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6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 등과 관련이 없습니다.
*양궁에 관해 지식이 없는 편입니다. 이상한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갤리는 깊이 자는 편이었다. 베개에 머리를 붙이고 나면 몸이 시간을 여행해 다음날 아침으로 정신을 데려다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알람 소리는 어찌어찌 들었지만 그 사이에 오는 전화나 문자 소리 같은 것은 하나도 듣지 못했다. 그래서 몇 안 되는 갤리의 주변 사람들은 밤에 연락하기를 아예 포기하곤 했다.-걱정이 넘치는 매니저는 가끔 예외일 때가 있었지만-그래서 아주 간혹.
「자요?」
늦은 시각의 뉴트의 문자는 처량하게 한 줌 기호로 스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수행 비서가 공수해 온 반지와 꽃다발이 또 한 번 낡아갔다.
-
갤리는 요새 뉴트가 유독 바쁘다고 생각했다. 문자는 늦어도 두 시간 안에 답장을 주어서 수업이 있나보다 하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전화도 안 된다 만나는 것도 못 한다 아주 외로워질 지경이었다. 하긴 만나는 거야 원래가 드물긴 했었다. 가장 짧은 텀이 2주에 한 번이었고 달이 넘어가도록 만나지 못하는 날도 있었으니까. 요새 낮에는 좀 바쁘신가 보네. 갤리는 땀을 닦으며 생각했다. 날이 땡땡 내려쬘 뿐 아니라 습하기까지 해서 몸에서 땀을 뽑아내는 느낌이 들었다.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날씨였다. 자꾸 시원한 음료수가 당겨서 몇 번이나 물을 켰다. 핸드폰을 열자 아까 그 문자가 그대로 들어있었다. 「점심 먹고 있어요 ;)」 갤리는 한 번 더 음료수를 들이켰다.
그러니까, 결코 서운하다는 말이 아니다. 맹세컨대, 서운하지 않았다. 그냥 좀, 연락이 안 되어서 걱정이 되는 것 뿐이었다. 그러면서 밤마다 일방적으로 연락을 하니, 이게 도통 어떻게 돌아가는 노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귀는 게 맞긴 한 거지? 어째 고백 받기 전보다 더 소원해 진 것 같았다. 갤리는 음료수 병에서 입을 떼고 조금 깊은 숨을 쉬었다. 다시 활을 당기러 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맛있는 거 먹고 있어요?」
뉴트는 샌드위치를 질긴 종이쪽처럼 씹으며 문자 메시지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모티콘 하나 오지 않는 문자가 왜인지 찝찝하니 슬펐다. 그러나 서류는 여전히 산같이 쌓여있었다. 오늘은 못 나가십니다. 비서진이 거의 피눈물을 흘리며 물귀신처럼 잡고 늘어져서 뉴트는 미간을 주무르며 수십 장째 사인을 하고 있는 나날을 며칠째 보내고 있자니 피곤함이 가시질 않았다. 수행 비서는 안쓰럽다는 듯이 바라보기는 했지만 도와주지는 않았다. 그 동안 많이 노시긴 했지요. 본격적으로 놀아야 할 타이밍에 저런 말을 듣자니 아예 뼈가 저렸다. 놀면 얼마나 놀았다고. 쉬면서 하는 것이 효율이 좋다고 저녁 먹기 전 타임에는 보내주었지만 그 때부터 준비해서 만나자고 할라 치면 시간이 너무 늦었다. 이미 잠자리에 들었는지 답장조차 없는 문자 메시지 창을 들여다 보는 것으로 몇 밤을 보냈는지. 고백하지 못한 것도 산더미요, 같이 하고 싶은 것도 태산인데 정작 시간이 없었다. 꿈은 참으로 원대한데.
이쯤 되니 뉴트는 아예 갤리를 납치해서 회장실에 들어 앉히고 싶은 자기 자신의 욕망과도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다행히 그 유혹에 넘어갈 정도로 막다른 것은 아니었지만, 그 옆에서 회장실로 와 달라고 물어볼 수는 없는 거냐는 욕망이 빽빽 소리를 질러 대고 있는 게 문제였다. 회장실로 와 달라고 물어보려면 일단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혀야 하는 거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려면 메시지는 누가 볼 위험이 있으니 직접 만나야 하고 직접 만나려면 시간이 있어야 하고. 뉴트는 자기 욕망을 때려 부수고 싶다는 욕망에까지 시달리기 시작했다.
아 갤리 보고 싶다. 뉴트는 만년필 뒤꽁무니를 잘근잘근 씹으려는 자신을 깨닫고 싶은 한숨을 내쉬었다. 잉크가 셔츠에 튀면 답이 없다. 오늘이야 말로 만나러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노릇인데 옷이 더러워져서야 쓰겠는가. 회사 나올 때부터 정장을 빼어 입고 나오는 이유가 뭐겠는가. 최대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인데 옷이 더러워지면 그 날은 틀린다. 물론, 지금까지 성공한 적은 없었다. 뉴트는 보류할 문서를 한 켠에 치워두고 넥타이를 조금 풀었다. 콘체른 계열사들의 개략적인 지난 분기 보고와 사업 계획서, 거기에 딸린 시장 동향 보고 따위를 머리에 쑤셔넣고 있자니 약간 성질이 날 참이었다. 하루이틀은 제 일이다만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며칠째인지. 해가 벌써 저물고 있는 걸 보니 오늘도 글렀다. 뉴트는 앞머리에 손가락을 넣고 털어서 약간 편한 모양새를 만들었다. 이미 글렀는데 뭐하러. 긴급을 요하는 보고는 대강 처리를 했다마는 이 만큼으로 보내줄 리 없었다. 뉴트는 다음 서류를 가져올 수행 비서를 깍지 낀 손으로 턱을 괴고 바라보았다. 처리한 서류를 정리하던 비서가 그런 뉴트를 보고 빙긋 웃었다.
"오늘은 이걸로 끝입니다."
"음?"
"긴급만 하고 뛰쳐나가실 것 같아서 다음 주에 하실 몫까지 긴급으로 돌렸거든요."
사실 어제부터 하신 분량은 주말에 하셔도 될 것 같았거든요. 뉴트는 비서진을 갈아치울 타이밍이라는 게 있다면 지금이 적기가 아닐까 짧게 고민했다. 눈 앞에 샛노란 프리지아 다발이 놓일 때까지의 아주 짧은 고민이었지만. 물기가 채 가시지 않은 싱그러운 꽃다발이 책상 위에 놓이는 것과 동시에 구식 핸드폰이 진동했다. 뉴트는 꽃다발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래 앉아있던 몸이 전반적으로 뻐근하긴 했지만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호쾌하게 나가는 뉴트를 보고 수행 비서는 밑의 기사에게 연락을 넣었다. 회장님 내려가십니다. 저도 내려갈 때까지 잠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
갤리는 신이 나서 퇴근할 준비를 했다. 땀을 씻어 내리고 가장 괜찮아 보이는 옷으로 갈아 입었다. 대부분이 운동복이라 선택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강요하긴 했지만 어쨌건 그럭저럭 괜찮은 옷을 차려입을 수 있었다. -물론 운동복이 아닌 옷으로-주소를 알려주면 찾아오겠다는 말에 희희낙락해서 주소도 알려주고 머리도 좀 정리하고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갤리는 느긋한 듯 초조하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뉴트를 기다렸다. 잠시 후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저 다 왔어요. ;) 갤리는 아까보다 들떴다. 곧 나갈게요:) 현관을 열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한참을 내려가 0층을 나서자 눈 앞에 만개한 프리지아 꽃다발이 갤리를 맞아주었다. 뉴트가 짠- 하고 소리를 내며, 평소와 다르게 한결 들뜬 모습으로 맞아주었다. 정장을 차려 입은 모습이 아주 멋져서 갤리는 하늘로 떠오르려는 가슴을 잡아 매야 했다.
이동은 뉴트의 차로 했다. 뉴트가 직접 운전하는 게 서툴다고 민망한 것처럼 중얼거렸다. 갤리는 그저 좋을 따름이었다. 일단 자기가 운전을 못해서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았다. 뉴트는 한결 더 싱그럽게 웃었다. 오늘따라 자주 웃어주는 감이 없지 않아서 갤리는 그저 즐거웠다. 천장이 없는 차는 처음인지라 신기한데다 약간 무섭기까지 했지만 바람이 신나게 날리는 건 꽤 즐거운 경험이었다. 바람 소리 때문에 말소리가 안 들리는 건 조금 별로였지만.
식사는 꽤 멋진 레스토랑에서 했다. 소소하기 짝이 없는 대화는 즐거웠다. 커다란 접시에 소량의 음식이 멋지게 올라간 요리가 아주 맛있었고 몇 번이고 접시가 바뀌었다. 커다란 바구니에 병째로 얼음과 담겨온 술은 달콤하고도 상큼한 풍미가 일품이었다. 뉴트는 왜인지 점점 더 당당하고 편안해 보였다. 갤리는 포크를 입에 우물거리며 그 모습도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마지막 음식이라며 작고 까맣고 달콤한 음식이 나왔다. 뉴트는 그 전에 잠시, 라고 말하고는 주머니에서 작고 까만 상자를 꺼냈다. 반지였다.
"끼워줘도 될까요?"
갤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뉴트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갤리의 손가락에 닿을 듯, 닿을 듯 닿지 않으며 고리를 사이에 두고 스치고 지나갔다. 한 가운데에 투명한 돌 같은 게 박혀있는 은색 반지는 꽤나 현란했다. 갤리는 눈을 깜박였다. 설마, 이거 은인가?
"갤리, 그리고."
뉴트는 하얀 박스를 두 개 꺼내 들었다. 까만 스마트폰이 각각 하나씩 박스 안에 잠들어 있었다. 기종은 같았다. 가장 최신형으로 두 개 들고 왔으니 그럴 수 밖에 없기도 했고. 뉴트는 즐겁게 웃으며 받아달라고 내밀었다. 갤리는 자기 앞으로 내밀어진 박스를 바라보다 어색하게 뉴트 쪽으로 핸드폰 박스를 밀었다.
"저, 뉴트."
"네?"
"...이 선물은 너무 고가인 것 같아요."
광고에서, 자주 보이는 거잖아요. ...마음만 받을게요. 그리고 뉴트는 충격에 빠졌다. 다른 것-오픈 카, 정장, 레스토랑 등등-에 아무런 충격을 받지 않기에 매니저가 생각보다 입이 싼 건가 싶었다. 물론 갤리를 배려해서 전체적으로 그렇게 세게 가지는 않았긴 했지만.... 뉴트는 잠시 말을 고르다 갤리의 폭탄 발언에 충격에 빠져들었다.
"게다가, 그, ...은은 너무 심한 것 같아요."
갤리는 반지를 빼서 뉴트에게 내밀었다. 은이 얼마나 가격이 비싼데... 갤리가 말 끝을 흐리는 것에 따라 뉴트의 눈 앞도 흐려졌다. 은? 지금 백금을 보고 은이라고 한 건가? 현기증이 날 것 같아서 뉴트는 눈을 몇 번 깜박이고 갤리를 불렀다.
"갤리."
"네?"
"내가, 그, 회장이라고, 매니저가 말했어요?"
갤리가 눈을 꿈벅거렸다.
"무슨 회장이요?"
상식 간의 벽은 깊고도 넓었다. 그리고 은 본위제와 금 본위제의 차이도. 후일 뉴트는 그렇게 탄식했다.
'2.5D > 메이즈러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트갤리] 개인의 흥망사 (2) (0) | 2023.06.30 |
---|---|
[뉴트갤리] 개인의 흥망사 (0) | 2023.06.30 |
[뉴트갤리] If I were not (14)(완) (1) | 2023.01.26 |
[뉴트갤리] If I were not (13) (0) | 2023.01.26 |
[뉴트갤리] If I were not (12) (0) | 2023.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