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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 등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지식이 일천합니다. 혹시 오류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기는 특히 더 잘 모르겠네요. 이상하다면 알려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캐붕이 심합니다.
*이어지네요...
*2016년 글 백업입니다
갤리는 순식간에 표정을 수습하고 떨떠름한 얼굴로 민호를 바라보았다. 민호는 빨간 불이 언제 바뀌는지 건너편 신호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지나가는 김에 궁금했던 걸 물어보는 것 같기도 했다. 갤리는 조금 신중해질 필요를 느꼈다. 민호는 꽤 감이 좋은 축에 속했다. 지난 번에도-좀 심하게 티를 내기는 했지만-바로 CT를 찍은 전적도 있으니 말을 조심해야 했다. 갤리는 자연스러워 보였으면 좋겠다고 바라며 어깨를 한 번 으쓱 움직였다.
"그냥, 좀, 항상 못 깨어나는 환자니까. 신경이 쓰여서."
"흠."
민호는 갤리를 흘끗 바라보았다. 뭔가를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갤리는 갑자기 목이 탔다. 민호가 쯧, 하고 혀를 찼다.
"일 중독이냐? 거 작작 하지."
갤리는 어색하게 웃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는데 횡단보도의 불이 푸르게 바뀌었다. 둘 다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널찍하게 닦인 길은 차가 꽤 많은 편이었다. 평소에도 통행이 꽤 많은 편이어서 사람 말소리로 시끌시끌하던 곳인데 오늘은 더워서인지 차 소리만 요란했다. 그리고 그마저도 사람을 성질 나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오늘 불쾌지수가 얼마더라. 갤리는 아련하게 생각하다 그마저도 귀찮아져서 그냥 높은 편이겠지 하고 넘겼다. 아까까지만 해도 춥고 텁텁했던 에어컨 바람이 이렇게까지 그리워 질 줄이야. 그늘이 없는 곳을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날이 더워서인지 꽤나 힘들었다. 돌아갈 때에는 반드시 택시를 타야겠다고 갤리는 다짐했다.
왼손으로 카트를 밀며 오른손으로 물건을 집어 들 수 없으니 꽤나 불편했지만 그럭저럭 물건은 살 만 했다. 갤리가 야채 몇몇과 고기 약간을 카트에 담는 동안 잠시 사라졌던 민호는 얼마 안 있어서 6개들이 캔맥주를 사 왔다. 그리고 심각하게 통조림을 고르는 동안 와인 한 병을, 세제를 담는 동안 진과 토닉 워터를 집어 왔다. 갤리는 잠시 뭐라고 할 말을 고르다 그냥 생각을 필터 없이 뱉었다
"먹고 죽으려고?"
"아니, 집주인한테 선물로 가져가려고."
"...너 셋집 살았었나?"
"누구네 좀 들리려고 한다."
갤리는 굉장히 불안함을 느꼈다. 물론 자신이 모르는 다른 친구도 민호에게는 많을 터였지만 제가 알고 있는 바로 민호의 가장 친한 친구는 토마스였다. 당장 홈메이트로 토마스를 소개해 준 사람도 민호였다. 게다가 토마스는 꽤나 술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술은 가볍게 마시는 정도였지만 커피는 아주 달고 살기도 했고. 감 좋은 사람 둘이 모이는데 비밀이 있는 인간으로써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민호는 물에 희석해 먹는 액상 커피 2L짜리를 들고 왔다. 갤리는 이마를 짚었다.
-
"오, 휴지도 사왔네?"
"짐꾼이 생겨서."
"좋아. 잘했어."
"술 안 준다."
민호가 투덜거리자 토마스가 술도 사왔냐며 반색을 했다. 안 준다고 임마, 뭐 사왔는데 내놔 봐, 만담을 나누느라 아예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얼른 저녁 먹고 방 안에 처박혀야겠다. 보통은 생각을 못할 일이긴 하지만 긴장하고 있을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요리는 아예 둘에게 떠맡길 생각이었다. 어차피 왼손을 못 쓰기도 했으니까. 대충 냉장고에 음식을 정리해 두고서 갤리는 비틀비틀 방으로 들어갔다. 시계를 보니 나갔다 온 시간은 세 시간도 되지 않는데 이상할 정도로 피곤했다. 갤리는 점심 먹을 때까지 잠깐만 눈을 붙이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토마스가 점심 먹고 자라고 투덜거리는 소리가 배경음처럼 들렸지만 신경 쓸 수가 없었다.
"뭣 좀 물어보자."
"아 뭐야 또 취조 온 거였냐?"
너 그 습관 좀 버리라니까. 토마스는 투덜거리며 소파에 대강 늘어져 앉았다. 민호는 자리를 권하지도 않았는데 맞은편에 가볍게 앉았다.
"취조 아니라니까. 그냥 너 아는 것 좀 나누자는 거지."
"넌 임마 그냥 물어보는 분위기부터가 취조야. 뭐 물어보려고 하는데."
민호는 미간을 찌푸리고 6개 들이 캔맥주를 내밀었다. 토마스는 손끝으로 번들을 잡아 끌었다.
"니 룸메이트, 어제 좀 괜찮아 보여?"
"뭔 소리야 그게. 팔 아픈 거 말하는 거냐?"
"그런 거 말고, 좀 괜찮아 보이냐는 거지."
"뭐래."
토마스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약간 걸리는 게 있다는 양 뉘앙스를 풍겼다. 찜찜한 구석이 있는 표정을 하고 손끝으로 맥주캔을 두드리면서. 그러니까, 술을 더 내놓으라는 뜻이다. 아니면 뭔가 좀 다른 것이라도. 민호는 코로 깊은 숨을 쉬고 진과 토닉 워터를 넘겼다. 토마스는 잠시 일어나 둘을 냉장고에 넣어두고는 음- 하고 고민하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어제 좀 이상한 소리를 하긴 했지."
"무슨 얘기?"
"그보다 내가 더 알고 싶은데. 그 근처에서 무슨 일 있었냐?"
왼팔이 금 갔다는 얘기까지는 들었는데. 민호는 미간을 구겼다. 역으로 질문을 당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토마스의 성격을 나름 잘 안다고 민호는 자부했다-저렇게 이야기 할 수 없는 부분을 물으면 어찌되었던 조금 찝찝한 게 없지 않았다.
"그 쪽은 노 코멘트."
"아."
토마스가 머리를 헝클었다. 결국 그런 문제인가. 말은 취조라고는 했지만 결국에는 정보를 나누는 것에 가깝다. 그러나 갤리와 민호 둘 다 의사다 보니 원론적이거나 이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면 결국 환자의 이야기로 이어졌고 그럼 거기에서 대화는 끝날 수 밖에 없다. 환자가 관련되지 않은 상세한 일화라는 건 결국 없다시피 했으니까. 토마스는 흠, 하고 좀 찝찝한 소리를 흘렸다.
"갤리한테 허락 맡으면 얘기 할 수 있어?"
"그냥 대답이나 해 주지?"
대답을 회피했다. 토마스는 머리를 굴렸다. 일단 이걸로 갤리에게 물어보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허락을 받던지, 아니면 정말 자신이 알 수 없는 일로 끝나던지. 토마스가 한참 동안 대답을 머뭇거리자 민호는 한숨을 쉬며 와인을 꺼냈다. 마트에서도 쉽게 팔리는 것이니 그렇게 비싼 건 아니었지만 토마스가 좋아하는 브랜드 중 하나였다. 토마스는 와인을 거의 낚아채더니 슬슬 살폈다.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닌데."
"그건 내가 결정하고."
"그냥."
유체이탈에 대해 아는 게 있냐던데. 민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
점심은 샐러드와 고기를 넣은 스튜였다. 그래도 한 손으로 먹을 수 있는 걸로 배려를 해 준 모양이었다. 요리를 도운 민호가 제 실수로 소금이 많이 들어갔다며 좀 투덜거리긴 했지만 그럭저럭 먹을만한 식사였다. 빵을 뜯는 게 좀 귀찮긴 했지만. 내일부터는 샐러드 말고 샌드위치로 사다 먹을까. 갤리는 짤막하게 고민했다.
설거지는 토마스의 몫이었다. 손님에게 설거리를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고, 갤리는 손이 불편했으니까. 안 그래도 자다 깨서 비몽사몽인 상태였던 갤리는 입에 약을 털어 넣자 상태가 더 좋지 않아졌다. 갤리는 식탁에 코를 박고 옆에서 대충 앉아있는 민호에게 물었다.
"너 내 약에 수면제 넣었냐?"
"졸리니까 정신이 나갔나 보다?"
처방전은 어디로 읽었냐? 그건 그랬다. 갤리는 왜 이렇게 잠이 쏟아지는지를 고찰해 보려고 했지만 상추와 우유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답은 나오지 않았다. 정신이 들락날락하는 머리를 부여잡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 하고 민호가 입을 떼었다.
"너 다음 진료 보는 날 한 이틀 정도 땡기자."
"어? 왜?"
"상태 별로 안 좋은 거 같아서. 오늘도 왕진 나온 거야."
"뭐?"
이거 미친 놈 아냐. 일 중독이라고 신고해야 하나. 갤리가 슬금슬금 멀어지자 민호는 좀 얼굴을 찌푸렸다.
"네 증세가 좀 희한해서 그런다 왜."
"아 기껏해야 골절이잖아."
"그거 말고."
갤리는 뭐라고 말하려고 하다가 그만 두었다. 이걸로 논문이 나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갤리는 묘하게 서글퍼졌다. 다시 식탁에 코를 박으려고 하는데 토마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까 어제 제대로 못 물어봤는데 내가 뭐 조심해야 할 거 있어?"
"그냥 일반적인 거만 조심하면 되지 뭘."
"커피 술 담배 하지 말고 그런 거."
"방에서 담배도 못 피게 되다니."
토마스가 묘하게 서글퍼해서 민호는 고개를 저었다. 너 지난 번에 금연 프로그램 등록하더니 아직도 못끊었냐? 민호의 질문에 토마스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갤리는 그냥 다시 잠자리에 드는 게 좋지 않을까 본격적인 고민에 빠져들었다. 비록 얼마 가지 못해서 정말 잠들어 버리고 말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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