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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글 백업입니다. 설정 오류가 있음.
한여름의 직사광선이 공처럼 아스팔트에서 한 번 더 튕겨올랐다. 내리 꽂히는 빛에도 눈을 뜰 수가 없는데 정신없을 정도로 흩뿌려지는 빛에 저절로 눈이 찌푸려졌다.
일본의 여름이 대다수 그러하듯 하코네의 여름은 덥다. 덥고, 습해서 사람 숨통을 틀어막는 그 뭔가가 있었다. 씨발 젠장맞을 더위 같으니라고. 야스토모는 한 번 더 뇌까렸다. 더위를 견디는 건 선수로써 당연한 일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수월하기만 하다는 것은 아니다. 새파랗게 개인 하늘이 짜증나는 것은 비단 그의 일 만은 아닐 것이었다.
텐트가 어디쯤이었지. 야스토모는 고개를 돌려가며 텐트의 수를 세었다. 화장실까지 급하게 달려 왔더니 위치가 조금 꼬였다. 오른쪽, 에서 왔던가 오른쪽을 향해서 왔었던가. 잠시 고민을 하다 야스토모는 어쨌든 텐트의 숲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사실 텐트는 번호 대로 열을 갖추어 배정되어 있었다. 어디로 가던 간에 번호를 보고 가면 좀 돌아갈지언정 길을 잃지는 않을 것이었다. 후쿠짱이 기다릴텐데. 걱정은 그 뿐이었다.
아쉽게도 열은 390번대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10줄씩 서너줄이 배치되어 있는 형태를 생각해 볼 때 와도 한참 잘못 온 것이었다. 야스토모는 욕을 중얼거리면서도 길을 찾기 위해 좀 더 나아갔다. 290번, 190번. 아예 100번 단위로 끊어놓은 모양이니 여기에서 왼쪽으로 돌면-까지 생각했을 때 앞의 막사에서 사람이 나왔다. 보라색 져지가 참으로 계집애 같았다. 아니, 그 이전에 얼굴이, 얼굴이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야스토모가 문득 발을 멈추자 남자가 실례, 라고 말하면서 야스토모를 지나쳐갔다. 뒤에서 미도스지, 하고 누군가를 부르는 듯한 소리가 났다. 야스토모는 뒤를 돌았다. 잊고 있었던 이름이 뇌에 짓쳐들었다.
“이시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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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는 코시엔이 막 끝난 참이었다. 한바탕 비가 내리더니 가을까지는 아니지만 더위가 한 풀 죽어서 살만 하다고 느꼈었다. 여름방학은 아직 끝나지 않았었고, 막 끝난 코시엔의 여파로 야구부의 어린 중학생들은 한껏 들떠있었다. 우리도 고등학생이 되면 저기에 오르는 거겠지. 사춘기 다운, 어찌보면 허황된 꿈을 조잘거리면서 그날도 연습을 위해 집을 나섰었다. -아니, 합숙이었던가. 어쨌든 그 이전부터 그 날 연습시합이 있었던 건 알고 있었다.
자매학교라는 건 참 의미없는 이름이라고 야스토모는 생각했다. 실질적으로 오가는 교류를 학생의 피부로는 느끼기도 어려웠고, 거리가 워낙 멀다보니 어떤 학교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한두 명 정도 며칠간 교환학생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야스토모의 반에 그 학생이 배정되었던 적은 없어서 단상 위에 선 인물의 실루엣을 투덜거리면서 봤던 기억 정도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달랐다. 교토의 자매학교에서 이곳까지, 야구부 선수들이 연습경기를 왔다. 여기까지 여행을 올 만한 구실 비슷한 것이었을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연습경기. 처음 보는 상대와의 연습경기. 야스토모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그 감각은 경기장에서도 이어졌다. 잘 부탁드립니다! 소리가 하늘을 가르고 일렬로 늘어선 야구복을 입은 소년들이 고개를 들었다. 야스토모는 사납게 웃었다. 이기고 싶었다. 이길 것이었다. 대각선의 곱상한 남자아이가 그걸 마주하듯 싱긋 웃었다. 지지 않겠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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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합은 의외로 재미있게- 아니, 재미있었던가. 여튼 가슴뛰게 흘러갔다. 중학교 연습경기 치고는 흔치않게 9회까지 끌었으니까. 9회 말, 차있는 것은 1루와 3루, 그리고 투 아웃. 점수는 12대 13으로 야스토모 쪽 학교가 이기고 있었다. 간신히 세이프한 3루에서 눈을 뗀 야스토모는 홈을 노려보았다. 투수인 게 항상 자랑스러웠던 야스토모가 그 사실이 조금 억울하기까지 할 정도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 곱상한 아이가 타자로 홈에 천천히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붕. 시험적으로 휘둘러진 배트의 소리가 유난히 크고 매서웠다. 그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중요한 건 능력이었으니까. 9회까지 어찌저찌 이어오기는 했지만 이렇게 되면 이길 수 있었다. 공을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몸은 피곤했지만 그건 저쪽도 마찬가지일 거다. 이길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단정지었다. 야스토모는 괜시리 뿌듯해 와 짧게 숨을 뱉었다.
손 안에 뿌듯하게 차오는 공을 글러브에 툭툭 두드렸다. 포수는 조용했다. 던지고 싶은 대로, 특기인 직구로 깨끗하게 뻗으면 되는 일이었다. 야스토모는 크게 숨을 들이 쉬었다.
공이 손을 떠났다. 공이 포수의 손에 빨려들 듯이 들어갔다. 볼. 심판의 선언에 입술을 깨물었다. 약간 조준이 어긋난 것 같았다. 공이 돌아와 다시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다시금 볼. 타자는 두 번 다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 볼 넷으로 나갈 셈인가. 그렇게 놔 둘 수는 없었다. 야스토모는 공을 좀 더 꼭 쥐었다.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가도록 몇 번이고 던진 연습을 기억하면서 야스토모는 공을 던졌다. 타자가 배트를 휘둘렀다. 스트라이크. 순간 숨을 멈췄었다는 것을 야스토모는 짧게 깨달았다. 두 번, 두 번 남았다. 두 번만 더 스트라이크를 따면 이긴다.
야스토모는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했다. 손에 닿는 볼의 실밥이 까끌거렸다. 야스토모는 볼을 든 상태에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손등이 흥건하게 젖어들었다.
볼. 타자는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 다시 전략을 바꾼 걸까. 어떻게 해야할까. 포수는 여전히 사인이 없었다. 속눈썹에 땀이 흘러내려와 눈을 깜박여 털어냈다. 스트라이크 존을 다시 노려서. 야스토모는 이를 악물었다. 타자가 배트를 휘둘렀다. 스트라이크. 심판의 목소리가 팡파레처럼 울려퍼졌다. 한 번. 한 번 남았다. 겨우 한 번.
그리고 볼도 겨우 한 번 남아있었다. 문득 그 사실이 떠올랐다. 진루. 그렇게 되면 9회말 투아웃 만루였다. 안타 한 번으로 질 수도 있다. 잡을 수 있을까. 내가. 그 상황에서. 지금도 이렇게 볼이 줄줄히 밀려 있는데. 파울볼을 던져도 지금 상황에서는 스트라이크가 되지 않는다. 좀 더 일찍 던졌어야 했는데. 수많은 고민이 머릿속을 잠식했다. 땀방울이 햇빛으로 타오르는 모래바닥에 떨어졌다. 빠른 공. 야스토모는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가장 빠른 공. 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직구를 보내면 된다. 지금까지 배트를 휘두를 때도 있었고, 휘두르지 않을 때도 있었으니까, 스트라이크 존으로 단번에 넣어서 타자를 잡는 거다.
타자가 자세를 잡았다. 야스토모는 공이 손끝에서 떨어져 나가는 감각을 생생히 느꼈다. 공이 느려보였다.타자가 배트를 휘두르는 게 느렸다.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빼도 박도 못할 스트라이크였다.
그리고 공이 공중에 떠올랐다.
깡- 하고 희미하게 소리가 들려왔다. 공이 태양을 가려 하늘을 날고 있었다. 야 잡아 외야수 뭐하는 거야. 희뜩희뜩 소리가 귀를 스쳐지나갔다. 타자가 배트를 버리고 달렸다. 1루는 어느새 비어있었다. 3루, 3루도 비어있었다. 야스토모는 뒤를 돌았다. 공은 공중에도, 누구의 손 안에도 없었다. 매니저가 철책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조금 달려간 매니저가 뭔가를 쥐고 걸어왔다. 야구공. 홈런이었다. 뒤에서 비명 같은 환성이 들려왔다.
야스토모는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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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회식이었다. 아무도 그를 탓하지 않았다. 교토 녀석들 세다- 마지막에 그거 난 못 칠 거 같던데. 그녀석 심지어 홈런이지? 에이스 타자인가? 위로가 아니라 진심이라는 걸 야스토모는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성의있지도 않은 친구들이었으니까. 야스토모는 저녁을 먹으면서 조금 울었다. 저도 모르게 조금 눈물이 났다는 게 더 알맞은 것 같았다. 야스토모 울어? 부원들이 놀림거리를 잡았다는양 신이 나서 외쳤다. 아냐 짜식들아! 외쳤지만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콧물을 삼키자 꽤 건실한 팀의 감독이라기엔 유한 편인 감독이 야스토모의 머리를 헝클었다. 좀 더 연습하면 되는 거야. 그러라고 하는 연습시합이었잖냐. 너무 분해하지 마라. 야스토모는 그냥 듣고만 있었다. 입안 가득히 밥을 밀어넣어서 반박할 수가 없었다. 동의라고 생각한 건지 감독이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그 타자 강했지. 크게 될 거 같던데 이름이 이시가키랬던가. 맞아요 이시가키 코타로. 옆에서 코치가 받았다.
이시가키. 야스토모는 되뇌였다. 이시가키 코타로. 언젠가 전국대회나 코시엔이나, 여튼 어느곳에서는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는 절대로 되갚아 주리라 야스토모는 생각했다.
여름은 그렇게 지나갔다. 겨울도, 그 다음 봄도. 전국대회는 간신히 본선까지 나갔지만, 1회전에서 탈락했다. 가을이 지나갔다. 3학년 겨울을 몽땅 입시에 바치고 야스토모는 하코네 학원으로 들어갔다. 부활동으로 망설임없이 야구부를 골랐다. 부원들 얼굴을 익히고 연습을 하면서 봄을 보냈다.
그리고 여름의 초입, 야스토모는 무릎 부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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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나은 무릎이 시큰하게 아파오는 듯 했다. 씨발. 야스토모는 주먹을 움켜쥐고 뇌까렸다. 이시가키와 관련해서는 특별히 그 이후로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 몇 번 찾아보다가 얼마 안 가 야스토모조차 잊었으니까. 그 패배만이 가슴 한 켠에 남아있었을 뿐으로 이시가키 코타로는 그만큼 낡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는 것은 그는 더할나위 없이 멀쩡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크게 될 거 같던데. 감독의 목소리가 귓가를 두드렸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쥐었다가 야스토모는 긴 숨을 뱉었다. 어차피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노릇이었다. 부를 옮겼든 말았든 그건 그쪽의 사정이었고 자신이 신경쓸 것도 아니었다. 이쪽이 더 특출났을 수도 있는 거다. 더 잘하는 걸 하고 싶은 건 인간으로서 당연한 논리였다. 야스토모는 걸음을 재촉하려했다.
“미도스지!”
문득 익숙한 이름이 발목을 잡았다. 미도스지라면 그 교토 후시미의 건방지기 그지 없는 1학년 아닌가. 단상까지 올라와서 후쿠짱한테 시비를 건 그 빌어먹을-
“뭐야 이시가키 군.”
“잡지 촬영이 왔다. 에이스를 꼭 인터뷰 하고 싶다고 기자가,”
“그 정도는 주장이라는 이름으로 알아서 하면 되잖아? 자쿠 주제에 그런 것도 잘 못하는 거야?”
야스토모는 발을 멈췄다. 이시가키의 뒷모습이 뒤에 있었다. 92. 92번이었다. 에이스의 1번이 아닌. 2번. 자신이 달고 있는 어시스트의 번호.
속이 터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디든 휘두르고 싶은 기분이 들어 주먹에 더욱 힘을 주었다. 손바닥의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세계는, 결코 만만치 않다. 그렇게 함부로 뭔가를 버리고 뛰어들어 쟁취할 수 있을 만큼 쉬운 곳이 아니다. 알고 있음에도 속이 끓었다. 지지 않아. 야스토모는- 아라키타는 생각했다. 씨발 절대로 너 같은 거에 지지 않는다고. 후쿠토미를 누구보다 먼저 결승선으로 이끄는 건 나다. 절대로 지지 않을 거다. 마지막 인터하이에서는.
아라키타는 주먹을 풀고 발을 옮겼다. 부원들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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