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갤리] 개인의 흥망사 (11)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 등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지식이 일천합니다. 혹시 오류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캐붕이 심합니다.
*이어지네요...
*2016년 글 백업입니다
깁스를 풀었다. 팔에서 기괴한 냄새가 올라와서 갤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날이 더워서 그런가, 냄새가 유난히도 독한 기분이었다. 한차례 더 검사를 마치고 완쾌 판정을 내린 민호가 문득 물었다.
"너 그러고보니까 병가 언제까지냐?"
"내일."
"빡빡하네."
"그렇지 뭐."
일단 집에 가서 씻고, 내일 뵙겠다고 한 번 인사 드리러 오고. 할 일이 벌써부터 태산 같았다. 그래도 이것저것 미리 처리해 둬서 다행이지. 집 정리나 하는 것까지 손도 못 대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 했다. 갤리는 고개를 주억거리다 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다음 환자가 밀려있는지 민호도 별 말 하지 않고 갤리를 보내주었다.
길은 한산했다. 평일인 탓이었다. 더운 건 여전히 변하지 않아서 갤리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집을 향했다.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에서는 아지랑이 같은 게 흔들렸다. 팔이 편하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은 되었지만 그렇다고 덜 더운 건 아니었다. 땀 찬 깁스가 없는 게 위로가 되는 정도지. 갤리는 땀을 닦아내리며 생각했다.
씻고 나오자 에세이 탈고를 마친 듯 토마스가 맥주를 뜯고 있었다. 저거 마시고 곧 자겠네. 갤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광경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또 잠깐 회사에 다녀온 뒤 아침 출근에 맞춰 자고, 내일부터는 또 정상적으로 출근을 해야했다. 출근을 해서는 이것저것 살필 게 많았다. 셔츠와 바지를 꿰어 입고나서 마트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볕은 여전히 땡땡 내리쬐고 날은 무더웠다. 오랜만에 타려는 차는 철판마냥 달구어져 있었다. 세차도 한 번 해야할 판이었다. 갤리는 차에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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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더워서 그런지 음료수는 금방 동이 났다. 다들 좋아했기 때문에 가져온 보람은 있었지만 좀 전까지 묵직했던 손이 허전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비닐봉투가 손에 안 파고드는 걸 좋아해야 하나. 이상한 생각을 하다 갤리는 몸을 돌렸다. 내일은 뭘 얼마나 근무해야 하려나. 휴가 복귀를 예전부터 잡아뒀으니 스케줄도 전부 잡혀있을 것이었다. 진료실 가면 나오려나. 이 주 전까지만 해도 꿰고 있던 것을 이제 와 다시 찾으려니 영 어색했다.
다행히 갤리는 얼마 가지 않아서 자신의 스케줄을 찾을 수 있었다. 당장 내일은 정상 근무였지만, 그 다음날은 당직이었다. 오늘 집에 가서 하루 종일 자고 와야겠네. 갤리는 깊은 숨을 내쉬고 일정을 핸드폰에 입력했다. 아예 예상 못한 일도 아니었으니 괜찮았다.
-그럼 뉴트는 내일 봐야겠네. 갤리는 그렇게, 의식적으로 생각했다. 빠른 시일 내에 보는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조금 정도는 미뤄도 괜찮았다. 그리고 약간, 시간을 두고 알아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천천히 기다림이 필요한 때였다. 오늘 와서 우연히 마주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아니라면 그것 나름대로 괜찮았다. 갤리는 몸을 조금 사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령이다보니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긴 하지만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주차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날이 더워서 다들 나오기를 꺼리는 모양이었다. 꼭 집에 가야하는 사람이 아니면 나오기 힘든 날씨긴 했다. 갤리는 문을 닫고 시동을 걸자마자 에어컨을 켰다. 공기는 물론이고 시트까지 뜨끈거리는 데다 에어컨에서도 잠시 뜨거운 바람이 나왔다. 갤리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마저도 뜨거워서 곧 후회하긴 했지만. 에어컨에서 차가운 바람이 나오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갤리는 천천히 차를 움직여서 정문을 향했다. 차도 사람도 적어서 정문까지 이동하기는 수월했다. 정문을 나가기 직전에 신호에 걸려서 갤리는 잠시 핸들을 두드렸다. 문득, 팔을 다치고 난 이후에 병원에 와서 뉴트를 안 보고 가는 것은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 게 다 처음이네. 갤리는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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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나와.”
“뭐?”
빵을 한 입 베어물기 직전에 민호는 뭔지 모를 소리를 뱉었다. 갤리의 말이 당황스러워서였다. 어제의 복귀 후 첫 근무는 이렇다 할 말 없이 순탄하게 굴러간 편이었고, 둘쨋날인 오늘도 점심시간 현재까지 별 지장은 없는 편이었다. 그러나 갤리의 얼굴은 침울했다.
“뉴트가 안 나와.”
“뭘 새삼.”
민호는 빵을 한 입 가득 차게 베어 물었다. 못 볼 수도 있는 게 아니겠는가. 걔도 하루종일 돌아다닌다면서. 갤리가 침통하게 말을 이었다.
“그제부터 전혀 못 봤어.”
“그럴 수도 있지.”
민호가 태연하게 말했다. 갤리도 어제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기가 스쳐 지나갔을 수도 있고, 못 봤을 수도 있다. 그러나 평소에 자신만 보면-비유적인 의미에서-달려오던 뉴트를 생각해보면 그게 더 이상했다. 깁스를 2주면 푼다는 것도 알 텐데, 자신이 근무하는 진료실 정도는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잇을 거고, 그게 아닐지라도 회진할 때 병실에 붙어있는 게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왜 이틀 내내 안 보이는 거지? 갤리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민호는 디저트로 나온 젤리를 먹으면서 갤리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고보니 너 팔은 좀 괜찮냐? 손 쓰는 데 무리는 없지?”
“어어.”
갤리는 왼손을 한 번 꾹 쥐었다 폈다. 한 동안 안 쓰던 손이라 하루 정도는 조금 어색했지만 처음부터 잘 쓰지 않던 손이고 해서 다시 적응하는 데에도 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설마 이거 때문인가. 갤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손을 노려보았다. 그동안은 깁스를 하고 있어서 뉴트가 보였던 건가. 아닐 수도 있다. 팔이 덜 나아서 보였던 것일 수도 있고. 변수가 너무 많았다. 일부러 금이 가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차치하고라도 문제는 많았다. 다시 금이 가야 보일까?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똑같이 금이 간다는 보장도 없다. 민호 말대로 단순히 며칠 눈에 안 띈 걸 수도 있다. 깁스가 특수했나? 납품 받는 건 다 비슷했을 텐데-
생각이 너무 많아서 과부하가 걸릴 것 같았다. 밥은 한 술도 못 떴는데 속이 더부룩했다. 갤리는 한숨을 푹 쉬었다. 저녁에 당직이니까 먹어둬야 하는데 수저를 들 여력이 생기지 않았다. 저녁에 잘 먹으면 되겠지. 그 때까지 보게 될 수도 있고. 갤리는 마음을 다지기로 했다. 안 그래도 찾아봐야 할 논문도 산더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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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씩 퇴근하고 저녁 시간도 지났다. 뉴트는 그때까지 여전히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뉴트 하나만을 위해서 팔에 금이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갤리는 피곤한 눈을 눈꺼풀 위로 마사지하고서 눈을 몇 번 깜박였다.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다가 갤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응급실에서 대기도 해야 하고 어쩌면 올지 모르는 뉴트도 기다려야 했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일이 많았다. 머릿속으로 이런 저런 것을 계산하며 갤리는 진료실 문을 잠그고 문패를 외진으로 바꾸었다.
외래 병동의 불이 하나 둘 씩 꺼지고 있었다. 응급실도 엄밀히 말하면 외래지만, 그 쪽은 24시간이니 좀 느낌이 다르다. 불 꺼진 병동은 조용하다. 의사들이 퇴근하고 난 병동은 조용하기 짝이 없어서 어색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항상 요란하던 곳이 조용하게 되면 신경이 곤두 서기 시작한다. 괴담이 형성되는 건 그런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갤리는 제 발소리에 집중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기 시작했다.
문득, 뒤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뉴트? 갤리는 부르며 뒤를 돌았다. 등 뒤에는 외래 환자들이 앉을 수 있게 되어 있는 벤치들만 늘어서 있었다. 어둡게 그늘이 내려앉은 실내에는 약간 더운 공기가 흐르지도 않고 멈춰 서 있었다. 갤리의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지나갔다. 갤리는 다시 앞을 보았다.
“불렀어?”
“으아아악!”
그리고 눈 앞에서 뉴트가 튀어나왔다. 갤리는 뒤로 두 걸음 정도 물러나다 발이 미끄러져 뒤로 넘어질 뻔했다. 간신히 중심을 잡고 나서도 등 뒤가 서늘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숨이 진정되지 않아서 갤리는 왼쪽 가슴팍을 잡고 숨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썼다. 뉴트가 웃는 소리가 경쾌했다.
“이렇게 놀라는 사람 처음이야.”
“나밖에 널 못 보니까 당연하지!”
갤리는 화를 내다 의자에 주저 앉았다. 핸드폰을 보자 응급실에 가기까지 시간이 아직 약간 남아 있었다. 이야기를 할 시간 정도는 되었다.
“오늘은 아직 퇴근 안 했네?”
“당직이라.”
“그랬던가.”
갤리는 핸드폰 화면을 끄고 뉴트를 바라보았다. 발을 공중에 띄우고 둥둥 떠 있는 뉴트를 보며 갤리는 숨을 푹 내쉬었다. 더부룩하던 속이 한 번에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갤리는 뉴트와 눈을 맞추었다.
“그래서, 그 동안 왜 안 나타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