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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 등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지식이 일천합니다. 혹시 오류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캐붕이 심합니다

*이어질지도?

*2016년 글의 백업입니다

 

그 날 나의 인류가 멸망했다.

-고 뉴트는 일기장에 적었다. 당연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뉴트는 일기장을 불사르고 싶었다. 그러지 못하는 게 천추의 한이었다. 정작 그 일기장을 읽고 계시는 부모님들은 울먹거리며 오열하셨지만 그걸 보는 뉴트는 진짜로 죽고 싶은 기분에 시달렸다. 그걸 또 울며 불며 한 자 한 자 발음해서 읽어주시니 정말 죽을 노릇이었다. 뉴트는 마른 세수를 하려다 해도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고 창틀에 널부러졌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그래, 자신의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안색이 파리하고 감은 눈에 맺혀있는 속눈썹은 반짝반짝 빛나는 금색이었다. 하얀 베개 위에 흐트러진 금발은 얼마 전에 잘라 길이가 적당했고 입술은 바짝 말라있었다. 그리고 한참 약했다. 뉴트가 자신의 얼굴을 내려다보기 시작한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그 말은 저 상태에서 자의로는 움직이지 못한 게 벌써 몇 째라는 뜻이다.

태어난 지 20년이 조금-4는 엄연히 '조금'에 속하는 숫자다-못 되던 해, 뉴트는 난치병을 선고 받았다. 난치이지 불치는 아닌지라 당황하고 놀라는 주변 사람들과 달리 뉴트는 별 생각이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사춘기라서 그런 거다. 틀림 없이. 뉴트는 자기가 나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손을 잡고 우는 아버지도, 침대에 엎드려 망연자실하고 계시는 어머니도 왜 저리 호들갑을 떠시나 생각하며 수술을 하면 낫는다니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시라 말했다. 돈의 힘이 좋긴 좋았다. 뉴트는 어렵지 않게 입원을 하고, 수술길에 올랐다. 수술은 매우 순조로웠-다는 말을 들으며 뉴트는 눈을 떴다. 붕붕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아프던 몸이 정말 가볍고 상쾌하기까지 했다. 수술은 정말 신기하고 좋은 거라 생각하며 뉴트는 목소리가 들리는 부모님을 불렀다.

그러나 부모님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의사에게 언제쯤 당신들의 아들이 깨어날 지를 묻고 있었다. 뉴트는 몇 번이고 눈을 깜박이며 흐린 시야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몸을 일으키는데 아무도 반응을 하지 않았다. 뉴트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손을 내려다 보았다. 연결되어 있어야 할 링겔이 없었다. 뉴트는 당황했다. 그리고 자기 손 밑에 손이 하나 더 있다는 걸 깨달았다.그리고 자신이 그 손을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도.

뉴트는 처음에 그게 꽤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영혼 상태로 떠돌아다닌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자연스레 벽도 통과할 수 있고, 여기저기 몰래 돌아다닐 수도 있다. 그러나 채 한 시간도 가지 못해서 그건 쓸쓸하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로 바뀌었다. 어느 누구도 반응해주지 않고, 없는 사람 취급하며-실제로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모든 걸 통과해 버린다는 걸 깨달았을 때, 관용적인 의미로 뉴트는 소름이 돋았다. 그로부터 사흘 간, 뉴트는 제 몸에 다시 들어앉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몸은 마치 맞지 않는 옷처럼 제대로 걸쳐지지도 않았다. 눈을 아무리 오래 감았다 떠 보아도 몸은 여전히 누워있는 그대로였다.

안락사를 돌려 돌려 권하는 의사들에게 뇌파의 움직임을 이유로 들어 부모님은 단호하게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리고는 적어도 달에 한 번은 같이 와서 뉴트의 상태를 보고 가곤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조금의 시간이 흘렀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4는 엄연히 조금에 속하는 숫자다. 그 숫자를 세는 사이 병실은 약간 작은 곳으로 옮겨졌고,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 뉴트의 몸도 자랐다. 가끔 간호사들이 움직여줄 때 보니 그리 멀쩡한 건 아니지만, 여하간에. 거울을 볼 수 없으니 뉴트는 제 영혼도 그 모습과 같이 성장했는지 알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혹시 같지 못할까 봐 무섭기까지 했다. 회진을 돌 때 오는 의사가 뒤에 달고 있는 레지던트와 인턴이 몇 번 바뀌었다. 의사들은 하루에 두 번 자신을 보러 왔다. 그들이 차트에 기록하는 내용은 거의 다를 것이 없었다. 지독할 정도로.

부모는 오늘 장미 꽃다발을 뉴트의 머리맡에 꽂아두고 갔다. 성년의 날 기념이라 했던가. 가끔 생일이 있는 달이면 먹지는 못하지만 케이크도 사왔었다. 그럼 간호사들이나, 의사들은 제 나름으로 반응하곤 했다. 그냥 흘끗 보는 정도가 가장 많았고, 저래서 어떻게 의사가 되려고, 싶은 사람들은 아예 내놓고 돈이 썩어 돈다며 비웃기도 했다.-물론 그런 사람들에게는 뉴트가 복수를 했다. 아주 강하게 생각하면, 유리창에 김 서린 데에 글씨 정도는 쓸 수 있었다. 그런 의사들이 밤 당직을 선 날에 몇 글자를 적으면 아주 혼비백산을 했다-그리고, 아주 가끔. 꽃병을 가져 와서 거기에 꽃다발을 꽂아주는 사람이 있었다. 이번 의사가 그랬다.

덩치도 크고 심술 맞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섬세한 것 같았다. 쪽잠을 자며 눈 밑이 거뭇거뭇해져가는 와중에 그런 걸 신경 쓸 정신이 있는 걸 보면 너무 바빠서 정신이 나간 걸 지도 모른다고 뉴트는 조금 비웃기도 했다. 그러나 장미 옆에 안개꽃 무더기조차 죽지 않고 열어둔 창문에 흔들리는 걸 볼 때면 그 고통스러운 친절이 역시 자신에게 간절하다는 걸 뉴트는 절실하게 깨닫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뉴트는 그날도 할 일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휴게실에 틀어 놓은 소프 오페라를 대강 지켜보기도 하고, 링거 걸이를 끌고 산책하듯 운동하는 노인들의 뒤를 따라다니기도 했다. 정 지겨워지면 로비까지 내려가 사람들을 지켜보거나 응급실에 가서 끙끙 앓는 사람들을 보았다. 혹시 여기 있으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이 나오거나, 사신이라도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아주 빌어먹기 그지 없는 상상을 하면서. 그럴 수록 일부러 더 크게 떠벌려 이야기 하곤 했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것도 이유였지만, 말하는 법을 잊어버릴까 봐서도 있었다. 가끔, 뉴트는 제 입술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윗입술과 아래 입술이 서로 붙어버린 게 아닌가 싶어서. 여하간, 그 날도 뉴트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응급실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떠 있었다.

응급실은 사람이 거의 항상 많았다. 급한 수술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일단은 입원 판정을 받거나 간단한 치료만 하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사람들이 한참 들락날락하며 의사들이 진료하는 걸 보고 있자면 대강 의사들이 갈겨쓰는 걸 알 것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쟤는 맹장염, 쟤는 약만 받고 돌아 갈 거 같은데, 오 이 사람 독한 진통제 쓰네. 물론 어디까지나 감으로 찍는 거지, 뭐가 어떻게 독한 거고 왜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인지까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러다 뉴트는 차에 치인 환자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정신을 잃었다고 구급대원이 다급하게 말하는 것이 들렸다. 의사들이 달려가는 것을 뉴트는 시선만 옮기다, 문득 그 환자의 얼굴이 익숙하다고 느꼈다. 아주 이상한 일이었다. 근 4년간 뉴트가 마주한 얼굴이라고는 부모님을 제외하면 의사와 환자들 뿐이었다. 저렇게 신체 건강할 사람은 의사나 간호사 뿐이었는데- 아.

뉴트는 그 얼굴이 왜 익숙한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담당하는 의사였다. 최근에 놓인 그 꽃병의 당사자였다. 평소 매일 보던 얼굴이니 익숙할 밖에. 코피를 흘리며 누워 있는 남자를 보며 뉴트는 흠, 하고 소리를 길게 빼었다.

"의사면 몸 관리 다 잘 하는 줄 알았더니 그것 도 아닌가 보네."

다른 응급실 당직의가 뉴트의 몸을 뚫고 지나갔다. 자주 있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과히 좋은 것도 아니라 뉴트는 제대로 된 언어가 되지 못하는 소리를 빽 내질렀다. 괜히 소름 돋은 척 양 팔을 엇갈려 양손으로 팔뚝을 문지르는데 다른 당직의가 또다시 뉴트를 뚫고 의사에게 다가갔다. 야, 야 갤리 괜찮아? 야! 담당의가 끙끙 앓으며 눈을 뜨고 있었다. 이름이 갤리인 모양이었다. 뉴트는 턱을 괴고 다리를 꼬아서 공중에 앉았다. 그리고는 손뼉을 쳐 주었다. 아아주 축하해 개똥밭을 굴러도 즐겁다는 이승으로 돌아간 걸 환영하고, 다시 열심히 구르시길! 말을 재재재 쏟아놓는데 담당의가 서서히 눈을 떴다. 

"시끄러워..."

"정신이 좀 드냐? 갤리? 갤리?"

"아 거 이름 닳겠네 작작 좀 부르지!"

담당의는 고개를 몇 번 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왼손으로 몸을 떠받치려다 윽, 하는 소리와 함께 무너진 걸로 보아 왼팔이 성치 않은 모양이었다.

"아파? 왼팔? 문제 있어?"

"야, 나 머리 울려, 조용히 좀 해."

친구처럼 보이는 의사는 좀 띠꺼운 기분이 드는 것 같았지만 어쨌건 입을 다물어 주었다. 뉴트는 담당의의 왼쪽으로 돌아가서 드러나있는 왼팔을 보았다. 엎드려서 손으로 턱을 괴는 자세를 취하자 허리가 반쯤 커튼을 뚫고 반대편으로 넘어갔지만 뉴트는 아무렇지 않게 대대 떠들었다.

"야 이거 완전 부러졌다. 여기서 내가 내내 지켜본 바에 의하면 완전 작살이 났네. 축하해요 의사 양반! 의사면서 자리 보전하고 누워서 제대로 병원 밥 먹겠네."

"아 시끄럽다니까!"

문득 뉴트는 뚝 말을 멈추었다. 설마, 타이밍 문제겠지.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무도 없다. 단 한 사람도.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소리 지르냐? 환청 들려?"

친구 의사가 말을 걸자 담당의는 그제야 정신이 좀 나는지 눈을 몇 번 깜박였다. 뉴트는 공중에 동동 떠서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다. 담당의는 자신의 오른쪽을 한 번 보고 민호, 하고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왼 쪽을 보곤- 그리고 뉴트와 눈이 마주쳤다.

"...뉘신지?"

민호라고 불린 담당 의사가 잠시 상황을 지켜보다, 간호사를 불렀다. 환자가 환각 상태입니다, 검사 언제 가능한지 좀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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