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미만은 구독을 권하지 않습니다. *BL임. 한낮의 밀회. 미노소프트의 계열사에서 나온 소셜네트워크 데이팅앱 이름이다. 이름만 들어도 물음표를 띄우게 만드는 혼종 같은 이 앱은 대충 사람을 소개해주고 1대1로 대화하게 해주는 트위터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전체 공개 트윗 기능은 없지만 자기 소개 글은 있고 거기에 어느 정도까지는 길게 작성하는 게 가능하니까. 김독자는 거기에 대대적인 화력을 쏟아붓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코웃음을 쳤다. 뭔가의 혼종은 그만큼 성공하기 어려운 법이다. 포카락도 아니고. 그래도 이름 하나는 잘 지었네 싶기도 했다. 홍보 모델로 유중혁을 캐스팅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귀가 좀 뜨였다. 돈을 진짜 많이 쏟아붓고 있구나. 나름 탑 모델의 반열에 드는 유중혁을, 데이팅앱에 ..
탑 꼭대기는 거의 항상 조용했다. 아이를 키운다고는 믿을 수 없게 늘상 침묵에 젖어 있었다. 김독자는 말이 없는 펀이었고 그런 김독자를 보고 자란 유중혁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필요한 말만 했고, 그 생활은 의외로 불편하지 않았다. 아니, 편리와 불편을 가리는 것은 무용했다. 유중혁은 탑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었으니까. 자신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유중혁은 모른다. 탑 안에서 태어났는지 밖에서 태어났는지조차 알 수 없다. 김독자가 자신을 낳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일단 그는 남자였으니까. 그러나 김독자는 착실하게 유중혁을 키우고 있었다. 자신의 기억이 닿는 한에서기는 하지만, 유중혁은 김독자 외에는 본 적이 없었고 자신은 어리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고 유중혁이 김독자를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는 눈을 떴다. 볼이 차가웠다. 얼음에 대고 있는 것 같은 느낌. 흐릿했던 시야가 몇 번 눈을 깜박이자 천천히 돌아왔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그렇게 걸어 다니는 발들이. 구두도 있고, 운동화도 있고, 스니커즈도 있고, 하이힐도 있고. 정신이 들자마자 그는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 맨바닥에 누워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차디찬 길바닥 한가운데에. 내가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던가? 길바닥에 쓰러질 정도로? 그러나 술을 마신 기억은 없었다... 아니, 떠오르는 것 자체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옷차림을 돌아보았다. 정장바지에 구두, 셔츠 위에 흰 트렌치코트. 주변을 돌아봤을 때 그리 이상한 옷차림은 아니었다. 다만 저 수많은 사람들처럼 갈 데가 있지 않을 따름이었..
모든 기록은 역사가 될 확률을 지니지만, 모든 역사가 기록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록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쓰는 역사에 관해서 김독자는 자신보다 더 정통한 이는 없으리라 예측했다. 김독자는 사관이었다. 이 말을 다시 좀 다르게 쓰자면 말단 중의 말단 품계를 받고 있었다. 아, 물론 완전히 미관말직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 계단 올라가 보았자 끝급은 거기서 거기였고, 봉록도 쉬이 오르지 않았다. 그나마 왕의 사관이었다면 자신의 기록이 무엇이나마 세검정에서 씻기기 전 무엇이나마 될 수 있으리라는 미약한 기대라도 걸어볼 수 있겠으나, 글쎄. 김독자는 왕자의 사관이었다. 본디부터 왕자에게까지 사관이 붙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관이란 무릇 국가의 대소사를 기록으로 남기므로써 미래에 이를 반추해보고 좋은 일은 반복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