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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D/기타

[에그시해리] 피에타

ㄷㄷㄷㄷ 2023. 1. 25. 13:43

2015년 글 백업입니다.

-킹스맨 강스포 주의 대박 스포 주의 완전 스포 주의
-취향 탈 수 있는 소재입니다. 죄송합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조금 더 걸릴 줄 알았는데."
멀린은 패드를 몇 번 두드리고는 조종석을 향했다. 아니. 너 공주하고 재미 보러 들어갔잖아. 병 있냐? 에그시는 고개를 기울였다.
"재미 없는 농담인데요 멀린."
"네가 거기 들어간 시점부터 난 재미가 없었거든."
Oh, well. 멀린의 목소리가 한껏 날이 서있어서 에그시는 왼쪽눈을 찡긋 윙크했다. 멀린이 진저리를 쳐서 에그시는 아주 작게 웃었다.
"이름이 알려지면 안 되는 사람은 얼굴도 알려지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기억 삭제침 한 대 쏴 드리고 왔죠."
"그정도는 생각하고 있었군. 다행이야."
멀린는 조종간으로 돌아와 시동을 걸었다. 엔진이 켜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이제 란슬롯을 데리고 런던으로 돌아가야지. 정리할 일이 산더미였다. 내부적인 조직 정비와 바깥의 상황까지 앞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쁠터였다. 며칠 밤 새는 건 각오해야겠지. 조종간을 당기는데 에그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멀린.
"저 가는 길에 미국 좀 들릴게요."
"…언제부터 미국이 옆동네가 되었는지 모르겠군."
에그시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에는 재미있는 농담이었나보지? 기준을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멀린은 인상을 썼다. 에그시는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럼 대서양을 건너는 옆동네 좀 다녀올게요. 멀린은 결국 조종간을 끄고 의자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에그시는 태연하게 자리에 앉아서 다리를 꼬고 있었다. 발을 까딱이면서.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건 네가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에그시."
"오, 그건 그렇죠. 그래요."
멀린은 안 그래도 다 깎아놓은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어쩜 이렇게 제 후견인하고 똑 닮았을지. 안경을 벗고 한 손으로 미간을 주무르는데 에그시가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래도, 멀린. 시체는 거둬야죠."
아까보다 한결 침착한 목소리였다. 멀린은 다시 안경을 끼었다. 에그시는 웃고 있었다.
-
공항에서 내려서 에그시는 장우산을 짚으며 타박타박 걸었다. 공항에서 교회까지는 차로 한 시간 반 정도로 지금까지 이동시간에 비추어보면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으나, 사람들이 혼란에 빠져 있는 지금으로써는 상당히 먼 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택시라도 잡거나 해야할까. 에그시는 흥미 없이 생각했다. 그러나 고민은 아주 잠시였고, 에그시는 그냥 차를 한 대 사거나 대절하는 편이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핏자국이 남아서 곤란할 일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공항 앞을 잠시 두리번거린 에그시는 잠깐의 흥정 끝에 v-day 때문인지 겉모양이 매우 너덜거리는 차를 한 대 구매할 수 있었다. 구매라기보다는 대여라고 하는 것이 어울렸고, 운전 자체에 별 이상은 없었지만 범퍼 뿐 아니라 여기저기가 망가져 있었기 때문에 에그시가 잠시 사용한 후에는 폐차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상당히 웃돈을 준 격이 되긴 했지만 어쨌든 에그시는 만족해하며 운전석에 올랐다. 상대방도 꽤나 만족스런 거래였는지, 다녀와서 봅시다 신사분(Gentleman)이라 말하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에그시는 가벼운 윙크로 대답을 대신했다.
교회는, 아니 교회가 있는 마을은 황무지 한가운데에 있었다. 마을 자체가 교회를 중심으로 이뤄진 것인지 인기척은 드물다 못해 없었다. 아이들도 없는 모양이었다. 에그시는 차 문을 닫고 교회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해리 하트가 쓰러져 있었다.
에그시는 해리 옆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해리의 머리맡에 우산을 가로놓았다. 목의 경동맥에 손을 가져갔다. 날이 밝아서일까, 몸은 따뜻한 편이긴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온이라기엔 차가웠다. 미동조차 없는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에그시는 해리의 뒷목 아래로 손을 넣었다. 묵직한 무게가 어렵사리 일으켜졌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그런 건지 사후 경직으로 딱딱해진 몸이 앞으로 밀려서 에그시는 해리의 오금 밑으로 다른 한 팔을 넣었다. 해리가 에그시의 팔 안에서 몸을 기댄 모양새로 눈을 감고 마치 잠든 것처럼 에그시 반댓쪽의 팔을 땅에 늘어뜨리고 있었다.
에그시는 문득 이 모습을 사진 찍으면 어디서 본 듯한 모양새가 나올 것이라 느꼈다. 아, 그래. 피에타였다. 시험을 치기 위해 급속도로 머릿속에 우겨넣은 지식이긴 하지만 확실하게 에그시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그건 피에타였다. 아들을 잃은 성모 마리아가, 자신의 아들을 안고 비통해하는 모습을 그리거나 조각한 성화, 성상을 총칭하는 말. 그리고 작품의 이름. 피에타는 비탄이라는 의미라고 했다.
에그시는 웃기지 말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모습은 결코 피에타가 될 수 없었다. 해리. 에그시는 해리의 이름을 불렀다. 당연하지만 어떠한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
에그시는 전혀 비통하지 않았다.
에그시는 해리가 되고 싶었다. 갤러해드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해리가 되고 싶었다. 그 압도적인 강함, 강렬함, 아름다움- 그 다정한 무심함까지, 전부. 에그시는 분명히 해리를 사랑했다. 그랬기에 그는 해리가 되고 싶었다. 이 감정이 오디이푸스 콤플렉스라고 지칭 된다면 에그시는 분명코 머리 끝까지 분노할 것이었다. 그는 해리를 대신해서 그의 것을 갈취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해리를 먹어치우고 싶은 것이었다. 그의 존재. 그의 목표. 그의 열망. 그의 삶. 전부를.
"해리."
에그시는 해리를 불렀다. 굵다란 뿔테 안경이 눈에 들어와 에그시는 작게 웃으며 입술로 안경을 벗기고 당신의 피로 범벅이 된 관자놀이에 입을 맞추었다.
해리는 분명히 그의 아버지를 침실에 같이 두는데 실패했지만.
"해리 하트."
그는 해리를 자신의 침실에 뉘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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