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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도 글 백업입니다.
“넌 왜, 지금도 나를 자꾸만 나를 아프게 해-!!”
oh my-! 김용은 영혼 없이 탬버린을 챙챙 흔들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호응으로 소리도 좀 내 주고 탬버린도 박자 맞춰서 잘 두드려 주었지만 이번이 중간에 끼워넣은 리메이크 곡 포함해서 벌써 다섯 번째 반복하는 곡이었다. 저 곡이 저렇게 마음에 드나. 김용은 탬버린을 들고 있지 않은 오른손으로 조미 오징어 하나를 집어다 질겅질겅 씹었다.
현재 위치는 단지 내 상가에 있는 그냥 평범한 노래방. 김용이 단골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그닥 특출날 것도 없다. 판매하는 음료수도 콜라, 사이다, 환타, 밀키스, 물, 아주 평범한 논 알콜 일색. 단란 주점이나 술을 판매하는 룸 같은 걸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그러니까 현재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알콜 도수가 근 40도에 육박하는 음료수와 안주 거리는, 김용이 주인 아저씨를 어떻게 간신히 구슬려낸 결과라는 뜻이었다. 하긴 당장 주인 아저씨한테 두 시간 주세요, 하고 외친 당사자부터 혀가 꼬여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도 했다. 그렇게 외친 당사자이자, 현재 마이크에다 대고 ‘아직도 너를 I still love you-!’라고 외치고 있는 저 최우혁을 바라보다 김용은 쯧, 하고 혀를 찼다.
오늘은 김옥분의 결혼식이 있었던 날이었다. 아주 깊은 산속에서, 저 멀리 북쪽 지방 어딘가에서 한다고 해도 용들의 집회는 눈에 띈다. 그들의 결혼식은 어쩔 수 없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루어졌다. 남녀 키 차이가 머리 하나는 나는데도 불구하고 누이는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환하게 웃는 얼굴. 그리도 싫어하던 풀 메이크업을 하고서도 누이는 환하게 웃었다. 허리를 조이고 머리를 예쁘게 단장하고 티아라에 무어에 한껏 차려입었다. 비록 남편과의 키 차이 때문에 하이힐은 신지 못 했지만 굽 낮은 예쁜 단화에 누이는 만족해 했다. 높은 구두를 신겨주지 못해 한없이 미안해 하던 신랑도 기쁨을 채 감출 수 없는지 관계가 어색한 자신에게도 배시시 웃는 얼굴을 보여주었다. 축하해 누나. 축하한다 옥분아. 축복에 둘러 쌓여있는 누이에게 최우혁도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넸다. 축하 드립니다 누님. 평소와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얼굴이어서 김용은 그러려니 했다. 결혼식장을 나서면서 최우혁이 김용을 잡지만 않았어도 계속 그러했을 것이다.
‘용씨, 바빠요?’
‘엉?’
그 때 최우혁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계단의 두어 칸 아래에서는 최우혁의 턱밖에 보이지 않아서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김용은 알 수 없었다. 정장이 불편해서, 목을 조르는 넥타이와 사투를 벌이던 김용은 두 팔을 늘어뜨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최우혁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아니, 별로.
그러지 말걸 그랬나. 김용은 얼음 대신 찬물을 부은 술로 입술을 축이며 멍하니 생각했다. 1차는 그래도 얌전하게 맥주였다. 튀긴 닭과 튀긴 감자를 먹으며 말 없이 목이나 축이는 정도였다. 2차는 집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손 안 하나 가득 묵직하게 소주로 가득 찬 편의점 봉투를 보며 김용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설마 3차 까지 있었다니. 그것도 최우혁이 귀하게 아끼던 양주까지 헐어서. 아직 갈아입지도 못한 양복은 외투만 벗어서 한 켠에 쌓아두었고 취한 게 간신히 풀려가는 목이 영 뻣뻣했다. 아 어깨 아파. 김용은 목을 기울이며 반대편 어깨를 주물렀다. 그 사이 간주고 뭐고 다 끝났는지 최우혁이 거의 기듯이 자리로 돌아왔다. 노래방 기기가 팡파레를 울렸다. 가수 하셔도 되겠는걸요? 최우혁이 낄낄 웃었다.
“가수 해도 되겠다는데?”
“...그러게요.”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최우혁은 테이블에 기대서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반쯤 차 있는 술잔을 집어드는 최우혁을 보고 김용은 어색하게 입을 떼었다.
“힘내라, 야.”
“뭐가요 또.”
“연애 또 하겠지.”
“소설 소재로 써먹지나 마세요.”
아 들켰네? 김용이 천연덕스럽게 말하자 최우혁이 술잔을 한 번에 들이켰다. 딱, 소리 나게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최우혁은 테이블 위에 엎드렸다. 털썩, 하는 소리가 진짜로 날 정도로 몸을 배려하지 않아서 김용은 술병을 치워버려야 하나 잠깐 생각했다. 그 많은 술을 혼자 다 마시고도 취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취해서 저 모양인건지. 최우혁이 발작적으로 웃기 시작했다.
“그래요 다 연애 하겠지 다. 다. 나도 연애하고 용씨도 연애하고 옥분 누님도 연애 하고. ...연애하고....”
취해서 저런 거였군.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김용은 가까스로 냉정하게 생각했다. 아무래도 더 먹여서 재워야하나. 김용은 최우혁의 술잔에 양주를 채웠다. 병에서 꼴꼴꼴 하는 소리가 나며 맑은 호박색의 액체가 고급스런 병에서 유리잔으로 흘러내렸다. 용씨이. 하고 최우혁이 말꼬리를 늘였다. 목소리가 조금 잠긴 게 눈물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처음 듣는 목소리에 김용은 조금 멈칫했다.
“나는요... 나느요, 내가 다 잊은 줄 알았는데....”
왜 못 잊었지… 발음이 뭉개지고 있었다. 한쪽 팔에 얼굴을 묻고 나머지 한쪽 팔로는 뒷머리를 내리 누른채 간헐적으로 떠는 최우혁을 보고 김용은 잠시 멈칫했던 팔을 움직여 딱, 하고 테이블에 술병을 내려놓았다. 노래방 기기가 작동하지 않는 노래방 룸은 가끔 불빛만 번쩍 거리지 별 소리도 나지 않았다. 좀 먼 곳에서 들리듯이 신나는 노래가 문 틈으로 끼어들고 있을 따름이었다. 김용은 소파 등받이에 등과 뒷머리를 기댔다. 야. 김용은 최우혁을 불렀다.
“넌 왜 연애 안 했어?”
“했는데요.”
대학생 때. 얘기 들었으면서. 웅얼웅얼 말하는 게 팔에 막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대충 알아 들을 것 같았다. 아니 그거 말고.
“누나한테 차인 다음에.”
“실연했다고 그 사람 안 좋아하는 거 아니잖아요.”
용은 엄청 세심함이 없구나아. 최우혁이 키득키득 웃었다. 그 동안 못 들은 웃음을 다 듣는 것 같아서 이 상황이 김용은 조금 웃겼다. 이제는 남편 분 있으니 다 소용 없지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넥타이를 다시 조정하고 있는데 최우혁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엄.
“용씨는 왜 그동안 연애 안 했는데요?”
“글쎄.”
김용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술잔을 다시 집어들었다. 부어놓은게 얼음도 아니고 찬물이라 그새 미지근해져 있었다.
“-우리 누나가 사랑 받아서?”
김용은 눈을 가느다랗게, 내리 깔고, 분명한 의도를 담아 말했다. 흘끗, 김용은 최우혁을 쳐다보았다. 분명히 최우혁은 팔을 괴고 있었지만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다는 뜻이기도 했다. 동공이 뾰족한 파충류의 눈과, 동그란 포유류의 눈이, 마주쳐서. 푸핫, 하고 최우혁이 웃음을 터트렸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포복절도였다. 튕기듯 일어나다 못해 뒤로 넘어갈 것 같이 웃다가.
“용씨 그거 근친....”
최우혁은 옆으로 쓰러졌다. 숨이 순식간에 고르게 변한 것이 놀랠 필요도 없이 그냥 잠든 것인 듯 했다. 푹, 한숨이 나왔다. 그래 내가 그 따위로 썸 탄 놈한테 뭘 바라겠어. 김용은 잔을 채웠던 술을 한번에 들이켰다. 좀 전까지는 술술 넘어가던 술이 유난히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