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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 등과 관련이 없습니다
다음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서 커크는 냉장고를 열었다. 찬 물 한 병과 맥주 몇 캔, 우유가 있었다. 커크는 냉장고를 닫고 위쪽 냉동실 문에 머리를 기댔다. 그리고 몇 번을 부딪쳤다. 여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진짜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비유적인 의미긴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침대도 당연히 모자라고 손님 없다. 손님을 집으로 초대한 주제에 텐트에서 재울 수도 없고- 자기가 나가서 자고 부부를 안에서 재우는 게 나을까. 어쩌자고 전부를 초대했지. 그렇지만 스팍만 초대하기에는 또 눈치가 보였다. 그리고, 그리고-
커크는 일단 고개를 들었다. 후회하기는 이미 늦었다. 지금은 움직여야 했다. -일단 스팍이 오면.
-
"어머니가 초대에 대단히 감사하다고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바이크가 아니라 무인 택시를 이용해서인지 얼굴이 그나마 더 편해 보이는 스팍이 말했다. 바이크의 진동에는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가방을 집에다 두고 오게 하고 와서인지 스팍은 유난히도 복장이 가벼워 보였다. 집에서나 보던 모습이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스팍은 좀 더 제 나이대로 보였다. 물론 벌칸이 본다면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평소에는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것을 더 선호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도 그렇지."
"오늘은 선호 체계의 전환에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인지를 규명하고 싶습니다."
"너희 부모님이 오셔서?"
"논리적이지 못합니다."
커크는 카트에 밀다가 잠시 멈춰섰다. 스팍도 자연스레 옆에 멈추어서 커크를 올려다 보았다.
"저도 손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커크는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렇긴 하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카트를 밀자 스팍의 얼굴이 더더욱 불퉁해 보였다. 커크가 발걸음을 일부러 느리게 하고 있어서 스팍이 따라오기는 어렵지 않았다. 양상추 코너 앞에서 두 개를 비교하고 있자 스팍이 옆의 다른 것을 집어들었다. 이게 더 수확 시기가 가까운 것 같습니다. 커크는 고개를 끄덕이고 카트에 넣었다.
"지난 번에 파스타 맛 없었어?"
"맛있었습니다. 그러나 논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음."
커크는 야채와 버섯을 눈으로 훑으며 고민했다. 스팍의 것이라고 해서 특별히 대충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보다 긴장했으면 모를까. 재료가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을까 봐 상당히 안절부절 하지 못하기도 했었다. 파스타가 그리 어려운 요리는 아니라곤 하지만, 하도 오랜만에 하다 보니 실패할까봐 여러모로 고민하기도 했었다. 커크는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사람이 더 많아서 많이 사야 하는데다 필요한 게 뭔지 이름을 모르겠어서."
"...논리적이군요."
결국 대충 다르게 둘러대는 것을 택했지만 스팍은 그럭저럭 납득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똑바로 앞을 바라보는 모습이 왠지 커크에게는 뚱한 모습으로 보였다. 롤리팝으로 달래 줄 수도 없고 어쩌나. 커크는 어설프게 웃었다. 차 마실래? 괜찮습니다. 먹을 걸로 달래려는 모습이 영 좋지는 않지만 고육지책을 거절 당하니 꽤나 아팠다. 물론 약간의 장난은 끼어있었지만. 그나저나 식사를 어떤 걸로 해야 하나. 그것도 세 끼나. 고기도 안 되고, 설탕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 외에도 뭐가 문제일지 모른다.-그래서 스팍을 데려온 것이기도 하다. 사실 그 이유는 한 1할 정도 되고 그냥 데려오고 싶은 게 9할이었지만-콩고기라는 게 있다는데 그걸 써볼까.
"두부 스테이크."
스팍이 툭 이야기 했다. 생각에 정신이 팔려있던 커크는 어? 뭐라고? 하고 귀를 기울였다. 스팍은 조금 더 또렷하게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다 두부 스테이크를 좋아하십니다. 소스는 자당을 넣지 않고 양파를 사용하십니다."
"오."
커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부가 어디쯤 있는지를 가늠했다. 그러다 커크는 스팍에게 고개를 내렸다.
"너도 두부 스테이크 좋아해?"
다시 앞을 바라보던 스팍이 커크에게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잠시 잠깐 숨을 멈춘 것처럼 눈을 깜박였다. 스팍? 눈동자가 잘게 흔들리는 것 같아서 커크는 약간 당황해 스팍을 불렀다. 예, 저도 꽤나 좋아합니다. 깊은 고뇌가 섞여있는 것 같았다. 커크는 그럼 두부 스테이크로 하자고 말하며 카트를 밀었다. 그리고 커뮤니케이터로 정보를 검색했다. 그리고 침음성을 흘렸다. 두부 스테이크는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요리였다.
-
양파와 당근, 버섯을 다져 으깬 두부와 섞어놓고 나니 정말 많은 양이 나왔다. 두고두고 먹어도 되겠는데. 커크는 찜찜하게 생각했다. 투명한 비닐봉지에 넣은 두부를 으깨고 랩으로 싼 덩이를 뭉치는 역할을 한 스팍은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요리의 신비함과 고통을 만끽하고 있었다. 일단은 자발적이었으나 약간은 민망한 도움이 아닐 수는 없었다. 그 외에도 다음날 먹을 빵과 버터, 잼 그리고 동물성 지방을 혹시 몰라 마가린, 야채 등을 손질하고 나자 어느새 해가 다 넘어가 있었다. 부모님이 오실 시간이어서 그런지 스팍이 문을 바라보는 빈도가 잦아져 커크는 그걸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부부는 일이 있어서 스팍을 먼저 보내고 저녁에나 올 수 있다고 매우 미안해 하였다. 마당에 두세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텐트를 다 치고 나자 부부가 도착했다.
"초대에 감사드립니다, 미스터 커크."
"저야 말로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스터 사렉."
그래도 나름 쓸고 닦았다고 그나마 민망하지가 않았다. 스팍도 아버지, 하고 문 앞에 나와서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했다. 저 부자(父子) 사이에는 상당히 친밀한 의미가 아닐까, 커크는 이제 허허로이 추측했다. 사렉과 아만다가 같이 전해준 선물은 나중에 확인한 바로는 최신간의 과학 저널과 당도와 알콜이 같이 있는 벌칸 술이었는데 저널은 명망 있는 연구자의 친필 사인본이었다. 커크는 이후 대단한 감사의 말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두부 스테이크는 약간 싱거운 것을 제외하면 꽤나 호평을 받았다. 사실 소스가 따로 있었으니 그리 큰 흠도 아니었던 셈이다. 사렉과 스팍은 모닥불 모양으로 마당에 피워둔 난로가 신기했는지-난로의 원리나 구조가 신기했다기 보다는 존재 자체에 의문을 느낀 모양이었다. 열대야가 곧 다가올 것 같은 여름 밤이니까.-밖에서 토의를 벌이고 있었고 덕분에 커크는 수월하게 설거지를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도와드릴까요?"
"아, 아뇨 괜찮습니다."
"원래는 사렉이 하는 거에요. 저니까 도와 드리는 선이지, 평소면 아예 미스터 커크를 밀어낼 걸요."
사렉이 오기 전에 얼른 끝내버리자구요. 저랑 사렉 사이에는 몰래라는 것도 없으니까. 커크는 뭐라고 말도 못하고 반쯤 밀려나다시피 싱크대 한 쪽으로 비켜 섰다. 아만다는 커크가 내어주는 접시를 문지르고 정리했다. 커크는 얌전히 세제를 풀어서 접시를 닦아냈다. 아만다가 문득 웃었다.
"스팍이 지구에서 잘 지내서 다행이에요."
"저야 저랑 놀아줘서 고맙죠."
농담을 하자 아만다가 또 웃었다. 스팍이 미스터 커크를 많이 좋아하나 보더라고요. 두부 스테이크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싹싹 비우고. 커크는, 아주 잠깐 표정을 잃었다가, 다시 웃었다.
-
약간의 다툼이 있긴 했지만 지구와 벌칸의 기온 차로 인해 커크가 이겼다. 텐트에 들어가기 전에 난로를 조절하고 있는데 스팍이 파자마를 입고 잠시 마당으로 나왔다. 전에 쓰던 싱글 사이즈와 지금 쓰는 퀸 사이즈 매트리스 두 개를 이어붙인 침대는 아마 그럭저럭 세 명이 쓸 만 할 것이었다. 그러나 잠자리에 들기 전에 스팍은 마당으로 나온 모양이었다. 커크는 난로 앞에 혹시 몰라 놓은 의자를 권했다. 스팍은 감사하다며 자리에 앉았다.
모닥불이 모양만이라 그런지 타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손 댈 것도 없이 흐르는 침묵에 커크는 고개를 들어 별을 보는 척 했다. 날이 맑아서 그런지 별이 아주 잘 보였다. 별자리를 잘 아는 것도 아니건만 이렇게 저렇게 이으면 무슨 모양이 나오지 않을까 대강 짐작이 갈 정도로 많기도 했다. 목이 뻐근할 때까지 올려다 보고 있다가 커크는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
"벌칸은 거짓말 안 한다고 하지 않았나?"
"예?"
"두부 스테이크 별로 안 좋아한다며?"
스팍이 입을 다물었다. 커크가 키득키득 웃자 곧 반박이 나왔다.
"그 시점이 되기 얼마 전에 좋아하기로 했으므로 거짓이 아닙니다."
"그렇습니까."
커크가 조금 놀리자 화가 난 것 같긴 했다. 그래도 뭐라고 추가 반박은 하지 못하고 약간 삐진 것 같은 무표정을 유지할 따름이었다. 커크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하나, 둘, 셋, 별 세 개를 이어서 삼각형을 만들고 다시 두 건너 뛰어서 선을 잇고... 여덟, 열하나, 열둘... 또 다시 건너 뛰어서.
"미스터 커크."
스팍이 다시 한 번 말을 건넸다.
"벌칸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셨습니까?"
커크는 스팍을 다시금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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