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5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해리포터au, 수위는 없으나 오메가버스, 네임버스 세계관입니다.

*대괄호[] 안은 한국어라는 설정입니다. 인소 같아요 죄송합니다. +제 영어는 후사를 잉태할 수 없는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속편 스코치 트라이얼의 캐릭터 스포일러가 있으되 캐붕일 예정입니다. 죄송합니다.

 

복도를 한 번 둘러 본 민호는 발걸음을 옮겼다. 빌어먹을 움직이는 계단 같으니라고. 저녁을 먹고 배로 이동하려고 했을 뿐인데 정확히 30초만에 길을 잃었다. 다시 내려가려고 뒤를 돌자 계단이 움직여 어느새 뒤가 절벽이 되어 있었다. 언제 다시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어서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기는 했는데 도통 여기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같은 복도인지 아닌지도 헷갈린다. 이 조각상이 있는 복도를 한 두어번 왕복한 것 같긴 한데 문제는 마법학교라는 동네는 조각상도 걸어 움직인다는 데에 있었다. 뉴트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 배로 돌아간지 이미 오래였다. 그 때 같이 갔어야 했나. 민호는 아주 오랜만에 후회했다. 과연 내가 같은 위치에 돌아온 게 맞기는 맞는 걸까. 게다가 왜 이 근처는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는 걸까. 민호는 슬슬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단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꺾기로 했다. 아마 그 쪽 구석에서 튀어나온 사람이 없었다면 목적한 대로 돌 수 있었을 것이다.

"어."

"어."

갈색 눈에, 얼굴에 점이 좀 있는 검은 머리. 얼굴이 굉장히 익숙했다. 아, 그, 호그와트 쪽 대표였던가. 지난번에 좀, 이상한 질문을 했던. 민호는 눈을 몇 번 깜박였다. 습관적으로 미안(Sorry), 하고 인사를 하자 저 쪽에서도 약간 당황한 목소리로 나야말로. 하고 어물어물 대답을 했다. 둘 다 잠시 발을 멈추었다. 꺾이는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않자 머리 위에서 그림이 투덜거렸다. 거 싸게싸게 가지 않고 뭐하누. 민호는 저, 하고 입을 떼었다.

"어, 어?"

"여기서 1층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해? 길을 잃어서."

"...정문 쪽 얘기하는 거면 좀 복잡한데. 데려다 줄까?"

"그래준다면 고맙겠지만."

그러자 호그와트 대표는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T자형 복도에서 자기가 나온 쪽도, 민호가 온 쪽도 아닌 쪽으로 움직여서 민호는 조용히 뒤를 따랐다.

"그런데, 음, 4층까지는 어쩌다 오게 된 거야?"

"계단 따라 움직였는데, 잘못 오게 돼서."

"아... 1학년들이 자주 하는 실수네."

"익숙치를 않다보니."

복도에는 줄곧 그림이 걸려있었다.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각자 할 일을 하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었지만 호기심이 넘치는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기도 했다. 창은 하나도 없는 것이 아무래도 성의 내부 쪽인 모양이었다. 창이 있어도 반드시 외부라고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그러고 보니 몰이꾼이라고 했지? 수수께끼는 좀 풀었어? 난 그냥 버리고 싶던데. 두 번째 시험은 상상도 못하겠고."

"글쎄. 평소에 보던거랑 별반 다를 게 없던데. 그냥 장식품으로 쓰라고 안겨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쓸모가 없어. ...사실 알아냈다고 해도 호그와트 대표한테 알려줄 만한 이유도 없고."

호그와트쪽 대표가 웃음을 터트렸다. 어디에 웃을만한 부분이 있는지 민호는 잘 영문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대화하는 사이에 몇 번 모퉁이를 돌자 창문이 벽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부에 있는 창문에 마법을 걸어둔 건 아닌지 창 밖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해가 거의 다 져서 숲 뒤 쪽으로 붉은 기운이 사그라들어가며 눈을 찔렀다. 배에 하나 둘씩 횃불이 오르고 있는 게 보였다. 웃음을 멈춘 호그와트 대표가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토마스. 토마스야.(Tomas. I'm Tomas.)"

"아. ...나는 민호."

"알아. 불의 잔에서 이름 나올 때 들었어."(I know. I heard it when your name come out from Goblet of fire.)

웃음이 조금 섞인 매끄러운 발음이 귀를 두드렸다. 민호는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경쟁자이니만큼 이름을 기억하는 게 어렵지도 않건만 왜 기억이 나지 않았을까. 토마스의 뒤통수를 보며 민호는 느려진 발을 조금 재촉했다. 아무것도 아닌 안부 인사 같은 것들이 둘 사이를 오갔다. 누가 보면, 경쟁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안하고 부드러운 대화들이었다. 지나치게 평화로워서, 오히려 어색함과 껄끄러움이 느껴지는 그런 대화이기도 했다. 토마스가 두어번 헛기침을 했다.

"-날이 꽤 추워졌지? 덤스트랭은 추운 지방에서 왔다고 하던데."

"뭐. 그쪽이 워낙 추워서 여기는 별로 춥지는 않지만."

"그럼, 다행인데... 크리스마스도 얼마 안 남았네."

"...해가 꽤나 짧아졌지."

"파티, 그, 트리위저드 대표는 파트너가 꼭 필요하다고 하던데."

"그래?"

"어어. 뭐, 좀, 귀찮은 제도긴 한데. ...여튼."

토마스가 문득 발을 멈추었다. 창문밖을 주시하고 있던 민호는 부딪히지 않기 위해 발을 멈추었다. 복도는 벌써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토마스가 뒤를 돌아보았다. 붉은 빛에 한껏 길어진 그림자가 복도 벽에 늘어섰다. 아까까지 벽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던 것 같은데, 그림이 없는 복도인 걸까, 어쩐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 음, 하고 말을 끌던 토마스가 한번 헛기침을 했다. 큼, 하고 올라오는 소리가 마치 목이 잠겨 있었던 것 같았다.

"-파트너, 있어?"(Do you have a partner?)

민호는 왠지, 멈춘건 조금 전인데 지금에서야 발이 멈추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 그 어떠한 정적이 귓가를 맴돌았다. 어- 하고 말을 끌다가 민호는, 아까 토마스가 그랬던 것처럼 헛기침을 했다. 달콤한 바닐라 향이 코끝을 조금 간질였다. 저녁에 조금 먹은 카스타드 크림의 향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 마냥.

"...글쎄."(...Well.)

왜 자신은 이 말에 대답하고 있을까. 달콤한 향이 나서? 웃어 넘길 수도 있는 일인데, 왜인지 얼굴 근육이 움직이지 않았다. 민호는 토마스를 쳐다보았다. 아주 약간, 자신보다 시선이 높았다. 1센티미터, 아니 그보다 조금 더? 까만 눈동자 두 개가 아주 낮은 각도로 자신을 간절히 쳐다보고 있었다. 눈조차 깜박이지 않아 어딘가의 뒤로 숨지도 숨기지도 않고 아주 똑바로. 웃어 넘길 수 없는 그 뭔가가 공중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감, 같은 것. 잘 익어서 물기가 넘치는 과일이 너무 익어 바닥에 떨어지려는 것처럼. 심장이 좀, 빠르게 뛰었다. 아주 묘한 기분이었다. 민호는 어깨를 으쓱 움직였다.

"아무리 그래도 대표끼리는, 파트너를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Gosh."

탁, 하고 터지면서 긴장감 넘치던 그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토마스가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떨어져내린 홍시를 제대로 받아내지 못한 기분이 들어 민호는 약간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손이 끈적끈적한 주황색 물로 가득히 물들어버린 것 같았다. 아니, 그것보다 조금 더 나쁘게. 바닥에 떨어져 터진 홍시에 개미가 줄줄히 기어가는 것을 보는 기분이었다. 받아냈어야 했는데.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러네, 생각해보니."

토마스는 여전히 머쓱하게 웃고 있었다. 민호가 그 작은 단감의 행방을 곱씹는 동안에 토마스는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호는 아주 찰나의 후에 발을 옮겼다. 복도가 침묵으로 젖어들었다. 바닥에 깔린 카펫에 침묵이 배어들어 질척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해가 완전히 떨어진 건지 군데 군데 피워올린 등을 제외하니 복도가 완전히 어두컴컴해 져 있었다. 계단 몇 개를 내려가고 나니 찬바람이 훅 끼쳐왔다. 토마스가 발을 멈추었다. 정문의 옆에는 횃불이 매달려 있었다.

"바로 아랫층이니까, 배까지 가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을 걸?"

"...알고 있는 길이야. 고마워.(Thanks.)"

토마스가 어깨를 으쓱 움직였다. 계단과 복도 사이의 네모진 층계참에 멈춰선 토마스를 스쳐서 지나가다 민호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토마스는 난간에 기대어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고 계단을 내려가려 하는 민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민호는 입천장에 혀를 두드려 딱, 하는 소리를 냈다. 입 안에서 공기가 터지면서 혀가 조금 아려왔다. 토마스가 민호를 주목했다. 민호는 약간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왜 이런 소리를 냈지?

"...아냐. 다음에 보자."

"...어어, 뭐."

약간 묘한 표정을 지었던 토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민호는 다시 몸을 돌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보다는 못하지만 한결 낮아진 밤공기가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토마스는 정문을 가로지르는 민호를 보다가 몸을 돌려서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는 민호의 뒤를 따른 보람이 아주, 조금은 있는 것 같았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