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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D/메이즈러너

[뉴트갤리] If I were not (8)

ㄷㄷㄷㄷ 2023. 1. 26. 11:01

2016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 등과 관련이 없습니다.

*양궁에 관해 지식이 없는 편입니다. 이상한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갤리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눈가가 뜨끈뜨끈한 게 손 끝으로도 만져졌다. 울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민망하긴 했다. 거의 펑펑 운 것과 진배 없지 않은가. 갤리는 킁, 하고 콧물 소리를 냈다. 주머니에 손을 쑤셔넣고 걷고 있자니 핸드폰과 지갑이 조금 걸리적거렸다. 갤리의 카드는 거의 처음으로 큰 돈을 썼다. 큰 돈이래 봤자 밥 한 끼 가격이 될까 말까한 돈이었다. 기껏해야 커피 두 잔이었으니까. 그래도 갤리로써는 꽤나 큰 경험이었다. 값진 경험이기도 했다. 좀 더, 이 세계에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꽤나, 창피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한테 이게 무슨 짓인지.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데자 뷰라는 말을, 갤리는 들은 적이 있었다. 무슨 의미인지도 알고 있었다. TV는 갤리의 유일한 소일거리였으니까. 덕분에 매니저가 할아버지냐는 소리까지 했다. 취미가 딱히 없고 할 일도 없는 사람 같다고. 슬프지만 반 정도는 사실이었다. 할 일이 없는 쉬는 시간에는 취미가 없었으니까. 다큐멘터리를 보는 게 그나마 노인에서 건져지는 거라고 매니저는 조금 구시렁거렸다. 인간의 생각이란 독특하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임에도 목을 맨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바라게 되니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고 믿고 싶어진다. 알고있는 건 위안일까, 절망일까.

위약 효과라는 말도 있으니까. 갤리는 억지로 생각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빼내자 몸이 움직이는 게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갤리는 우울함을 떨치려고 몇 글자를 작성했다. 그래, 가짜라도 좋으니 아주 가끔이라도, 위로가 필요했다.

「다음에 또 봐도 될까요」

갤리는 핸드폰을 덮고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

"훌륭한 성적이었어."

덤덤한 척 하려고 노력하지만 매니저는 코를 훌쩍 거리고 있었다. 코치는 거의 기뻐서 울고 있었으니 더 할 말도 없었다. 화살의 무게가 좋았다. 단식 경기는 우승이었다. 복식도 마찬가지였다. 복식은 끝나자 마자 팀원들 모두 모여서 얼싸안다시피했고, 올림픽이 완전히 종료한 후에 조촐하게나마 파티를 가지기도 했다. 갤리는 그 날짜가 언제인지를 머릿속으로 재어보았다. 아직 며칠은 남아있었다. 그렇다고 오늘 빠질 수 있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아직 이른 오후였으니 몸을 풀고 약간 쉬고 나서 아마 이 멤버끼리 사소하게나마 파티를 열 것이었다. 술을 먹이려고 들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맛이 없어서 좋아할 수가 없었다. 이 세계에 얼마나 맛있는 게 많은데 맛 없는 걸 먹어야 하겠는가. 게다가 술을 많이 권하는 편인 코치는 독한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더 싫었다. 갤리는 몸을 이완시키고 좌석에 등을 기댔다. 긴장했던 등이 천천히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점퍼에 들어있는 핸드폰이 걸리적거려서 갤리는 옆자리에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진동이 울렸다. 매니저는 자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아무것도 안 왔는데. 코치님, 코치님 거 아니에요? 아냐 나 오늘 핸드폰 두고 왔어. 긴장 될 거 같아서.

"제 거에요."

갤리가 덤덤하게 말하면서 핸드폰을 열었다. 우승 축하해요. 생중계로 봤어요. 짧은 두 문장이 가지런히 쓰여 있었다. 매니저가 입을 떡 벌렸다. 

"네가 아는 사람이 있다고? 뭐하는 사람인데?"

"여기 인턴 일 하고 있던데요."

"선수도 아니라고?"

오늘은 갤리만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날이라 대표들만 이동하는 버스가 나오지 않았다. 자청해서 운전을 하고 있던 감독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니가 무슨 극성 부모냐. 매니저는 골이 아프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극성 부모인 게 차라리 나아요. 이상한 사람이 접근하면 어떻게 합니까? 감독님은 사생활 관리할 필요 없어서 좋으시겠어요."

"네가 너무 걱정이 많은 거야."

"갤리도 나름 셀레브리티라는 걸 좀 상기하세요, 예?"

갤리는 정신적으로 귀를 막은 상태로 핸드폰 문자판을 꾹꾹 눌렀다. 감... 사... 합... 니... 다. 글을 배운지 몇 년 되기는 했지만-글조차 모른다는 걸 알았을 때 매니저는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저 세계랑 이 세계랑 글이 같은지를 알 수가 없으니 알았어도 말짱 도루묵이었으리라-그래도 여전히 적기는 만만치가 않았다. 맞춤법을 틀리는 일이 종종 있어서 지적 받을 때마다 조금씩 창피했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자 매니저가 거의 빼앗고 싶어하는 눈으로 핸드폰을 노려보았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인 거 같아? 이름은?"

"믿고 싶어요. 이름은, 뉴트랬던가."

아오. 매니저가 차 창문에 머리를 쿵쿵 박았다. 인턴 밖에 다른 건 모르는 거야? 갤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매니저는 거의 죽고싶어하는 표정이 되었다.

"이름만 얘기하는 걸로 봐서는 성도 모르고, 직업도 확실치 않고, 게다가 믿을 수 있는지도 확실치 않고! 그런 사람을 꼭 만나야 해?!"

"...웬만하면, 만나고 싶어요."

잠시 차 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코를 요란하게 푼 코치가 쓰레기를 버릴 용도로 비치해 둔 쓰레기 봉투를 들어 올리며 웅얼거렸다.

"사랑이네."

좋-을 때다. 놀림조가 다분한 어투에 갤리의 턱이 떨어졌다. 매니저도 자기 턱을 끼워맞추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사랑이라니! 감독은 껄껄 웃었고 매니저는 거의 절규하려고 했다. 최악의 선택지라는 것처럼. 빨간불에 걸렸는지 차가 잠깐 멈췄다. 코치가 웃으며 말을 계속 이었다. 그럴 때도 있는 거지. 다들 그렇잖아. 첫사랑 때문에 가슴 앓이도 해 보고 자기 네임도 맞춰보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팍 식었다. 그들은 문득 어떠한 사실을 되새겼다. 매니저만이 별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착잡하게 갤리를 바라보았다. 갤리는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했다. 환청처럼 어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긴 했지만. 불이 바뀌었다. 출발하기 직전에, 감독이 흘끗 갤리를 돌아보았다. 갤리는 그냥, 아주 약간 침울해 보였다. 그냥 감독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여튼 그랬다. 감독은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려 잠깐 멈췄다가,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마음 주지 마. ...사람들은 결국 다 자기 네임 따라가니까."

첫사랑이 어디 마음대로 되냐마는, 여하간. 핸드폰이 손 안에서 한 번 더 진동했다. 갤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

"실적에 꽤 보탬이 되는 모양입니다."

광고 효과가 생각보다 좋네요, 올림픽. 특히 양궁이. 인터뷰에서 애용하는 물품을 족족 우리 회사 걸로 말하고 말하는 것 마다 매출이 적지만 오르긴 하고 있습니다. 매니저가 수완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요. 비서가 오늘 따라 쓸데없는 말이 많았다. 뉴트는 건성으로 들어 넘기며 서류를 읽어나갔다. 목덜미가 우릿하게 아파오는 느낌이 들어 인상을 썼지만 딱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외관으로 보았을 때 차이가 생기면 가장 먼저 알아채는 건 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뉴트는 그냥 목덜미를 몇 번 더듬다 말았다. 책상 위 한 켠에서 진동이 울렸다. 구기종 휴대폰이 덜덜 떨며 반 바퀴쯤 돌았다. 비서가 말을 멈췄다.

"꾸준히 연락하시는 모양입니다."

"특기할 만한 이상점은 없나 보지?"

"공교롭게도."

인력 낭비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비서는 계속 꾸준히 압박을 주었다. 사실, 뉴트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쯤 되면 위험한 인물이 아니라는 확신이 섰을 법도 한데 뉴트는 계속해서 정보를 그러모았다. 이미 바닥 난 우물을 긁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딘가, 어딘가가 달랐다. 뭔가가 거슬렸다. 처음 보았을 때의 그 이상한 질문과 표정이 그랬다. 문자함에 쌓이는 말들은 대개가 그냥 평범한 일상의 토로임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뉴트는 휴대폰을 집어 들어 열었다. 버튼 하나 누르지 않았는데 문자가 바로 화면에 떠올랐다.

「오늘은 일단 쉬고, 내일이나 모레 쯤에 파티를 할 거래요.」

전에 보낸 문자 내용이 어땠는지 뉴트는 조금 되짚었다. 축하 같은 거 크게 안 한대요? 무려 올림픽 우승인데. 자기가 생각해도 좀 이상한 내용이었다. 어린 인턴이 보내기에 적절한 내용인가? 그 또한 알 수 없었다. 답장을 좀 고민해 보려 핸드폰을 내려놓는데 다시 한 번 진동이 울렸다.

「오셨으면 좋겠어요. 혹시, 시간 되세요?」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다. 뉴트는 잠시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다가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비서가 회장님, 하고 뉴트를 불렀다.

"스케줄 좀 불러줘 봐."

뉴트는 억양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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