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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 등과 관련이 없습니다.
*10/31 갤리 전력을 위해 작성된 글입니다.
할로윈(Hollween) 가톨릭 만성절의 전날(Hollow eve) 마물이 지옥에서 나오는 날이다. 마물이 인간에게 달라붙는 것을 막기 위하여 가장을 하고 다닌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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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라고?"
갤리는 비상 깜박이를 켜고 잡동사니를 넣어둔 보조석 박스를 뒤졌다. 다 구겨진 종이 한 장과 펜이 나왔다. 종이 위에 몇 번 둥글리자 멀쩡하게 검은 선이 그어졌다.
-거기 간판 있는 데라고 했지? 거기서 직진. 쭉 직진.
"어느 쪽이 직진인데 그러니까."
갤리는 핸들에 고개를 두어 번 박았다. 빠앙- 하고 클락션이 길게 밤하늘을 울렸다. 할로윈 그거 좋아하지도 않는데 파티장에 괜히 간다고 해서는. 클라이언트에게 초대 받은 건데 안 간다고 할 수도 없는 게 난제는 난제였다. 초대 받은 시간이 점심이었는지라 꾸밀 시간도 뭣도 없어서 대충 잭오랜턴만 하나 들고 덜렁덜렁 가고 있었는데, 파티장이 얼마나 외진 곳에 있는지 제대로 찾아가기도 어려웠다. 데이터 요금이 무서워서 내비게이션도 켜지 못했더니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길을 아는 직장 동료에게 전화를 해서 닥달이나 하는 중이었다. 삐깍 삐깍. 전원이 곧 꺼진다는 신호음이 들렸다. 갤리는 필사적으로 전화기에 대고 여보세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나 지금 배터리 4퍼센트 남았거든? 보조 배터리도 없다고!"
-알았어. 그러니까 거기 두 갈래 길에서 숲-
전원이 훅 나갔다. 갤리는 어깨 사이에 끼워 놓았던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바라보았다. 통신사 로고가 막 사라지려는 참이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갤리는 한숨을 쉬고 잡동사니 박스에 핸드폰을 던져 넣었다.
숲이라고 했겠다. 한 쪽은 숲에서 조금 비껴 나가는 길이었고, 한 쪽은 정원처럼 이어진 숲으로 접어드는 길이었다. 나무들도 대강이나마 다듬어진 것 같으니 이 쪽이 맞나 보지. 갤리는 비상 깜빡이를 끄고 클러치를 밟았다. 엔진이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
원래도 해가 져서 어두운 날이었지만 숲 속은 더했다. 터널 천장처럼 가지를 드리운 나무 사이로 차가 꼭 한 대 지나갈 만 한 길이 구불구불 휘어있었다. 들어온 지 꽤나 지난 것 같은데 숲이 깊어서인지 불빛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들어왔지? 시간을 확인해 보려 했지만 핸드폰은 배터리가 나갔고 구형 SUV에는 디지털이고 아날로그고 시계가 탑재 되어 있지 않았다. 갤리는 신음을 흘리면서 머리를 싸쥐었다. 직선 도로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다니 이렇게 한심할 수가 없었다. 이 길이 맞긴 맞는 거야?
상향등을 켰지만 빛은 앞으로 주욱 퍼져나가다 나무에 가로 막혔다. 그 너머로도 얕은 넓이까지 길이 있는 것은 보였지만 그뿐이었다. 갤리는 차 창문을 올렸다. 가을이 다 지나서 그런지 공기가 유독 시렸다. 어제 같은 시간보다 날이 더 추워진 것 같아서 갤리는 손으로 팔을 부볐다.
콧노래 소리가 들렸다. 갤리는 닫던 창문을 다시 조금 내렸다. 분명히 콧노래 소리였다. 근처에 사람이 있나? 갤리는 클러치를 아주 살살 밟으며 천천히 이동했다. 걷는 것보다도 느리게. 시속 5키로미터가 될까 말까 하게 운전을 하고 있으니 구부러진 길에서 사람이 나타났다. 남자였다.
남자는 무릎 바로 위까지 내려오는 검은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고풍스럽게도, 잘 여며진 망토 깃 밑으로 사슬이 나와 반대쪽 망토 깃 아래로 숨었다. 장식 줄을 단 모양이었다. 손목까지 내려오는 주름이 잡힌 흰 셔츠를 입고, 그리 짧지 않은 지팡이를 짚은 손에는 가죽 장갑이 섬세하게 끼워져 있었다. 상향등에 반짝반짝 빛나는 금발 머리 위에는 낮은 챙 모자가 씌워져 있었다. 좋게 말해서 아주, 아아주 고전풍이었다. 평소라면 정신병자를 본 셈 치고 모른 척 지나갔겠지만 오늘은 할로윈이었다. 가장 파티라도 다녀오나 보지 뭐. 갤리는 창문을 반 정도만 내리고 목을 가다듬었다.
"저기요.(Hello.)"
남자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보았다. 상당히 수려한 얼굴이었다. 연예인인가? 저런 얼굴을 본 기억은 없는데. 갤리는 목을 한 번 더 가다듬고 어정쩡하게 입을 열었다.
"혹시 저 쪽에 할로윈 파티 열리는 집이 있나요?"
"있긴 있지만."
남자가 대답했다. 갤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남자가 약간 미안한 얼굴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저쪽은 방금 파티가 끝나서요."
"예? 지금 몇 시인데요?"
남자가 흠, 하고 소리를 내고 주머니를 뒤졌다. 은빛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보는 남자를 보고 갤리는 입을 헤 벌렸다. 공 많이 들였네.
"일곱 시 반 정도군요."
그렇게 일찍? 갤리는 주머니에 회중시계를 넣는 남자를 약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할로윈 파티가 겨우 그 시간에 끝나는 집이 있나? 확실한 건 클라이언트의 초대를 받은 집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일곱 살 먹은 딸아이를 위해서 밤새도록 여는 파티가 북적였으면 좋겠다는 게 그 쪽의 소망이었으니까. 갤리는 감사합니다, 하고 말하고 창문을 닫았다. 클러치를 밟자 엔진이 징징 울었다.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만한 길이라 갤리가 차를 돌리는 데에는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길이 좁아서 전후진을 꽤나 많이 해야하기도 했고. 간신히 앞과 뒤를 바꿔놓고 갤리는 지나온 길을 따라 이동했다. 몇 번 굽이를 돌자 또다시 콧노래 소리가 들렸다. 아까 그 남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숲 밖으로 나갈 생각인가? 갤리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차로는 들어오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걸어서 나가는 데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갤리는 괜히 찝찝한 마음이 들어 남자 옆에서 차를 느리게 하고 창문을 열었다.
"저기, 혹시 픽업 할 차 기다리시는 중이세요?"
남자는 희한한 것을 보듯이 갤리를 보았다가 픽 웃었다. 아뇨. 갤리는 괜히 꺼끌해지는 입에 입맛을 다셨다.
"어, 그럼, 타실래요?"
남자가 웃었다. 맑은 웃음소리가 추운 공기를 가로질러서 갤리는 조금 인상을 찌푸렸다. 남자는 웃음을 멈추고 지팡이를 겨드랑이에 끼었다.
"사양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위험한 발상이네요."
"아, 뭐."
예에.. 갤리는 말 끝을 흐렸다. 위험하다는 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히치하이킹을 하는 살인마라거나, 뭐, 이런 저런 흉흉한 이야기는 신문이나 뉴스에 잊을 만하면 올라오곤 했으니까. 괜히 말했나, 하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데 남자가 입을 열었다.
"할로윈이잖습니까. 뱀파이어면 어떻게 하시려구요."
뭐야 이 또라이는. 갤리는 한참 어이없는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하고, 남자가 오른손을 들자 오른 어깨에서 사선으로 망토가 빗겼다. 남자의 오른손이 갤리의 턱을 쥐었다. 차갑고 미끈한 가죽의 감촉에 갤리의 등에서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당황해서였나?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남자가 손을 움직이는 대로 고개가 딸려갔다. 목이 쭉 뽑혔다. 남자의 얼굴이 가까워왔다. 갤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농담입니다."
태워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남자의 손은 어느새 다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갤리는 눈을 깜박이며 아, 네, 네에... 하고 닭살을 떨치기 위해 노력했다. 남자가 뒷좌석에 올랐다. 탁, 하고 차 문이 닫혔다. 갤리는 얼떨떨하게 클러치를 밟았다.
-
남자는 표지판이 있는 두 갈래 길에서 내렸다. 갤리는 그 길로 차를 돌려 숲 옆으로 난 길을 탔다. 얼마 가지 않아 가정집이 나타났고, 클라이언트의 딸은 사탕과 초콜릿이 가득 든 플라스틱 잭오랜턴을 무척이나 반겼다. 대략의 파티를 즐기고 11월 1일이 된 시점에서야 갤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갤리는 휴일 아침 9시까지 아주 깊은 잠을 잤고, 아침 겸 점심으로 단호박 샐러드와 블루베리 잼을 곁들인 토스트를 먹었다. 11월 2일 아침에는 당연하게 회사에서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었지만.
"갤리."
상사가 책상을 노크했다. 갤리는 고개를 들고 옆을 바라보았다. 상사는 뒤에 청년을 하나 달고 있었다. 신입이에요? 들릴 듯 말 듯하게 묻자 상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갤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긴, 이번이 갤리의 차례긴 했다. 갤리입니다. 갤리는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약간 어두운 금발머리와 수려한 얼굴이 어디서 본 적 있는 것만 같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뉴트라고 합니다."
신입이 다른 사람보다 약간 큰 송곳니를 드러내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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