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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해리포터au, 수위는 없으나 오메가버스, 네임버스 세계관입니다.

*대괄호[] 안은 한국어라는 설정입니다. 인소 같아요 죄송합니다. +제 영어는 후사를 잉태할 수 없는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속편 스코치 트라이얼의 캐릭터 스포일러가 있으되 캐붕일 예정입니다. 죄송합니다.

 

노랫소리가 들렸다. 노래, 노랫소리가. 민호는 숨을 헐떡거렸다. 길 옆의 풀숲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면 뭔가가 나올 것 같았다. 이리로 와요, 나랑 놀아요, 노랫소리가 자꾸 앞으로 끌어당기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코 끝에서 자꾸만 단내가 났다. 초콜릿, 마시멜로, 쿠키, 스모어. 온갖 종류의 단내가 목구멍과 비강을 저며서 끌고 가는 것 같았다. 노랫소리. 그래, 노랫소리. 공터가 나타나 있었다. 어느새 공터였다. 시간 감각도 방향 감각도 상실하고 민호는 앞으로 나아갔다. 민호는 문득 떠올렸다. 왜 내가 여기에 있지? 떠올리려 기를 썼으나 기억 나는 건 고작해야 제 이름정도 밖에 없었다. 다시 노랫소리가 들렸다. 노랫소리만이 들렸다. 앞으로 더 와요, 빼지 말고요, 이 쪽이에요. 민호는 또 걸음을 옮겼다. 찰박, 하고 뭔가가 밟히는 소리가 끼어들었다. 다리를 움직이기가 아주 조금씩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 공은 뭐에요? 내려 놓아요.

문득 민호는 자신이 왜 이 자리에 있는지를 깨달았다. 자신은 두 번째 시험을 치르는 중이었고, 세 번째 사람이었다. 두 번째는 브렌다였고, 자신이 출발할 때에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리고 토마스가- 민호는 반대편으로 뛰었다. 정신을 차리자 발이 차가웠다. 바짓단이 축축했다. 얕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보지 않아도 가면 갈수록 깊어질 것이 분명했다. 정신이 더 흐려지면, 분명히, 분명. 다시 노랫소리가 들렸다. 이리 와요. 어딜 가나요. 다리가 느려지는 게 느껴졌다. 머리가 멍했다. 내가 왜 여기 있었지? 민호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콧속으로, 온갖 단내가. 꿀의 향기가. 꽃향기, 초콜릿, 달콤한. 달콤한, 바닐라 향이.

토마스는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들것에 실려 옮겨지고 있었다. 들것에서 물이, 몇 방울이나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민호는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추위가 한꺼번에 등 뒤를 엄습했다. 노랫소리가 몽롱하지 않고 또렸하게 들려왔다. 새가 우는 소리에 가끔 한 마디씩 말소리가 섞여 있었다. 민호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정말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무 그루터기가 보였다. 민호는 마치 럭비를 하는 심정으로 달렸다. 저기에만, 일단 닿으면 어떻게든 되리라, 어떻게든. 텅, 하는 빈 통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퀘이플이 그루터기에 내리 꽂혔다. 마법에서 빠져 나가야 할 시간이 도래했다.

-

"마법 없이 세이렌을 이겨낸 첫 번째 알파가 된 걸 축하해."

브렌다가 무덤덤하게 말을 건넸다. 민호는 잠시 브렌다를 올려다 보았다가 담요를 여몄다. 손 안의 머그컵에는 당장이라도 끓어 넘칠듯한 코코아가 하나 가득 담겨 있었다. 아까와는 정확히 정 반대 상황이었다. 겨울의 온도는 낮아서 젖은 옷으로 계속 견디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뉴트에게 부탁해 잠시 후면 다시 제복이 오겠지만 그래도 맨 몸으로 버틸 만한 온도는 아니었다. 그에비해 브렌다의 옷은 보송보송하기 짝이 없었다.

"알고 있었어?"

"뭘?"

"세이렌."

"들어가기 전에 프로테고 토탈룸(범위 방어 마법)을 걸어놨어. 그냥 두고 오는 거면 너무 쉬우니까. 물리적인 걸 아예 막을 수는 없으니까, 적어도 마법은 방지할 생각으로."

브렌다는, 약간은 의기양양해 보였다. 민호는 브렌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세이렌은 오메가의 성향이 짙다. 고대의 기록에 의한 것처럼 노래를 불러 상대방을 유혹해서 물에 빠지도록 하기도 하지만, 최근 알파와 오메가가 세상에 등장한 이유 페로몬 또한 사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달콤한, 향내. 차라리 상냥하기까지 한 그 향은 밖으로 나서는 그 순간까지 지속되었다. 놓치지도 보내주지도 않겠다는 것 같은 그 탐욕적이기까지 한 냄새를 과연 무엇으로 이겨야 했을까. 민호는 지금까지도 정신이 몽롱한 느낌이었다. 

"토마스는 괜찮대?"

문득 민호는 제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왔는지 가늠했다. 브렌다는 고개를 기울였다. 여전히 무던하고 무덤덤한 얼굴이었지만 어떠한 함의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잠시 둘 사이로 침묵이 오갔다. 브렌다는 입을 열었다.

"호그와트 대표라면, 괜찮대. 물을 좀 먹긴 했지만 위험할 정도는 아니고, 퀘이플은 자리에다 잘 뒀다나봐. 나오다가, 좀 안 좋게 되긴 했지만."

"그렇군."

"그래."

다시금 침묵이 오갔다. 의미 있는 침묵이 오가는 동안 사위가 조용하게 잦아들었다. 점수가 올라오려는 모양이었다. 꼭 한 사람이 모자란 상태에서 발표를 듣게되는군. 민호는 태평하게 생각했다. 숫자가 몇 개씩 올라왔다. 계산은 어렵지 않았다. 7, 8, 6, 8, 9. 38점. 브렌다는 그것보다 꼭 2점이 더 높았다. 아무래도 중간에 시간을 까먹은 것이 영향이 큰 모양이었다. 그리고 토마스는 그것보다도 한참이 낮았다.

"순위는 그대로네."

"그래."

민호는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좀 더 따듯한 게, 온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좀 더, 뭔가, 안정이 필요했다. 이제 다 끝났는데 뭐가 그리도 불안한 건지 민호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뒤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브렌다와 민호는 한 쪽을 주시했다. 커다란 키가 그들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검사하러 왔는데."

익숙한 얼굴과 익숙한 큰 키였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기분이 들어서 민호는 조금 얼굴을 찌푸렸다. 아, 갤리. 익숙한 이름이 맞아 떨어져서 민호는 뭔가 깨달았다. 브렌다가 물었다.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데, 병동에서 온 건가요?"

"비슷, 하다고 할까. 전담팀에서 왔는데요."

그리고 말 놔... 놓으시죠. 갤리가 어정쩡하게 말하자 브렌다는 벤치에 천천히 앉았다. 갤리는 가볍게 지팡이를 휘둘러 불꽃을 약간 튀게했다. 그리고는 브렌다를 눈으로 쭉 훑으며 차트에 뭐라고 끄적였다. 어디 아프다거나? 머리는? 속이 안 좋거나 지나치게 춥지는 않고? 모든 질문에 아니라는 답변을 받자 갤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가도 좋다는 말을 했다. 브렌다는 어깨를 으쓱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매우 건강하기 짝이 없는 사람 답게 부드럽게 이동했다. 막사 안에 둘만 남게 되자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갤리는 한숨을 푹 쉬고 아까와 똑같이 지팡이를 휘둘렀다. 발간 불꽃이 튀겼다.

"안녕.(Hi.)"

"...안녕.(Hi.)"

민호는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자 갤리도 어색하게 답했다. 아까 브렌다에게 건넨 질문이 자연스레 민호에게도 던져졌다. 안타깝게도 민호는 약간 어지럽기도 했고 몸이 쑤셨으며 좀 추운 감이 있었으므로 문진을 하면서 안 그래도 그리 좋지 못했던 갤리의 표정은 끝없이 구겨져갔다. 깃펜으로 짧은 머리를 긁고 차트를 두어번 두드리곤 갤리는 한숨을 쉬었다. 크지 않은 입김이 바람에 나부꼈다.

"내가 보기엔 일단 알파가 겪는 전형적인 세이렌 후유증인데... 병동 가 봐야 겠어. 괜찮아?""

"딱히."

갤리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민호는 어깨를 으쓱 움직였다. 갤리가 일어나라고 해서 민호는 몇 모금 마신 코코아잔을 옆자리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갤리가 먼저 움직이고 민호는 뒤를 따랐다.

"그 땐 미안했어."

"뭐가? 아."

갤리는 흘끗 뒤를 돌아보았다가 알았다는 듯이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발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냥 고개를 두어번 저었다.

"미안한 줄 알면 하지를 말던가."

"하긴 해야 했어서."

"피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 안 들었냐."

"만나고 싶어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갤리는 뭐라고 더 말하고 싶어하는 듯 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시험을 치른 곳은 그래봤자 호그와트 앞마당이라 정문까지는 금방이었다. 그리고 분명 병동까지도 금방일 것이었다. 담요가 다리에 감겨서 약간 움직이기가 불편했다.

"짜증나는 놈."

"[초록은 동색이거든.]"

"뭐?"

"걔랑 나랑 친구니까."

문득 갤리가 멈춰섰다. 민호는 잠시 발을 멈추고 그런 갤리를 바라보았다. 갤리는 뭔가를 깨달은 것 같은 얼굴로 민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랬지 참. 갤리가 흐리게 중얼거렸다. 민호가 질문하기도 전에 갤리는 다시 발을 옮겼다.

"다음에 얘기 좀 하자. 괜찮냐?"

"어?"

"예, 아니오, 하나로 대답해. 괜찮냐?"

얼굴을 조금 찌푸리다가 민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딱히 안 될 이유를 찾지 못해서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약간, 배알이 뒤틀리는 느낌이 들어 민호는 조금 심술을 부리기로 했다.

"대신 뉴트 좀 맞아 줄래. 아까 그 막사로 올텐데."

갤리의 얼굴이 조금 찌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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