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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D/메이즈러너

[뉴트갤리] If I were not (4)

ㄷㄷㄷㄷ 2023. 1. 26. 10:56

2016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 등과 관련이 없습니다.

*양궁에 관해 지식이 없는 편입니다. 이상한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비행기는 갤리가 아주 어렵게 익숙해진 것 중 하나였다. 익숙해져야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면 아마 영영 익숙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쇳덩이가 하늘을 난다니. 쇳덩이가 물 위에 뜨는 것에도 적응이 어려운 갤리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거기에 안심하고 몸을 맡기기까지는 아주, 아주 오랜 기간이 걸렸다. 갤리는 여전히 비행기를 타자 마자-그러니까 이륙하기 전에-잠들어서 최대한 깨지 않는 방식을 사용해가며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문제는 그럴 수 없는 시합들이었다. 어떤 시합은 비행기를 타고 큰 바다를 하나 건너서 가야 했다. 어떤 시간을 고르더라도 중간에 식사를 한 번 이상 해야 했고,설령 거르더라도 그 정도까지는 자기 힘들다고 느껴질 정도로 오래 날았기 때문에 갤리는 중간에 한 번 깰 수 밖에 없었다. 매우 고통스런 시간이었고, 당연히 식사도 어려웠다. 그래서 갤리는 원정 경기에서 유독 부진한 성적을 보이는 편이었다. 부진하다고 해도 1~2등을 다투는 성적이었지만, 평소의 압도적인 모습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며칠의 휴식이 주어진다면 모를까.

화살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날아가 박혔다. 갤리의 컨디션은 지금 최고조였다. 돈 많은 스폰서가 있다는 건 좋은 거구나. 갤리는 이번에 특히 그렇게 생각했다. 이번에는 평소보다 훨씬 일찍 왔다. 시간단위가 아니라 날짜 단위를 말하는 것인데다, 심지어 그 기간 사이에 푹 쉴 수도 있었다. 숙소는 다른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는 곳이었고, 침대는 푹신푹신했다. 손님이 적은 양궁 연습장과도 가까웠다. 본래 숙소도 거의 이만큼 좋은 곳이었기 때문인지-매니저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보았지만 착오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만 확실하게 알 수 있었을 뿐이었다-갤리는 정말로 푹 쉴 수 있었다. 오늘은, 꽤 괜찮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 같았다.

날이 더웠다. 갤리는 뚝뚝 떨어지는 땀을 팔뚝으로 훔쳤다. 팔토시가 땀을 먹어 축축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 한 두 번 더 정확하게 맞추고 나면 쉬는 시간이 어느 정도 주어질 것이었다. 갤리는 호흡을 가다듬고 한 군데에 집중했다. 손 끝에서 화살이 떨어져 나갔다. 퍽, 하고 박히는 소리가 남달랐다.

"카메라를 또 깨먹었네요."

옆에서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 소리가 나서 뉴트는 고개를 돌렸다. 수행비서는 그새 표정을 정리했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박수 치는 관중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을 잘하는 편이라 다행인 것 같습니다."

"아니었으면 홍보부 직원을 잘라야지."

덤덤한 뉴트의 말에 비서는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하고 다른 관중과 같이 박수를 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추적해 보니 소문의 근원은 다른 곳인 것 같더군요. 당사자들은 긍정도 부정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간간히 프라이버시를 묻는 게 무례하다는 답변 정도만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보고서로도 올렸는데 다시 말하는 이유가 뭐지?"

비효율적인 일은 없어야 한다. 둘 모두의 생각이기도 했다. 워낙에 바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보니 더 그런 것도 있었다. 직설적으로, 아무도 없는 곳이나마 깔끔하게. 그렇게나마 일 분 일 초라도 줄일 수 있도록. 둘 모두 그런 화법에 익숙해져 있었다. 수행 비서는 입을 다시 열었다.

"다른 일을 시킬까요?"

감시역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소문을 퍼트린 것이 당사자가 아닌 게 확인 된 이상 다른 곳으로 더 돌리는 게 효율적일 수도 있었다. 아니, 사실 그랬다. 악의의 여부 등을 확인해 보기 위해 보냈으니 확인 된 이후에는 이제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다. 비서가 묻는 것은 확인 절차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뉴트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아니, 그대로 둬."

뉴트는 다른 대답을 했다. 수행 비서는 대꾸하지 않았다. 박수가 소강 상태에 들기 직전에 손을 내렸을 뿐이었다. 뉴트는 박수가 끊기기 전에 속삭이듯이 말했다.

"진위 여부 확인 시켜. 보고 너한테 직통으로 올리라고 하고. 너도 끝나면 나에게 바로 가져와."

시상식만이 남았는지 분위기가 느슨하게 풀렸다. 한 두 사람이 주섬주섬 일어나기 시작했다. 뉴트도 VIP 석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수행비서가 고개를 끄덕이곤 뉴트를 따라 나섰다. 딱 반 발자국 뒤에서 따라오던 비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언급된 신문사와 방송사는 고소 조치 들어갔습니다."

뉴트는 한 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수행비서가 없는 쪽으로 고개를 슬쩍 돌렸다가 다시 앞을 보았다. 어두운 통로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

돌아가는 날까지 스케줄은 여유로웠다. 인터뷰 등의 스케줄은 전부 본국에 되돌아가서야 있었고, 고된 일정을 끝마친 이후라서인지 코치도 감독도 갤리를 풀어두는 데 합의했다. 갤리는 현대를 즐기기 위해-혹은 즐기도록-호텔 밖으로 반쯤 내쫓기다시피 보내졌다.

현대에서 갤리가 가장 부담없이 즐기는 유희는 먹거리였다. 원초적이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가장 편한 것이기도 했다. 온갖 씹는 감촉과 목에서 넘어가는 느낌, 달고 짜고 쓰고 시고 맵고. 순한 맛부터 천천히 시작을 해야 하긴 했지만 온갖 자극적인 맛까지 아주 즐거울 따름이었다. 칼로리 소모가 많은 운동선수라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갤리는 금방 포동포동하게 살이 올랐을 것이었다. 안 그래도 큰 덩치가 더욱 커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길거리 음식은 다양한 종류와 저렴한 가격을 자랑했다. 현금을 넉넉하지 않게 가져온 갤리에게는 아주 기쁠 따름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약간은 겁을 낼 이국적인 음식이었지만 현대의 음식부터가 갤리에게는 이국적인 노릇이었다. 갤리는 이것저것 군것질을 하며 주변을 돌아다녔다. 시장이 열린 것인지 주변에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특이한 무늬가 새겨진 가방 같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있었지만, 과일이나 야채처럼  부른 배를 하고 느긋하게 산책을 하다 갤리는 문득 낯이 익은 한 남자를 발견했다.

그건 아주 이상한 일이었다. 이 시대에 갤리가 아는 사람은 한정 되어 있었고 얼굴이 익숙한 사람은 그 중에서도 더더욱 드물었다. 척 봐도 알아볼 수 있는 정도로 자주 보는 사람이 아니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갤리는 자리에 우뚝 멈춰서 버렸다. 아주 잠깐 사이에 남자는 갤리와 엇갈려 반대 방향으로 향했고 갤리는 남자의 얼굴을 다시 확인 할 수 없었다. 갤리에게 정확하게 /아는 사람인 것 같다/는 느낌만 주고서 남자는 순식간에 뒤쪽으로 밀려났다. 갤리는 아주, 당황했다.

갤리가 뒤로 돌아서 그 남자를 뒤쫓기 시작한 건 결국 아주 충동적인 일이었다. 시장의 인파를 헤치고 남자를 쫓는 것은 어려우면서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남자는 갤리만큼은 아니어도 키가 꽤 큰 편이었고, 그건 찾는 데 상당히 큰 도움을 주었다. 저기요, 하고 큰 목소리로 불러보았지만 자기를 가리킨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남자는 앞으로 꾸준히 나아갔다. 갤리는 남자를 따라잡기 위해 끊임없이 부르며 사람들 사이를 헤쳤다.

뉴트가 출퇴근 하는 것을 아무도 보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도 출퇴근 하는 뉴트가 뉴트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가발을 쓴다거나 하는 대단한 변장은 아니었지만, 머리 스타일을 흩뜨러트리고,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콘체른의 사장이 그러리라고는 생각지 않을 청바지에 대강 구겨진 셔츠 복장에 구겨진 운동화를 신고선 피곤한 눈과 구부정한 어깨로 돌아다녔다. 물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약간 떨어진 곳에서 수행비서가 탄 차가 따르고, GPS나 실시간으로 음성이 전달되는 녹음기 같은 것들이 몸이나 어깨 여기저기에 붙어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뉴트는 그렇게 다녔다. 물론 중간에 다시 비서가 모는 차에 올라 타서 이동했지만, 효과가 있냐고 물어보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사실 뉴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더 큰 탓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건, 나온 김에 해외의 자회사에서 대강의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그 때도 비슷했다. 뉴트는 구부정한 어깨를 하고, 그 위의 머리에서 다음 스케줄을 한바탕 계산하고 있었다. 이 길을 빠져나가면 작은 골목이 나오니 거기서 차를 타고, 그 길로 공항으로 가서, 전용기를 타고, 본국으로 돌아가서, 비행기 안에서는 무슨 일을 처리하고, 다시-

"저기요!" 

갤리가 뉴트의 팔을 잡아 챈 것은 그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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