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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해리포터au, 수위는 없으나 오메가버스, 네임버스 세계관입니다.

*대괄호[] 안은 한국어라는 설정입니다. 인소 같아요 죄송합니다.

*속편 스코치 트라이얼의 캐릭터 스포일러가 있으되 캐붕일 예정입니다. 죄송합니다.

 

"정신 차린걸 환영한다, [똘추]야."

시야가 제대로 복구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욕설이 들려서 눈을 두어번 깜박이자 칸막이 커튼 앞에 앉아있는 반짝이는 블론드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봤자 시야가 한 없이 흐려서 모자이크마냥 뭉개져 보였지만. 목소리가 웅웅 울리는 게 느껴졌다. 언제 한 번 이런 걸 겪어본 것 같은데. 한 두어달 전 쯤이었나. 민호는 몸을 일으키려 뒤척이다 오른쪽 어깨를 날카롭게 찌르는 통증에 얼굴을 찡그렸다. 잠긴 목에서 으,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어깨 붙은지 얼마 안 됐어. 가만히 있으래."

왼쪽 어깨가 지긋이 눌렸다. 민호는 일어나는 걸 포기하고 대신 정신을 좀 차리기로 했다. 누군가 진통제를 먹인건지 영 몽롱했다. 밖에서 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호 깼니? 어깨가 몇 번 부드러운 손길에 꾹꾹 눌렸다. 간호원 분이-P 무슨 부인이었는데 이름이 기억이 나질 않았다-이제는 많이 나은 것 같다며 손에 물약을 한 병 더 쥐여주었다. 덤스트랭 교수의 목소리와 처음 듣는 남자의 목소리, 병동 간호원 그리고 뉴트의 목소리가 번갈아가며 들렸다. 거의 다 나은 것 같네요, 실력이 좋은 편인데, 마법약쪽은 탑 클래스인 인재에요, 두런두런 목소리가 오가다가 왼어깨가 두어번 두드려지더니 다시 목소리가 작아졌다. 옆에서 의자가 긁히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커다란 문이 열렸다가 다시 닫히는 소리. 흐린 시야가 아주 천천히 회복되었다. 높은 천장과 파이프 침대 사이의 공기에서 마법약 특유의 냄새가 났다. 마지막에, 민호는 기억을 더듬었다. 스니치를 잡았던 것 같은데.

"시합은?"

제가 듣기에도 가라앉은, 탁한 목소리가 나왔다. 하여간에 퀴디치 선수란, 뉴트가 좀 짜증스레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말을 하지 않고 잠깐 기다리자, 뉴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볼거리로는 네가 제일 나았어. 다른 애들은 곡예비행 같은 거 안했거든. 보바통의, 브랜다랬나. 걔는 가고일하고 붙었는데, 시합 시작하자마자 옵스큐로(안대를 상대방의 눈에 씌운다)로 모든 가고일의 눈을 가렸지. 그리고 퀘이플을 주우러 갔고. 스니치 찾는데 애를 먹어서 좀 걸리는 바람에 안대를 뜯은 가고일한테 공격받을 뻔 했지만 너처럼 어깨가 뚫리거나 하지는 않았어. 호그와트 애는 와이번이랑 붙었는데 얘가 빗자루를 잘 못 타나 보더라고. 이상하게 계속 꼬아서 날다가 중간부터 중심을 잡기 시작했는데 덕붙에 얘를 쫓아다니던 와이번이 자기들끼리 추돌했어. 스니치는 금방 찾은 편이었고. 점수는 셋 다 근소한 차이기는 한데, 네가 중간. 다친 것 때문에 점수가 까였어. 머리 쓰는 것도 점수로 가산하는지 보바통이 제일 높고 호그와트가 제일 낮아."

"...중간은 갔으니 다행이네."

아무래도 심하게 다친것은 민호 혼자 뿐인 듯 싶었다. 병동 안에는 웅성거리는 소리도 별로 없이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 몸이 들뜨는 신열로 실려온 첫날 때처럼. 민호는 몸을 일으켰다. 몇마디 나누지 않는 사이에 통증도 무엇도 한결 가라앉아있었다. 마법약이란 놀라워. 머글 세계에서는 몇날 며칠을 정양해야 했을 텐데. 문득 뉴트가 뭐라고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낮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민호의 미간이 조금 구겨졌다.

"뭐?"

뉴트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고개를 숙이며 한쪽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할 때처럼 얼굴을 가렸다. 아까보다는 조금 더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 응급처치를 담당한거, 갤리야."

"-네 네임 파트너?"

뉴트의 고개가 조금 움직였다. 끄덕인 것 같았다. 졸업도 아직인데 국제경기 벌써부터 뭔가를 담당하다니 상당히 수재인 모양이었다. 아니면 엄청난 노력가거나. 그러나 그게 왜 한숨의 대상이 되는지 민호는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워낙에 제 사생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흘리지 않으려는 놈이다 보니-기숙사라서 저절로 드러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관계가 어떻게 되어가는지는 잘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기분이 좋아보이는 걸로 봐서는 멀쩡해 보였는데. 뉴트가 다시 중얼거렸다.

"아는 척도 안 했어."

-그럴 수도 있다고는 생각했는데. 아니, 사실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뉴트의 목소리가 점점 더 가라앉아갔다. 운명 같은 건 없다, 믿지 않는다, 자신은 오메가가 아니다. 갤리가 제 입으로 말했다. 글쎄? 자신은 믿는다. 그리고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얽히고, 섥히고, 분명히 언젠가 맡아본 적 있는 연하지만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하지만 정말이면 어떻게 되는 걸까. 부정적인 생각이 아주 천천히 머리를 잠식해간다. 너는 나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고, 있을 수도 없는 그런 사람이고, 오로지 나의 착각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얼굴도 모르는 상대를 사모하며 버텨왔는데 그게 네가 아니라면. 너 아닌 또다른 사람을 이렇게 사랑하는 게 나는 이토록이나 두려운데.

노네임의 민호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언가이기도 했다. 베타들이 알파와 오메가를 이해할 수 없듯이, 노네임은 네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주 당연하지만 걱정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타인은, 타인을.

"민호(Minho)."

뉴트가 똑바른 발음으로 민호를 불렀다. 뒤에 오 발음이 조금 늘어졌지만 저정도면 괜찮은 편이었다. 민호는 그 목소리에서 아주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아주 최근에, 이렇게, 아니 이것보다도 똑바로 자신의 이름을 부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던 것 같았다. 누구였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미노, 민호우, 정도로 뭉뚱그려버리는 외국인 천지인 곳에서, 아주 또렷하고, 바른 발음으로, 민호?

"배가 뚫리면, 돌아볼까?"

민호는 눈을 깜박였다. 고개를 숙였던 뉴트가 고개를 들었다. 표정이 사라진채 텅 빈 모습이었다. 주어도 목적어도 무엇도 없지만 이해할 수 있는 그 짧은 단락이 공기를 빠르게 냉각시켰다. 훈훈하게 불을 때고 있을 것이 분명한 병동의 창가에서, 왜일까, 찬공기가 스며들어오는 것 같았다. 덤스트랭의 겨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습한 영국의 공기인데 뼈가 시려오는 것만 같은 기분이- 아. 민호는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을 떠올렸다. 검고, 너덜너덜한 망토의 후드를 깊이 눌러쓴, 행복과 기쁨을 먹고 사는 생물이- 디멘터가- 뉴트가 픽 웃었다.

"농담이야."

으슬으슬 몸이 떨려오는 기분이 들어서 민호는 괜히 얼굴을 구겼다. 쓸데 없는 농담을 하고 있어 [똘추새끼]가. 뉴트가 코웃음을 치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배고프니까 먼저 저녁 먹으러 간다. 뉴트는 평상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손을 얼굴께까지 들고 손바닥을 자신에게 내어보이며 반장의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었다. 왠지 저 쪽이 좀 더 위험한 기분이 들었다. 민호는 구긴 얼굴을 펴지 않았다.

"좀 이따가 여기, 어, 폼프리 부인이었던가? 그 사람이 한 번 더 검사하러 올거고 그 때 교수님도 올 걸? 식당까지 알아서 온다고 믿는다."

"-어, 뭐."

커튼 밖으로 나가고, 발소리가 몇 번 들리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순수한 혈통이란 무엇일까. 민호는 고개를 들었다. 광기란 과연 어디에서부터 유래하는 것일까. 다만 문제가 한가지 있다면,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것 정도일까. 트레이가 달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 벌써 일어나 앉았니? 잠깐만 기다리렴. 교수님 오시면 바로 검사하고 보내줄게."

"....네, 부인.(Mrs.)"

민호는, 생각은 잠깐, 미뤄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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