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D/메이즈러너

[민톰/늍갤] Wait a second, dear (8)

ㄷㄷㄷㄷ 2023. 1. 22. 13:50

2015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해리포터au, 수위는 없으나 오메가버스, 네임버스 세계관입니다.

*대괄호[] 안은 한국어라는 설정입니다. 인소 같아요 죄송합니다.

*속편 스코치 트라이얼의 캐릭터 스포일러가 있으되 캐붕일 예정입니다. 죄송합니다.

 

첫 시험날 아침은 결국 소득이 없는 채로 밝았다. 한 없이 상쾌해 보이는 토마스에 비해서 트리샤는 피곤해 보였고, 척은 통통한 볼살이 약간 헬쓱해 있었다. 트리샤는 이를 갈며 저걸 연회장 천장에 매달 수 있다면 벌점 백 점과 징계를 가벼이 받겠다고 중얼거렸다. 덕분에 토마스는 아침으로 먹던 버터를 듬뿍 바른 토스트에 마멀레이드와 땅콩버터를 사용한 샌드위치, 오믈렛을 접시에 쏟아버릴 뻔 했다. 척은 조용히 제 몫의 오렌지 주스를 밀어주었지만 트리샤를 말리지는 않았다.

시험장은 퀴디치 시합장이었다. 머글 세계의 비눗방울 고리를 수천배로 키워놓은 듯한 골대 세 개가 나란히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고 있었다. 퀴디치 시합장은 정말로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새여서-현수막이 호그와트 기숙사 들에서 호그와트의 상징 현수막과 덤스트랭, 보바통의 상징 현수막으로 대체된 정도였다-토마스는 그게 조금 어색했다. 당사자가 퀴디치 선수 대기실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면 그 어색함은 당연히 배가 되었을 것이다. 토마스는 퀴디치팀에 가입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룰을 지켜가며 하는 모험이라니, 토마스에게는 관심 밖의 사항이었다. 빗자루 타 본 게 언제였더라. 토마스는 아련하게 추억했다.

출입문의 맞은 편에 커튼이 드리워져있는 선수용 대기실은 상당히 좁았다. 좁은데다 남자애들이 주로 사용해서 그런지 기묘한 냄새까지 났다. 오래된 나무판에 배어있는 짙은 땀냄새는 어쩌면 약간 혐오감까지 들 정도였다. 환기하는 주문이 어떤 거였지. 생활 마법은 학문의 대상으로는 잘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에 한참동안 머리를 잡고 끙끙 대고도 떠올릴 수 없었다. 덕분에 코가 먼저 적응해 버렸기 때문에 토마스는 그냥 벤치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선수용 대기실 문이 한번 더 열렸다.

갈색. 덤스트랭 제복이었다. 어깨가 넓고, 검은 머리칼을 왁스로 세우고, 약간 찢어진 눈매. 토마스는 눈을 두어번 깜박이고는 급히 뒤쪽의 라커에 기대었던 등을 세웠다. 둥글게 굽었던 허리를 곧게 세우고 토마스는 머리를 손으로 가볍게 쓸어 넘겼다. 멍청하긴, 생각해 보니 이미 자신과 민호는 불의 잔으로 묶인 사이다. 그냥 그것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말을 붙일 수 있을 텐데 무슨 고민을 그렇게 했단 말인가. 그러니까, 지금 말해야 하는 게.

"안녕?(Hi.)"

"...안녕.(Hi.)"

민호가 고개를 끄덕, 하고 위아래로 움직이며 대꾸했다. 이거면 되는데! 나는 왜 그렇게 안달을 하면서 애를 태웠단 말인가. 토마스가 흐려진 눈으로 스스로를 욕하는 동안 민호는 아무렇지 않게 문을 닫고 선수실로 들어와 토마스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아서 눈을 감고 락커에 등을 기대었다. 비좁은 선수용 대기실 덕에 거의 눈 앞에 민호의 얼굴이 보였다. 오, 내 네임 파트너가 이렇게 생겼구나. 토마스는 흥미롭게 민호를 관찰했다. 뭐라고 말을 붙여야 할까. 피부가 구리빛이네. 무슨 말로 시작을 해야. 팔짱낀 어깨가 굉장히 넓다. 가슴팍도 크고. 그러니까-

"근육이 상당히 좋은데?"

민호가 눈을 슬쩍 뜨고는 토마스를 흘긋 바라보았다. 그제야 제가 무슨 말을 던졌는지 정신을 차린 토마스는 헙, 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건 초장부터 성희롱을 해 버린 꼴이다. 아니, 그러니까 수습을, 수습을 해야-

"뭔가 특별히 트레이닝 하는 거 있어?"

수습 되었나? 되었나? 토마스는 얼마 없는 눈치를 긁어다 민호의 낌새를 살폈다. 얼굴이 무표정 했지만 특별히 화가 난 것 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무표정한 시점에서 이미 화가 난 것일 수도 있다. 등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목 뒤에서 식은 땀이 흐르는 게 절로 느껴져서 토마스의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무릎 위에 올려놓은 팔꿈치 덕에 허벅지가 아파오는데 시선을 피하는 것도 애매해서 토마스는 고개를 슬쩍 돌렸다. 그리고 다행히도, 행운은 토마스의 편인 것 같았다.

"...실례."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검은 머리의 여학생이 뚜벅뚜벅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보바통의 교복이 아닌, 종아리를 가볍게 덮는 부츠와 셔츠, 까만 바지 차림이었다. 포니테일의 머리카락이 가볍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대기실로 걸어들어왔다. 토마스의 뺨에 닿아있던 민호의 서늘한 시선이 순식간에 문쪽으로 옮아갔다. 심사위원은 남자였다. 검은색에 가까워 보이는 짙은 녹색의 망토를 입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짙은 회색의 정장이었다. 숱 많은 검은 머리를 왁스로 넘긴, 상당히 젊은 사람이었다. 나무바닥에 부딪히는 구둣발 소리가 멈추자 심사위원이 헛기침을 하여 목을 가다듬었다. 공기의 흐름이 순식간에 심사위원을 향해 몰렸다.

"많은 이야기를 해야겠지만- 여러분의 긴장을 약간이나마 달래기 위해,-심사위원이 세명을 빙 돌아보았다-거두 절미하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시험은 퀴디치입니다."

퀴-디-치. ch 발음이 심사위원의 혀 끝과 입천장 사이를 울리다 스러졌다. 토마스는 눈을 깜박였다. 빗자루를 잘 챙기라고 한게, 그게, 그러니까. 아니, 그보다, 세 명이서 퀴디치를 해야 하는 건가, 퀴디치 적정 인원이 얼마였지. 공 이름이, 공 이름이 뭐였더라.

"다만, 여러분은 각자가 상대팀을 대면해야 할 것이며, 이 퀴디치는 특수한 룰이 적용되어- 퀘이플과 스니치를 둘 다 잡으셔야 게임이 끝납니다."

[거지 같네.] 옆에서 아주 낮은 소리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토마스는 옆을 돌아보았다.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여하튼 그리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았다. 민호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입을 꾹 다물고 있어서, 뭔가 말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토마스는 조금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심사위원이 한 번 더 헛기침을 했다. 토마스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마법은 허용되지만, 퀘이플과 스니치에는 마법이 걸리지 않을 겁니다. 상대팀에게 물리적이건 마법적이건 폭력을 행사하시는 건 당연히 허용되지 않는다는걸 유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순서를 정할 테니 다들 모여주세요."

모여 달라고 해 보았자 좁은 공간이었기 때문에 몇 발자국 움직이지도 않았다. 벨벳으로 만든 주머니 안에 세 개의 손이 들어가고 달각, 하고 손에 차가운 감각이 와 닿았다. 쇳조각. 토마스는 손가락에 고리를 걸고 빼냈다. W. 그리고 3. 놋쇠로 만든 두 글자가 동그란 고리에 걸려서 하나로 엮여 있었다. 마지막 순서. 토마스는 민호를 돌아보았다. H, 그리고 1. 민호가 첫 순서였다. 

"순서가 정해졌으니 곧 시합이 시작 될 겁니다. ...빗자루는 미리 준비해 비품 로커 안에 넣어두었으니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문이 닫혔다. H, 그리고 1.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어쨌든 위험할 것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것도 민호는 특별히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이 바로 시합에 뛰어들어야 한다. 토마스는 민호를 돌아보았다. 민호는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별 어려움도 없이 거의 바로 비품용 라커를 찾아냈다. 잔가지 하나 없이 다듬어진 새 빗자루가 비품라커에서 나왔다. 민호는 소매 단추를 툭툭 풀어 팔꿈치 위로 둘둘 말아 올렸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문 반대편을 향했다. 토마스는 민호의 뒤를 따라 움직이다 문득 이름을 불렀다. 민호. 민호가 커튼을 잡은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 아니, 어-.(Th-, no, um-.)"

잠시 말을 고르던 토마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가볍게 말을 꺼내면 되는데, 이런저런 상황이 겹쳐서일까, 목구멍이 막힌 것 같았다. 뒤에서 보바통의 선수가 자신의 등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처음으로 쥐구멍으로 숨고 싶다는 기분이 들어서 토마스는 약간 비참했다. 민호가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질문 때문이라면, 해."

"어?"

트레이닝. 하고 민호가 부연설명을 했다. 토마스는 눈을 깜박였다. 아, 아까 그, 횡설수설 한. 몸이 좋다 어쩐다 한 그거. 민호는 커튼을 걷었다. 커튼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 커튼이 맞긴 하지만, 그건 퀴디치 시합장과 선수실 사이를 막아놓은 벽이기도 했다. 커튼을 경계로 나무 바닥과 잔디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구름 사이로 옅게 비치는 햇살과,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성 소리가 선수실 안쪽까지 쏟아져 들었다. 해설자의 목소리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신사숙녀 여러분, 이제 곧 첫번째 선수가 입장하도록 하겠습니다... 토마스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민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몰이꾼이라서."

민호가 땅을 박차고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