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갤리] 개인의 흥망사 (9)
*이 글은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 사건, 단체 등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지식이 일천합니다. 혹시 오류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캐붕이 심합니다.
*이어지네요...
*2016년 글 백업입니다
뉴트는 갤리의 어정쩡한 대답에 눈을 몇 번 깜박이며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당연하지만, 민호도 있다는 걸 눈치채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뉴트는 뭐라고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숨이 막히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민호를 반쯤 비껴서-다르게 말하면, 반쯤 통과해서-자기 자신의 발치에 가서 침대 한 켠에 털썩 주저 앉았다. 정확히는, 그런 모양을 했다. 그 소리가 생생히 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 들렸나? 갤리는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뉴트의 얼굴이 꽤나 쓸쓸해 보인다는 것 뿐이었다.
"뭐야."
대답을 바라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약간, 가늘게 떨리는 것 같았다. 갤리는 그제야 민호에게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딱딱하게 얼굴이 굳어있었다. 거짓말을 하는 게 좋을까,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을까. 갤리는 머리를 아플 정도로 굴렸다. 둘 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겠지만, 수월하게 떠올릴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본 적 없는 상황이라 그런 걸까. 뉴트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갤리는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가-
"장난 치지 마라."
민호가 아까보다 좀 더 여물은 목소리로 말했다. 갤리는 한숨을 푹 쉬면서 뒷머리를 긁었다.
“...야.”
“말 돌리려고 하지 말고.”
“가서 음료수 좀 사다 줘라. 아무거나 좀.”
민호는 한숨을 쉬고는 마른세수를 했다. 그래도 아예 들어주지 않을 생각은 없는지, 시간이 별로 없다며 투덜거리면서도 민호는 병실을 나섰다. 문이 닫히자 갤리는 호르르 한숨을 쉬었다. 폐 바닥을 뒤집어 까고 싶을 지경이었다. 뉴트는 갤리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주변을 돌아 천천히 이동에서 자기 몸의 발치에 앉는 시늉을 했다. 잠시 바닥을 바라보던 갤리는 눈을 들어서 뉴트를 바라보았다.
“뉴트.”
“어?”
“내가, 어, 널 본다는 걸 들킨 거 같거든.”
뉴트의 표정은 애매했다. 당혹스럽긴 하지만, 좋은 의미도 나쁜 의미도 아닌 순수한 당황이었다. 반응을 기다리지는 않았는지 갤리는 뉴트의 표정을 보지 않고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내가 착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라. ...네가 여기 있다는 걸 알리려면, 나는 의사니까, 네 허락이 필요해.”
갤리는 숨을 들이켰다. 말을 해 놓고도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갤리는 괜히 깁스를 만지작거렸다. 단단했다.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뉴트는, 사실, 갤리의 질문을 모르겠다고 느꼈다. 숨겨야겠다는 생각이 드냐면, 그렇지 않았다. 뉴트는 어찌되었든 상관없었다. 뉴트의 비밀은 굳이 숨겨서 비밀이 된 것이 아니라, 아무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비밀이 된 것이었다. 역으로 뉴트는 알리고 싶었다. 자신은 여기에 있다고. 멀쩡하게 있다고. 잘못은 아니었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한단 말인가. 아무도 듣지 못한 게 문제였을 뿐이다. 믿어줄 사람도, 아마 없을 것이다. 누군가와 만족스럽게 대화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뉴트는 구명줄을 붙들 듯이, 그렇게 생각했다. -이 생각이 잘못일지도 모르긴 하겠지만.
“선생님은 어떻게 하고 싶은데?”
뉴트는 별 간격을 두지 않고 그렇게 되물었다. 갤리는 숨이 막히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뉴트는 그 표정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 이미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뭐라고 말했어야 하는 걸까. 그 고민부터가 서글퍼서 뉴트는 한숨을 쉬고 싶었다.
“나는.”
갤리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한 마디 말하고,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하는 걸 몇 번이나 반복해야했다.
“나는, 말하는 게... 말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럼 그렇게 해.”
뉴트는 어깨를 으쓱 움직였다. 아니, 그렇게 움직였다고 믿었다. 갤리는 혼이 나간 것 같은 얼굴로 뉴트를 빤히 바라보았다. 갤리의 얼이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약간 시간이 걸렸다. 아까 그 의사가 돌아오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에 쫓기는 것을 깨달았는지 갤리는 급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도 너, 어떻게 될 줄 알고.”
“말 안하면 어떻게 되는데?”
“...그냥, 뭐.”
담당의 좀 바뀌고... 그 정도. 뉴트는 웃었다. 그럼 됐어.
“난 그럼 말하는 게 더 좋아.”
“야 너-”
문이 큰 소리와 함께 열렸다. 민호는 양 손에 다 음료수를 들고 있었다. 왼손에는 캔이 두 개 들려 있었고, 오른손에는 한 손으로도 뜯을 수 있는 팩음료가 들려있었다.
“캔은 못 딸테니까 이걸로 사 왔다. 주스나 마셔.”
“...어어. 고맙다.”
실수로 음료수를 하나 더 뽑았는지 민호는 협탁 위에 음료수 캔 하나를 올려놓고 제 몫의 커피를 뜯었다. 막 뽑아와서인지 손자국이 나 있던 음료수는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데도 금방 김이 서렸다. 목이 타는지 커피를 몇 모금 마신 민호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어?”
“할 말은?”
갤리는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밝히느냐 마느냐는 제 손에 달려 있었다. 뉴트는 괜찮다고 했다. 정말 괜찮을까? 괜찮게 될까?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갤리는 음료수를 협탁에 내려놓고 마른 세수를 했다. 손이 축축하고 차가웠다.
“선생님.”
뉴트가 갤리를 불렀다. 갤리는 무의식적으로 그쪽을 쳐다보았다. 뉴트가 고개를 손을 뻗었다. 하얗게 김이 서린 캔에 손끝이 닿았다. 달칵, 하고 협탁 위에서 캔이 조금 움직였다.
-아주 조금이었지만, 조용한 병실 안에서 소리는 확실하게 났다. 갤리는 잠시 숨이 멎었다가, 곧 다시 뱉었다. 긴 숨이 흘러나와서 민호가 갤리를 쳐다보았다. 갤리는 뭔가 말하려고 하다가, 고개를 젓고 턱짓으로 캔을 가리켰다. 아무도-민호가 보기에-만지지 않은 캔에 분명하게, 손자국이 올라왔으니까. 아주 천천히, 누군가가 쥐는 것을 투시하는 것처럼, 손바닥부터 손가락까지 캔 위로 손자국이 올랐다. 갤리의 손보다는 약간 작고, 가느다란, 그런 손자국. 갤리는 눈을 몇 번 깜박이고 민호를 돌아보았다. 얼굴의 핏기가 옅었다.
“...뭐 마술 같은 거냐?”
“들어왔어.”
“뭐?”
갤리는 다시 턱짓으로 뉴트와, 그리고 뉴트의 몸을 같이 가리켰다.
“뉴트. 지금 들어와 있다고.”
민호는 잠시 입을 벌린 상태로 숨을 멈췄다가 깊이 들이쉬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들어왔다는 건, 지금 말하는 게 네가 아니란 소리야?"
"뭐라는 거야?"
"그러게."
뉴트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맞장구를 쳤다. 강신이라던가, 뭐 그런 거 있잖아. 신내림? 민호가 혼란에 빠진 모습을 보는 건 거의 처음이라 갤리는 역으로 머리가 더 아파왔다. 그냥 이 방에 들어왔어. 노크도 쟤가 한 것 같고. 민호는 침묵에 빠져 들었다. 갤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끔 면회 오는 사람이 있는 크지 않은 개인실에 앉을 곳이라고는 의자 두 개가 다였다. 갤리는 한 번 더 한숨을 쉬었다. 뉴트. 한 번 더 부르자 뉴트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어어, 하고 답을 했다. 민호는 갤리의 시선을 따라갔지만 그 끝을 알 수가 없어서 시선은 여전히 헤메고 있었다. 갤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리 와서 좀 앉아봐."
"어?"
뉴트는 잠시 머뭇머뭇 거리다가 어색한 표정으로 아주 천천히 걸어왔다. 계단을 내려오듯이, 공중에서부터 천천히 바닥에 발을 붙였다. 그리고 의자에 앉았다. 어색한 것처럼, 어린 아이처럼, 무릎 위에 주먹을 얹고 앞으로 조금 기울여서. 민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갤리가 조금 전까지 앉아있던 의자를 들여다보았다. 갤리는 어색하게 웅얼거렸다. 아무래도 얼굴 보고 얘기 하는 편이 나을 거 같아서. 뉴트가 재미 없는 농담이라며 투덜거렸다.
"어, 그러니까. 이 쪽은 뉴트. 옆에 있는 입원 환자. 이쪽은 민호. 이 병원 의사."
"알아. 응급실에서 본 적 있어."
"...여기 앉아 있다고."
"...뭐."
얜 너 응급실에서 봤다고 안댄다. 갤리는 어정쩡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여전히 의자 자체를 뚫어지게 보는 민호에게 뉴트의 얼굴은 어디쯤 있다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나름 눈을 맞추고 나자 병실 안에는 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민호는 거의 공중을 노려보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빤히 쳐다보고 있었고, 뉴트는 그 시선을 피하고 싶은 것처럼 다른-진짜 공중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구조를 외웠을 법한 병실을 여기저기 둘러보는 것처럼.
“뭐 하냐 뉴트.”
“아니, 아무래도 안 익숙해서.”
“뭐라는 거야.”
“혼잣말 하지 마라.”
“쟤가 지금 네 시선을 피하고 있어서 그런다.”
"...아 그래, 그러니까."
민호가 한숨을 푹 쉬자 두 사람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민호는 최대한 눈높이를 바라보며-그래도 조금 어긋나기는 했지만-말을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정형외과 의사 민호라고 합니다. 당신 담당의의 담당의입니다."
"어, 음, 구면이지만 잘 부탁합니다."
"구면이지만 잘 부탁한댄다."
통역사가 된 느낌에 약간 떨떠름하긴 했지만 여튼 이야기는 잘 시작 된 것 같았다. 갤리는 한숨을 푹 쉬었다. 문득 어디선가 진동 소리가 들렸다. 민호가 혀를 차며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냈다. 토마스야. 나가봐야겠는데.