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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 등과 관련이 없습니다.
*양궁에 관해 지식이 없는 편입니다. 이상한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파일 철에는 서류가 딱 다섯 장 들어있었다. 글씨 크기를 줄여서 빽빽하게 내용이 들어차 있다고는 하지만 한 사람의 일대기라기에는 너무나도 적은 양이었다. 그나마도 최근으로 올라올 수록 양이 파격적인 수준으로 늘어났지, 과거 날짜는 띄엄띄엄하다 못해 없었다. 뉴트는 눈을 내리깔고 서류를 훑었다.
"인터뷰 자료는 따로 두었습니다. 국가 대표 선정 이후 자료양이 늘었더군요."
"이게 전부인가?"
"...예."
늘었다고 해 보았자 인터뷰만 따로 떼어낸 자료 더미는 얇은 책 한 권의 두께를 넘지 않았다. 자료를 다 모았을 터인데도 기껏 저 정도 인 것이다. 뉴트는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과거 자료는?"
"...없습니다."
수행 비서가 드물게 잠시 시간을 끌고 말했다. 그것도 부정적인 답을 말하는 것은 더욱 드문 일이었다. 찾는 중입니다, 같은 긍정적인 답이 대다수였고, 결국은 찾아내곤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없습니다, 라는 단정이라니. 심지어 그 자료를 찾기 위해 몇 년이나 끌어놓고. 그야말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 마냥 특정 시점 이전의 정보가 전혀 없습니다. 거주지, 출신 학교, 부모 같은 것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가까이에 사람을 접근 시켜도?"
"예."
죄송합니다. 비서가 고개를 숙였다. 뉴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쓰려오는 목덜미에 손을 얹었다. 붕대를 단단히 두른 위에 손을 얹자 시큰한 통증이 밀려왔다. 뉴트는 파일철을 보는 양 고개를 떨구고 눈을 깜박였다. 너덜너덜한, 떨어져 나가기 직전의, 수첩에서 찢어낸 종이 한 장이 서류 맨 위에 자료로 붙어있었다. 다급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필사적인 얼굴이기도 했다. 자료에 적혀있는 핸드폰 번호는 지금까지도 한 번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뉴트는 파일철을 덮었다.
"올림픽에 인턴 한 자리 알아봐. 양궁 쪽으로. 그리고 그 동안 내 스케줄 비워."
-
갤리는 잠시 숨을 멈췄다. 속으로 셋을 세기도 전에 손 끝이 비었다. 시위가 퉁겨나가는 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화살이 과녁에 맞아 떨어지고 나서야 갤리는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러나 화살은 중간에서 아주 약간 비껴나 있었다. 성적으로 치면 괜찮은 편이었지만, 그렇게 마음에 드는 결과는 아니었다. 굳은 살이 박힌 손 마디가 얼얼했다. 연습일 뿐인데도 몇 번이고 쏘다 보면 정신이 몽롱했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수건으로 땀을 닦고 벤치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았다. 당연하지만, 부재 중 통화는 하나도 오지 않았다. 통화 기록을 찾아봐도 모르는 번호, 등록되지 않은 번호는 하나도 없었다. 전화 번호를 주었다는 것을 알고 난 매니저는 갤리가 셀레브리티라도 되는 것처럼 스토킹과 온갖 전화에 시달릴까 두려워하며 갤리를 몰아세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차라리 그랬으면 누가 했는지 알아내서 전화라도 걸었지. 갤리는 한숨을 쉬고 핸드폰을 치웠다. 연습을 잠시 쉬러 왔던 동료-단체전에서 한 팀이었다-가 애인이라도 있냐고 갤리를 놀렸다. 갤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 움직였다.
"그래서, 애인이 그렇게 좋아?"
이야기는 식당까지 따라붙었다. 빵과 얇게 썬 햄, 이름이 어려운 과일을 우적우적 먹다가 할 말을 잃은-사실 먹느라 말을 할 수 없기도 했지만-갤리는 일단 입 안의 음식을 꿀꺽 삼켰다. 급하게 삼켜서인지 목이 메었다. 가슴을 치면서 음료수를 찾자 물 한 잔이 식판 옆에 놓여졌다. 갤리는 단숨에 물을 들이켰다.
"뭐, 콜록, 뭐?"
"애인 말야, 애인."
애인, 이라고 말하며 단체전의 또 다른 동료는 양 손을 눈가까지 들어 올려 검지와 중지를 까딱까딱 움직였다. 큰 따옴표를 표시하는 거라고 매니저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큰 따옴표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데는 좀 오래 걸리긴 했지만, 중요한 건 지금은 안다는 뜻이다. 갤리는 식탁 한 켠의 냅킨을 뽑아서 입가를 정리했다. 묻히고 먹는 버릇은 도통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애인 없는데."
"너 폰 보는 버릇이 얼마나 유명한지는 알아?"
"그건 잘 모르겠는데..."
"인터뷰에서 물어볼지도 몰라. 근데, 정말 없어?"
갤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입에다 간하지 않고 구운 닭가슴살을 집어 넣었다. 그리 입맛을 돋구는 맛은 아니었지만 한 끼에 아무리 적어도 한 덩이는 먹으라고 식단이 짜여진 터라 갤리는 우울한 낯으로 닭가슴살을 우걱우걱 씹었다. 입으로 닭가슴살을 쑤셔 넣다시피 하는 갤리를 바라보며 동료는 음료수를 빨대로 약간 마셨다. 음료수가 바닥을 보이는지 쪼르륵, 하는 공기 소리가 울려퍼졌다.
"뭐, 잘해봐. 이따 인터뷰나 잘 하자."
"인터뷰가 또?"
"얼마 안 있으면 본선이니까."
둘 다 나란히 한숨을 쉬었다. 말이라는 것은 어렵다. 무슨 질문이 들어올지도 모르고,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이상한 소문이 날지도 모른다. 그렇게 유명할 필요도, 이유도 없건만 기자들은 또 신이 났다. 갤리는 양상추를 입에 우겨 넣으며 어떻게 하면 인터뷰를 빠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정말로, 본선이 코앞이었다.
-
시간은 무책임하다. 본선 날짜는 아주 금방 다가왔다. 금방이라고 하기에도 빠른 속도여서 갤리는 그 시간 동안 연습을 잘 했는지도 헷갈렸다. 시합이 가까워 올수록 손에 익은 활조차 낯설어진다. 그립 부분을 만지작거리자 손에 금세 땀이 찼다. 축축하게 젖어 드는 감촉이 기분 나빴다. 이러면 손이 미끄러질 수도 있었다. 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는데 밖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또 시간이 흐른 모양이었다. 한 팀이 이기고, 한 팀이 졌다. 이긴 팀과는 맞붙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갤리는 손을 몇 번 쥐었다 폈다 했다. 시합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긴장이 되는 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지 숨을 깊이 들이 쉬거나 다리를 약간 떠는 선수도 있었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져서인지 들어오세요, 하고 나는 소리도 예리하게 나가는 것 같았다. 정작 말한 사람도 흠칫 놀랄 정도였다. 손잡이가 돌아가고 문이 열렸다.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두꺼운 안경을 쓴 인턴 한 명이 위를 집게로 집는 방식의 파일철을 들고 휴게실로 들어왔다. 목걸이가 아니면 인턴이라고 알아보기도 힘들 만큼 딱딱한 복장이었다. 곧 있으면 시합이 시작된다는 이야기였다. 모두가 툭툭 자리를 털고 있어났다. 인턴은 선수들이 먼저 나갈 수 있도록 옆으로 한 발짝 자리를 비켜주었다. 선수들이 굳은 표정으로 일렬로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갤리는 천천히, 모두가 나간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턴은 부지런히 종이에 뭘 적고 있었다. 시선을 거의 내리 꽂다시피 하고, 부지런히 뭔가를 중얼거리며 적고 있었다. 갤리는 문을 나가기 전에 인턴의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인턴이 고개를 들기를 기다렸다.
"여기 살아요?"
갤리는 대뜸 질문을 던졌다. 실례라는 걸 깨달은 건 한참 후였다. 상대방이 이해하기를 바라면서. 인턴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어, 네. 근처에 살아요. 금발 머리 인턴은 조금 말을 더듬었다. 성격이 변한 걸까, 아니면 다른 사람인 걸까. 갤리는 마른 세수를 했다. 이마에 흐르는 식은 땀이 손바닥에 옮겨 붙어서 손바닥에서 난 것인지 묻어 걸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갤리는 다시 한 번 질문했다.
"전에 외국 나간 적 있어요?"
갤리는 입 안에서 맴도는 질문을 내리 누르려 몹시 긴장했다. 등이 뻣뻣하게 굳는 것 같았다. 혹시 거기서 저 같은 사람 본 적 있어요? 이상한 질문을 던져버릴 것만 같았다. 인턴은 고개를 끄덕였다. 갤리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다시 열었다.
"핸드폰 번호 좀 알려줄래요?"
인턴은 당황한 얼굴로 갈색 눈동자를 몇 번 굴리더니 어색하게 열한 자리 번호를 불렀다. 갤리는 번호를 되새기고, 이따 시합이 끝나면 연락하겠다며 경기장을 향해 뛰어갔다. 대기실에는 인턴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인턴은 셔츠 단추를 하나 풀고 소매의 단추도 풀었다. 벤치에 앉아서 안경을 벗어 한 켠에 놓고 그는 한숨을 내쉬며 목덜미를 손으로 부볐다. 붕대가 감겨있는 목덜미가 매우 아파 보였다.
갤리는 압도적인 점수 차로 승리했다. 거의 신 들린 듯한 움직임이었다. 해설자들마저도 말을 잃었다. 그리고 뉴트의 핸드폰은 그 순간부터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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