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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누거누와 위시즈가 없는 세계에서 아현이와 큰세의 만남 같은 거
안녕, 안녕
난... 제대로 살고 있진 않은 거 같아.
이세진은 단톡방을 한 번 터치했다. 반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눈썹을 한 번 문지르고 이세진은 설정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대화창 나가기 버튼을 노려보다, 눌렀다.
"해보죠, 실장님."
앞에서 중년의 남자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
자이롭은 그렇게 해체되었다. 길고 긴 시간 끝에, 그렇게.
이세진은 그 때부터 바쁘게 뛰어다녔다.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모두를 신경 쓰고 뒤치닥거리를 해야 했지만 이제 이세진은 자기 혼자만 건사하면 되었다. 그것은 확실히 마음 편했다. 다른 사람이 담배를 피우던 말던 클럽을 가던 말던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다만. 다만 가슴 한 켠이 비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좋은 노래를 부르고 싶은데 자신의 한계에 부닥칠 때, 다른 그룹이 승승장구하는 걸 볼 때.
다 그런 거지 뭐. 하고싶은 대로만 사는 사람이 어디있냐? 이세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가, 나머지는 삼키고, 다시 스케줄에 올라탔다.
네가 날 그리워 해 줬으면 좋겠다.
그럼 어린 시절로 돌아간 거 같을 거 같아.
연말의 스케줄은 빡빡했다. 예능인으로써 다시 데뷔한 것과 같은 이세진도 딱히 다를 바는 없었다. 연말 시상식에 몇 번이고 참석하고-동명이인 배우는 도무지 자기와는 맞지 않았다. 메소드 연기를 한다더니 진짜인가?-있는 와중에 매니저의 말을 들은 건 그 때 쯤이었다.
"이번 스케줄 특별 공연 중에 선아현 있대. ...너 동창이라며?"
이세진은 잠시 멈추었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에이, 내 동창이 몇명인데? 일일히 다 찍으면 인하트 터져~"
"그래도 선아현이잖아 선아현. 걘 신비주의니까..."
매니저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이세진은 핸드폰 화면에 눈을 박았다. 그러나 초점은 흐렸다.
안녕, 안녕
마지막으로 널 본 게
2학년 쉬는 시간이었지.
선아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발레 연기자를.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발레 연기자중 하나로 꼽혀서 두 유 노의 일부가 된 사람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세진은 그보다는 선아현을 잘 알았다. 아니, 잘 알았었다고 해야 하나.
아니, ...사실은 잘 몰랐을지도. 말 그대로, 몇 마디 나눠본 동창 정도일지도 모른다. 이세진은 그 때에도 연습생 준비를 하느라 바빴고, 학생회장 선거를 돕느라 바빴고, 다들 웃고 떠들며 알고 지냈으니까. 1학년 때 잠깐 전학 온 선아현은... 그래, 자신이 잘 알리가 없었다. 다 그런 거지. 눈이 번쩍 뜨이게 예쁘긴 했었다. 이세진은 그렇게 생각하고 샵으로 들어갔다. 머리를 만지며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그건 날 마냥 어리게 만들었지.
있지, 나 좀 깨게 해 줄래?
레드 카펫을 밟고 카메라 마사지를 받자 비명 같은 함성 소리가 울렸다. 이세진은 볼을 콕 찌르고 덩치에 맞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는 애교를 부리며 포토월 앞에 섰다. 앞에서 별이 터져나가는 것처럼 플래시들이 작렬했다. 아마도 자신이 원한 것이 이런 순간이었을까? 이세진은 함박 웃으며 포토월 앞을 떠났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뒤돌아 선 자신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회장 안은 북적였다.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를 지나가는데 몇 번이나 말이 걸려서 이세진은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몇몇 감독들은 벌써 취했는지 얼굴이 얼큰하게 벌게져 있었다. 하여간에 술고래들이라니까. 같은 테이블인 예능인들이 이세진을 반겨주었다. 반겨주었나? 잘 모르겠다. 이세진은 자리에 앉아서 물을 단숨에 한 잔 비웠다. 잔잔하게 깔리던 음악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자라면서 점점 더 둔해지고
이제는 뭔가를 다시 느끼고 싶어
이세진은 고개를 꺾어 피로한 목근육을 조금 풀었다. 한 자세로 계속 앉아 있는 것은 확실히 코어근육에 부담이 갔다. 이런저런 운동을 하는 게 정답이긴 한 모양이었다. 이제는 아이돌이 아니라지만 그래도 태도 논란을 내고 싶지는 않았다. 앞에서 특별 공연을 하는 아이돌들에게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닌가, 나도 저 일원이 되고 싶었나. 이세진은 헛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질투를 하기에도 너무 늦어서 이제는 차라리 덤덤했다. 앞에서 연륜 있는 배우가 사회자를 맡아 솜씨 있게 진행해 와르르 웃음이 쏟아졌다. 이세진도 같이 웃었다. 그리고 선아현이 등장했다.
나 좀 깨게 도와줄래?
여긴 온통 취한 어린애들 뿐이야
난 이제 뭔가를 다시 느끼고 싶어
선아현이 전학온 것은 1학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 때는 이세진과 같은 반이 아니었다. 정말, 예쁘게 생긴 남자애가 전학 왔다는 것을 다른 반 친구에게 들은 정도였다. 처음 만난 것은, 아니지, 처음 그 얼굴을 본 것은 복도에서 그를 처음 스쳐 지나갔을 때였다. 와 정말 잘생겼다. 이세진은 그렇게 생각하고 곧 잊었다.
그리고 2학년으로 올라와서 이세진은 선아현과 같은 반이 되었다. 둘 다 키가 만만치 않게 커서일까, 맨 뒷자리에 둘은 나란히 앉게 되었다.
"안녕~"
"......"
선아현은 첫 인사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세진은 굴하지 않았다.
"처음 인사하네. 난 이세진. 네 이름 많이 들었어. 선아현이지?"
선아현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나랑 얘기하기 싫은가? 이세진은 생각했지만, 얼굴은 별로 그래보이지 않았다. 이세진은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 이제 고2라고 압박이 들어오는데 어렵다는 둥, 자기는 야자를 안 하는데 너는 어떻냐는 둥... 선아현은 고갯짓으로 모든 의사를 표현할 뿐이었다. 이세진은 거의 혼자만 이야기를 하다 쉬는 시간을 보냈다. 그것도 한 번 뿐이었다. 그 다음 시간부터는 '그 활발한 인싸 이세진'을 사람들이 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 안녕."
그래서 선아현의 목소리는 다음날이 되어서야 들을 수 있었다.
있지, 내가 뭘 다시 느끼게 도와줄래?
예전으로 돌아가 보는 건 어때?
이세진은 생각 외로 선아현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원래 예고에 다니고 있었고, 발레를 배웠는데 부모님의 일이 있어서 이쪽으로 전학을 왔는데 이쪽의 예고에 자리가 나지 않아 잠시 이세진의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이라 했다. 그래도 발레 지도는 계속 받고 있다고 했다... 둘은 생각보다도 친해질 수 있었다. 인문계 반에 끼어있는 예체능계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였을까. 식단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처지라 급식도 먹을 수 없어서 둘은 교실에서 점심 도시락을 함께 열었다. 선아현의 식사량을 보고선 이세진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선아현은 오히려 이세진의 식사량을 보고 놀랐지만.
그래도 굉장히 친한 것은 아니라서, 이세진은 점심을 먹고 온 다른 친구들에게 불려가기 일쑤였다. 선아현은 남은 시간에 무엇을 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관심이 없기 이전에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같이 놀자는 것을 선아현이 번번히 거절하기도 했었다.
안녕, 안녕
내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나... 곧 전학 가."
선아현이 그 말을 꺼낸 것은 매미가 울어대던 어느 여름날의 점심시간이었다. 이세진은 마지막 하나 남은 양상추 쪼가리를 삼키고 선아현을 바라보았다. 커튼 사이로 새어들어온 햇볕이 바람을 따라 흔들렸다.
"예고에 자리 났대?"
"응..."
얼마 되지도 않는 샐러드를 휘저으며 선아현이 말했다. 어제 말한 걸로는 콩쿠르가 얼마 남지 않아서 바쁘다고 했었다. 갑자기 옮겨도 괜찮은 걸까? 이세진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럼 가서 데뷔 하는 거겠네. 이야 멋있다."
"...그래?"
"어, 나도 비밀 얘기 하나 해 줄까?"
이세진은 짖궂게 웃었다.
"우리 소속사에서도 곧 데뷔 얘기 나온다? 크으, 이 이세진 님이 빠질 수 없지. 안 그래?"
장난처럼 하는 말이었다. 그럼 애들이 킬킬거리면서 손을 내젓고는 했으니까. ...그러니까.
"응."
이런 대답을 기대한 게 아니었다는 뜻이다.
"세진이라면 잘 할 거야."
이세진은 조금 벙쪘다. 선아현의 얼굴에는 놀리는 듯한 웃음기가 없었다... 조금 감동한 기분이 들어서 이세진은 웃었다.
우리 계속 연락하기로 했었지
"선아현 너 데뷔해서 나 잊지 마라? 연락하는 거다?
" "응."
"좋았어. 인맥 생겼다."
선아현은 웃었다. 이세진도 웃었다. 그리고 선아현은 다음날부터 등교를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 다음주에 선아현이 전학을 갔다고 했다.
그리고 우린 최선을 다했어
그리고 이세진은 자이롭으로 데뷔했다. 핸드폰은 업무용으로 바뀌었고, 학교는 점점 더 이름만 걸치게 되었다. 학생회장 선거를 도왔던 게 저 먼 옛날처럼 느껴질 쯤 이세진은 졸업식에 갔다. 수능은 최선을 다해 치렀지만 다른 애들만큼 당연히 잘 나오지는 않았다. 그 해도 겨울이 이상하게 추웠다.
내 모든 새로운 친구들
우리는 파티장에서 웃고 있었지
선아현의 발레 공연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기립박수를 치는 사람도 몇몇 보였다.
이세진은 웃는 얼굴을 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아까의 취한 감독님들이 비틀거리는 게 보였다. 회장이 진정되자 사회자가 웃으며 다시 진행을 해 나갔다. 이제 시상이 이루어질 모양인지 다른 사회자가 소개되었다. 그리고 잠시 쉬는 시간이 생겼다.
물을 너무 켰는지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담배를 피우러 가는 사람들을 웃는 얼굴로 배웅하고 이세진은 화장실을 향했다.
그리고 우리는 웃는 법을 잊어버렸어
그 외의 모든 것들에 대하여
화장실에서 손을 닦고 있자니 이상하게 기분이 가라앉았다. 아이우에오, 볼을 움직이며 근육을 풀었다. 그러고 나서 웃는 얼굴은 썩 잘생겨 보여서 이세진은 약간 마음을 놓았다. 계속 웃고 있는 것도 일이라니까.
화장실은 이상하게 사람이 없었다. 다들 담배 피우러 갔나? 방광도 튼튼하지. 그렇게 생각하며 물을 잠갔다.
화장실 문이 마찰 소리와 함께 열렸다. 화장실 안으로 선아현이 들어왔다.
있지, 나 좀 깨게 도와줄래?
자라면서 점점 더 무뎌졌어
인사를... 해야하나? 아니, 해도 되나? 너무 오랜만에 만난, 그것도 성공한 동창이라니 순간적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세진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선아현은 슬쩍 목례를 하고 문 가까이 있는 세면대로 다가가 물을 틀었다. 이세진은 어색하게 목례를 하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하긴, 쟤도 반 년 전학왔던 데의 밥 메이트 정도는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물론 나 혼자기는 했지만, 여하간에. 중요한 건 아니지 않은가? 이세진이 그렇게 생각하며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을 때.
"오랜만이야 세진아."
선아현이 입을 열었다.
난 뭔가를 다시 느끼고 싶어
나 좀 깨게 도와줄래?
잘 못 들었다고 하기엔 너무 또렷한 목소리였다. 이세진은 놀란 표정을 지우고 밝게 웃었다.
"어,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그리고 이세진은 제 혀를 깨물고 싶었다. 당연히 잘 지냈겠지! 이런 거나 물어보고 이세진 다 죽었네! 그러나 선아현은 대답했다.
"응, 난 잘 지냈어."
그리고 물을 껐다.
"세진이 너는 어땠어?"
여기는 덩치만 큰 애들이 온통 취해있어
그리고 난 뭔가를 다시 느끼고 싶어
왜 저 평범한 안부인사가 유난히도 묵직하게 느껴졌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잘... 지냈나? 나는 잘 지냈나?
최선을 다했지만 자이롭은 결국 해체되었다. 예능인으로써는 길을 다져가고 있지만, 내가 꿈꾸었던 건 이런 것이 맞나? 서늘한 감각이 뒷목을 후려쳤다. 이세진은 애써 밝게 웃었다.
"나도 잘 지냈지~"
"그래?"
선아현이 살짝 웃는 것이 거울을 통해 비쳤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어두운 조명 때문인지, 그 얼굴은 살짝 그늘져 보였다.
뭘 좀 느끼도록, 날 도와줄 수 있어?
있지, 옛날로 돌아가 보는 건 어때?
이세진은 일부러 웃으며 말을 걸었다.
"근데 이게 얼마만이야? 우리 고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 보는 거지?"
"그렇지. ...데뷔했다는 소식은 뉴스로 들었지만."
"그렇게 크게 났나? 나도 너 데뷔했다는 소식 들었는데."
안 들을 수도 없었지만 말이다. 선아현이 뒤로 돌았다.
"직접 듣고 싶었어."
...어?
선아현은 잔잔하게 웃고 있었다.
"음, 연락하자고 했잖아? 그래서... 데뷔 소식은 알려줄 줄 알았거든."
"아, 음. 회사 기밀이었어서."
"아... 그럼 어려웠겠다."
그런 얘기도, 했었던가? 하긴 중간에 핸드폰이 바뀌어서 연락하기도 어렵긴 했다. 이세진은 조금 얼떨떨해졌다.
옛날로 돌아가보는 건 어때?
"그, 세진아 미안한데."
...나 너랑 번호 교환할 수 있을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은 너야
화장실에 빠져 죽은 줄 알았다는 감독의 말에 이세진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잠시 시시덕거리며 얘기를 나누다 슬쩍 흘렸다.
"아 근데 선아현 씨는 자리에 안 계시네요? 얘기 좀 붙여볼까 했는데."
"어우 말도 마라, 얼마나 바쁘신지 공연하고 그냥 갔댄다."
"예?"
선아현이 주고 간 전화번호가 주머니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귓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넌 내 주파수를 따라서 울리고
"...미안. 아무래도 갑자기 좀 그렇지?"
"어? 어어..."
선아현은 어색하게 제 주머니를 뒤졌다. 반으로 접은 수첩을 뜯어낸 것 같은 종이가 나왔다.
"이거 내 전화번호야."
괜찮으면 연락 줘. 이세진은 어색하게 종이를 받아들었다. 선아현은 곧 화장실에 온 적도 없는 듯이 사라졌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은 너야
넌 내가 마냥 어리게 만들어
이세진은 머리를 털고 나와 침대에 주저 앉았다.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종이쪽이 계속 눈길을 잡아챘다. 이세진은 옅게 한숨을 쉬고 뒤로 드러누웠다. 이불 위로 수건이 흩어졌다.
갑자기 연락을 주어서 나는 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기껏해야 고등학교 때 얘기나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동창들과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건 그거 나름대로 즐겁겠지만 생산적이지도 않고... 무엇보다 우리는 너무 많이 변하지 않았는가. 일단 파파라치나 sns 목격담이 잔뜩 붙긴 하겠군. 이세진은 몸을 굴려서 모로 누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고민하고 있을까?
바로 내가 원하던대로
전화번호만 간직해도 충분히 좋을 일인데, 뭣하러 이렇게 고민까지 하는 걸까. 만날까, 말까 하고. 아니 근데 만나서 또 뭘 하려고? 이세진은 몸을 돌려서 반대 모로 누웠다.
선아현과는 점심 메이트긴 했지만 변변히 나가서 같이 논 적은 없었다. 아무래도 둘 다 바쁘기도 했고... 이세진은 벌떡 일어났다. 자신도 소위 말하는, 학생들이 노는 대로 놀아본 적은 없는 것 같았다. 이제는 그렇게 놀 수도 없는 나이였다.
왠지, 선아현이라면,
너라면.
그 때로 돌아간 것처럼.
내가 꿈을 가지고 있었던 때처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은 너야
너는 내 주파수를 따라 울리고
[아현아]
[우리 노래방 한 번 가볼래?]
[코인 노래방 같은 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은 너야
너는 내가 원하는 그대로 나를 마냥 어리게 만들어
[세진이야?]
[나는 좋아]
[언제 볼까?]
안녕, 안녕
난 제대로 살고 있진 않은 거 같아
노래방은 신났다. 당장 옆방에 있는 학생들이 눈을 빛내는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탬버린을 두들기던 선아현은 생각보다 노래를 잘했다. 샹송 발음이 너무 좋아서 이세진은 선아현을 신나게 놀렸다. 정말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는.
네가 날 그리워 해 줬으면 좋겠다
그럼 어린 시절로 돌아간 거 같을 거 같아
"아~ 너무 잘 놀았어. 안 그래 아현아현? 노래방 와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그러게. 난 노래방 처음인데."
"진짜?? 노래 너무 잘 하던데."
"세진이가 더 잘했어."
"농담은~"
"농담 아닌데."
선아현이 노래방 소파 위에 널부러진 이세진을 보며 웃었다.
"나 너 데뷔하고 노래 다 들었거든."
안녕, 안녕
널 마지막으로 본 게 2학년 쉬는 시간 때였지
이세진은 어색하게 볼을 긁적였다.
"그... 그래?"
"응. 노래 잘 부르던데."
"...뭐 나는 보컬 멤도 아니었는데~"
"아냐, 잘했어." 이
세진은 속에서 뜨거운 게 올라오는 것 같았다. 정말 잘했을까? 내가 뭘 못해서 자이롭이 깨진 게 아닐까? 나는 최선을 다 했을까? 정말로? 그냥 내가 포기해 버린 게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다시 해 봐도 될까?
"내가 널 보고 반할 정도로 잘 했어, 세진아."
그건 날 어린아이처럼 만들었지
눈가를 붉히고 이세진은 그의 팬을 향해 환히 웃어주었다.
"이야 솔로 데뷔라도 해 볼까? 피쳐링 해 줄 거지?"
"어... 어? 내가?"
"노래 잘 한다니까요 아현아현~ 도와 줘야지~"
"아니, 나는, 세진이에 비하면..."
"콜라보 무대 같은 건 어때? 발레 동작을 접목해서..."
"그래도 돼? 그렇게라면..."
난 뭔가를 다시 느끼고 싶어
그냥, 뭔가를 다시 느끼고 싶을 뿐이야
다시 돌아가 보는 건 어때?
현실성은 없는 조잡한 얘기였지만 즐거웠다. 다시 해 보고 싶었다. 다시 모든 사람에게, 나라는 아이돌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미 나이도 많고, 이미지 소비도 많았지만, 어떤가? 뭐라도 해 볼까?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자꾸 들뜨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선아현이 옆에서 자꾸 예쁘게 웃은 탓이었다.
있지, 날 좀 깨게 해 줄래?
자라면서 점점 더 둔해지고
이젠 뭔가를 다시 느끼고 싶어
"우리끼리만 데뷔 해 볼까. 아무도 모르게?"
나 좀 깨게 도와줄래?
여긴 온통 덩치만 커진 애들이 취해있어
난 뭔가를 다시 느끼고 싶어
"그래볼까?"
이세진을 좋아한다는 선아현이 예쁘게 웃고 있었다.
나 좀 뭔가를 다시 느끼게 도와줄래?
내가, 정말 뭔가를 다시 느낄 수 있을까?
그래서 이세진은 저지르기로 했다. 아주 어렸을 때도 안 그랬는데, 혈기에 못이겨서, 선아현을 끌어안아 버렸다.
다시 돌아가 보는 건 어때?
"난 정말로 네가 좋아, 세진아."
그러니까, 여기부터는 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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