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겁쟁이 페달

[후쿠킨] 마네키네코

ㄷㄷㄷㄷ 2023. 1. 20. 13:05

2014년도 글 백업입니다.

 

안녕하세요? 마네키네코입니다. 어, 뭔가 당황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진짜 마네키네코입니다. 예명 같은 게 아니라 진짜에요. 진짜 마네키네코요. 오른발을 머리위로 치켜들고 목에는 예쁜 금색 방울도 하나 걸고 있답니다. 주인님이 말씀하시길 키는 한 뼘 정도라고 하셨어요. 저희 주인님은 키가 크신 남자분이니까 한 20센티미터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네키네코 답게 제 자리는 현관 근처입니다. 사실 주인님의 집은 원룸이라서 현관의 의미가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요. 원룸이라고는 해도 좋은 집입니다. 제 옆자리는 주인님의 침대에요. 싱글 침대 발치에 장식장, 아니 작은 서랍장을 두고 그 위에 핸드폰과 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답니다. 가끔, 오늘 같은 날에는 두꺼운 책 한 권이 핸드폰 밑에 깔려 있는 경우도 있답니다. 침대 머리맡에는 커다란 창문이 있어요. 바로 보이는 게 마당이 아니라서, 아마도 주인님 방은 아파트 2층에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침대 반대쪽 벽에는 책상이랑 책장이 있고요, 잇닿아 있는 벽, 그러니까 창문의 맞은편에는 조그마한 싱크대와 가스렌지가 있습니다. 현관을 들어오면 바로 화장실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요. 어엿한 집 한 채랍니다. 사실 원룸이다보니, 결코 크지는 않지만요. 주인님 걸음으로는 창문과 부엌 사이가 채 다섯 여섯 걸음도 되지 않습니다.

부우웅, 부우웅. 제 옆자리에 있는 핸드폰이 덜덜 떨립니다. 보통은 얇은 판때기인 서랍장 위쪽에 부딪혀서 소리가 더 큰 편인데 오늘은 아래에 두툼한 책이 있어서 그런지 소리가 좀 작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주인님이 못 깨어나는 일은 없지만요. 천천히 일어나신 주인님이 피곤하신지 손을 얼굴에 문지릅니다. 그 사이에 핸드폰은 몸을 떠는 걸 멈췄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제 앞까지 오신 주인님이 핸드폰을 몇 번 누르십니다. 왜 굳이 저걸 누르는 걸로 아침을 시작하시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좋은 아침.”

이렇게 저를 쓰다듬어 주시는 걸로 시작해도 되는데 말이죠. 비록 인사를 돌려드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주인님이 저렇게 말씀해주시는 것만 해도 저는 아주 기쁘답니다. 이제 곧 주인님은 화장실에 들어가세요. 물소리가 잠깐 나고 나면 수건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나오십니다. 그리고 길고 두툼하지만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십니다. 다녀올게, 하고 말씀하시며 문을 열면 차가운 공기가 집안으로 휭휭 새어 들어와요.

저는 똑똑한 마네키네코라 시계 보는 법을 금방 배웠어요. 40분 정도가 지나고 나면 주인님이 숨을 고르며 다시 집으로 돌아오십니다. 찬바람이 많이 들어오는데도 주인님의 이마에서는 땀이 뚝뚝 굴러 떨어집니다. 그 사이에 아까까지는 까맣던 문 밖이 조금쯤 하얗게 변해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주인님은 어제 입었던 옷을 벗어둔 바구니를 들고 화장실로 다시 들어가십니다. 다시 나올 때는 옷을 다른 걸로 갈아입고 수건으로 팔을 문지르며 나오세요. 화장실 안에서는 덜덜덜 떨리는 소리가 나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아침을 드세요. 오늘 아침은, 으음. 저는 저게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얗고 납작한 것 가운데에 노란 게 동그랗게 얹혀져있는 거에요. 매일 드시는 걸 보면 맛있는 걸까요? 그리고 갈색의 납작하게 구운 무언가와 초록색의 풀들. 주인님의 상에는 이런저런 게 많이 올라오는 편입니다만,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주인님은 하루 세 번 꼭꼭 뭔가를 상 위에 올리고 드세요. 잘은 모르지만, 예전에 주인님이 어머니라고 부르던 분이 말씀하시는 걸 보면 그건 좋은 일인가봅니다.

그리고 나면 주인님은 청소를 하세요. 매일매일 하시는 청소라서 사실 그렇게 많이 나오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빗자루로 쓸어봐야 주인님 손으로 한줌도 안 되는 먼지가 전부입니다. 일주일 정도 전부터는 끝이 갈래갈래 갈라진 걸로 책장이나 서랍장 위를 두드리는 데도 그래요. 가끔은 제 머리 위를 그걸로 문지르시기도 한답니다. 매일매일 저를 물수건으로 닦으시는데도 말이에요! 그리고 나서는 화장실에서 아까 가지고 들어갔던 옷들과 바구니를 꺼내세요. 창문의 너머에도 어느 정도 공간이 있는지 거기에다 옷들을 두고 오세요. 그냥 두고 오시면 될 것도 같은데, 꼭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야 오십니다. 바구니도 따로 들고서요. 걷힌 커튼 너머로 보면 그걸 왜 일일이 줄지어 세우고 계시는 건지 저는 궁금합니다. 열고 닫을 때마다 아침보다는 따뜻해 졌다고는 하지만 찬바람이 휭휭 새는데 말이죠. 오늘은 아예 이불도 널고 오셨어요. 날씨가 좋군. 하고 말씀하시면서 말이죠.

식탁이 한 번 더 차려지고 난 후에는-이번에는 공기에 담긴 하얀 것과 비슷하지만 더 깊은 그릇에 담긴 갈색의 물, 그리고 이런 저런 반찬들이었어요. 그래서인지 뭔가를 두드리는 소리 같은 것도 많이 났고 만드시는 시간도 더 오래 걸렸어요.-책상 앞의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으십니다. 어제 읽으시던 책을 다시 읽고 계세요. 읽다가 도중에 잠이 드신 탓인가 봅니다. 주인님은 책을 굉장히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커다란 주머니에 책을 몇 권 넣으셔서 나갔다 오실 때가 있어요. 그럼 돌아오실 때 즈음해서는 책이 전부 바뀌어 돌아온답니다. 마술을 부리시는 것 같이 말이죠. 사실 저희 주인님은 마술에도 관심이 있으신 것 같아요. 가끔 책 중에서 마술 교재도 있는 것 같으니까요. 저희 주인님은 마법사인 걸까요?

핸드폰이 또 웅웅 울립니다. 주인님이 책에서 시선을 떼는 순간 중에 하나입니다. 핸드폰을 여시고 몇 번 단추를 꾹꾹 누르십니다. 그리고는 책을 덮으셨어요. 또 잠시 뒤에 우웅, 하고 핸드폰이 울립니다. 저게 사람들이 말하는 연락을 취한다, 는 것인 것 같습니다. 가끔 주인님이 저렇게 하실 때가 있어요. 평소에는 책만 보고 계실 때가 많지만 그래도 저런 식으로 핸드폰이 제 몫을 다할 때가 있습니다. 후후. 주인님이 웃으셨어요. 뭔가 즐거운 일이라도 생기신 걸까요.

핸드폰을 두드리다 주인님이 문득 시계를 봅니다. 그리고는 또 옷을 갈아입으세요. 아르바이트라는 걸 다니신다고 하시는 모양입니다. 주인님의 어머니는 걱정하시는 모양이지만 열심히 다니시는 모양이에요. 그런 거 할 필요 없는데, 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지만 주인님은 그런 어머니께 조곤조곤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저는 기억하지 못하는 어렵고 긴 말이었지만 말이에요.

다녀올게, 라고 말하고 주인님은 또 나가셨습니다. 이제 앞으로 한참 동안은 들어오지 않으실 거에요. 으음, 그럼 제가 할 일은 텅 빈 집을 지키는 것밖에는 없답니다. 아직 포장지에서 나온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마네키네코로서는 어려운 일이 아닐 수밖에 없습니다.

응? 제 나이요? 만들어진 게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포장지에서 나온지 한 달이 된 건 맞는 것 같아요. 네모난 각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둥실둥실 들려서 주인님 손에 들어갔어요. 저는 아무래도 ‘선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열어본 사람은 주인님이 아니었으니까요. 물론 확인만 하려고 한 건지 금방 다시 곽이 닫히긴 했습니다. 그리고 한참이나 있다가 주인님이 저를 열어보셨어요. 그리고는 풋, 하고 웃음이 터지셨죠. 저는 그 이후로 아직 그렇게 웃으시는 주인님을 다시 본 적은 없습니다. 신기한 일이었나 봐요. 그 소리와 함께 미안하다, 라는 소리가 들려서 주인님은 다시 웃으셨으니까요. 그 때 주인님의 대답은 짧아서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냐, 좋은 선물 고맙다. 그리고 저는 그 다음날부터 집의 현관을 지키게 되었어요.

사실 제 나이는 주인님이 이 집에 계셨던 시간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 다음날에 주인님이 어머니, 라고 부르는 분이 오셔서 놓고 간 옷이라며 이것저것 챙겨 넣고 가셨으니까요. 주인님은 아무래도 대학생, 이라고 불리는 것 같아요. 으음, 아직 학교에 가시지는 않는 것 같지만 방학과 비슷하다는 것 같으니까요.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하고 주인님의 어머니는 말씀하셨어요. 그래도 얼마 안 있어 집으로 돌아가셨으니, 별로 걱정을 많이 하시는 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아,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났습니다. 창 밖을 보니 벌써 하늘이 깜깜합니다. 평소에는 이것보다 일찍 돌아오셨는데 웬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차밖에 없는데 괜찮은가?”

“음.”

어라, 오늘은 손님입니다. 주인님이 불을 켜자 사람이 한 명 더 온게 확실해 졌습니다. 음, 하고 소리를 낸 분은 노란 머리를 하고 머리가 깁니다. 사람들은 다 주인님처럼 머리가 짧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봐요. 여튼 손님이 오시다니, 제가 마네키네코의 일을 다 한 걸까요?

“특별히 앉을 데는 없지만, 침대라도 괜찮다면 앉아라.”

“고맙다 킨조.”

주인님이 이야기 하자 손님이 쭈뼛쭈뼛 안으로 들어옵니다. 신발을 가지런하게 벗고 들어온 손님이 침대의 발치에 앉았습니다. 핸드폰은 주인님이 가지고 계실테고, 책은 다시 책장 안으로 돌아갔으니 제 바로 옆에 앉은 거네요. 주인님 외의 사람이 여기 들어온 건 특별히 없었던 일입니다.

그나저나 손님도 별로 말이 없으신 편인 걸까요. 방 안은 물 끓는 소리만 납니다. 그러고 보니 주인님은 오늘은 상을 한 번 덜 차리셨네요. 밖에서 드시고 들어온 걸까요? 생각하고 있는데 어색하게 방을 둘러보던 손님이 문득 저를 쥐었습니다. 어, 들렸습니다. 둥실, 하고 공중에 떠올랐습니다. 우와, 엄지손가락으로 얼굴을 비비지 말아주세요!

“이거.”

“음? 아. 마네키네코.”

“계속, 현관에 둔 건가.”

“그런가.”

어, 말씀하시는 걸 보니 저를 주인님께 선물한 그 손님인가봐요. 미안하다, 고 했던 그 분이요. 잠시 저를 더 보시던 손님이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다라고 말합니다. 주인님이 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하는데, 후쿠토미.”

“하지만.”

“일단 마네키네코는.”

차가 다 되었나 봅니다. 주인님이 잔을 한 개씩 양손에 쥐고 손님에게 건넵니다. 손님이 저를 서랍장 위로 올리고 잔을 받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복(福 :ふく후쿠)을 불러온다고 하니까.”

어, 손님이 멈췄습니다. 주인님이 잔이 뜨겁다고 말하자 그제야 양손으로 쥐고 있던 잔을 바닥에 잔을 내려놓습니다. 주인님이 아침에 자주 그러듯이 손님도 손으로 얼굴을 문지릅니다.

“킨조.”

“음?”

“좋아한다.”

큼, 하고 주인님이 헛기침을 하십니다. 저는 처음 보는 얼굴입니다. 신기하네요. 어, 방의 불이 꺼졌습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잘 시간이네요. 그래서 그런 걸까요? 평소에는 책을 보느라 이것보다 늦게 주무시기도 합니다만. 희한한 일이네요. 방에 불이 꺼졌으니 저도 눈을 붙여야 겠습니다. 모두,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