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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 등과 관련이 없습니다.
*양궁에 관해 지식이 없는 편입니다. 이상한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사실, 실제 대학생이 될 것도 아니고 대학생인 척만 하면 되는 일이니 뉴트가 친 것은 그냥 설레발이었다.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나 면이 서는 일은 아니니만큼 수행 비서를 위시한 비서진들은 어렵사리 뉴트를 뜯어 말릴 수 있었다. 아주 급한 게 아닌 이상 모든 보고가 내일로 밀린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대강 학교가 끝날 법한 시간을 골라서 학교 근처에서 나오는 체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 가능했다. 학회 같은 것에 참석하고 온 흉내를 내는 것도 어렵지 않게 섞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뉴트는 촌스러운 옷 중 그나마 나은 것을 골라 입고 가방에 책과 서류, 필기 도구 따위를 가득 채웠다. 좀 무겁긴 했지만 빽빽하게 뭔가가 들어차 있는 백팩은 꽤 그럴 듯한 분장이었다. 신발도 구두에서 운동화로 갈아 신고 머리를 헝클자 그럴 듯한 모습이 완성되었다. 두꺼운 안경도 잊지 않았다. 오래된 대학의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있자 다른 사람들이 딱히 주목도 무엇도 하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별히 필요에 의해 들어온 게 아니었기 때문에 뉴트는 손의 물기를 제거하며 가방을 추슬렀다. 복도에 잠깐 서서 핸드폰을 살피고 있자 앞의 강의실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뉴트는 핸드폰에 문자를 몇 마디 입력하고 사람들의 뒤꽁무니를 느긋하게 좇았다.
「저 지금 끝났어요. 어디쯤 계세요?」
「무슨 비석 근처에 있어요. 어, 학교에 비석이 많아요?」
「들어오자 마자 있는 데에요? 비석 한 두 개 정도 같이 있는 데
말씀하시는 거죠?」
「네 거기요」
구식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뉴트는 발걸음도 경쾌하게 움직였다. 건물에서 나오면 바로 정문이 보였다. 멀긴 했지만, 갤리가 머리 반 개 정도는 커서 그런지 멀리서도 수월히 알아볼 수 있었다. 뉴트는 갤리가 보인다고 문자를 남겼다. 갤리에게 웃는 이모티콘이 온 것을 보고 뉴트는 조금 웃고 주머니에 핸드폰을 집어 넣었다.
면바지에 반팔 셔츠를 입고 나온 갤리를 보자 기분이 절로 들떴다. 뉴트는 눈을 가리는 머리를 대강 넘기며 갤리를 향해 다가갔다.
"갤리."
갤리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약간 허를 찔린 것 같은 표정이었다. 뉴트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갤리가 오랜만이라고 자연스레 말을 건네자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었다.
"오늘 고생하셨어요."
"갤리 씨도요."
"저야 뭐 쉬다 왔는걸요."
머쓱한지 뒷머리를 긁는 게 귀여웠다. 뉴트는 눈을 휘며 빙긋 웃었다. 시간을 보니 대충 식사 시간이어서 뉴트는 뭘 좀 드시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만나서 노닥거린 적은 많지만 같이 식사를 한 적은 없었다. 뉴트는 어디를 가야 좋을지 추리며 천천히 갤리를 앞질렀다.
-
지하철에서 내리자 마자 갤리는 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이 많은 것은 자주 보았지만 그 속에 섞이는 것은 또 오랜만이었다. 그것도 이렇게 젊거나 어린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이는 것은 처음이라고 해도 좋았다. 인구 비에 맞추어 나이 많은 사람, 어린 아이, 젊은 사람 가릴 것 없이 이래저래 섞여 있는 것은 그리 적지 않게 경험했지만, 이렇게 거의 젊은 사람만 가득 한 공간은 차라리 신기하기까지 했다. 갤리는 부산히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바쁘게 움직이는 지하철에서 사람이 한 번 더 쏟아져 나올 때까지 갤리는 올라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도시란 이런 거구나. 갤리의 생각은 망연했고, 또 어딘지 모르게 착잡했다.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갤리를 스쳐지나갔다. 학교 건물은 넓고 커다래서 곧 아득하게 갤리를 덮어올 것 같았다. 괜히 왔나. 갤리는 눈을 몇 번 깜박였다. 저 쪽에는 높은 건물이 많지 않았다. 2층 짜리도 사실 보기 드물었다. 성벽이나 조금 높을까 싶은 정도였지, 나머지는 다 고만고만했다. 그러나 여기는, 다 높고 커다랬다. 가끔은 연습장마저 높은 곳에 있었다. 익숙해 지긴 했지만 그 모습은, 갤리에게 그냥 위태로워 보였다. 거울처럼 빛나는 표면을 볼 때면 특히 더 그랬다. 갑갑한 느낌이 들어서 갤리는 셔츠 맨 윗단추에 손을 가져갔다.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저 지금 끝났어요. 어디쯤 계세요?」
갤리는 순간, 푹 숨을 내쉬었다. 못 뱉던 숨을 다 놓아버리듯이. 머릿속에 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갤리는 한 손안에 쏙 들어오는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잡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넓은 잔디밭을 사이에 두고 회색 벽이 밋밋한 건물이 멀리 하나가 서 있었고, 근처에 꽤나 큼직한 크기의 빗돌이 서 있었다. 갤리는 버튼을 눌렀다.
「무슨 비석 근처에 있어요.」
거기까지 누르고 전송하려다 갤리는 문득 제 발 옆에도 비석이 하나 더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건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이상하다 싶긴 했지만 어쨌건 몇 마디를 더 적었다.
「어, 학교에 비석이 많아요?」
답장이 오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갤리는 비석을 느긋하게 살폈다.
「들어오자 마자 있는 데에요? 비석 한 두 개 정도 같이 있는 데」
문장의 길이가 길어서인지, 문자가 오다 말고 잘렸다. 갤리는 뭐라고 답장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아주 잠깐의 텀만 두고 다시 한 번 핸드폰이 울렸다.
「말씀하시는 거죠?」
「네 거기요」
이제 곧 오려나 보다. 갤리는 아까보다 나아진 기분으로 핸드폰을 닫고 적당히 기다리기로 했다. 핸드폰이 한 번 더 울었다. 저가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갤리는 한결 시원스런 기분으로 얼마 전에 배운 웃는 얼굴의 이모티콘을 보냈다. 어디쯤이려나. 갤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비석에 눈이 간 것은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그게 유일하게 눈에 걸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비석에 새겨진 날짜는 의외로 멀지 않았다. 얼마 전에 잔디밭으로 만든 광장인 모양이었다. 그 외에도 세세하게 투자한 돈이 꽤 되는 모양인지 기부한 사람의 명단 또한 같이 새겨져 있었다. 갤리는 하릴없이 그 글자를 훑어 내렸다. 첫 이름은-
뉴트.
갤리는 눈을 몇 번 깜박였다. 뉴트? 성도 같이 쓰여있긴 했지만 갤리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뉴트라고? 내가 아는 그 뉴트가 맞나? 옆에는 대학원 기졸업생이라 적혀있었다. 졸업 날짜가 가까운 편이긴 했지만 이미 몇 년 지난 시간이었다. 설마. 동명이인이겠지. 갤리는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마 성이 다른 사람이리라.
문득, 갤리는 자신이 뉴트의 성을 모른다는 것을 떠올렸다. 자기 성을 기억하기는 어려웠지만, 남의 성을 기억하기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여기서는 그 둘이 합쳐서 이름 하나였으니까. 그런데 뉴트의 이름이 기억 나지 않았다. 이름은 알고 있지만 성까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자신은 그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몰랐다. 매니저가 할 법한 생각을 자신이 하고 있는 것에 갤리는 조금 놀랐지만 달리기 시작한 생각은 멈출 줄을 몰랐다. 정말 대학생이 맞는 걸까, 여기 적힌 이름은 정말로 동명이인일까, 당사자인 건 아닐까, 그럼 대체 뉴트는 뭘 하는 사람인 걸까, 왜 나와 친해진 걸까, 무엇을, 어떻게, 어째서.
"갤리."
문득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갤리는 고개를 들었다. 뿔테 안경을 낀 뉴트가 안경 너머 반짝이는 갈색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약간 빠르게 걸어왔는지, 아니면 뛰어왔는지, 뉴트의 이마에 옅게 땀이 배어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금발이 반짝반짝 빛났다. 근처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갤리는 문득 아무래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중에 물어봐도 괜찮을 것이다. 속였대도, 괜찮았다. 어차피 자신도 그를 반 정도는 속이고 만나게 된 것이었으니까. 자신이 처음에 뱉은 말이 무슨 뜻인지 그는 모를 것이었다. 갤리는 그냥, 웃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말이 이상하게 나오는 것 같아서 마른 침이 넘어갔다. 다행히 뉴트는 웃어주었다.
"오늘 고생하셨어요."
"갤리 씨도요."
"저야 뭐 쉬다 왔는걸요."
뉴트 어깨에 걸려있는 가방이 유난히도 묵직해 보였다. 갤리는 민망한 기분이 들어 뒷머리를 긁었다. 평소하고 반대되는 상황이 우습기도 했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뉴트는 항상 이런 느낌을 가지고 나오는 걸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벌써 해가 저물고 있었다. 식사를 할 시간 쯤은 되었다는 뜻이다. 뉴트도 그걸 알았는지 뭔가 드시고 싶은 게 있냐고 말하며 약간 앞서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보며 갤리는 조금 웃었다. 놀라운 일이 있었는데도 기분이 꽤, 괜찮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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