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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해리포터au, 수위는 없으나 오메가버스, 네임버스 세계관입니다.

*대괄호[] 안은 한국어라는 설정입니다. 인소 같아요 죄송합니다. +제 영어는 후사를 잉태할 수 없는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속편 스코치 트라이얼의 캐릭터 스포일러가 있으되 캐붕일 예정입니다. 죄송합니다.

 

"미안 민호."

토마스는 한껏 울상을 지었다. 민호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보이지를 않았다. 구두가 새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깨끗하게 신었다고 자부했는데 하루만에 이렇게 너덜너덜해 질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심지어 그 안에 있는 발도 나닥나닥하게 낡은 기분이 들어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설마 이러려고 파트너 신청을 했나? 그런 쓸데 없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토마스의 춤 실력은 형편 없다 못해- 아니, 사실, 둘 다 남자 스텝 밖에 모른다는 게 너무 큰 요인이었다. 뭐라고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신청 전에 배워두기라도 했어야 했는데,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여야 한다는 정신을 너무 크게 발휘한 것 같았다. 발이라도 주무르고 싶은데 파티장이라 영 마땅치가 않았다. 민호는 강아지마냥 낑낑대고 있는 토마스에게 고개를 들어보였다.

"가서 펀치 좀 떠 와."

"알았어!"

정말 강아지의 피가 흐르기라도 하는 건지 토마스는 튕기듯이 자리를 떠서 멀리로 멀어졌다. 저 강아지가 어째서 자신을 주인으로 삼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민호로서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말을 걸고, 파트너 신청을 하고, 때때로 집요하기까지 한 시선이 느껴지곤 했다. 원래 트리위저드 대표들끼리는 이렇게 깊은 유대감을 갖는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보바통의 대표는 그에게 냉랭하기는 커녕 무관심했다. 좀 둘러보자니 저 쪽에서 파트너와 음료수잔을 나눠들고 옅은 웃음을 띄곤 담소를 나누는 게 보였다. 주변은 아예 둘러 보지도 않고 있었다. 서로 가지고 있는 감정이라고 해 봐야 기껏해야 경쟁심 정도다. 한 시라도 더 빨리 문제를 알아내서, 다른 누구보다도 빠르게 승리를 쟁취하여 학교를, 학원을 명예로이. 기껏해야 그 정도라는 소리다.

"민호!"

반짝이는 눈동자가 그대로 민호를 직시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애정과 친밀함을 잔뜩 퍼붓는 시선이 그대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런 건 결코 흔하지 않고, 흔할 수도 없고, 동시에 있기도 어려운, 그런 것이었다. 손에 들고 있는 펀치 잔을 받아들면서 민호는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토마스의 얼굴이 환하게 피는 것을 보다 민호는 고개를 숙여 목을 축였다. 토마스가 옆 자리에 앉는 것이 느껴졌다. 단 맛, 라임 계열의 시큼한 맛, 코를 쏘는 알코올 냄새, 포도주 향, 그리고 바닐라 향이 민호의 코를 둥둥 들뜨게 했다.

바닐라 향?

펀치에 들어가는 건 기껏해야 백포도주, 탄산수, 시럽, 과일 몇 종류가 전부다. 물론 포도주에서 바닐라 향이 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걸 만드는데 이렇게 강하게 단내가 나는 포도주를 섞었다고는 믿기 어려웠다. 당장 옆에서 바닐라 빈을 깬 것만 같은 달콤한 향이 이렇게, 강하게-. 아니, 펀치에서 나는 향이 아니었다.

"토마스."

"어?"

"잠깐, 바람 좀 쐬자."

토마스의 얼굴이 아까보다 한층 더 밝아졌다.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나가는 게 더 중요했다. 가느다란 몸이 나른하게 달라붙는 게 느껴졌다. 알파의 후각은, 베타보다는 강하지만 오메가에 비하면 약한 편이다. 그래서 평시에는 알파 오메가를 간신히 구분하는, 그런 수준이라서, 그래서 오메가의 향은 특정 기간만 되면 굉장히-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목 끝까지 침이 고이는 느낌이었다. 목울대가 울리는 것 같았다. 민호? 토마스가 민호를 불렀다. 까맣게 어둠에 잠겨든 로비로 나오자 그제야 좀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민호? 왜 그래?

"-너 약 먹었어?"

민호는 제 목소리가 좀 잠겨있다는 걸 그제야 눈치챌 수 있었다. 토마스는 멀뚱하게 무슨 약? 하고 민호에게 되물었다. 골이 지끈 거리는 기분이었다. 알파는 시작하자마자 두통과 미열에 시달린다. 정신이 흐려지고, 욕구를 좇으려는 충동이 뒷목을 몇 번이고 강타한다. 물론 그건 가장 고통스럽고, 괴로울 때의 이야기고, 알파던 오메가던 시작은 비슷하다. 향이. 상대방을 유혹하는 향이 독할 정도로 강하게 피어올라서 기간 내리 유지된다. 그 쯤 되면 억제제를 먹고 약효가 돌 때까지 자리보전을 하며 버텨야 한다. 그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자리 보전을 하는 이유는, 고통 보다는.

"바닐라 향이 나."

그 독한 향 때문에. 지금까지는 가까이에 오메가가 있었던 적도 없고, 동성끼리는 향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메가는 물론 알파까지도 다들 제 주기를 일찌감치 파악하고 병동이나 제 방으로 숨어버리곤 했다. 이렇게 코를 아리게 하고 머리를 핑 돌게하는 향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민호는 뒷목이 뻣뻣하게 아파왔다. 그래, 너는 오메가였다. 잊고 있었던 일이었다. 향이, 너무도 연해서- 토마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억제제, 없어?"

"있어, 있는데... 지금 저 위에 있어."

올라가는 동안 터지면 어쩌지. 토마스가 부산스레 중얼거렸다. 민호는 토마스로부터 두 걸음 물러났다. 찬공기가 폐부를 두드려서 좀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칠칠치 못하다고 토마스를 좀, 욕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옳지 못한 일인 걸 알면서도. 원망 정도는 하고 싶었다. 어둠의 마법에 심취한 사람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병동으로 가야겠어."

폼프리 부인은 베타니까. 토마스가 아까보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몸에서 열이 오르는 모양이었다. 둘 다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병동, 멀어? 여기서 복도 두 개 정도만 가면 돼. 토마스가 빠르게 중얼거렸다. 구둣발에 연미복으로는 좀 멀 수도 있는 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마스가 입술을 짓씹다가 민호를 쳐다보았다. 민호는 필사적으로 다른 데를 쳐다보고 있던 고개를 억지로 돌렸다.

"민호."

"어?"

"좀, 바래다주는 걸 부탁해도 될까."

민호는 욕을 짓씹었다. 당장 개방된 공간에서도 이렇게 머리가 아파오는데, 복도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는 어떻게 될지 감이 안 잡혔다. 덤스트랭 학내 규칙이라도 외워야하나. 거절하기도 용이치 못했다. 지금, 다들 파티장 안에 있다고는 하지만, 만에 하나 파티에 가지 않은 사람이라던가, 없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토마스는.

"아냐, 미안, 들어가. 나 혼자 갈게."

토마스의 목소리가 들려서 민호는 고뇌에서 문득 현실로 끌어올려졌다. 토마스가 어느새 아까보다도 떨어져 있었다. 달아난다고 하기엔 너무 좁은 거리였으나 분명히 거리감이 느껴지는 그런 거리기도 했다. 분명히 숨통은 더 트였지만, 민호는 뭔가 이상한 기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항상 접근하는 건 토마스가 먼저였다. 시선도, 대화를 시도하는 것도, 엄청나게 못 추긴 했지만 춤을 추는 것도. 게다가 먼저 멀어진 적은 없었다. 두 걸음, 세 걸음. 멀어지는 속도가 천천히 올라가서 어느새 발소리가 다급해졌다. 복도 하나 가량을 멀어지자 그래야 소리가 잦아들었다. 옅게 남은 바닐라 향은 파티장 안의 디저트에서 새어나왔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약했다. 두통과 어지럼증이 사라져서 뒷덜미가 가볍게 뻐근했다. 민호는 뒷목을 주물렀다. 그제야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해진 느낌이었다. 궁금증이 샘물처럼 솟아났다. 토마스는 왜 나에게 말을 걸었을까. 단지 친해지고 싶다는 가벼운 욕구로 설명하기엔 그들은 꽤나 나이를 먹어 있었다.
해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여서 민호는 일단 가볍게 접어두기로 했다. 대신 다른 문제를 떠올렸다. 
따라가보지 않아도 괜찮을까? 지금 시간이면 벌써, 도착하고도 남았을 것 같긴 하지만- 약간의 갈등 끝에 민호는 천천히 발을 움직였다. 빛이 새어나오는 길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었다. 복도 두 개, 멀지 않은 길. 달콤한 잔향이 계속 코를 이끌어서 발이 조급해졌다. 닫힌 커다란 문 앞에 향이 고여있어서 민호는 심호흡을 해야했다. 첫날에 들었던 익숙한 부인의 목소리가 토마스를 부르는 게 들려서 민호는 발길을 돌렸다. 다행히 길을 잃지 않고, 민호는 다시 로비로 나올 수 있었다. 식사라도 하러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민호는 멍청해 보일 정도로 굳어서 움직이지 않는 뉴트를 발견했다. 야. 민호는 뉴트를 불렀다. 뉴트가 삐걱 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은 동작으로 돌아보았다. 파트너는? 갔어. 따라오면 때릴 거라고 하던데. 민호는 좀 안쓰러워 하는 눈으로 뉴트를 바라보았다. 안쓰럽다기 보다는 짜증을 내는 것에 가까워 보였지만, 여튼 그랬다. 크리스마스 밤은,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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