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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 등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지식이 일천합니다. 혹시 오류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캐붕이 심합니다. 

*이어지네요...

*2016년 글 백업입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역으로 질문해 보라는 말이 나오니 갤리는 조금 망설이게 되었다. 질문을 할까 말까의 망설임이 아니라 무슨 말을 해야할지의 망설임이었기 때문에, 갤리는 언어를 포기하고 비언어적인 부분- 바디 랭귀지로 나가기로 했다. 갤리가 뻗은 손을 뉴트는 잠시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 왜 싫다는데?"

"아까도 실패했잖아."

답이 생각보다도 너무 순식간에 튀어나와서 갤리는 벙 찌고 말았다. 표정의 수습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당황은 그리 쉽게 가시지 않았다. 갤리는 결국 되물을 수 밖에 없었다.

"뭐?"

"아까도 실패 했잖아. 비슷하게."

뉴트가 고개를 들어 갤리를 바라보았다. 아까보다 침잠하고, 침울한 표정이었다. 뉴트의 표정이 항상 그리 밝은 편은 아니었지만, 저렇게 우울한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갤리는 그래서 마음 속에 갑작스레 당황이 한 스푼 더 들이부어진 것만 같은 상태가 되었고, 그 당황은 얼굴로도 고스란히 흘러 넘쳤다. 표정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갤리를 보면서도 뉴트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말하기는커녕, 표정을 바꿀 기력조차 없는 것인지 그대로 시선을 다시 내리 깔았을 뿐이었다. 맞추던 눈이 떨어지자 갤리는 그제야 조금 정신을 정돈할 수 있었다. 갤리는 뉴트의 말을 되새기고, 대답을 내놓았다.

"비슷하지만, 이번에는 다르지."

"그리고 실패할 확률은?"

아까랑 달라? 갤리는 확답을 줄 수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뭔가가 변해야 했고, 그걸 위해 뭐라도 해야했다. 걸릴 수 있는 것은 뭐든 해보아야했다. 갤리의 생각은 그랬다. 갤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뉴트가 고개를 돌려 제 몸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나는."

"뉴트."

"나는 실패하고 싶지 않아."

뉴트는 이불에 고개를 묻었다. 아니, 그런 감각은 들지 않았다. 이불에 고개를 파묻으면 무슨 기분이 들었더라.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든 부딪히면 아프다고 말하고, 끙끙 이상한 소리를 내고, 침대 위에 누워 있을 수 있다. 그런 것처럼 보이는 자신과는 달리. 돌아가고 싶었다. 다시 그렇게 되고 싶었지만.

"매일 세 번 씩 내 몸을 보면서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도전하고 싶지 않아. 기대하고 싶지도 않아. 뉴트의 목소리는 또렷했지만, 대신 그만큼 잠겨 있었다. 조타되지 않은 말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고통스럽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도전하고 싶지도 기대하고 싶지도 않다는 말일까. 갤리는 불쑥 반감이 들었지만, 그 반감을 정리할 수는 없었다.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속에서 시간이 지나고 뉴트가 고개를 들었다.

"돌아가 선생님."

"...뉴트."

어색하게 부르자 뉴트가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돌아가 선생님, 퇴근 시간이잖아. 뉴트는 더 듣지 않겠다는 듯이 천장으로 곧 사라졌다. 갤리는 길게 한숨을 뱉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마른 세수를 하고 나자 호흡기로 숨을 쉬고 있는 뉴트의 몸이 보였다. 다시금 한숨이 절로 나왔다.

-

다시 한 번 정리하면, 갤리의 집은 병원과 가까웠고, 갤리는 토마스와 집을 같이 쓰고 있었다. 그리고 민호가 근무하는 병원은 갤리와 같다. 그리고 셋은 아주 절친하다. 여기에서 셋이 모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결론이 도출 된다. 그렇다고 해서 집에 왔는데 술상이 차려져 있는 건 누구라도 당황할 일이기는 하다.

"왔냐?"

"...네 집이냐?"

캔맥주를 들고 인사하는 민호를 보고 대뜸 시비를 걸자 토마스가 소리내어 웃었다. 민호는 별 신경도 쓰지 않고 맥주를 마저 들이켰다. 저녁은 대강 때웠는지 큼직하지만 다 식은 피자 두세 조각이 판 째로 테이블 위에 얹혀져 있었다. 갤리는 소파 구석에 가방을 버리다시피 내려두고 피자집에서 같이 배달해 왔을 것이 분명한 물티슈로 손을 문지른 다음 피자를 베어물었다. 음식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은 허기는 거의 포악한 수준이었고, 다른 둘은 맥주를 마시며 갤리의 식사를 아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피자판이 비워지고 콜라를-다음날도 출근해야 했으므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한 잔 통째로 비우고 나자 토마스가 신기한 것을 보았다는 양 박수를 쳤다. 당연히 갤리가 눈을 흘겼지만 토마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최근 본 것 중에서 가장 열정적이었어."

"거울을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 네가 한 것 중에서."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은 없지만. 갤리는 다시 종이컵에 콜라를 따랐다. 토마스는 다시 소파에 등을 기대고선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 첨언했다.

"너 요새 정신 반쯤 빠져서 돌아다니잖아."

콜라를 들이키다 말고 사레가 들릴 뻔했다. 갤리는 뱉을 위기에 놓였던 콜라를 수습하고 대답했다.

"너 마감 친다고 정신 없는 줄 알았는데."

"어, 그건 그랬는데 너도 어지간히 이상했거든."

마감 끝나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생체 사이클이 영. 민호는 흥미롭게 둘의 대화를 구경했다. 시트콤 보는 기분인 걸까. 어쨌건 도와주지 않을 거라는 건 명백했기 때문에 갤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나 잠시 잠깐 고뇌했다. 그리고 그냥 손을 휘저으며 일축했다.

"골치 아픈 케이스가 생겨서."

민호가 갤리를 잠시 바라보았다가 억지로 눈을 떼었다. 뉴트 얘기인 게 짐작이 가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소파에 기대고 있던 등을 떼어서 테이블을 뒤져 리모콘으로 TV를 켰다. 토마스도 대화에서 흥미를 잃었는지 금세 TV로 화제를 돌렸다. 그거 재미 없다 딴 거 틀자. 채널은 휙휙 바뀌다 다큐멘터리 채널에까지 이르렀다. 앞으로 번호가 더 있기는 했지만 두 거주인이 그리 좋아하는 채널들은 아니었기에 토마스는 민호에게서 리모콘을 빼앗았고 화면은 고정되었다. 벌들이 꿀을 모아서 벌통으로 바쁘게 나르고 있었다.

흘러가는 화면을 보면서도 갤리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다른 전문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선례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건 설득 뿐이고. 스트레스를 받다 못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려 했다. 심지어 해결책조차 확실한 것도 아니고 가능성이니, 짜증이 심화되다 못해 폭발하려고 했다. 갤리는 깊은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해보니 세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얼굴이 텁텁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갤리는 화장실로 비칠비칠 걸어갔다. 대충 세수를 하고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니 잠이 쏟아져 내렸다. 기묘한 감각이었다. 그리고 익숙한 감각이었다. 마치, 마치 팔이 부러졌을 때, 그 때문에 약을 먹던 때, 그 때 처럼-

민호 이 자식 설마 내 피자에 약 탔나. 갤리의 의식은 거기서 툭 끊겼다.

-

갤리는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갤리? 야? 살아 있냐? 들어간다? 갤리는 들어오지 말라고 외쳤다가 제 쉰 목소리를 깨달았다. 헛기침을 몇 번 하자 목소리는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다. 멀쩡해. 그러고 나서야 바깥이 그나마 좀 조용해졌다. 갤리는 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깥에서 민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갤리, 너 지각이야. 갤리는 핸드폰을 열었다. 알람이 울리다 꺼진 흔적이 남아있었다. 갤리는 자리에서 소스라치게 놀라 튕기듯 일어났다.

꿈에 대해 떠올릴 수 있었던 건, 회진으로 뉴트의 병동에 들어갔을 때였다. 뉴트는 방에 없었다. 그러니까, 유령인 뉴트가 방에 없었다. 그리고 여전한 침묵 속에서 뉴트의 몸이 잠들어 있었다. 당장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모습이었다. 갤리는 뉴트의 몸이 깨어나는 것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기시감에 휩싸였고, 몇 번 눈을 깜박인 후에 거의 잊어버렸던 꿈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젠 거의 익숙한 꿈이었다. 뉴트가 눈을 뜨고, 선생님, 이라며 자신을 부르고. -그리고 자신에게 말을 건넸다. 갤리는 눈을 깜박였다. 점차 진전을 보이는 꿈이라니, 기록이라도 해 두었어야 했나 싶은 판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을 보며 말을 건다는 것만 간신히 알다가, 이제는 그게 들리고, 또렷하게 기억도 남는다. 갤리는 뉴트를 내려다 보았다.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는 얼굴은 눈을 뜰 줄 몰랐다. 갤리는 차트를 들고 있지 않은 손으로 마른 세수를 했다.

포기하지 말라니, 뉴트가 할 법한 말이 아닌데. 제 무의식은 저에게 무슨 장난질을 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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