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6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 등과 관련이 없습니다.

*양궁에 관해 지식이 없는 편입니다. 이상한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갤리."

"예?"

매니저는 말을 하다 말고 잠시 주저하더니 마른 세수를 했다. 그리곤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손을 저었다. 갤리는 조금 어리둥절했지만 다시 활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매니저가 영 자리를 뜨지 않고 있어서 갤리는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아픈 이후로 매니저는 몇 번이나 이랬다. 몇 번이나 뭔가 말을 꺼내려고 했다가 그만 두고 자리를 뜨거나 아니면 옆에서 한참이나 지켜보곤 했다. 전화도 잔소리도 듣지 않고 하루이틀 푹 자고 났더니 몸살을 훌훌 털어버린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그렇게 걱정이 많던 매니저가 이래저래 말이 없었던 것은 꽤나 찝찝한 일이었다. 화살이 생각했던 것과 한참 다르게 나가서 갤리는 한숨을 푹 쉬었다.

"매니저님."

"어, 어?"

"뭔가 말씀하실 거 있으세요?"

매니저는 입을 뻐끔뻐끔 거리다 마른 세수를 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서 얘기하자며 손짓을 했다. 갤리의 물음표가 한참 커졌다. 연습 시간인데? 코치님께 혼나면 어쩌려구? 물음표가 얼굴에 비쳤는지 매니저가 자기가 책임진다며 갤리를 이끌었다. 뭐 큰일 났나? 갤리는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매니저가 연습을 빼먹어도 된다고 하다니 어제 들었으면 천지가 개벽하리라 생각했을 것이었다. 활을 손질해 내려두고 매니저는 차에 타서 이야기 하자고 했다. 갤리는 후다닥 씻고 나와서 머리도 말리지 못하고 차에 올랐다. 매니저는 차에 시동을 걸다 깊이도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한참이나 눈을 문질렀다. 정확히 말하면 눈두덩이 위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갤리는 이제 자신이 무언를 잘못한 게 있나 곰곰이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갤리."

매니저가 어색하게 입을 떼었다. 갤리는 바짝 긴장해서 네, 하고 말을 받았다. 매니저는 입이 마르는지 침을 삼켰다.

"너 도와줬다는 그 사람."

"예?"

"어떻게 알았어?"

갑작스럽고 약간 당황스러운 질문에 갤리는 말을 더듬었다. 이런 질문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갤리는 손가락을 꼽는 시늉을 하며 기억을 돌이켰다.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만났더라.

"그냥... 어쩌다."

특별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말 그대로 그냥. 지나쳐가다 보아서. 어쩌다. 그 사람이 인턴이 되어서 전화번호를 얻어내고, 그래서 만나고, 친해지고. 그렇게. 그냥 그렇게.

"뭐하는 사람이라고 했어?"

학생이라고 했다. 대학생이라고. 스포츠에 크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력서에 한 줄이나 더 넣어볼까 하고 자원을 했다고. -전에도 매니저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 같은데.

"또 걱정 되어서 그래요?"

갤리는 약간 인상을 쓰고 반문을 던졌다. 매니저는 가타부타 말 없이 한숨을 한 번 더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뭐라고 횡설수설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걱정이 되긴 되는데 이게 걱정이라고 해도 되는 걸까 내가 이렇게 속물적인 인간이었나 아니 이건 상관 없는 이야기지 내가 뭐라는 거야 일이 어쩌다 이렇게 돌아가서... 최소한 매니저가 깊은 혼란에 빠져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갤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간 고민이 너무 많다니까. 갤리는 등받이에 등을 푹 기대고 안전벨트를 맸다.

"친하게 지내라고 할 수도 없고 친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왜 자꾸 그래요 진짜."

매니저는 정말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한숨을 푹 내뱉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드디어 시동을 걸었다.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요란하기까지 했다.

"그냥, 나쁘게 지내지나 마라."

-위이잉

진동이 와서 갤리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뉴트였다. 몸은 이제 완전히 괜찮으세요? 갤리는 답장 버튼을 누르면서 어깨를 으쓱 움직였다.

"안 그럴 거에요."

-

뉴트의 일 처리 속도는 그냥 그랬다. 여기서 그냥 그랬다는 말은, 평소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는 뜻이었다. 그건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이상한 일이었다. 서류를 보고 검토하고 정리하는 비서의 손은 바빠졌는데 정작 회장의 일처리 속도가 평소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은 좀 이상했다. 왜 그런가 하면, 간단했다. 뉴트는 아주 약간이지만 농땡이를 피우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의 경계가 딱히 없이 회장실 안에만 박혀 있던 회장님이 쉬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꽤나 대학생 같이, 한 시간 반 정도를 일하고 20분 정도를 쉬었다. 비서들은 정신이 없어졌다. 일하는 시간에는 1분 1초가 아까운 건지 서류를 어서 올려 보내라 닦달이었고, 쉬는 시간에 일거리가 오면 잘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시간을 그나마 딱딱 지키니 어떻게 보면 편해진 셈이었다.

그럼 그 쉬는 시간 동안 회장님은 뭘 할까? 수행 비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원래가 입이 무거운 사람이니 비서실의 사람들은 궁금해 하기만 할 뿐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잠시 잠깐씩 쉬는 시간을 즐길 뿐이었다.

그리고 수행 비서는 입을 좀 더 무겁게 하기 위해 애를 썼다. 유도 신문이나 저도 모르게 말을 흘리지 않도록 단속하는 건 당연하고, 그걸 좀 더 강하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야, 어디 가서 회장의 취미가 문자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일이니까.

"회장님."

"알아."

뉴트는 몇 마디를 더 적어 보내고 핸드폰을 내려 놓았다, 일 할 시간과 쉬는 시간 사이사이에 알람이 울리도록 해 두었다. 뉴트는 쌓여있는 서류 중 비서들이 긴급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표시해 놓은 서류를 집어 들었다. 빡빡하게 쓰여진 보고와 수치들을 집중해서 읽고 있는 뉴트를 바라보다 비서는 뉴트를 한 번 더 불렀다. 회장님. 뉴트가 보고서에서 눈을 떼지 않고는 듣고 있어, 하고 말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뉴트는 펜을 들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곤 드디어 서류에서 눈을 떼어서 비서를 바라보았다.

"뭘?"

질문하는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눈빛이 당장에 날이 서 있어서 비서는 침착을 유지하기 위해 공을 들여야 했다.

"알아보셨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잠깐 진득하고 끈끈하며 떨어트릴 수 없는 침묵이 흘렀다. 깊은 침묵을 깬 것은 핸드폰이 진동하는 소리였다. 고급스러운 원목 테이블과 다른, 약간은 투박하게 생긴 작은 핸드폰 하나가 냈다고 하기엔 꽤나 큰 진동이었다. 뉴트는 그것을 잠시 바라보았지만, 집어 들지는 못했다.

"...이젠 상관 없어."

비서는 잠시 머릿속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처리했다. 분명히, 뉴트도 충분히 생각한 후 낸 결론일 것이었다. 그나마 그 중에서 생각하지 못한 게 있을까 돕는 것만이 자신의 일이었다. 그리고 혹은.

"그럼 사람은 거둘까요?"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준다거나. 뉴트는 만년필을 들어 종이 밑에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둬."

만약의 상황에 대비할 필요는 있으니까. 비서는 이 대화를 한 번 한 적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때와 지금 사이에 있는 간극을 떠올렸다. 핸드폰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아쉽게 보는 사람을 그는 그 때의 기억에서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수행비서는 뉴트가 처리한 서류 뭉치를 들고 문 밖으로 나갔다. 속으로는 처리해야 할 구매 목록이 1순위부터 차례대로 우선순위가 매겨지고 있었다. 제1순위는, 반지였다.

-

「매니저가 오늘 휴가래요. 웬일인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반나절은 운동하셨네요. 안 힘드세요?」

「매일 하던 건데요 뭘. 공부하시느라 힘드시겠어요.」

「그 말 그대로 돌려 드릴게요.」

갤리는 잠시 쉬는 시간이라고 하는 뉴트와 문자를 하며 침대를 뭉갰다. 베갯잇이 보들보들해서 기분이 좋았다. 평소에는 다르다고는 해도 학생보다 한가하다니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몸을 뒤집어 핸드폰을 얼굴 위로 들어올리며 갤리는 문득 대학이 무엇인지를 처음 알았을 때를 떠올렸다. 모든 사람이 학교를 다니는 것도 신기한데, 더욱 어렵고 힘든 것을 오랫동안 공부하기 위해 가는 곳이라니, 갤리에겐 신기하기만 했다. 어떤 곳일까. 뉴트는 거기서 어떻게 지내는 걸까. 제멋대로긴 하지만, 갤리는 문득 뉴트가 굉장히도 보고 싶어졌다. 몸을 한 바퀴 더 뒤집고, 갤리는 문자를 보냈다.

「혹시 가까이에 있는 대학인가요?」

「네. 올림픽 하는 데랑 가까이 있어요.」

「곧 끝나요?」

「이제 수업은 얼마 안 남았네요.」 

「저기, 그럼, 죄송하지만. 보러 가도 될까요?」

"당장 모교 수배해."

뉴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비서진의 눈이 까뒤집혔다.

'2.5D > 메이즈러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트갤리] If I were not (14)(완)  (1) 2023.01.26
[뉴트갤리] If I were not (13)  (0) 2023.01.26
[뉴트갤리] If I were not (11)  (1) 2023.01.26
[뉴트갤리] If I were not (10)  (1) 2023.01.26
[뉴트갤리] If I were not (9)  (0) 2023.01.26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