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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로드오브히어로즈 기반 날조와 날조와 날조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아주 고대의 사람이 이야기한 문구라고 주인이 술에 취해 말했다고 요리사가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빵은 단순히 빵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음식 전반을 아우르는 것이라고 주인은 웅얼거렸다고 했다.
자이라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은 음식만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 얼마든지.
자이라에게는 식탁이 없었다. 음식이 나오면 입 안으로 쑤셔 넣어야 했다. 보통 나오는 음식은 멀건 죽이었으며, 아주 가끔, 딱딱하고 가루가 부스러지는 빵이 나왔다. 입 안에서 오래 녹여먹어야 했고, 목구멍에서 걸리는 게 많았지만 그래도 그게 나오는 날은 덜 배고팠기 때문에 조금 더 버틸 수 있었다. 주인은 다른 귀족들에 비해 자비로운 편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실수는 눈을 감아주었다. 다르게 말하면, 자이라 또한 일을 해야 했다. 키가 어른의 어깨에 한참 못 미치는 나이라 할지라도. 그러니까,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있었다. 얼마든지.
자이라가 보통 하는 일은 새벽에 물을 길어온 후 하인들을 깨우는 것이었다. 하인들은, 하인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수도에서 지내는 귀족인 주인의 위세에 맞게 고용된 자유민들이었다. 그들은 자이라가 직접 손을 대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자이라는 아주 조심스레 그들을 깨워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일어나고 나면 온갖 잡심부름을 도맡았다. 주방의 심부름을 하게 되는 날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뭐라도 얻어먹을 수 있으니까. 욕실이나 청소의 심부름도 나쁘지 않았다. 최악은 마구간이었다. 자이라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순위표이니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쩌면 자이라조차도.
자이라 외에도 노예는 꽤 있는 편이었지만 자이라는 그 중에서 자신의 부모가 누군지 몰랐다. 중요한 건 아니었다. 사실 없을 수도 있었다. 노예에게 가족이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언제고 팔릴 수 있는데다가, 주인들은 노예의 가족을 보전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접붙여서 건강한 노예의 수를 늘리는 데에 더 신경을 썼다. 자이라는 자신의 어미가 자신을 모르는 체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팔려온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런 건 아무에게도 중요하지 않았다.
자이라의 머리는 항시 짧은 편이었다. 그건 그나마 좋은 일이었다. 주인이 자이라를 적어도 초경을 할 나이까지는 건드리지도, 접붙이지도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머리가 길고 하늘하늘하다는 아이들은 침노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 아이들은 살결이 곱고 더 예뻐야 한다고 제대로 못 먹기 일쑤였다. 침노라고 일을 빼 주는 일도 잘 없으니 앓는 일도 많다고 했다. 그래서 자이라는 자신의 튼실한 몸이 자랑스러웠다. 튼튼하고, 건강하고, 일 잘하는 노예. 이런 노예를 함부로 처분할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하루를 더 버틸 수 있었다.
그 날도 자이라는 어둑어둑한 새벽에 눈을 비볐다. 지금 시간에 일어나 물을 길러 가야 주인의 식사준비시간에 맞추어 하인들을 깨울 수 있었다. 자이라는 물동이를 들고 밤을 나섰다. 하인용 문을 지나칠 때 경비들이 하품을 했다.
우물은 자유민들의 거주구역 한가운데에 있었다. 주인은 귀족이 자유민들과 같은 곳에 살 수 없다며 떨어진 데에 저택을 세웠다. 그러나 수맥이 집 아래로 지나가지 않아 자이라는 아침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와야 했다.
자유민 구역은 그 시간부터 부산스러웠다. 시장이 열리는 시간이었다. 새벽부터 물건감을 가지고 와서 들여놓고 내놓느라 시끄러운 와중을 자이라는 능숙하게 지나쳐갔다. 삐걱거리는 도르래를 수 번 올리고 내려야 한 동이를 채울 수 있었고, 하루 치 물을 채우려면 몇 번을 왔다갔다 해야 했다. 자이라는 걸음을 서둘렀다.
사람을 부딪힐 뻔 한 것은 다섯 번째 물을 길어오는 와중이었다. 사람들 흐름 사이에서 남자는 달리는 마차 바퀴 밑에서 돌이 튀어나오듯 불쑥 튀어나왔다. 그나마 사람은 피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달리는 마차 바퀴 밑의 돌은 어디로 튈지 몰랐다. 몸에 맞으면 그나마 나았다. 물동이가 깨지면 저녁을 굶을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자이라는 넘어질 뻔한 몸을 추스르고 물동이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납죽 엎드렸다.
“죄송합니다, 나으리. 가시는 걸음에 실례가 되었습니다.”
“아니, 괜찮...”
말하는 목소리가 앳되었다. 목소리가 점차 변하는 와중인지 조금 어색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대단찮은 것이었다. 괜찮다 말하던 목소리가 끊긴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노예가 가던 길을 막았으니 자유민도 기분이 나빠할 것이고 귀족이라면 매질을 해도 모자랐다. 너그럽게 넘겨주면 그만한 행운이 없었으나 괜찮다 말하다 말았으니 화가 날 대로 났다는 뜻이었다. 물동이가 깨지면 안 되는데. 자이라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눈을 질끈 감았다.
“...되었다, 일어나라.”
그러나 이어진 것은 당황스런 말이었다. 자이라는 잠시 이해를 못하고 어리둥절해 했다. 화가 나지 않았나...? 그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라는 때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도 화를 돋울지도 몰랐다. 사내는, 아니, 사내라고 하기엔 어린 감이 있었다. 소년은 꽤나 고급진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니까, 세상에, 귀족이라는 뜻이었다. 자이라는 고개를 떨구고 굽실거렸다.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나리.”
“노예인가?”
감사 인사를 하는데 소년이 불쑥 물었다. 옷차림을 보면 모를 리가 없는 데도 그렇게 물었다. 약간 누리끼리한 천으로 만든, 허리를 간신히 묶은 한통짜리 옷이었다. 노예는 다 그 옷을 입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나리.”
“음.”
소년은 그 후로 잠시 말이 없었다. 물은 앞으로 두 번은 더 길어와야 양을 맞출 수가 있는데 눈앞의 귀족은 자신을 보내줄 기미가 없었다. 가라는 말을 들어야 인사를 올리고 갈 텐데, 얼른 가야 시간을 댈 수가 있는데. 초조해 하고 있자 문득 소년이 말했다.
“주인이 누구지?”
“아이고 나으리.”
자이라는 다시 납죽 엎드려야 했다. 주인까지 묻다니, 눈앞의 귀족이 화가 단단히 난 것이 분명했다. 무슨 벌을 받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이 어리석은 것이 잘못하였으니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아니...”
잠시 소년이 말을 더듬었다. 자이라는 어떻게든 빌어야겠다 생각하며 바닥에 둔 손 위에 머리를 찧었다. 팔뚝이 잡힌 것은 그쯤이었다.
“일어나라.”
“나, 나리.”
“화를 내거나 해코지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니 고개를 들어라.”
자이라는 머뭇머뭇 고개를 들었다. 소년은 남색 머리를 하고 있었다. 젖살이 덜 빠졌을 게 분명한 얼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갸름하니 상당히 미형이었다. 팔뚝에 닿는 손도 부드럽기 그지 없었다. 이게 귀족인가. 자이라는 멍하니 생각했다. 소년이 장갑을 끼고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나 알았다. 자이라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몸이 일으켜졌다가 얼굴을 맞댔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떨구었다.
“운동을 한 적이 있나?”
귀족은 영 엉뚱한 것을 물었다. 자이라는 고개를 저으며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고도 소년은 숨이 턱 끝에 닿을 정도로 뛴 적이 있냐느니, 그렇게 뛸 때까지 얼마나 걸렸냐느니 이상한 것을 물었다. 자이라가 성심성의껏 대답을 하고 나자 다시 주인의 이름을 물었다. 두 번이나 물었으니 자이라는 머뭇거리면서도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큰일이 나겠구나. 소년이 떠난 후 자이라는 터덜터덜 물동이를 저택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이미 늦는 것은 확정이었다.
늦은 벌로 자이라는 저녁을 굶게 되었다. 그래도 소년이 바로 오지는 않았는지 더 큰 벌이 내려지지는 않았다. 자이라는 노심초사하며 가시밭길을 걷듯 그날의 일을 처리했다. 너무 늦어지면 신빙성이 떨어지니 소년은 못해도 오늘은 올 것이었다. 절로 한숨이 나오려 했다... 일이 뒤바뀐 것은 그날 점심을 먹을 즈음이었다.
집사가 자이라를 불렀다. 자신이 자이라를 직접 불러야 한다는 것이 매우 마뜩찮은 표정이었다. 마구간을 치우던 와중이었기 때문에 옷 여기저기에 지푸라기가 잔뜩 붙어있어서 집사는 혀를 찼다. 그리고는 따라오라는 한 마디와 함께 몸을 휙 돌렸다. 자이라는 어안이 벙벙해서 조심스레 그 뒤를 따랐다. 자
이라가 한 번도 가까이 온 적 없는 크고 화려한 문 앞에 서서 집사는 손마디로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나서 자이라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렇게 화려한 문이라면 분명히 주인일 것이었다. 자이라는 주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주인의 명이라며 하인을 통해 내려오는 것이 전부였다. 자이라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며 덜덜 떨었다. 집사가 문을 열었다.
“데려왔습니다 마님.”
“가까이 오도록 해라.”
주인의 목소리가 말하자 집사가 자이라의 손목을 잡고 앞으로 잡아당겼다. 자이라는 간신히 중심을 잃지 않고 어정어정 걸어 주인의 앞에 서 고개를 푹 숙였다. 무슨 벌을 받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눈물이 차오를 것 같았다.
“그래, 이 아이가 맞습니까?”
“음.”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가 나서 자이라는 흠칫 떨었다. 소년에서 청년이 되어가는 목소리는 새벽에 들은 그 목소리가 맞았다.
“고개를 들어보겠나.”
자이라는 눈물을 말리기 위해 노력하며 고개를 들었다. 남색 머리칼을 가진 소년이 자신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맞습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심장이 발 아래까지 떨어져 내리는데 소년이 말을 이었다.
“이 아이를 제가 사도록 하지요.”
자이라는 모은 무릎 위에 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였다. 등 뒤로 인기척을 느낄 때마다 흠칫흠칫 몸을 떨고 있자 남색 머리의 소년이 테이블 맞은편 자리에서 의자를 꺼내 자리에 앉았다. 자이라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주, 주인님.”
여러 가지를 묻고 싶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먼저 물어야 하는 건 자신이 의자 위에 앉아 있어도 되는지 여부였다. 그에 비하면 자신이 왜 항상 지나쳐 다니던 고급 여관의 식당에 들어와 있는지, 왜 자신을 소년이 샀는지 등의 문제는 죄다 후순위였다. 그러나 소년이 빨랐다.
“음, 좋아하는 음식을 몰라서 아무거나 시켰는데. 괜찮나?”
“예?”
“아, 중요한 게 이게 아니군. 이름이 뭐지?”
자이라는 딸꾹질이 나올 것 같았다. 저런 것을 물어보는 사람은 난생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다 자이라는 간신히 대답을 내었다.
“자이라입니다, 주인님.”
“그래, 자이라. 나는 크롬 레디오스다.”
성이, 있었다. 주인과 독대하고 있는 모습을 보아 귀족일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귀족이리라고는- 아니, 그보다 자신과 통성명을 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자이라는 그저 납작 엎드리고 싶었다.
뭐라 말하려는 순간 뒤에서 종업원이 다가와 크롬과 자신의 앞에 그릇을 놓고 갔다. 동그랗고 갈색이 도는 빵이 김을 모락모락 내며 바구니에 담겨 있었고 우묵한 접시에는 노란빛이 도는 물이 담겨 있었다. 죽이라기엔 색이 맑았다. 자이라는 그것을 자신에게 줬다는 것에 한 번 놀랐고, 그와 같은 것이 크롬의 앞에 놓였다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주, 주인님.”
말을 꺼냈지만 정작 뭐라 설명할 수가 없었다. 주인님이 드실 걸 빼앗는 것은 불경하다. 그러나 주인님이 저걸 드시게 둘 수도 없었다. 자신의 말주변이 이리도 모자랄 줄이야. 자이라는 속으로 끙끙 앓았다.
“음,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자이라.”
“네, 주인님.”
“난 네 주인이 아니야.”
자이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주인님인데 주인님이 아니시라니? 자신을 사서, 자신의 문서를 건네 받고 거기에 전 주인이 도장을 찍는 것까지 보았건만. 그럼 그것은 다 가짜였던 걸까? 자이라가 맹렬히 생각하고 있자 크롬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말을 잘못한 것 같군. 나는 너에게 주인으로 군림할 생각이 없다.”
“예...?”
크롬은 주섬주섬 안주머니에서 약간 색이 바랜 종이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반으로 찢었다. 그리고 그 둘을 겹쳐서 또 반으로 찢고, 그것을 반복했다. 자이라는 종이가 찢어지는 것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종이가 거의 가루가 되었을 때 크롬은 그것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자, 이제 자유민이 되었군.”
“...어...”
노예의 몸값은 얼마일까? 적어도 자신은 어리고 따라서 힘도 잘 쓰지 못하니 노예치곤 그리 비싸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 인생의 값이었다. 결코 값싸지도 않으리라. 그 가격이 눈앞에서 찢어졌다. 그리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이라의 눈이 종이쪼가리에 붙들려 떨어질 줄을 모르자 크롬이 헛기침을 했다.
“그러면, 자이라.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
“...예, 예.”
“기사가 될 생각은 없나?”
“기, 기사요?”
기사는 준귀족이었다. 자유민보다도 높았다. 갑자기 자유민이 된 것도 당황스러운데 기사라니. 자이라는 땅이 꺼진다고 해도 이보다 놀랄 것 같지 않았다.
“나도 아직 나이가 어려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자이라. 내가 보기에 너는 근골이다. 무술을 배우면 대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하루라도 빨리.”
“제가, 어, 어떻게 기사를.”
“물론 처음부터 기사는 아니겠지. 종자에서 시작해 무술을 오랫동안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크롬은 가볍게 쥔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툭 쳤다.
“그것은 레디오스 가문에서 도울 것이다.”
자이라는 멍하니 그런 크롬을 보고 있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고 싶었다거나, 얼떨떨했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이라는 지금까지 싫다고 말해본 적이 없었다. 아마 크롬이 아닌 이전 주인이 자이라를 침노로 쓰겠다고 해도 알겠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그 둘 사이에는 간극이 있었다. 넘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크롬이 숟가락을 들며 말했다.
“그럼, 먹고 저택으로 돌아가지. 여기는 우리집 주방장이 한 것처럼 콩소메가 맛있거든.”
“콩...?”
콩이 들어갔다는 걸까? 자이라는 크롬을 따라 시키는 대로 허둥지둥 숟가락을 들고 노란 물을 조심스레 떠서 입에 넣었다. 짭짤한 감칠맛이 입안에 돌았다. 그리고는-역시 크롬을 따라-바구니의 빵을 들어 손으로 찢었다. 말랑한 감촉이 손끝에서부터 느껴졌다. 아직도 뜨끈한 빵은 속살이 하얀색이었다. 입 안에 넣자 쫀득하게 이 사이에서 찢어졌고 혀끝에 단 맛이 감돌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뚜비꽁띠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