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D/메이즈러너

[민톰/늍갤] Wait a second, dear (4)

ㄷㄷㄷㄷ 2023. 1. 22. 13:46

2015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해리포터au, 수위는 없으나 오메가버스, 네임버스 세계관입니다.

*대괄호[] 안은 한국어라는 설정입니다. 인소 같아요 죄송합니다.

*속편 스코치 트라이얼의 캐릭터 스포일러가 있으되 캐붕일 예정입니다. 죄송합니다.

 

토마스는 접시에 샐러드를 덜며 눈동자를 굴렸다. 앞으로 한 줄 뒤, 레번클로 식탁 너머로 파란색 보바통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들이 줄지어 앉아 까르르 웃어대고 있었다. 그로부터 또 두 줄 뒤. 슬리데린과 후플푸프를 지나서 적갈색 교복-아니, 제복이라고 하는 편이 어울리려나. 여하튼간에 덤스트랭의 남고생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느 학교던지 간에 7학년들만 와서인지 기숙사별로 앉은 것보다 인원이 훨씬 적어보였다. 보바통 여자아이들의 수다는 높은 편인 목소리에 비해 어쩐지 가볍다는 인상이 없었다. 특별히 누굴 험담하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에 비해 덤스트랭은 뭔가, 엄한 인상이 있는 건지 전체적으로 묵질한 분위기가 있었다. 특별히 말을 안 하는 건 아닌데 왜- 아 저기 맨 앞쪽에 앉은 반장하고 부반장 때문인가. 

"토마스. 버터 떨어진다."

목이 빠져라 빼어서 저 너머를 쳐다보는 토마스가 트리샤는 조금 창피했다. 테이블에 버터를 덩이로 흘릴 뻔 한 걸 간신히 수습한 토마스가 소금을 샐러드 위에 무더기로 치는 걸 보다가-여전히 시선은 저 너머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트리샤는 조금 깊게 한숨을 쉬었다. 왜 나랑 척이 얘의 엄마 아빠 역할을 맡고 있어야 하는 걸까. 우린 얘랑 동갑인데. 친구란 대체 뭘까. 얘를 이뻐하는 교수님들을 이해 할 수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후추통을 들어서 접시에 엎으려고 드는 토마스를 결국 트리샤는 기겁을 하고 말렸다. 

"어, 어 응. 조심할게."

"접시에 조금 더 신경을 쓰면 안 될까."

세 학교가 다 같이 모인 게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긴 하지만 말야. 척이 조금 지친 것처럼 말했다. 눈치가 아예 죽은 건 아닌지라 토마스는 조용히 접시에 코를 박았다. 이 때 잘못 건드리면 트리샤보다 척이 더 무섭다. 아, 샐러드가 눈물나게 짜다.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는데 잠시 못마땅하게 토마스를 쳐다보던 트리샤가 화제를 돌렸다.

"근데 저거 좀... 기분 이상하지 않아?"

트리샤는 교수님 좌석을, 그 중에서도 중앙을 바라보며 말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타오르고 있는 불의 잔을 보고 있었다. 물론 흘끗 쳐다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돌리긴 했지만, 그리 편해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피곤해보이는 것에 가까웠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시험이라니, 발표날 되니까 쓸데없이 초조해지기도 해서..."

한껏 지쳐보이는 트리샤를 보다 토마스는 흘끗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소금을, 좀, 아주 조금 많이 치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럭저럭 차 있는 자신의 접시에 비해 트리샤의 접시는 별로 올라간 것이 없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시간이라거나, 트리샤가 기본적으로 그리 잘 먹는 편이 아니라는 걸 고려해 보아도 그랬다. 척이 트리샤의 침묵을 받아서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사실은, 음, 난 네가 불의 잔에서 이름이 안 나왔으면 좋겠어."

토마스는 컵을 식탁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괜시리 웃어보였다. 이건 또 이상한 기분이었다. 학교에 가는 급행열차에 오를 때마다 엄마가 짓는 그런 표정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조금 아리면서도, 뭔가가 북받혀 올라오는, 그런 기분. 그래서 토마스는 방긋 웃어보였다.

"나니까 살아남는 거지 다른 사람들은 누가 하겠어? 호그와트 제일의 사고뭉치가 나 아니겠, 억."

"그러니까 걱정되는 거지 멍청아."

트리샤가 토마스의 정강이를 식탁 아래로 걷어찼다. 척이 약간 짜증스러운 것 같은 눈으로 토마스를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진지하게 좀 받아줘 토마스. 아무래도 오늘은 척이 토마스를 도와주지 않을 모양이었다.

방울이 울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교수석 쪽이었다. 주의를 집중시키는 유리잔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대연회장이 침착하게 가라앉았다. 교장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대연회장의 촛불이 하나 둘 꺼지기 시작했다. 교장선생님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 우리는, 가장 위험한 시험에 도전하게 될 세 사람을 뽑을 겁니다."

"아, 서론이 짧았으면 좋겠는데."

토마스가 웅얼거렸다. 트리샤가 토마스의 정강이를 한 번 더 걷어찼다.

"이 시험은 인내, 용기, 지혜, 열망,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을 시험하고 모든 것을 던져넣어야 하는 고난의 길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목숨까지도 말입니다. 이름에 관해 유명한 한 사람과 그 사람에 대적한 다른 한 사람의 이야기로, 여러분은 이미 이러한 크나큰 주의사항에 관해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토마스는 조용히 정강이를 싸쥐고 끙끙거렸다. 척은 말 없이 통통한 손으로 토마스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려주었다.

"시험은 오늘 오후까지 자격있는 모두에게 열려있었습니다. 도전을 선택한 자도 있고, 다른 길을 선택한 자도 있으며, 원하는 자도 있고, 원하지 않는 자도 있습니다. 그 모든 선택에, 일단 존중을 바칩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선택의 결과를 추려낼 시간입니다."

교장선생님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촛불이 모두 꺼지고 초는 탁자 위에 내려앉았다. 유일한 광원은 푸르게 타오르는 불의 잔 뿐이었다. 불이 길게 팔을 뻗었다. 그리고는 채찍 휘두르듯 제 팔을 휘저었다. 교장은 불의 잔과 손을 맞추어 종이를 잡아 냈다. 바스락거리는 양피지의 소리가 연회장 곳곳에 부딪혔다. 아주 잠깐의 시간 후, 고개를 든 교장이 호명했다.

"보바통, 브렌다."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 보바통 테이블의 중간에 앉아있던 검은 머리의 여자아이가 일어나서 앞으로 걸어나갔다. 절도있는 걸음걸이였다. 포니테일로 높이 묶은 머리카락이 걸음에 맞추어 조금씩 움직였다. 지난번 보바통의 퍼포먼스는 좀 더 하늘하늘하고, 귀여운 느낌이었는데, 그것과는 거리가 조금 멀었다. 그리고 키도 상당히 큰 편이었다. 여자아이나 소녀라고 부르기에는 약간 민망할 정도로 키가 컸다. 그렇다고 거인 같이 보일 정도로 무작정 큰 건 아니었지만- 트리샤하고 키가 비슷하거나 그보다 조금 더 큰 정도로. 교장 선생님 앞까지 나아간 소녀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교장도 가벼운 목례로 그에 답했다. 불의 잔이 한 번 더 타올랐다.

"-호그와트, 토마스."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떨어져내렸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들어맞는 불의 잔의 선택에 심장이 아랫배까지 떨어졌다가 금세 제 위치로 돌아왔다. 토마스는 고개를 돌려 척과 트리샤를 바라보았다. 약간 착잡한 표정의 척과, 역시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의 트리샤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녀올게. 일어선 자세 그대로 토마스가 속삭였다. 척이 고개를 끄덕였다. 트리샤는 눈을 피하고, 고개를 약간 숙였다. 교장 선생님 앞까지 걸어간 토마스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조금 걱정스러운, 그러나 약간의 뿌듯함 또한 담겨있는 표정으로 교장이 인사를 받아주었다. 토마스는 보바통의 선발자 옆에 어깨를 펴고 섰다. 자신이 조금 더 컸다. 그리고- 어, 얘 알파네. 토마스는 킁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여자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뭐라고 말을 걸려는 찰나에 불의 잔이 다시 한 번 타올랐다. 양피지가 바스락거리고, 그리고.

"덤스트랭. 민호."

토마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뭐? 민호? Min-ho, 민호? 저쪽 덤스트랭 테이블에서 잠깐 토마스의 시선을 빼앗았던 반장과 부반장 중에 부반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발머리의 반장이 검은 머리의 부반장의 등을 두어번 두드렸다. 동양인이었다. 호그와트에도, 동양인은 있지만, 덤스트랭에 동양인이었다. 아니 잠깐만 그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거지. 아, 근데 동양 어디지. 중국인은 확실히 아니었다. 제 견갑골에 써 있는 문자를 보며 중국인 친구가 한자는 아니라고 해준게 엊그제, 잠깐만, 이게, 어느나라 문자였지?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뇌리를 정신없이 스쳐지나갔다. 그새 여기까지 걸어나온 남자가 제 옆에 섰다. 알파 페로몬이 주변에 넘실넘실 넘쳐나서 골치가 아파왔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 알파 둘에 오메가 하나. 성비 한 번 참 완벽했다. 토마스는, 교장선생의 연설 사이에 속삭이듯 제 옆의 덤스트랭 선발자에게 물었다.

"이름이 민호야?"

슬쩍, 덤스트랭이 토마스를 돌아보았다. 무뚝뚝하게 생긴 얼굴에 약간 찢어진 눈으로, 돌아보았다기 보다는 흘긋 보았다고 하는게 더 어울리는 태도였다. 

남자가- '민호'는 한 번 고개를 얕게 끄덕였다. 그리고는 곧장 고개를 돌려서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토마스는 눈을 깜박일 수 밖에 없었다. 민호. 나는 그 네임을 어떻게 발음하는지를, 어떻게 알고 있지? 폼프리 부인이 읽어주셨던가? 그럼 어느나라인지는 왜 모르는 거지? 처음부터 알았던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그게 네임의 신비라고도 했다- 그 이름을 듣자 마자, 저게 내 견갑골에 새겨진 이름이라는 걸 번개가 내리치듯 토마스는 깨달아버렸다.

토마스는 그렇게 트리위저드 시합 진출자가 되었다. 그리고 네임파트너를 만났다. 그야말로 기록할만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