 손을 닦은 후에 물기를 털고 손 소독제까지 꼼꼼하게 발랐다. 뒤를 돌자 당연하다는 것처럼 뉴트가 떠 있었다.

"화장실은 따라오지 마라."

"안 따라 가."

손 씻는 데 있는 거 아니까 따라왔지. 뉴트가 투덜거리는 소리를 듣고서 갤리는 조금 짖궂은 웃음을 지었다. 기껏해야 판넬 하나, 커튼 한 장으로 분리해 둔 구역이라 많은 말을 나눌 수는 없지만 몇 마디 나눈 것도 말이라고 뉴트는 아까보다 약간 더 개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뉴트의 표정은 시시각각 나빠졌다. 혈색까지야 체크할 수 없지만 표정이 점차 이상해지는 것을 보아 기분이 별로 좋지 못한 모양이었다. 손을 닦아야 하는 것도 있지만, 그걸 물으려고 일부러 이쪽으로 나왔더니 표정이 한결 나아진 게 꽤나 다행스러웠다. 평소와는 다르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요하는 환자도 있고, 오늘 당직은 꽤나 일이 많았다. 자기 일인 것을 어쩌겠냐만. 갤리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뼈마디에서 뚜둑, 뚜둑, 하고 소리가 났다. 많이 움직인 것 같은데도 어째 영 상태가 안 좋았다. 갤리는 손 소독제가 덜 마른 손등 구석을 괜히 문질렀다.

"그런데 아까 뭐라고 한 거야?"

"어? 뭘?"

내가 얘한테 뭐라고 했었나? 갤리가 영문을 몰라하자 뉴트가 조급하게 되물었다.

"펜 주웠을 때."

"고맙다고 한 거?"

사람하고 오래 대화하지 못한 탓인가, 아니면 자신의 말하는 모양새가 이상했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데 뉴트의 얼굴이 점차 밝아지다 어느 순간 꽃처럼 피었다. 갤리는 환하게 웃는 뉴트를 잠시 잠깐 떨떠름하게 바라보았다. 곧 갤리를 찾는 소리가 나서 세면대는 다시 빈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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