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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 등과 관련이 없습니다.
*양궁에 관해 지식이 없는 편입니다. 이상한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식당까지 가는 길은 대학가에 맞지 않게 한적하고 호젓했다. 꽤 깊은 강이 하나 흐르고 있어서인지 모양이 제멋대로인 돌을 깔아놓은 보도 양 옆으로 낮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사람이 별로 없는 노천 카페 몇몇이 슬슬 정리할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산들 바람이 가볍게 불고 있어서 크게 더위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뉴트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서 근처에 괜찮은 식당이 있는지 기억을 되새겨보았지만 썩 괜찮은 집이 떠오르지 않았다.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던 기억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정확히 말하면 요리사가가 싸 준 것을 들고 나왔었다-그 원인이 입맛에 맞지 않는 식당들 때문이었던 기억까지 있었다. 뉴트는 미간을 구겼다. 적당히 대접할만한 데가 몇 군데 떠오르지 않았고, 일단 거기까지 가는 것도 꽤나 문제였다. 게다가 가격도 상식적인 선에서는 만만치 않았다. 심지어 갤리는 꾸준히 식단 관리를 받아야 하는 운동선수였다. 뉴트의 얼굴이 빠르게 일그러지는 찰나 갤리가 문득 입을 열었다.
"저기."
"네?"
"자주 봤는데, 저기는 뭐 하는 데에요?"
갤리의 손 끝에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패스트푸드 점이 걸려있었다. 뉴트는 표정관리를 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자신도 어렵지 않게 알고 있는 장소였다. 갤리는 알 수 없는 면이 있었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난 사람처럼. 일정 시점 이전의 기록이 깨끗이 비어있던 조사 보고서가 떠올랐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아주 짧은 시간을 고민한 뉴트는 입을 열었다.
"식당이에요."
"똑같은 식당이 여기저기 있는 건가요?"
"네. 감자 튀김이나, 햄버거 같은 거."
"싫어하시는 음식인가요?"
뉴트는 그냥 표정관리를 포기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싫어하지는 않지만, 몸에 안 좋은 음식인데 드셔도 괜찮으시겠어요?"
"가끔 한 끼 정도는 코치님도 뭐라고 하지 않을 거 같아요."
뉴트는 한숨을 내쉬고 숨을 골랐다. 그리고 패스트푸드 점을 향해 다가가는 갤리를 잡아 끌었다.
"같은 메뉴를 더 괜찮게 하는 집이 있어요. 거기로 가요."
-
뉴트의 입맛에서 그나마 나은 축에 속했던 수제 버거집은 자연석이 보도블록으로 변하는 자락 구석에 위치해 있었다. 그마저도 1층이 아닌 2층에 크기도 작은 지라 아는 사람만 아는 집인데다, 대부분은 테이크 아웃을 해갔다. 패스트푸드 점조차 낯설던 갤리에게는 그야말로 신기한 장소가 아닐 수 없었다. 요리를 직접 가져오는 건 익숙했지만, 트레이에 담긴 음식은 그리 가깝지 않은 것들이었다. 조그만 종지에 담긴 케찹 소스나 튀겨서 뜨겁게 나오는 감자, 빵 사이에 고기와 야채를 끼우고 새콤한 소스를 듬뿍 얹은 음식은 갤리의 혀를 즐겁게 해 주었다. 뉴트는 좋아해서 다행이라고 조용히 웃었다. 진짜 오렌지를 짠 것 같지 않은 주스조차도 꽤나 마음에 들어했다. 한 끼를 대충 해결하고 밖으로 나오자 해는 저문 지 오래였다. 갤리는 대단히 즐거워하며 상당히 들뜬 것을 감추지 못했다.
지하철 역과는 반대 방향으로 왔기 때문에 둘은 다시 길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노천 카페들은 이제 밖에 내어 놓았던 의자와 테이블들을 정리하고 안쪽에만 불을 켜 두고 있었다. 가로등만 몇 개씩 켜진 거리는 바람이 물 위에 타서 흐르는 소리 정도만 간간히 들려왔다. 둘 다 갑작스레 만나게 된 지라 이렇다하게 할 만한 대화 거리는 없었다. 둘 다 단조로운 하루를 보냈고, 대화해서는 안 될 법한 일을 하나 가득 가지고 있는 쪽도 있었으니까. 그 외의 대화 거리는 이미 식사를 하며 소진한 지 한참이었기 때문에 둘은 반 정도는 말 없이 걸었다. 그러나 그 상황은 어색하지도, 이상하지도 않았다. 천천히 온건하게 침잠한 분위기도 꽤나 나쁘지 않았다.
앞에서 노천 카페의 주인이 테이블을 굴리고 있어서 둘은 잠시 발을 멈추어야 했다. 노천으로만 운영하는 카페인지 가게 안은 불이 꺼져서 어두웠다. 갤리는 문득 그러고 보니 카페에 간 지도 꽤 되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갤리는 카페에 갈 일이 잘 없었다. 누굴 만날 일도 없고, 음료수는 병 음료를 더 선호했다. 갤리가 카페에 갈 때는 뉴트를 만나야 할 때 정도였다. 그리고, 이전에 마지막으로 뉴트를 만났던 것은.
"뉴트."
"네?"
"지난 번에, 저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했죠."
뭐에요? 뉴트의 표정이 아주 딱딱하게 굳었다. 근육이 돌이 된 것처럼 움직임이 멈춰서 갤리는 기다려야했다. 뉴트가 제일 먼저 움직인 것은 표정도 무엇도 아닌 발이었다. 뉴트는 아주 천천히 앞을 향해 걸었다.
"별 거 아니었어요."
갤리는 뭐라고 더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별 거 아닌 표정이 아니었고, 별 거 아니라고 하기엔 뉴트는 그 때 다급해 보였다. 꼭 필요한 것처럼. 갤리가 쫓아가서 입을 떼려는 순간 뉴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소문을 들어서요."
갤리는 말문이 막혔다. 보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던 뉴트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전면에 내보이고 있었다. 뉴트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신경 쓰지 않고, 아무래도 상관 없고, 잘 묻어두겠다고 생각했는데. 파헤쳐지자마자 말이 저도 모르게 쏟아져 나왔다. 겪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숨이 얕아진 기분이 들어서 뉴트는 혼란스러웠다. 입술이 말랐다.
"갤리 씨한테는."
"...네."
"네임이 없다고."
엎지른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뉴트는 눈을 꾹 감았다가 다시 떴다. 갤리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대답이 두려웠다. 여러가지 가정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꾹 쥔 핸드폰 너머에서 경호진이 분주한 것이 들리는 것 같았다. 뉴트는 최대한 태연한 척하며 어깨를 으쓱 움직였다.
"헛소문이죠, 저도 알아요."
"...그."
"왜 이런 걸 물어보려고 했는지 저도 참."
얼른 가요, 전철 놓치겠어요. 뉴트는 몇 발짝 앞선 점을 이용해 앞으로 나아갔다. 뭔가가 뒤통수를 잡아 당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 노력했다.
"뉴트."
그러나 갤리가 부르자, 불러서, 뉴트는 뒤돌아 볼 수 밖에 없었다. 갤리는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시 입을 열었다가 다물기를 반복했다. 머리 위의 가로등에 벌레가 꼬여서 유리에 부딪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갤리는 크게 숨을 들이 쉬었다가, 다시 내쉬었다.
"저는, 저는요."
"...네."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갤리는 말을 고르듯이 몇 번이고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전에도 말했다니, 무엇을? 뉴트는 눈을 깜박였다. 수많은 대화, 분석 보고서, 많은 것이 머릿속에서 페이지를 넘겼다. 갤리는 입을 가렸다가 손을 늘어뜨렸다.
"여기 출신이 아니에요."
뉴트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게 지금 이 대화와 무슨 상관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갤리는 또 잠시 머뭇거렸다. 그래서, 그리고, 연결하는 의미없는 말들을 갤리는 몇 번이나 고르다가, 그래서,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걸 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뉴트는 갤리의 말에서 뭔가 어폐를 느꼈다. 남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사람은 없다. 그 사이에 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찾고, 헤메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그리고.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면. 뉴트는 그제야 이 대화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이 이야기가 얼마나 노골적이고 직접적인지도 알 수 있었다. 뉴트는 슬프고, 조금 많이 기쁘고, 뭔가가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리가 무거웠다. 몸을 돌려서 몇 발짝 앞으로 걷는 게 이상하리 만큼 힘에 부쳤다. 갤리와 거의 바짝 붙어 서서, 뉴트는 입술을 떼었다.
"안아 봐도 될까요."
목소리가 푹 잠겨있었다. 의문문이었지만 뉴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갤리를 끌어안았다. 품 안에 가득 들어찬 따끈한 것이 서러웠다. 뉴트는 호흡을 한참 골랐다. 옅은 땀냄새가 가슴을 두드렸다. 팔뚝까지 전부 뉴트의 팔에 묶인 갤리는 어색하게 팔꿈치 아래쪽을 들어서 뉴트의 등에 얹었다. 뉴트가 고개를 숙여서 갤리의 턱이 뉴트의 정수리께에 닿았다.
"좋아합니다."
거의 숨 사이로 흐르듯이 나온 말이었다. 개울 소리에 묻히기 일보 직전인 그 소리는 갤리의 귀에 똑똑히 와 닿았다. 갤리는 눈을 크게 떴다가 천천히 꿈뻑꿈뻑 눈을 깜작였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손 안 가득 들어찬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귓가에서 뭔가가 스러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갤리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숨이 깊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둘은 아주 오래, 오래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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