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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D/레히삼

[유기유장] 황제 au

ㄷㄷㄷㄷ 2019. 3. 24. 19:12

*트위터에 썼던 썰을 그대로 백업합니다. 퇴고X

*추후 수정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 유기유장 보고 싶어... 유기가 유장 제 무릎에 앉히는 거 보고 싶다... 동양풍으로... ㅎㅎ 웃으면서 유장 허리 끌어안아서 앉히는 유기와 부담감 백배로 유기 무릎에 앉는 유장 보고 싶다... 황제와 신하여도 좋고 왕과 후궁이어도 좋아... 반듯하게 관 쓴 유기하고 흐트러진 머리의 유장...

헛 유기 관 씌워주는 유장 보고 싶다 약관의 나이에 든 유기에게 관 올려주는 유장 헉 역키잡

어린 유기를 보며 유진이 어렸을 때가 꼭 이랬지 하고 생각에 잠기는 유장이라던가... 저의 신부가 되어 주십시오, 하고 무술 선생인 유장에게 당돌히 말하는 유기라던가... 유장, 그대에게 묻겠소. 어떠하오? 하고 능글하게 묻는 유기라던가....

오랫동안 유기의 곁에 머무르면서 유기에게 결혼을 권하지 않는 유장 보고 싶다... 필요하다면 하시겠지요, 하면서... 그러나 유기는 유장만을 돌아보고... 결혼 생각이 없고... 흑흑 호위무사를 후궁으로 앉히는 유기 보고 싶어...

사랑받으며 어색해 하는 유장과 곱고 귀한 것 대하듯 구는 유기... 는 내 자가 복제군(널부러짐) 어쨌든 보고 싶다... 유장에게 연지 발라주는 유기... 유장이 원한다면 다시 주지육림을 지어줄 의사까지 있는 유기...

경국지색이라더니 별 것 없군, 같은 소리하는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유기을 말리는 유장... 헉 유기가 그냥 왕자이고 유장이 호위무사일 때라 유장이 덤벼드는 것도 보고 싶다 유기는 안 말림... 유장은 적당히 하고 물러나지만 유기는 그렇지 않는... 그런 거...

자신을 후궁으로 앉힌다는 소리에 가장 극렬하게 반대하는 게 유장이어도 좋지만 가장 먼저 폐하의 명을 받든다고 부복하는 게 유장이어도 좋다... 무슨 명령을 내려도 따르는 삐뚤어진 충성심 같은 거...

나의 내자.

...폐하, 그것은 아랫것들이 쓰는 말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부인.

...폐하. 말을 올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그저 한낱,

아뇨, 나의 내자, 내 부인.

......

당신이 중전이 될 것입니다.

......

설령 내가 죽어도.

-폐,

당신만이 황후입니다. 당신만이.

황후가 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는데(집안도 그렇고) 자꾸 정치적인 것을 고려하지 않듯이 유장만을 보는 유기와 그런 유기가 약간은 당황스러운 유장... 그러면서도 유기가 속삭이는 미래가 달콤해 어쩔 줄 모르는 유장...

앗 여기서는 유장이 세상은 정글이야, 하는 표현은 못하겠네... 뭐라고 할까... 세상은 숲과 다름이 없다. 이런 표현 할까... 어느 순간에 목덜미를 물릴 수 있고 언제 화살이 날아올지 모르는 것이 세상이다. 무엇 하나를 믿고만 있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야. 하는 유장... 그리고 스스로 바보를 자처하는 유장이라던가 크으으으으ㅡㅇ

강직한 유장... 충성스런 유장... 무엇이든 유기 말이라면 당장이라도 목숨을 걸 수 있는 유장... 유기가 널 버렸다, 하는 말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충성은 오직 유기에게만 바쳐진다는 유장... 음 캐붕인가... 유장이 이렇게 단단한 아이가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사랑과 기대를 받으며 컸으면 좀 단단할 수도 있지(막 나감) 유기가 왕으로 등극할 때 머리를 조아리며 그 혜에 입을 맞추었는데 유기와 첫날밤을 맞이하면서도(정치적인 내막이 있으리라 생각했음)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유기가 무릎꿇고 유장 맨 발등에 입맞춰서 당황하는 유장...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막강한 유기도 좋고 귀족인 제갈량과 힘겨루기를 하는 것도 좋다... 유장에게 기대는 유기... 흑흑

애모하는 나의 부인, 하고 속삭이면서 무릎에 앉힌 유장 어깨에 기대는 유기와 그런 유기 보면서 심장이 덜컹거려 어쩔 줄 모르는 유장...

저 때까지 유장도 결혼을 안 해야 후궁으로 앉힐 수 있겠지... 왜 결혼을 안 했을까... 나쁜 소문이 돌았거나... 가문이 몰락 직전이었거나... 후자가 더 나으려나...

가문이 갑작스레 몰락해서 있던 결혼자리도 밀리고 그런 상황에서 황실의 첩지를 받게 된 건 어떨까... 다시 승승장구하게 된 집안에 염증을 느끼는 유장과 당신을 손에 넣었다고 하는 유장...(빻음)

첩지도 높은 거 못 받았는데 궁 안의 유일한 후궁이라 다들 어색해 하는 거 보고 싶다... 상왕인 유표와도 한번씩 인사하러 가지만 어색하기만 하고... 매일매일 유장 궁에 행차하는 유기...

얼른 중전을 들여 후사를 보아야 한다는 주장에 유장을 중전으로 앉히겠다고 주장하는 유기 보고 싶다... 유장마저 후사를 보셔야하지 않냐고 묻는 것에 당신만이 중전입니다, 하는 유기 보고 싶네

->

그러니까, 아무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이야기다.

유기가 황가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나고서 5년이 흘렀을 때, 유장은 약관의 나이로 두번째로 낮은 관직의 무사로 봉해졌다. 황가는 안정적이었다. 황태자는 유기와 나이 터울이 컸고, 따라서 유기는 꽤 예쁨받는 황자였다. 어느정도 나이가 차면 출궁하여 적당히 공국을 다스릴. 학식도 괜찮았고 무술에도 흥미를 보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황태자를 가르치고 있는 무장을 뽑아다 다섯째 황자에게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다섯살은 많이 어렸다. 그렇게 어영부영 차일피일 밀리다가, 그 자리는 승진할 시기가 될 유장에게 뚝, 하고 떨어졌다. 갑작스레 대감이 와서, 말 보듯 고개를 휙휙 돌리더니, 제가 황자의 무술 스승이 되었다 말하였다. 유기가 무술에 흥미를 보인지 근 몇 달만의 일이었기 때문에, 유장은 골치가 아프리라 생각하며 궁으로 들었다.

저하.

무슨 일이냐.

내관의 부름에 답하는 목소리는 꽤나 또랑또랑했다. 유장은 몸을 굳히고 칼을 꾹 쥐었다.

저하의 무예를 살펴주실 스승이 봉해졌나이다.

이제야?

자신도 궁금한 부분을 황자가 콕 집어 말해서 유장은 웃음을 참으려 이를 악물었다. 철그럭, 칼집 안의 칼이 가볍게 흔들렸다. 훌륭하게 기름을 머금은 경첩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제 역할을 다했다. 창호지가 곱게 발린 문이 열렸다. 한 아이가 문 안에 앉아있었다. 약간 불퉁한듯 보이는 그 얼굴이 몇 년 전의 유진이를 떠올리게 했다. 유진이는 아명이고 본명은 유비긴 했지만, 유장에게는 유진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했다. 아주 어렸을 적, 자신이 무예 공부를 하고 있으면 그 옆에서 맨손 격투를 연습하다 지칠 때 저런 표정을 짓곤 했었다. 그러면 유장은 유비를 혼내었다. 세상은 험한 숲과 같다 유비. 포기한다면 게서 끝나버려.

스승님.

유장의 생각을 깨트린 것은 웬 어린 목소리였다. 눈 앞의 황자가 싱긋 웃었다. 굉장히 어른스러운 웃음이어서 유장은 조금 놀랐다.

...이라 부르면 되겠습니까.

황자님.

나이든 내관이 엄중히 말하였다. 황자가 고개를 돌렸다.

스승은 스승입니다. 군과 사와 부는 한 몸과 같다 하였습니다.

황자님, 그 어찌.

스승님, 이리 불러도 괜찮겠습니까?

...말을 낮추시지요 저하.

스승님.

황자는 얼굴을 굳히고 똑바로 불렀다. 이가 황가의 법도에 어긋나는지 유장은 잘 알 수가 없었다. 유장은 내관의 눈치를 조금 보고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명일부터 무예를 하시어도 괜찮을런지요, 황자님.

저는 좋습니다 스승님.

그럼 명일에 뵙겠습니다, 황자님.

명일 보지요.

유장은 꾸벅 인사를 하고 뒤를 돌아 궁을 나섰다. 그 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

유기는 꽤 열심히 무예를 배웠다. 그 나이대 아이처럼 쉬고 싶다고 투정을 부리지도 않았고, 꾀를 내지도 않았다. 기초 단계에서 지루하다며 더 높은 것을 알려달라고 역정을 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중간에 모시는 내관들이 한 번씩 와서 다과의 핑계릉 대면 유장이그 틈에 쉬는 시간을 가질 정도였다. 올라오는 것은 주로 약과 같은 유밀과였다. 그 때에만 유장은 유기가 어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유기는 어른스러웠다. 응석을 받아주는 어른이 많을 다섯째 황자치고는 지나치게.

스승님.

...예 황자님.

유장은 조금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존대에 대해 서로 소리 없는 힘겨루기를 하다 상호 존대로 굳어진 찰나였다. 어린 황자가 마루에 앉아 자신의 눈을 올려다 보았다.

관은, 무겁지 않으십니까.

이게 무슨 의밀까. 유장은 눈을 깜박였다. 자신의 머리에는 관이 없었다. 유장의 머리는 훈련에 방해가 되어 짧게 자른 머리였다. 문관들은 관을 많이 쓰고 다녔지만 무관들은 달랐다. 특히 젊은 무관들은 자른 머리를 많이 하였다. 그렇담 관직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런 어린 아이가 그렇게나 돌려 말하다니 믿기 어려웠다. 유장은 무어라 대답해야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얼떨떨히 대답했다.

...묵직하지요. 그래서 무관들은, 많이들 벗어 던지고 다닙니다.

그렇습니까.

황자가 차를 한 모금 들었다. 뜨거운지 미간을 조금 찌푸리곤 유기는 잔을 내렸다. 유장의 입에도 조금은 쓴 차였다. 유밀과를 좋아하는 아이의 입에는 맞지 않을 것이었다. 유장은 그제야 자기가 무엇을 챙겨왔다는 것을 알았다. 유장은 주섬주섬 주머니를 열었다. 잘 포장해 온 엿가락이 나왔다.

...황자님이 좋아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동생이 좋아하는 것이라 조금 싸 왔습니다. 유기는 그것을 빤히 보다 빙긋 웃었다. 여전히 어른스러운 웃음이었다.

고맙습니다, 스승님.

...아닙니다, 저하.

유장은 탁자 위 유밀과 접시 옆에 엿가락들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 가락을 집어 한 입 크기로 부러트렸다. 유기는 그 중 하나를 집어 우물우물 당과 먹듯 먹었다. 햇살이 참으로 좋았다. 잠시 그리 앉아있다가 유장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따라 일어난 유기에게 맨손 격투를 할 때 손을 어떻게 뻗어야 하는지를 가르쳤다.

유장은 매일 들르지 않았다. 많으면 이틀에 한 번, 적으면 사흘에 한 번씩 들러서 유기의 자세와 동작을 교정해 주었다. 매일 보아주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유장에게 주어진 일거리는, 희한하게도, 유기의 무술 선생 뿐이 아니었다. 녹이라도 많이 나오니 보람이라도 있지. 유장은 그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군사들을 돌보았다. 날이 조금씩 열이 올라서 한낮에 맨 땅에 있으면 지지는 듯한 소리가 날 법 했다. 유장은 길게 숨을 뱉으며 다시 호령했다. 하나, 둘, 소리에 맞추어 군졸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래도 훈련을 받았다고 올라온지 한 달도 안 된 병졸들의 움직임이 나쁘지 않았다. 유장은 북을 두드려 훈련 종료를 알렸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황자님은 잘 하고 계시려나. 유장은 땀을 훔치며 생각했다. 어렵지는 않으신지. 자세가 잘못 들면 고치기도 쉽지 않은데 지금은 어떠하실런지. 유장은 흩어지는 병사들을 보다 뒤를 돌았다. 약조한 날짜는 내일이었다. 내일 가서 뵈면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제멋대로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황자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바빴다. 잘 따라오는 것에 흥이 올라 조금 더 해볼라치면 금세 시종이 따라와 다음 일과를 알렸다. 온갖 공부시간 사이에 황자는 자신을 끼워 넣어 무예 시간을 만들어냈다. 그 어리디 어린 것이. 그리 생각하면 불충일지 모르겠으나 유장은 왠지 그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스승님, 하고 잘 하지도 못하는 발음으로 자신을 따르는 모양새 때문일지도 몰랐다. 유장은 생각을 떨치기 위해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리고 헛기침을 했다. 듣는 사람은 없었다. 유기의 첫 지각이었다. 유장은 마루 앞에 서서 뭔가 기별이 오기를 기다렸다.

다른 궁들은 후원이 정원 중 으뜸이라 하건만 이 궁에는 후원이라 할 만 한 것 대신 마당이라 할 만한 빈 터만 하나 존재했다. 그 후원 아닌 후원에서 유기는 유장에게 무예를 배웠다. 지난 번까지는 그랬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건가. 유장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슨 일이 생겼다손 치기에는 너무나 조용하였다. 후원으로도 아무 무리 없이 안내 되었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 궁인이 유장에게 다가왔다. 유장은 꾸벅, 목례를 하였다.

저하께서는 황상을 뵈러 가시었습니다. 곧 오신다는 기별이 왔습니다. 앉아서 기다리시지요.

황상을.

유장은 반복하듯 읇조렸다. 유장은 마루에 천천히 앉았다. 황자는, 그 어리디 어린 황자는, 정말로 바쁜 몸이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뭔가가 굴러오듯이 발 구르는 소리가 나더니 미닫이 문이 벌컥 열렸다. 쌔근쌔근 숨쉬는 소리가 귀에 들려서 유장은 뒤를 돌아보았다. 머리 위에 얹은 자그마한 관이 거의 흘러내리듯이 흐트러진 옷을 한 황자가 숨을 고르고 있었다. 유장은 피식 웃었다.

스승님. 늦게 되어 송구합니다. 곧, 준비하여.

아닙니다 황자님, 괜찮습니다.

유장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늘은 폐하를 뵈셨다 들었습니다. 많이 피곤하실 터인데 오늘 수업은 쉬시는 것이 좋지 아니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스승님.

고 조그만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유장은 그것이 짐짓 놀라웠다. 유기는 한 번 더 반복했다.

아닙니다. ...준비하여 나오겠습니다.

황자님.

곤치 않습니다.

그 목소리는 화가 난 것처럼 들렸다. 유장은 유기와 눈을 맞추었다. 눈에 비친 것은 화라기보다는 설움처럼 보였다. 눈물이 조금 일렁였기 때문이었다. 유기의 눈가가 발갰다.

제가 연습을 열심히 아니하여 그러시는 겝니까?

제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니 좀 더 보아 주십시오. 스승님. 좀 더 예를 갖추겠습니다.

아뇨, 아뇨 아뇨 당치 않으신 말씀이십니다.

유장은 앞으로 한 걸음 걸어나왔다. 그 어른스럽던 아이는 어딜 가고, 쉬라는 말 한 마디에 이토록 서러워하며 투정하는지. 보통은 반대여야 하는 게 아닐까. 유장은 어색해하며 아이를 달래기 위해 노력했다.

그저, 체력이 모자라실 테니 비축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황자님. 황자님이 노력하시지 않으셔서가 아닙니다.

...정말입니까.

가끔은, 쉬어도 괜찮겠지요.

삶이란 험한 숲과도 같으니, 때로는 쉬어서 체력을 모을 때도 있는 겝니다.

유장은 그런 말을 하는 자신이 낯설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꽤나 낯설었다. 이 아이가 너무나 어른스러워서 그런 걸까. 유장은 유기가 눈물을 떨구려는 듯 눈을 깜박이는 것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예.

스승님. 유기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유장은 후원을 나가다 뒤를 돌아보았다. 유기가 유장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유장은, 천천히 손을 흔들어 주고, 다시 떠나면서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

유기는 느리지 않게 배웠다. 열심히 하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갈 수록 아이는 자랐다. 맨손 격투에서 유장이 정했던 제한은 점점 풀려갔고, 아이는 진검을 손에 들 수 있을 정도로 근력이 늘었다.

그리고 일은 그 때 터졌다.

황태자가 죽었다. 유명을 달리했다고 할 수는 있지만 명을 다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죽음이었다. 말이 날뛰어 목이 부러졌다고 했다. 말 타기를 제 몸 쓰듯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고가 아닐 것이라는 소문이 아무도 모르게, 동시에 모두가 알게 돌았다. 황가에는 대나무 잎이 칼날로 보일 정도로 날카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황자는 넷이고 자리는 하나였다. 유기는 그 황자 중 하나였다. 서로의 수족을 자르기 위해 그들은 서로 발버둥쳤다. 조용히 넘어갈 수 없는 사람은 없었다. 유기도, 마찬가지였다.

스승님.

유기가 울며 외쳤다. 머리가 다 흐트러져 있는 상태였다. 앞에서 내관들이 유기를 막고 있었다. 유장은 그런 유기를 보다가 무릎을 꿇었다. 황실 한가운데에서 국경 끝자락으로의 발령이라니. 품계는 한두계단 올랐지만 누가 보아도 좌천이었다. 제 빈자리로는 다른 황자들의 충직한 신하가 들어서게 될 것이었다. 유기에게는 세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었던가. 유장은 제 아비를 생각했다. 그가 유기에게 힘이 되어줄 것인가. 유기에게는 외척이라고 할 만한 세력이 없었다. 그는 괜찮을 것인가. 유장은 절을 올려 황제의 명을 받들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수련이 끝나지 않았던 상황에 갑작스레 명이 내려와 유장도 유기도 갖춰입은 차림이 아니었다. 유장은 뒤로 돌아 유기에게 다가갔다.

스승님.

유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앞으로가 무섭기도 할 것이었다. 유장은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였다.

그 동안 황자 저하를 뵐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스승님.

불초한 몸이지만...

유장은 말 끝을 흐렸다. 자신은 정치에 약했다. 이 말이 누구에게서 어떻게 해석될지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스승님.

유기의 표정이 울 것 같았다. 이제는 몇 년이 흘러서 더 이상 아이라고 부르기가 어려웠는데도 유장은 저 표정에 뭐라고 달래줘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시달렸다. 유장은 입을 떼었다.

다시 뵙게 되기를, 빌겠습니다.

...스승님.

유장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뒤를 돌았다. 그리고 자신이 좌천되었다는 소식을 전한 관리들을 따라 궁문을 나섰다. 유장은, 이번에는 뒤돌아 보지 않았다. 착잡한 표정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유기의 표정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는 보지 못하였다.

-

국경의 소식은 장궤로 줄줄이 꿰여 올라갔지만 중앙의 소식은 잘 내려오지 않았다. 성벽을 사이에 두고 접전은 끊임이 없었다. 몇 년 사이, 수백 번은 더 유장의 머리는 화살의 과녁이 되었으나, 두어 번 스치듯 비낀 게 전부였다. 다행인 일이었다. 유장은 살아남은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비낀 곳에는 흉이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았다. 중앙의 소식이 내려오는 것은 신입이 들어올 때나 간간히 식량이 내려올 때 정도였고, 그것도 많지 않았다. 그들은 입이 무거웠다. 듣기를 좋아하였으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많지 않았다. 말이 많으면 금방 사람이 바뀌었다. 그들이 상인이 아닌 노릇이었다. 황자들끼리의 싸움은 그래서 여전해 보였다. 유장은 그런 소식을 전해 들은 날이면 더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날 다른 사람보다 열심히 몸을 혹사시켰다. 유장의 검은 날랬고, 날카로웠다. 활을 쏘는 솜씨도 조금씩 더해갔다. 유장은 목숨을 바칠 듯이 굴었다. 군졸들은 그런 유장을 무서워했다.

유비의 편지가 온 것은 그 때였다.

그것이 첫 편지는 아니었으나 드문 편지인 것은 확실했다. 유비의 편지는 거의 일기마냥 매일매일 써 있었고 그것이 뭉텅이로 한 번씩 보내져오고는 했었다. 그러면 유장은 거기에 서투른 솜씨로 몇 자 적어 보내고는 했다. 아버지가 이러한 서신 교환을 못마땅해하시는 것은 분명했다. 큰아들이라는 것이 유력한 황자도 아닌 막내 황자에게 줄을 대다가 결국에는 좌천까지 되었다는 데에 상당한 불만을 품고 계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편지가 오기까지의 간격이 짧다는 데에 조금 놀랐다. 평소라면 한 해에 한 번이 될까 말까였는데, 이번에는 오간지 다섯달이 채 되지 않았다. 유장은 평소에 비하면 거의 얄팍하기까지 한 서신을 뜯어보았다. 종이 한 장이 덜렁 들어있었다. 급하게 쓴 것인지 여기저기 먹이 번져있었다.

형, 이 서신을 받으면,

유가의 유장은 나오라!

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유장은 한 손에 서신을 쥐고 문을 열었다. 중앙에서 내려온 것인지 옷을 잘 갖춰입은 사람들이 마당을 채우고 있었다. 유장은 서신에 흘끔 시선을 주었다가 신을 신고 내려갔다. 어명을 받으라! 외치는 소리가 귓가를 두드렸다. 유장은 부복하며 유비의 편지를 떠올렸다. 당장 올라와. 도사가 외쳤다.

유가의 유장을 황태자의 호위 무사에 봉한다.

막내 황자가 황태자가 되었어.

유장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신 유장, 지엄하신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듭니다. 우렁찬 외침이 마당을 채웠다.

-

유장은 거의 한달음에 수도까지 올라갔다. 말이 많이 지쳤는지 투레질을 하며 식식거리는 소리를 냈다. 계절은 겨울이었다. 국경만큼 춥지는 아니하였으나 땀이 식으면서 공기가 차게 느껴졌다. 유장은 말에서 내려 저벅저벅 발을 옮겼다. 발 밑에서 모래가 부서지는 소리가 선명했다. 유장은 마당에 그대로 무릎을 꿇고 절하였다. 아비의 수염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불초 소자가 아버지를 뵙습니다.

유장이 말했다. 아비는 헛기침을 몇 할 뿐이었다. 안에서 우당탕, 뭔가가 굴러나오는 소리가 났다. 형! 환한 얼굴의 유비가 밖으로 나왔다. 형 건강해보여서 다행이야! 잘 지냈어? 편지는 보냈지만... 유비가 재잘재잘 이야기 했다. 유장은 얼떨떨하게 마당 한 가운데에서 유비에게 손을 잡히고 그 이야기를 말할 새도 없이 듣고 있었다. 아버지가 몇 번 헛기침을 했다. 유비의 말이 멎었다.

유장아.

...예 아버지.

황태자께서 방에 계시다.

가서 뫼시어라. 유장은 눈을 길게 감았다가 다시 떴다.

에, 아버-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하.

아직 관을 올리지 않은 나이의 황자가, 아니 황태자가, 마루에 발을 디디었다. 그 옛날의 어렸던 모습은 어디 가고, 키가 훤칠하여 자기보다도 클 것 같았다. 유장은 눈을 몇 번 깜박이다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저하를 뵙습니다.

유기가 소리내어 웃었다. 그리고 마당으로 내려와 유장의 손을 잡고 일으켰다. 유장은 눈을 몇 번이나 깜박여야 했다. 방긋방긋 웃는 것이 익숙하기은 했지만 자기가 아는 그 어린 황자가 아닌 것 같았다. 유장은 유기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저하.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제 입에서 흘러나왔다. 유기가 다시 방울 구르듯 소리내어 웃었다. 유기는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보았다.

장자가 이제사 돌아왔으니 묵은 회포를 풀어야 하는데 제가 오래 머물렀습니다.

아닙니다 저하, 더 계시다 가시지요.

아닙니다. 먼저 가지요.

유기는 그제야 유장의 손을 놓았다. 그리곤 몸을 돌리고 유장을 보며 방긋 웃었다. 유장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유기는 입을 열었다.

내일 뵙겠습니다, 스승님.

유장은 멍하니 유기가 걸어나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솟을대문 너머로 유기가 걸음걸음 멀어져가고 있었다. 말 한 필이 유기를 따라나갔고 유기는 가볍게 말 위에 올랐다. 자신은 승마를 가르친 적이 없으니 필히 나중에 따로 배운 것일 터였다. 왜인지 가슴이 불편해서 유장은 몇 번 눈을 깜박였다. 형, 추운데 들어가자. 유비가 입을 뗄 때까지 유장은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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