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D/스타트렉

[존+본즈] 죽은 자를 위하여

ㄷㄷㄷㄷ 2023. 1. 22. 13:40

2015년 글 백업입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다크니스 스포 주의
*현대식 냉동시술법 주의(냉동시술법 출처 위키백과http://ko.m.wikipedia.org/wiki/%EC%9D%B8%EC%B2%B4%EB%83%89%EB%8F%99%EB%B3%B4%EC%A1%B4)



"본즈."
커크가 웅얼거렸다. 링겔을 다시 조정하느라 뒤돌아 서 있던 본즈는 왜 꼬맹아, 하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커크는 이불을 한 번 부스럭거리곤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소리가 들렸다. 본즈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존 해리슨은 죽었어."
본즈는 손을 계속 움직였다. 알고 있어. 레너드 맥코이는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말을 했다.
-
채혈을 할 때,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서 첨언하자면, 커크를 되살리기 위해 스팍이 끌고 올라온 존 해리슨의 피를 채혈할 때, 존 해리슨의 정신은 아주 멀쩡했다. 기절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구금실 한 켠에 얌전히 처박혀 있는 상태로 수족갑을 찬 채였다. 칸의 행보로 볼때 차라리 파격이라고 할 수 있는 태도기는 했지만, 현명한 태도기도 했다. 머리 꼭지가 돈 것을 간신히 잠갔다 뿐이지 당장이라도 달려들어서 뼈를 씹어버릴 것 같은 벌칸이 구금실 앞을 냉정하게 지키고 있는 상태였으므로. 덕분에 레너드는 안전하게 채혈을 끝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손 끝조차 닿고 싶지 않았긴 했지만 어쨌든 이 혈청으로는 짐을 살릴 수 있었다. 시험관 반 병. 충분한 양이었기 때문에 레너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등 뒤에서 후, 하고 한숨과 웃음의 중간 쯤 되는 소리가 들렸다. 맥코이는 무시했다.
구금실 문 밖을 나서며 레너드는 스팍의 어깨를 이를 악물고 두어번 두드렸다. 엔터프라이즈의 부함장은 과학부지 전투 크루가 아니다. 그런 부함장이 굳이 구금실 앞을 지키고 선 까닭은 그 놈의 에브리띵 배터 때문이었다. 앞으로 며칠간을 내리 서 있어야 할 것이기도 했다. 스팍은 슬쩍 맥코이의 손을 곁눈질로 주시하기는 했지만 그 뿐이었다. 무슨 의미인지는 접촉 텔레파스인 벌칸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레너드는 달렸다. 손에 시험관을 꼭 쥔채로. 다시 그들의 함장의 숨을 돌려놓기 위해서.
그리고 이 한마디를 전해주기 위해서기도 했다.
"수술은 성공했어 이 망할 자식아."
수족갑을 찬 채 미동조차 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던 존 해리슨이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유리벽 너머 맥코이가 뭐라고 지껄이든 신경쓰지 않겠다는 태도처럼 보여서 레너드는 damn하고 욕설을 지껄였다.
"안 들리냐 멍청한 놈아? 짐이 살아났다고."
숨도 맥박도 돌아오고 며칠동안이나 그 놈의 불안정한 상태와 씨름해서 어제 밤에야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 사실을 보고하고 나서야-스팍은 거의 구시대의 고무줄 총이라는 장난감에서 고무줄이 튕겨나가듯이 달려갔다-기절하듯 잠들 수 있었던 레너드는 의식이 물 위로 오르자 마자 조롱이라도 날리기 위해 칸을 찾았다. 비록 조롱의 당사자는 거의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그놈의 유전자가 무엇인지 칸은 거의 숨도 쉬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이 숨소리조차 작고, 얕고, 그조차도 거의 없이 칸은 그저-
"그렇다면 나는 곧 죽는다는 소리군."
살아만 있는 존재로써. 축배라도 들지 그래 닥터? 축하해. 인류는 또 한번 그들의 적을 없애버리는군. 빈정거리는 듯이 들리지만 덤덤하기만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아무리 들어도 비꼬는 것으로 밖에는 들리지않아서 레너드는 울컥 화가 치밀었다. 둥, 하고 방탄유리벽이 울렸다. 존이 흘끗 벽을 쳐다보았다.
"그 정도로는 깨지지 않을텐데."
"Damn it, 깨고 싶은 게 아니야 이 얼간아!"
식식 숨을 뱉어보았지만 분이 가라앉지를 않았다. 존은 다만 한없이 피로해 보였다. 그놈의 더 나은 어쩌고도 피곤에는 들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후, 하고 본즈는 호흡을 골랐다. 쓸데 없이 열 내고 싶지도 않았다. 열받는 게 어디 인간이 제어할수 있는 일이겠냐마는, 여튼 저 놈한테는 감정과 에너지를 쏟는 것이 영 마뜩찮았다.
"죽지는 않을 거다."
21세기, 20세기. 언제부터였지? 정확한 세기조차 기억나지 않는 역사책에나 나오는 옛날부터 사람들의 입을 데게 하곤 한 뜨거운 감자는 하나하고도 반세기 전 정도에 한 번 매듭을 맺었다. 연방은 사형제를 폐지했다. 어떤 방식으로도, 어떤 형태로도, 공식적으로 사형은 없었다. 무엇도 사람의 목숨을 강제적으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그 원칙이 지금은 레너드를 괴롭히고 있었다. 기껏 최고형이래봐야.
"다만 얼어붙어서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겠지."
맥코이의 것보다 한 톤 낮은 목소리가 그의 생각을 현실로 불러내었다. 레너드가 조금 당황스런 눈동자로 칸을 보았다. 칸은 아주 덤덤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닥터. 그게 죽음과 뭐가 다르지?"
300년간 캡슐 속에서 내가 무엇을 생각했을 것 같은가? 생각조차 할 수 없지. 온전한 무. 천천히 사라져가는 감각과 의식 사이에서 정말로 나는 살아있는가? 그걸, 살아있다고 할 수 있나 닥터? 낮고, 어둑하고, 속삭이는 듯한 어조가 천천히 궤변을 읊었다. 레너드의 손이 조금 떨렸다. 아직 유리벽을 두드린 그 손 모양 그대로 굳어있는 맥코이의 주먹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존은 조금 긴 숨을 내쉬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거의 움직이지 않는 숨이 간간히, 아주 간간히 침묵의 구성요소로 녹아들었다. 다음 순간 레너드는 구금실 바로 앞 복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호흡은 고르지 못했고 어쩐지 속이 울렁거렸다. 살아있는 건가? 다시 한 번 속삭이는 것 같은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존 해리슨에 대해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의사는 없었다. 자부심도 뭣도 아닌 그저 현재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칸에 대한 재판이 끝나고 동면 작업이 시작된다면 그 작업에 한 팔을 더하다 못해 주도를 하게 되리란 사실을 맥코이는 알고 있었다. 다만 무시하고 있었을 뿐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뼈에 새겨진 이 팔뚝으로, 자신은 사람을 죽이게 되는 것이었다.
-
"아냐, 죽지는 않지 참."
그냥 얼어붙을 뿐. 커크가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그 자리에 있는 줄도 잊고 있었던 스팍이 캡틴, 하고 커크를 불렀다. 어째 약간 못마땅한 어조로 들려서 커크는 괜히 뒤통수를 긁으려다 본즈에게 차트로 손등을 얻어맞았다.
"양쪽 손에 다 링겔 꽂고 있는 주제에 어디서 심장 위로 손을 들려고 들어."
죽고 싶어? 라고 물으려다 맥코이는 입을 다물었다. 퉁퉁거리는 커크를 스팍에게 인수인계하고 레너드는 병실 밖으로 나왔다. 지구에 있는 병실로 자리를 옮기고 난 후에 레너드는 그나마 한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온갖 부작용에 관한 연구를 해 대려고 했지만 평소에 검증된 일반 백신에도 발작하듯 과다 면역 반응을 보이던 제임스의 몸은 이번따라 이상할 정도로 잠잠했다. 속도도 딱 적당히 회복 되었고 특별한 이상반응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이 병원 내에서 오로지 커크만을 위한 의사인 레너드의 할 일은 급속도로 사라져버렸다. 모순적으로, 그래서 레너드는 숨이 막혀왔다.
동면에 들어간 자도 숨을 쉰다. 다음에 혹여나 다시 살릴 때를 대비해 눈을 감은 그 순간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다. 모든 체액을 제거하고 부동액을 집어 넣은 후에.
그 후에.
섭씨 영하 196도. 그리고 그 이하. 어떤 인간도 생존할 수 없는 온도에서. 그곳에서도 숨을 쉬고 있는가. 너는, 너는 살아있는가. 존 해리슨은, 칸 누니언 싱은, 살아 있는가.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는 상태인가. 너는 살아있는가.
호흡소리가 귀에서 떨어지려고 하지를 않았다. 침묵하면 침묵할수록 그 안에 녹아 들어있는 아주 작고, 옅고, 약한 숨소리가 귓가에서 맴을 돌았다. 죽은자를 위한 의식은 산 자를 위로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어딘가의 누군가가 말했다. 그 어떠한 의식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수없는 그를 위해 치러질 수 없었다. 자신이 그를 죽였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기에 레너드 맥코이는 결코 위로 받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