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 등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지식이 일천합니다. 혹시 오류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주 약간 수정했습니다.

*캐붕이 심합니다. 

*이어지네요...

*2016년 글 백업입니다

 

시각은 자정을 넘어 해가 뜰 새벽을 향해 갔다. 어둠이 가장 깊은 시간이면 그래도 한 숨 돌릴 정도의 틈 정도는 나기 마련이었다. 갤리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를 벽에 기대 두고 팔짱을 끼고 앉았다. 응급실을 떠돌고 있으면 가끔 보는 자세였다. 갤리가 눈을 감고 있지 않다는 차이 정도만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다 갤리였으려나. 자세는 기억에 남았지만 사람은 남아있지 않았다. 평소에는 그냥 넘겼지만 깨닫고 보니 기묘한 공백이었다. 뉴트는 땅에 발을 붙이는 척 움직였다. 감각도 없는데 땅을 걷는 척 하는 것은 언제나 이상했다.

많이 피곤해?”

퇴근하고 자야지.”

억양이 미묘해서 대답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혼잣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또 그랬다. 꼬박 근무를 했으니 또 하루 하고도 반 정도는 못 볼 것이었다. 그 이후에도 한동안은 낮 근무일 테고, 내내 바쁠 것이었다. 뉴트는 조금 허탈해졌다. 그동안은 정말 한가했던 거였구나. 바쁘게 일하고 있구나. 얘기하기 어렵구나. 새삼 다가오는 깨달음에 뉴트는 갤리가 앉은 의자 옆 바닥에 주저앉는 모양새를 했다. 피곤하다는 게 어떤 거였더라. 졸리다는 건 또 어떤 것이었더라. 소록소록 몰려와 안온하게 감싸는 잠은, 어느 순간에 눈꺼풀을 짓누르는 피로는 또 어떤 것이었더라. 육신을 곱씹는 동안 뉴트는 천천히 다리를 모았다. 아무런 촉감도 없지만 등을 기대고 있자니 평범해진 느낌이 들었다.

환자가 줄어든 응급실은 아까보다 훨씬 정적이었다. 다들 잠시 쉬고 있느라 오가는 사람도 적었고, 이렇다 할 기계음도 없었다. 갤리는 멍하니 응급실 문을 바라보다 문득 고개를 돌렸다. 뉴트는 눈을 약간 내리깔고 무릎을 끌어안고는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순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것이겠지만, 갤리는 그 멍한 눈동자가 좀 불안하다고 느꼈다. 아마도 뉴트여서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갤리의 머리가 빠르게 추측했다. 갤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양손을 깍지 끼고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의도적으로 시선을 떼려는 목적이 없진 않았지만, 어깨나 팔다리가 움직일 때 마다 뚜둑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뼈 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갤리는 반사적으로 생각했다. 땅기는 근육을 문지르며 찝찝해하고 있는데 뉴트가 문득 물었다.

선생님, 몇 살이지?”

.”

갤리는 말을 흐렸다. 그러고 보니 자기가 몇 살이더라. 항시 의식하고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바로 튀어나오지가 않았다. 어디 보자, 자기가 취직했을 때가 몇 살이었더라. 그 때부터 지난 시간이. 미간을 구기다가 갤리는 말을 돌렸다.

왜 그런 걸 물어보냐.”

내가 몇 살이지 싶어서.”

내 나이를 물어본 게 아니었나. 하긴 물어보는 것도 이상하긴 했다. 자기 나이를 물어보는 것도 만만치 않게 이상하긴 했지만. 갤리는 차트에 써 있던 글자를 찾기 위해 기억을 더듬었다.

“스물 아냐?”

정말로?”

뉴트의 반문은, 당연하지만,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첫 질문부터가 이상했기 때문에 갤리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너 입원한지..., 4년이랬으니까. 스물 아냐?”

열여섯에 입원 한 거 아닌가. 왜 네 나이를 나한테 물어보냐. 갤리는 작게 투덜거렸다. 뉴트는 갤리를 올려다보며 다시 한 번 물었다.

나 스물 같아?”

나이에 같은 게 어디있냐 그냥 그 나이인 거지.”

그리고 갤리는 한 마디 덧붙였다. 치아 구조를 말하는 거면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만. 치과에 알아봐주리? 뉴트는 푸스스 웃었다.

나 스무 살이구나.”

갤리는 조금 떨떠름하게 뉴트를 바라보았다. 선생님?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나서 갤리는 뒤를 돌아보았다. 인턴이 판넬 뒤에서 얼굴만 내밀고 있었다.

환자 왔어요? 대화하시는 소리가 나길래.”

, 아니.”

졸려서인지 인턴은 수긍하면서도 눈을 몇 번 깜박였다. 모르는 목소리가 난 것 같았는데. 인턴은 웅얼거리며 꾸벅 목례를 하고 다시 자리를 떴다. 갤리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갔다. 뉴트는 이제 다리를 뻗고 앉아있었다.

-

퇴근하기 직전까지 뉴트는 갤리의 주변에 둥둥 떠 있었다. 허리를 굽히고 자신을 굽어보듯이 떠 있는 모양새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가운을 두고 나가자니 병원 밖은 벌써 해가 뜬지 꽤 된 모양새였다. 갤리는 응급실을 벗어나 후문을 향해 천천히 올라갔다. 제 병실이 있는 건물 즈음에 이르자 뉴트는 움직임을 멈추고 다음에 보자며 손을 흔들었다. 갤리 또한 그렇게 했다. 그리고는 다시 후문을 향해 올라갔다. 후문 쯤 도착했을 때 갤리의 얼굴은 완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지난 4년간, 되새기지만 4년간 거의 아무런 변동도 없었던 뉴트의 상태가 최근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타인의 반응에만 한정하는 것이긴 했지만, 그동안 뉴트에 대해 주변이 보였던 반응은 기껏해야 괴담이었다. 거의 아무도 몰랐고, 아는 경로도 불확실했다. 본인도 아는 힘-김 서린 유리창에 글 쓰기-정도가 최선이었다. 물론 다음에 왔을 때 괴담에 대해서 좀 더 캐보아야 할 필요가 있긴 하겠지만. 그런데 자신의 부상 이후 근 2-3주 사이에 주변의 반응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영향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었다.

갤리는 가설을 세웠다. 하나, 자신과 접촉을 통해 상황 자체가 나아지는 것. , 자신과 함께 있을 때 자신을 매개로 해서 더 나아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 두 번째 때문에 어느 쪽도 상황이 쉽지 않았다. 자신이 없을 때 무엇을 통해서 검증한단 말인가. 내과 쪽 병동이니 민호에게 부탁할 수도 없고, 자신의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부탁하기는 마땅치 않았다. 어느 쪽이던 나아지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리스크가 컸다. 아닐 경우의 절망감은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르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선택을 해야했다. 갤리는 눈이 뻑뻑한 것을 느꼈다. 피곤한 머리를 굴렸더니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토마스가 담당 편집자를 만나야 한다며 좀 이따 나가겠다는 말을 했다. 갤리는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늦은 점심을 먹기에 알맞은 시간이었다. 정신을 챙기기 위해 커피를 한 잔 마시고 갤리는 침대에 앉았다. 침대 머리맡을 더듬자 메모 패드와 펜 한 자루가 굴러 나왔다. 펜에서 잉크가 제대로 나오는 걸 확인한 갤리는 메모했다.

1. 상태가 점점 완화되고 있는 경우

2. 내가 있을 때만 의미 있는 경우

잠시 펜 뒤꽁무니로 턱을 몇 번 두드리고 나서 갤리는 덧붙였다.

이 모든 게 몸이 의식 있는 상태로 돌아가는 데에 의미가 있는가?

펜이 메모패드에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하고 몇 번 부딪쳐 소리만 내었다, 경험적으로 증명해야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영역은, 당연하지만 사람을 화나게 만들었다. 갤리는 펜을 내동댕이 치려다가 다시 메모패드와 함께 머리맡에 올려놓았다. 마른세수를 하고 있자니 정말로 뭔가가 나아지고 있는지부터가 의심이 들었다. 정말 나아지는 징후가 맞기는 한 건지 한참 곱씹던 갤리는 그런 징후가 있었는지부터 의심하기 시작했다. 감각의 착각은 꽤나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으니까. 더위에 시달렸던 토마스나, 피로가 뚝뚝 떨어질 것 같던 인턴도. -확인 해 봐야겠다. 갤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고 느꼈다. 나아갈 길이 너무나 까마득했다. 이렇게 걱정하는 걸 걔가 알지 모르겠네. 갤리는 속으로 좀 투덜거리며 베개를 고쳐 베었다. 하긴, 알아 달라고 하는 일도 아니었으니까. 갤리는 핸드폰 화면을 켰다. 시각을 보다 갤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장도 보아야 할 것이고, 다음날의 출근을 위한 대비도 해야 했다. 할 일은 많았다. 뭐든 하다 보면 다른 것도 떠오르겠지. 갤리는 얕은 한숨을 쉬며 냉장고를 열었다.

물과 약간의 우유, 시들시들한 야채 몇 가지, 계란. 갤리는 찬장에서 후라이팬을 꺼냈다. 그럭저럭 오믈렛 비슷한 걸 하나 완성하고 입에 대충 집어넣었다. 점심인데 또 도전하고 있으려나. 언제쯤 돌아가게 해 줄 수 있을까. 식사는 아예 못하는 걸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갤리는 접시를 싱크대에 넣고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했다. 점심 시간 끝나고 나서는 뭘 하지? 지금 또 나가서 돌아다니고 있으려나? 갤리는 수건에 얼굴을 묻고서 푹 한숨을 쉬었다. 상태가 좋지 못했다. 머릿속에 둥둥 떠도는 게 치워지지 않아서 갤리는 수건에서 얼굴을 한참이나 들지 못했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