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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야, 부자라고. 난 부자야!
손에서 짤랑짤랑 소리가 나며 금화들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내렸다. 무슨 상관일까, 다시 퍼올리면 될 것을!
산 깊숙한 데까지 약초를 캐러 왔다가 갑자기 꺼지는 허방다리로 추락한지 30분. 동굴을 따라 쭉 걸어오니 거대한 동공이 나를 반겼다. 산모퉁이에서 주운 빛나는 돌은 마력석이었다. 마력석을 통해 결계를 비집고 들어오자(그것도 나중에 알았지만) 그 안에는 거대한 드래곤의 시체가 놓여있었다. 시체인 줄 몰라서 5분 정도를 숨도 못 쉬고 있었던 건 비밀이다.
산 아래 약초꾼의 딸이 죽은 드래곤의 레어를 발견할 확률이 몇 퍼센트나 될까? 심지어 그 드래곤이 재산을 처분하지 않고 죽었을 확률은?
드래곤의 시체가 있었던 동공 한 켠에는 금화와 온갖 색을 가진 보석들이 쌓여있었다.
당연하지만 눈이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이것만 있으면... 골골대는 어머니를 위한 약과 마을이 진 빚과 마법에 특출나다는 도련님의 아카데미 학비와 그 모든 것이 해결된다! 어쩌면 보너스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전부 다 내가 먹을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는 그 순간의 내가 5초 후에 서러웠지만 어쨌든, 그 모든 것이 어렵지 않았다. 손에서 좌르륵 쏟아지는 금화와 보석의 소리가 어쩜 그리 영롱한지!
하지만 나는 금세 정신을 차려야 했다.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사는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돈이 많아진다고 생각해 봐라. 사람들은 의심하고 두려워할 것이다. 그렇다고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멀리 도망갈 수도 없었다. 게다가 이 돈을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어쨌든 레어 근처에 붙어 있어야 했다. 나는 조심스레 약초 주머니에 금화 두 닢을 집어넣었다. 우리 가족의 한 달 생활비에 맞먹는 금액이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반짝이는 마력석을 어디에 두어야 잘 뒀다고 소문날지 궁리를 했다. 침대 밑에 둬 보았자 걸릴 것이고 나만 알만한 곳에 잘 보관해야 한다. 머리장식이나 노리개 같은 걸로 만들어서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신이 난 발걸음으로 산을 내려갔다.
그 날 밤, 늑대가 우는 듯한 소리가 산을 울렸다.
돈이 좋긴 좋았다. 금화 두 닢으로 사온 약은 누워만 지내던 어머니를 그래도 일어나서 편물 정도에 손을 댈 수 있을 정도로 몸을 회복시켜서 나는 그 주 내내 마을을 날아다니다시피 했다. 어디서 귀한 약초를 발견해서 시내에 팔고 왔다는 소리를, 마을 사람들은 내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바구니에 굴러 들어오기 시작한 과일들이 하나씩 늘어서 바구니가 묵직했다.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을 외곽의 집까지 뛰어갔다. 문이 열리는 소리조차 경쾌했다.
"엄! ...마?"
억양이 갑자기 툭 튀었다. 흔들의자에 앉아있는 어머니 앞에 한 청년- 혹은 소년이 서 있었다. 무릎까지 내려온 검은 코트와 윤이 나는 검은 신발을 신은 남자가 느리게, 그러나 절도있게 뒤를 돌았다. 새카만 머리카락이 벽난로 불을 따라 반짝였다.
남자가 느리게 입을 떼었다.
"약초꾼 데보라?"
그 목소리는, 침착하게 들렸지만, 그 밑에 명백히 분노를 깔고 있었다.
"...누구세요?"
목소리가 떨리게 나왔다. 어머니가 입술을 깨무는 게 보였다. 남자가 싱긋 웃었다.
"소개가 늦었군. ...아들렌 백작가의 바론이라 하오."
...영주님 댁의, 도련님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문을 닫고 식탁에 바구니를 얹었다.
"도련님이 이런 시골 구석에 무슨 일로 찾아와 주셨을까요."
"글쎄."
뚜벅뚜벅. 구둣발소리가 마룻바닥을 따라 기어왔다. 내 바로 앞까지 다가온 도련님은 팔짱을 끼었다. 가죽장갑을 낀 손 안에 들린 지팡이 끝이 바깥쪽을 향했다.
"드래곤의 심장을 받으러 왔다고 하면 그대가 알 것 같은데."
...딸꾹질이 나오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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