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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해리포터au, 수위는 없으나 오메가버스, 네임버스 세계관입니다.

*대괄호[] 안은 한국어라는 설정입니다. 인소 같아요 죄송합니다.

*속편 스코치 트라이얼의 캐릭터 스포일러가 있으되 캐붕일 예정입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막 첫번째 선수가 입장했습니다!

마이크가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흥분한 것 같은 높은 목소리가 퀴디치 시합장을 잔뜩 울리고 있었다. 해설자는 없는 편이 나은데. 민호는 조금 인상을 찌푸렸다. 덤스트랭에서도 해설자가 떠들고 있으면 집중이 덜 되는 것 같아서 일부러 블러져를 해설자쪽으로 날린 적도 있었다. 약간 벌점을 받기는 했지만, 어쨌든 기숙사를 망라하고 팀의 내부에서는 상당히 호평이었다. 그 해설자가 워낙에 말이 많았어서- 저 쪽은 아마 외부에서 영입해 온 해설자인 듯 싶었다. 입고 있는 게 호그와트 교복 망토가 아니었다. 민호는 경기장을 한 바퀴 빙 돌았다. 바람이 애매했다. 아예 센 편이라면 블러져를 날리는 데 생각을, 아니, 오늘은 블러져를 때려야 하는 날이 아니라 블러져를 피해야 하는 날이었다. 익숙하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스니치는 어디까지 날아가지? 범위가 있나? 경기장 바깥까지 날아가지는 않지? 수색꾼들이 떠드는 걸 좀 더 열심히 들었어야 했나. 퀘이플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 거였던가. 민호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바람이 좀 더 강해졌다. 그나마 제복이라 퀴디치 경기복에 비해 바람에 펄럭이는 게 덜해서 그게 다행이었다. 덜 무겁고, 바람의 저항이 더 약해진다. 귀를 스치는 바람 소리 사이로 덤스트랭 학생들이 응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좋은 집안에서 나고 자라 점잔을 뺀다고는 하지만 어린것 들이라 이 상황이 꽤나 즐거운 모양이었다. 미-노! 미-노! 미-노! 미-노! 병신새끼들. 미노가 아니라 민호라니까. 몇 번이나 교정해 줬는데 발음도 죽어라고 못해요. 민호는 경기장의 중간에서 서쪽으로 약간 치우친 쪽에 자리를 잡았다. 민호가 나온 선수 대기실이 있는 쪽이었다. 그게 관례였다. 자, 그럼, 상대팀은 누구지? H, 라면 헝가리일까. 국제 경기 팀? 그것도 상당히 야박한 일이다. 성인이 되었다고 하지만 경험치로는 상대가 안 될텐데-

퍼드덕, 하는 날개짓 소리가 들렸다. 민호는 방망이 대신에 마법지팡이를 든 오른손을 들어 시야를 가리는 햇볕을 막았다. 상대팀은 하늘에서 내려왔다. 흔한 방법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건 상대팀에게 압박감을 주는 연출법이다. 어디 팀인지 옷 색깔이나 볼까. 짙은 갈색이었다. 오, 그리고 청회색. 그리고 또 옅은 갈색.

"...Bullshit."

민호는 작게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뺨 근처로 작은 깃털 하나가 살짝 스쳤다. 상대팀에게는, 날개가 달려있었다. 팔 대신 날개가 달려있고, 여성의 상체, 그리고 다시 독수리의 하체. 맹금류의 발톱이 햇살 아래 반짝거렸다. 푸드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일곱이 나란히 민호의 앞에 늘어섰다. 하르퓌아이(Harpyiae). H가 그런 뜻이었나. 민호가 입술을 씹었다. 깔깔 웃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폭력 행사는 금지된다. 그런 뜻이었군, 빌어먹을. 민호는 빗자루를 멈춘 상태에서 혀로 어금니를 핥았다. 지금 민호가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은 몇 개 되지 않았다. 기껏 해보아야. 그래 기껏해 보아야. 지금 스니치가 공중에 떠올랐습니다- 해설자의 말이 귓가에서 웅웅거렸다. 찌륵거리는 조그만 공이 민호의 눈 앞에서 부산스레 움직이다가 저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등 뒤로 위협적이지만 익숙한 바람소리가 스치고 올라갔다. 민호는, 빗자루 손잡이를 꾹 쥐었다. 하르퓌아이들이 민호의 얼굴을 호기심 넘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합이 시작됩니다!

퀘이플이 가운데에 있는 청회색의 하르퓌아이와 민호의 눈 앞으로 떠올랐다. 민호는 즉각적으로 빗자루를 앞으로 기울였다. 쭉 뻗은 왼팔이 퀘이플을 낚아챘다. 민호는 몸을 기울임과 동시에 빗자루를 몸쪽으로 당겼다. 오로지 이 시합을 위해 준비한 새로 나온 상품인지 빗자루가 재깍재깍 말을 들었다. 민호는 직각으로 솟구쳐 올랐다. 뒤에서 비명같은 목소리가 따라 붙었다. 새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그 목소리는 빠르게 귓가에서 떨어져 내렸다. 구름이 너무 낮게 머물러 있어서 민호는 또 급히 빗자루의 각도를 낮추어야 했다. 민호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은 기껏해야 오랜 퀴디치의 경험을 살리는 것 정도였다. 뒤에서 날개짓 소리가 빠르게 귀를 저몄다. 민호는 방향을 또 직각으로 꺾었다. 이번에는 왼쪽으로. 그리고 직각보다 한참 낮은 각도로, 아래를 향해. 곡예비행. 민호가 취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지였다. 그럴 수 밖에. 민호가 퀴디치를 할 때 항상 쥐고 있던 건 기껏해야 클럽이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없- 눈 앞에 블러저가 달려들어서 민호는 또 한 번 방향을 꺾어야 했다. 잔디가 다시 눈 앞에 녹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퀴디치 경기장은 온연히 푸른 색이었다. 깃털 한 조각조차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다들 어디로 흩어졌지? 민호는 아주 잠깐 그렇게 생각했다. -오른쪽 어깨로 발톱이 파고들려고 하기 직전까지는.

고도를 순식간에 몇십미터씩 올리고 떨어트려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머리 위에서 목표를 잃은 맹금류가 다시 위로 날아올랐다. 그래, 저쪽에서 이쪽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퀘이플이 땀찬 손에서 자꾸 미끄러지려고 들어서 민호는 얼굴을 찡그렸다. 스니치는 아직 꽁무니조차 보지 못했는데 자칫 잘못하면 사냥 당할 수도 있었다. 다시- 이번에는 일곱마리 중 대다수가 잠시 멈춰선 민호를 향해 급강하했다. 민호는 다시 급발진 했다. 어떻게 해야하지? 왼볼을 발톱이 얕게 스쳤다. 시야에 빠르게 벽이 들어왔다가 골대 세 개가 스치고 색이 다른 또다른 벽이 들어왔다. 아니, 옅은 녹색, 잔디, 땅이다. 민호는 또 급히 방향을 바꿨다. 셔츠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땀과 피가 뒤섞여서 흘러내렸다. 사냥, 사냥, 빌어먹을 맹금류들 같으니라고. 굶겼나? 사람을 잡아 먹을 정도로 배가 고픈 건가? 저들의 시선을 돌릴 게 필요했다. 귓가에 빽빽 울리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사람들 떠드는 소리, 새들의 울음소리, 바람소리. 소리. 소리가 너무 시끄러웠다. 새떼들 같으니. 새 떼. 민호는 빗자루를 몸 쪽으로 당겨 조금씩 위로 올라갔다. 크게 원을 그리며 360도를 돌아 하르퓌아이들의 머리 뒤쪽에 멀찍이, 아주 잠깐 멈췄다. 민호는, 빗자루를 꼭 잡다 못해 경련을 일으킬 것 같은 오른손을 빗자루에서 떼어냈다. 청회색의 하르퓌아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총구를 겨누듯, 지팡이를 겨누고. 미노선수마법을사용하려는걸까요폭력은금지되어있는데-

"아비스."

지팡이 끝에서 샛노란색의 새 떼가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민호의 손바닥보다도 조금 작은 새 떼가 공중에 풀어져서 제각기 목소리를 뽐내기 시작했다. 하르퓌아이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새 떼들에 붙박이기 시작했다. 민호는 다리를 박찼다. 빗자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튕겨나가듯이 움직이기 시작한 빗자루가 제멋대로 움직였다. 민호는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지팡이를 옮겼다. 지금 스니치를 찾지 못하면 답은 없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민호는 위로 올라갔다. 구름이 강한 바람덕에 조금 자리를 옮겨서 햇볕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저 아래, 하르퓌아이 쪽의 골대 아랫부분 주변에서, 아주 작게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민호는 오른손으로 빗자루를 살짝 쥐고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거의 직각에 가까운 각도로 내리꽂히고 있음에도 민호는 빗자루에서 손을 떼었다. 바람소리와 함께 뒤에서 날개짓소리가 커지는 것 같아서 빗자루의 속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오른손 안에, 아주 차가운, 금속의 감각이, 주먹 안에서 아슬하게 빠져나가지 못하고, 잡았-

오른쪽 어깨에서 통증이 몰려왔다. 꿰뚫린 어깨의 감각이 이성과 시야를 혼미하게 뒤바꿨다. 초록색이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민호는 속도를 줄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퍽, 하고 몸이 축축하지만 부드럽지는 않은 땅바닥에 부딪혔다. 퀘이플을 끼고 있던 왼쪽 옆구리가 무언가에 찍힌 것처럼 아팠다. 청회색 깃털이 퍼득퍼득 날리고 있었다. 심판이 호루라기를 부는 소리가 들렸다. 철퍽거리는 발소리가 민호를 향하고 있었다.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깨에서 금속성의 서늘한 것이 빠져나가서 민호는 앓는 소리를 내었다. 어두웠던 시야가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민호는 아픈 어깨를 억지로 움직여 오른손을 확인했다. 움직이지 마-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어깨가 타는듯이 아파왔다. 금색이 반짝였다. 민호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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